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승근의 도전인터뷰]
▣ 신승근 기자 skshin@hani.co.kr
한국전쟁에 대한 파격적 시각으로 또다시 입길에 오른 강정구 교수
환갑 맞은 현대사 전공자로서 냉전의 성역 깨기 위해 더욱 이바지할 것
8월4일 오전 서울 중구 중림동 한 아파트에서 개량 한복 차림의 강정구 교수(동국대 사회학과)를 만났다. 지난 7월27일 인터넷 언론 <데일리 서프라이즈>에 기고한 ‘맥아더는 38선 분단 집행의 집달리였다!’는 칼럼에 분노한 보수단체 인사들은 동국대학교로 몰려가 “친북 좌파 교수 해임”을 요구했다. 강 교수의 집인 이 아파트 앞에서도 하루가 멀다 하고 “김정일의 하수인 강정구는 김일성 대학 교수로 살아가라”는 시위가 계속된다.
하지만 강 교수는 기자에게 “6·25 전쟁은 북한이 벌인 통일전쟁이자 내전이고, 집안 싸움인 통일 내전에 미국이 개입하지 않았다면 전쟁은 한달 안에 끝났을 것이고, 기껏해야 사상자는 1만명 정도였을 텐데, 미군의 개입으로 399만명이 더 죽었고, 이들에게 미국은 생명을 앗아간 원수라는 내 주장은 틀린 게 없다”라고 말했다.
인터뷰 도중 한국전쟁 참전 군인들 10여명이 그의 아파트 현관문 앞까지 들이닥쳐 무작정 면담을 요구했다. 20여분간 초인종을 누르며 “얼굴 좀 보자”고 집요하게 강 교수를 다그쳤다. “볼일이 없으니 돌아가시라”라는 강 교수의 응답에 거친 구호와 시위로 맞섰고, 신고를 받은 경찰이 도착하고서야 그들은 좀 조용해졌다. 강 교수는 “지난 60년간 눈 뜬 장님을 강제하던 보수 언론과 보수 세력들이 나의 정당한 문제 제기에 대해 ‘경애하는 지도자 품으로 돌아가라’는 천박한 사설을 쓰고 색깔몰이, 폭력몰이를 일삼고 있다”고 분개했다. 그러면서 “지금까지 우리는 미국에 대한 문제를 변죽만 울렸는데, 환갑을 맞은 한국 근현대사를 전공한 지식인으로 분단 60년을 맞아 분단·수구 세력이 가장 아파하는 한반도 분단과 한국전쟁의 본질적인 문제를 공격적으로 제기하는 실천 활동을 시작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 강정규 교수는 지난 60년간 우리 사회는 보고도 보지 못하는 '눈 뜬 장님' 이었으며, 그 눈을 뜨게 하는 게 기고글의 의도였다고 설명했다. (사진/ 윤운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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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은 맥아더에 대한 글에서 ‘욕설이나 비방이 아니라 상응하는 차분한 반론을 기대한다’고 했지만, 논쟁은 전혀 다르게 흐르고 있다. 이 문제를 어떻게 보는가.
=지난 60년간 우리 사회는 보고도 보지 못하는 ‘눈 뜬 장님’을 강제해왔다. 하지만 최근 미국, 주한미군, 한반도 전쟁에 대한 국민의 인식은 상당히 변했다. 지난 5월 초 여론조사 결과를 보면 미국이 한국 정부에 통보 없이 북한에 대한 전쟁을 벌일 경우 ‘북한 편에서 싸워야 한다’는 응답이 46.7%, ‘미국 편에서 싸워야 한다’는 게 31%였다. 이것은 분단 60년, 미군 주둔 60년, 한-미동맹 60년사에서 미국에 대한 민중 진영의 인식이 상당히 변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인생에서도 질적 환갑이면 질적 비약이 필요하다. 내가 올해 정말 환갑인데, 지금까지 논문 등을 통해 논쟁했지만 이제 미군기지가 평택으로 이전하면 50년 이상 주둔하는 110년간의 분단이 강요되는 상황을 맞게 된다.
경애하는 지도자 품에 안기라고?
