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정구 교수의 논리를 정밀하게 검증한 정치학자 이완범과 국사학자 박태균의 대담… “브루스 커밍스를 넘어서서 소련문서 적극활용해야 한국전쟁 제대로 볼 수 있어”
▣ 사회 길윤형 기자 charisma@hani.co.kr
▣ 대담·정리 류이근 기자 ryuyigeun@hani.co.kr
▣ 토론 박태균/ 서울대 국제대학원 교수·한국사
▣ 이완범/ 한국학중앙연구원 교수·한국정치사
길윤형 기자(이하 길)=요즘 어딜 가나 강 교수 얘기다. 문제가 된 그의 논문에 대한 느낌에서 학문적인 검증으로 논의를 확대해보자.
이완범 한국학중앙연구원 교수(이하 이)=강 교수의 <데일리 서프라이즈> 기고문를 보면, 거두절미하고 글을 써 공격당할 빌미를 제공한 측면이 많다. 논지가 자신의 주장인지,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얘기인지 분간하지 않고 썼다. 대중적인 글이라고 생각했는지, 주장의 출처에 각주도 제대로 달지 않았다. 맥아더 문제를 제기한 다른 글로는 한홍구 성공회대 교수의 것(2002년 5월9일치 <한겨레21> 제407호 ‘한홍구의 역사이야기’)이 있다. 글을 보면, 한홍구 교수의 글이 강 교수 것보다 더 나간 측면도 있다. 그렇지만 한 교수는 논란이 될 만한 부분을 적절히 피했는데, 강 교수는 그렇지 못했다. 지금 ‘만경대 사건’으로 재판도 진행 중인데, 조금 돌출 행동을 한 것 같다.

△ 이완범한국학중앙연구원(왼쪽)와 박태균 서울대 국제대학원 교수가 강정구 교수 필화 사건에 대해 의견을 나누고 있다. (사진/ 류우종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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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련군의 포고는 정치적 수사”
박태균 서울대 국제대학원 교수(이하 박)=일부 보수학자들은 강 교수가 <현대조선역사> <조선통사> 등 북한 저작을 표절한 것 같다고 말하지만 그건 아닌 것 같다. 같은 표현을 썼다고 해서 표절은 아니다. 기본적으로 강 교수는 <한국전쟁의 기원>을 쓴 브루스 커밍스 교수의 수정주의적 사관에 서 있다. 수정주의는 학계에서는 낡은 이론으로 비판받고 있는데, 이를 전적으로 수용하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개인적으로 커밍스를 넘어서야 한국 현대사를 객관적으로 볼 수 있다고 생각한다.
길=강 교수의 논점을 하나하나 짚어보자. 강 교수는 미국은 점령군이고, 한국전쟁은 통일전쟁이라고 주장했다. 학자로서의 견해는 어떤가.
이=미군은 점령군이었다고 생각한다. 강 교수는 글에서 위압적인 맥아더의 포고문과 우리 민족을 많이 생각해주는 듯한 분위기를 풍기는 소련군 사령관 치스차코프의 포고문을 비교 인용했다. 그렇지만 소련군의 포고는 다분히 정치적인 수사에 가깝다. 그들의 의도는 우리나라를 점령해 친소적인 사회주의 국가를 만드는 것이었다. 조선 사람과 잘 지내자는 인사치레로 한 것을 해방군이라고 보기 어렵다. 미군은 점령군이고 소련군은 해방군이 아니라, 둘 모두 점령군이라고 봐야 한다.
박=그 부분에서 강 교수의 수정주의적 시각을 느낄 수 있다. 강 교수가 그렇게 쓴 것은 미국 쪽 문서만 검토한 결과로 보인다. 개방 이후 소련 쪽 문서가 쏟아져나왔는데, 이를 보면 소련도 자국의 이익을 위해 한반도 문제에 접근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한 나라가 자신의 국익을 중심으로 대외정책을 펼치는 것에 대해 꼭 부정적으로만 볼 필요는 없다. 미국의 역할도 그런 차원에서 접근해야 한다. 통일전쟁이라는 주장에 대해서도, 북쪽 입장에서 보면 통일전쟁일 수 있다. 그러나 전쟁의 성격을 한쪽 당사자의 입장에서 규정할 수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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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완범/ 한국학중앙연구원 교수· 한국정치사. (사진/ 류우종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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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또 맥아더가 분단의 집달리라는 표현이 있다. 좀더 정확히 말한다면, 사실상 분단의 집달리는 주한미군 사령관을 지낸 하지 중장이다. 맥아더와 38선은 직접적인 상관이 없다. 미군정 동안 맥아더의 입장이 관철된 부분은 이승만 귀국 등 몇 가지 사안에 한정된다. 이런 부분을 조금 더 정밀하게 접근했으면 하는 아쉬움이 있다. 강 교수는 또 “전쟁 과정에서 사상자를 낸 주된 장본인은 미국의 대량살상무기에 의한 무차별 학살이었고, 이승만 정부의 체계적인 민간인 학살”이라고 썼다. 이게 커밍스의 주장인데, 그를 성경처럼 인용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 미군은 그저 빨갱이와 구분이 안 되기 때문에 민간인들을 죽였을 뿐이라고 본다. 누굴 체계적인 의도를 가지고 죽였다고 말하려면, 엄격한 검증이 필요하다.
