Home > 칼럼 > 아프리카 초원학교 칼럼 목록 > 내용   2006년01월19일 제594호
닭 대신 고슴도치?

우리의 하루 인건비도 안 되는 월급을 받고 행복해하는 문지기 조슈와
밤마다 마당을 활보하는 고슴도치는 주민들에게 꿩처럼 소중한 식량

▣ 김정미/ 여행전문가·지호, 지민 엄마 babingga@hotmail.com

우리 집 문지기 조슈아의 소원은 자전거를 갖는 일이다. 목돈이 없는 그에게 자전거 값 7만5천원은 꽤 큰 돈이다. 나에게 취직하면서부터 7만5천원을 한꺼번에 빌려주고 달마다 월급에서 조금씩 제하면 어떠냐고 물었다. 2주쯤 지켜보니 괜찮은 사람 같아서 7만5천원을 선불로 먼저 주었다. 그 다음날 그는 함박웃음을 지으며 구식 자전거를 굴리고 왔다. 우리가 예전에 높은 안장과 그 아래 페달 사이로 겨우 발을 넣어 타던 구식 자전거다. 조슈아는 “온 식구들 한 번씩 태워주느라 어제 너무 바빴다”며 자전거를 시간만 나면 닦는지 자전거에서 빛이 난다. 내가 처음 자동차 가지던 날이 생각나서 시승 한번 해줄 수 있느냐고 부탁했다. 나와 지호, 지민이는 조슈아와 함께 새 자전거로 동네 유람을 다녔다. 동네 주민 모두 자전거 탄 그에게 부러움의 눈길을 보내며 손을 흔들어 축하해주었다. 그가 행복해하니 나도 무척이나 행복했다.

도대체 4만원으로 어찌 살까


△ 지호(왼쪽)·지민이는 고슴도치는 신기하다. 지민이가 '호'를 불어봐도 고슴도치는 꿈쩍 않는다. (사진/ 김정미)

욕심 없고 항상 즐거운 조슈아와 집안일을 도와주는 자이납이 오늘 월급날이다. 3만5천원과 4만원. 그것만 삐죽 내밀기엔 손이 너무 부끄러워 각각 5천원을 얹어주었다. 외국인 집이라고 현지인 집보다 더 많이 주는데도 미안한 마음을 감출 수 없다. 우리로 치면 하루 인건비도 안 되는 돈이다. 하루만 입어도 시꺼멓게 목때가 끼는 곳에서 아이들이 흙에서 뒹굴고 놀아 흙투성이 옷과 바닥 청소로 허리가 휘는데, 한 달 동안 그렇게 작은 돈을 받고서 새 살림 장만할 생각에 즐거워하는 모습을 보면 미안하기도 하고 작은 것에 만족하는 그들이 부럽기도 하다.

도대체 이것을 받고 어찌 살까? 생활비 빼고 집세 빼고 얼마로 한 달을 살까 계산을 해봤다. 조슈아는 집이 없어 단칸방에 온 가족이 사는데 한 달 월세 1만원을 낸단다. 그리고 물세 2천원과 전기세 2천원. 아무것도 안 먹고 주식인 우갈리(옥수수가루를 떡처럼 끓는 물에 찐 것)만 먹고 살아도 4인 가족이 한 달 식비 3만원은 든다. 그러하니 아파도 병원 갈 엄두도 못 내고 교육도 하기 힘들다. 그래도 하루 종일 싱글벙글하는 그들에게 월급날은 세상 어느 누구보다도 즐거운 날인가 보다.

어느 날 밤, 쏟아지는 달빛이 하도 아름다워 모기 물리는 것도 아랑곳 않고 마당에 나와 앉았다. 서울에서 늘 그리던 그런 밤이다. 시원한 바람이 불고 흙 향기가 마음을 편안하게 해주어 더욱 기분 좋은 밤이다. 지호가 옆에서 궁금한 것들을 물어보느라 종알종알 떠든다. 까만 친구들은 여자건 남자건 머리카락이 머리에 딱 붙어 있는데 어떻게 여자인지 남자인지 아느냐는 얘기, 이곳은 말이 모두 달라서 영어도 배우고 스와힐리어도 배워야 말할 수 있는데 왜 사람들은 한국말을 안 배우는지 궁금하다는 얘기…. 끝없는 질문에 웃음도 나오고 대답할 말도 찾는데, 구석 어디에선가 작은 공이 바스락 움직이며 굴러가는 것 같다. 가까이 가보니 움직이지 않는다. 뭔가 이상해서 막대기로 건드려보니 ‘두두’ 하고 소리를 내며 움찔한다. 아무 생각 없이 손을 댔더니 송곳이 찌르는 것처럼 아프다. 조그만 널빤지를 가져와서 그 위에 올린 뒤 밝은 곳으로 가져와 보니, 너무도 귀여운 고슴도치다. 어른 주먹만 한 크기의 공처럼 완전히 뭉쳐 있다가 파묻었던 고개를 들고 살금살금 움직인다. 턱밑과 배가 아주 하얗다. 우리가 다시 움직이니 얼른 다시 공이 되어 기척도 하지 않고 있다.

예쁜 고슴도치를 어떻게 먹냐고?


△ 조슈아와 그의 새 자전거. 구식 자전거지만, 시간만 나면 닦는지 빛이 난다. (사진/ 김정미)

조슈아에게 물어보니 야행성이라 밤이 되면 아주 많단다. 우리 집 마당에 천지인 개미를 잡아먹으러 오기도 하고, 사람들이 나무를 태우고 남은 재를 좋아해서 그것을 먹으러 온단다. 이 고슴도치는 마을에 사는 종류로 좀 작은데, 숲 속에 사는 것은 이보다 더 커서 토끼만 하다고 한다. 아루샤 박물관에서 봤던 것이 생각난다. 현지말로 ‘능구능구’라고 하는데 자기 고향 집에는 큰 종류가 많아서 종종 잡아서 먹는단다. 맛이 어떠냐고 물으니 연하고 부드러워 닭고기 맛과 비슷하지만 닭보다는 좀더 기름기가 많은 듯하단다. 하지만 고슴도치를 잡는 것은 어렵고, 특히 날카로운 털에 다치기도 하니 조심해야 한다고 했다. 동물원에 갔을 때 털갈이하는 고슴도치에서 나온 털을 서너 개 주워서 온 적이 있는데 아주 뾰족한 화살촉 같았다. 지호가 이렇게 예쁜 고슴도치를 어찌 잡아먹느냐고 화를 낸다. 그러곤 조슈아에게 다시는 잡아먹지 못하도록 다짐을 받는다. 지호가 “고향 집에 가더라도 이제 잡아먹지 말라”고 했더니, 조슈아는 “노력하겠지만 이미 고슴도치의 맛을 아는 동네 사람들은 어쩔 수 없을 것”이라며 웃는다.

생각해보니 우리도 어릴 적 꿩고기를 먹었다. 나도 외갓집에 놀러갔다가 산에 다녀온 동네 어른들이 잡아온 꿩을 맛있게 먹었던 기억이 난다. 뼈가 많아 먹기는 힘들었지만 귀한 대접을 받은 것이었다. 그때는 천지에 널린 게 꿩이었고 산짐승이었다. 고기가 비싼 시절에 먹을 수 있었던 중요한 식량이었다. 야생이니 현재 나에게 신기하고 귀하지, 한 마리에 3천원씩이나 하는 닭을 사먹을 수 없는 원주민들에겐 천지에 널려 있는 야생동물을 잡아먹는 것이 이상할 리 없다. 그저 아무 생각 없이 웃어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