박=그 지적에 동감하지만, 그렇다고 책임을 피할 수는 없다. 한국전쟁 시기 민간인 학살이 있었던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그에 대한 적절한 사후 처리도 없었다. 정확히 누가 얼마큼 잘못했고 누구에게 어떤 책임을 물어야 하는지는 정밀하게 따져야 한다. 남북한과 미군은 민간인 학살을 전쟁범죄로 처리하지 않았다. 그런 의미에서 (미국이) 역사적 책임을 면할 수는 없다.
역사적 가정은 엄격히 적용해야
길=보수주의 학자들은 강 교수의 방법론에도 많은 문제를 제기한다. 강 교수가 자주 사용하는 이른바 ‘역사추상형 접근법’(역사적 가정법)이다. 이를테면 미군이 개입하지 않았으면 1만 명이 죽었을 텐데, 결과적으로 400만 명이 죽었다고 말한다.
이=역사에서 가정은 어찌 보면 부질없다. 예를 들어 미군이 안 들어와 우리나라가 통일됐으면 이후 어떻게 발전했을지는 아무도 모른다. 소련의 위성국이 되거나 중국 같은 자주국이 됐을 수도 있다. 이것은 검증하기 어려운 얘기다. 결국 남에게 책임을 전가하는 가정법인데, 학문적으로 검증이 어렵고, 어떤 면에서는 나이브한 얘기다.
박=이 부분에 대해서는 강 교수가 다소 오버를 한 것 같다. 하나의 가정이 나오면 또 다른 가정이 나온다. 6·25 때 남침하지 않았으면 1만 명도 죽지 않았을 것이다. 반대로 이승만의 탄압으로 더 많은 사람이 죽었을 것이라는 가정도 가능하다. 이런 얘기가 나오면 논의가 복잡해진다. 사회과학자들이 많이 사용하는 방법론인데, 엄격한 적용이 필요하다.
길=지난 9월30일 ‘민주화를 위한 전국교수협의회’ 정책토론회에서 강 교수가 한 주장에 대해서도 찬반 논란이 인다. 해방 직후 사회주의, 공산주의 지지 세력이 77%라는 것인데.
이=사회주의 70% 지지는 객관적인 사실이다. 1946년 8월 미군정 여론국이 벌인 조사다(조사 대상 8453명). 그렇지만 좀더 정확히 말하면 사회주의가 70%, 공산주의가 7%, 자본주의는 14%였다.
박=해방 직후 사회주의적 경향이 강했던 것은 보수적인 학자들도 인정하는 사실이다. 그러나 자료에서는 사회주의와 공산주의를 분리해서 물었다. 이를 뭉뚱그려 사회주의, 공산주의 지지 77%라고 말하는 것은 실수가 아닌가 싶다. 사회주의 지지는 좌파들이 당시 사회적 과제였던 토지개혁과 친일파 청산에 대해 좀더 분명한 입장을 갖고 있었기 때문이다. 또 조소앙 같은 분은 사회주의와 민족주의의 경계에 있었는데, 사회주의에 이런 분들에 대한 지지까지 포함된 게 아니냐는 생각이 든다. 식민지 시기부터 군국주의와 파쇼, 반공주의에 대한 거부감은 강했던 것 같다.
길=강만길 ‘광복 60주년 기념사업추진위원장’이 “김일성의 빨치산 운동도 독립운동”이라고 말했다가 보수 언론의 공격을 받았다. 보수 언론은 “그럼 김일성을 국립묘지로 모셔야 되느냐”고 공세를 퍼부었다. 김일성이 항일운동을 했다는 것은 보수 학자들도 인정하는 사실인데, 강 교수를 공격하는 쪽에서는 사실과 가치판단을 혼동하는 것 같다. 강 교수 논의에서도 그런 게 느껴지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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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태균/ 서울대 국제대학원 교수· 한국사 (사진/ 류우종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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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김일성이 독립운동을 했다는 것은 학계에서 부인하는 사람이 없다. 단 문제가 되는 것은 ‘정통성’ 문제와 연결되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정통성은 고정된 것이 아니고, 국민적 합의에 따라 만들어지는 것이다. 1948년의 시각으로 지금의 정통성을 논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 정권에 참여한 인적 구성을 보면 북쪽에 독립운동가들이 더 많았던 것이 사실이다. 그렇지만 남쪽에는 친일파만 있었느냐. 그건 아니다. 거칠게 말해 북쪽에는 이승만과 도저히 못살겠는 사람, 남쪽에는 김일성과 도저히 못살겠는 사람이 모였다. 가령 조봉암은 박헌영 때문에 북으로 안 갔다. 이런 구체적인 사실을 가지고 진지하게 학문적인 논의가 진행됐으면 한다.
학문적 접근 없을 때 역사는 소설
이=한나라당이 정통성 문제를 얘기하지만, 탈냉전기의 정통성은 한나라당이 생각하는 보수 우익적인 것이 아니다. 우리 시대에는 북한과 대화를 하고 국가보안법을 철폐해야 한다. 강 교수 문제가 터지고 나서 말이 바뀌었지만, 한나라당도 보안법을 일부 개정해야 한다는 데에는 의견을 같이했다. 보수 우익적 입장에서 “강 교수를 체제 파괴하는 세력”이라고 얘기한다면 그들의 생각이 너무 경직된 것이다.
박=이제는 남과 북이 이데올로기적 경쟁을 해야 할 때는 지났다고 본다. 그만큼 남한 사회가 성숙했다. 그러기 위해 학문·사상의 자유가 엄격히 보장돼야 한다. 송두율 교수가 국민과 지식인들을 많이 실망시켰지만, 결국 남한에 있고 싶다고 하는 것은 우리 체제의 우월성을 보여준다. 그런데 그런 사람을 구속해 다시 내쫓았다. 그런 것이 극복되지 않으면 자유민주주의의 성숙은 힘들다. 이번 문제에서도 “당신 주장이 국민적 공감을 얻기 힘들다”고 말하면 된다. 사법적 잣대를 들이대는 것은 후진국에서나 일어날 일이다.
이=송두율 사건과 강정구 교수는 차원이 다른 문제다. 독일과 외교적인 문제가 끼어 있는 송 교수 문제와 달리, 이 문제는 순수히 우리 내부에서 충분히 흡수할 수 있다. 개인적으로는 맥아더 동상도 역사라고 생각한다. 그렇지만 맥아더 동상을 철거하자는 조장이 뭐가 문제인가. 인터넷에 올라온 글을 보면 “북한에 가서 살라”는 욕설이 많지만, 강 교수도 아마 북에 가라고 하면 가지 않을 것이다. 강 교수에게 물어보면 자신은 주사나 친북 인사가 아니라고 한다. 양심적인 보수 학자들도 “강 교수의 의견에는 반대하지만 구속은 안 된다”고 말한다.
박=평양에 <아리랑> 공연을 보러 가자고 하니까, 오해를 살 수 있다며 거절하더라. 기본적으로 순수하고 착한 분이다.
길=그럼에도 대중의 정치적 감성과 강 교수의 주장에 괴리가 있는 것은 사실이다.
박=논쟁을 학문적으로 풀지 않고 칼럼으로 푼 게 문제다. 글을 쓰는 데 꼭 대중의 눈높이에 맞출 필요는 없지만, 글이 너무 공격적이라는 생각이 든다. 학술지에 쓰는 글이면 이보다 더 심한 얘기도 할 수 있었을 것이다. 그렇지만 칼럼은 좀 다르지 않나?
이=하나하나 보자. 강 교수는 “1·4 후퇴 당시인 1950년에 맥아더가 중국과 북한에 26개의 원자탄을 투하하려 했다”고 썼다. 이게 커밍스의 얘기다. 그렇지만 왜 폭탄이 25개나 27개가 아니고 26개인가. 사실 핵폭탄은 트루먼이 먼저 쓰자고 했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보면 지금까지 지구상에 떨어진 핵폭탄은 딱 2개다. 미국이 핵폭탄 26개를 떨어뜨리자는 계획을 세웠을 수는 있지만, 실행되지 않았다. 그렇게 된 데에는 다 이유가 있다. 이런 부분에 대한 학문적인 접근 없이 단순히 “핵폭탄을 떨어뜨리려 했다”고 말하면 역사는 소설이 된다.

△ 10월15일 민주화를 위한 전국교수협의회 등은 토론회를 열어 "사법당국은 학문과 사상의 자유를 위해 강 교수에 대한 수사를 즉시 멈추라"고 요구했다. (사진/ 박승화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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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사실 커밍스의 글을 보면 음모론적인 얘기가 많이 나온다. 미국의 대외관계 문서를 볼 때는 층위가 있다. 초안이 있고, 논의 과정을 거쳐 수정되고, 마지막에 결정된 문서가 있다. 커밍스는 공부를 너무 열심히 하다 보니 이 문서들을 다 봤다. 초안 수준의 문서로도 글을 쓴다. 그래서 음모론에 치우치는 경향이 있다. 강 교수는 커밍스의 얘기를 전적으로 인용했다. 글을 쓸 때 이건 커밍스 얘기라고 주라도 달았으면 좋을 텐데 그러지 않았다.
우리 사회 성숙시킬 지성사적 사건
길=그럼에도 강 교수 논란을 통해 우리 사회가 배운 교훈이 있을 것이다.
이=강 교수 사태 이후 우리 사회가 이념적 화두를 중심으로 좌우로 갈라섰다. 열린우리당은 강 교수의 인권 문제를 들고 나와 상대적으로 진보적인 모습을 보이고, 한나라당은 색깔 공세로 전환해 자신의 정체성을 그대로 드러냈다. 장기적으로 한국 정치도 이념적 색채가 확실히 드러나는 유럽식 정치로 나아가길 기대한다. 그런 측면에서 강 교수의 수난이 우리 정치 발전에 부정적인 영향을 가져온 것만은 아니다.
박=조직 이기주의에 빠져 있는 검찰과 경찰에 크게 실망했지만, 젊은 검사들은 이번 사태를 이전과는 다르게 본다고 한다. 희망적인 얘기다. 검찰총장이 이런 일로 옷을 벗었다는 것 자체가 변화다. 이제 한국전쟁에 대해서도 본격적으로 토론할 때가 온 것 같다. 소련 쪽 문서들이 많이 발표되면서 토론을 할 만한 학문적 성과가 쌓였다.
이=우리 사회는 이념적 스펙트럼이 양 극단으로 치닫고 있어서 사상의 자유가 용납되지 않는다. 강 교수가 결국 총대를 멨다. 그런 면에서 이번 사건은 우리 사회가 한 단계 더 성숙할 수 있는 하나의 지성사적 사건이다. 지금의 모습만 보면 색깔론으로 단결한 우익들이 한데 뭉치는 요인이 된 측면도 있다. 시간이 지날수록 극단으로 치닫는 것에 대한 반성이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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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정주의란 무엇인가 냉전의 원인을 미국 팽창주의에서 찾고‘남침유도설’ 강조
한국전쟁의 기원에 대한 ‘전통적’ 해석은 공산주의자들의 팽창정책이 원인이라는 것이었다. 이런 관점에서 볼 때 한국전쟁은 동북아시아에서 공산주의의 확장을 꾀하려고 스탈린의 지시로 마오쩌둥과 김일성이 치밀하게 모의해 벌인 전쟁이다. 이는 1970년대 전통적 해석에 대한 수정이 시도되며 설득력을 잃기 시작했다. 브루스 커밍스의 <한국전쟁의 기원>으로 대표되는 ‘수정주의’는 냉전의 원인이 미국의 팽창주의에 있고 한국전쟁도 당시 미국과 이승만 정권의 ‘남침 유도’에 있다고 해석하는 관점이다. 수정주의는 한국 내부의 상황은 미국에 의해 변화됐으며 그것이 곧바로 분단과 한국전쟁의 원인이 됐다고 주장한다. 수정주의가 싹트게 된 배경에는 베트남전으로 미국 내에 새롭게 싹튼 반전 의식과 30년 만에 비밀이 해제된 미국의 외교문서들이 있었다.
그러나 수정주의를 받아들이면 한국 내부의 정치적 역동성은 꺾이게 된다. 미국은 원하는 것을 모두 얻고, 세계 체제는 그 힘에 의해 움직이게 되는 셈이다. 현재 학계는 수정주의를 벗어나 소련·중국·미국 등의 역할과 한국 내부의 정치·사회·군사적인 역학 등으로 논의틀을 확장해나가고 있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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