이런 상황에서 지식인은 과연 무엇을 해야 하는가. 그동안 나름대로 노력했지만 더 분명하게 한반도 통일을 주체적으로 이끌 시점이 됐다고 판단했고, 좀더 실천적으로 대중들이 읽을 수 있는 글로 써보자는 생각으로 나섰다. 그런데 보수세력은 눈 뜬 장님을 강제하는, 완전히 파시즘적인 구태를 그대로 보여주고 있다. <조선일보>는 ‘경애하는 지도자 동지의 품에 안기라’는 제목의 사설을 썼다. 사회적 공기라는 언론이 그런 천박한 사설로 눈 뜬 장님을 강요하며 ‘색깔몰이’ ‘폭력몰이’로 세상을 마비시키려 한다. <한겨레>는 사실 보도도 안 했다. <경향신문> <중앙일보>는 사실 보도만 했고, 나머지 언론들은 모두 사설로 나를 비판했다. 그러다 보니 일반 국민은 60여매 분량의 내 글을 읽지도 않은 채, 신문에서 본 것만으로 무조건 ‘빨갱이몰이’를 하고 있다. 나는 이런 게 우리 사회를 대표한다고 보지 않는다. 이런 모습이 우리 민중의 수준을 반영한다고 보지도 않는다. 언론개혁이 안 되니 보수 언론은 지금까지 가장 편하게 써먹던 파시즘적 수단을 동원했고, 거기에 재향군인회 등 보수 단체들이 덩달아 춤춘 결과일 뿐이다.
강 교수가 맥아더 동상 철거 논쟁을 계기로 제기한 맥아더의 독선과 독단, 과대망상증, 원자탄 투하론 등 전쟁 확대론에 대한 비판에는 상당히 공감한다. 그러나 분단의 책임을 미국에 전적으로 전가하고, 이승만 정부에서 학살된 민간인 문제를 모두 맥아더의 책임으로 규정한 것은 너무 편향된 것 아닌가.
=한반도 분단은 1945년 8월15일 미 군정 일반명령 1호에 의해 남북을 38선을 기준으로 지리적으로 분단시키면서 시작된 것이다. 그 뒤 북쪽은 유격대 중심 세력이 장악했고, 남쪽은 친일파들이 장악했다. 이런 지리적 분단은 미국이 7월 중순부터 논의했고, 8월11일 러스크라는 중령이 국무성 한구석에서 확정했다. 상하이 임시정부, 조선 그 어느 집단과 한마디 상의한 적도 없다. 또 함께 전쟁을 치른 연합군, 특히 이미 8월 초 (한반도) 북쪽에 상륙해서 관동군을 뒤로 밀어내는 공격 작전을 펼친 소련과도 한마디 상의가 없었다. 소련군이 조선 땅에서 조선의 해방을 위해 싸운 건 아니겠지만, 어쨌든 결과적으로 이미 조선 땅에서 피 흘리고 조선 해방에 도움을 준 주체였다. 그 소련과도 한마디 상의 없이 8월11일 지도 하나 놓고 선 하나 쫙 그었다. 그것도 중령 한 사람이. 그게 현실이라고 하자. 물론, 그게 현실이다. 하지만 현실이니 어쩔 수 없다고 하는 것과, 비록 현실이지만 약육강식·반도덕적 행위, 남의 주권과 자주권을 여지없이 짓밟은 행위에 대해 문제제기를 하는 것은 다르다. 침묵하는 것은 지식인이 아니다.

△ 인터뷰 도중 한국전쟁 참전군인 10여명이 강 교수의 아파트를 찾아와 벨을 눌렀다. 그들은 구호를 외치다가 경찰이 도착하고나서야 조용해졌다. (사진/ 윤운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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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련도 분단에 책임이 있는 것 아닌가
=미국은 8월14일 소련에 이를 통보했고, 소련도 동의했다. 하지만 소련의 동의를 받기 전에 미국은 이미 일반명령 1호를 집행했다. 지리적 분단이 정치적 분단으로 이어졌는데, 그 첫 단추가 미국에 의해 끼워졌고, 그 집달리가 맥아더였다. 물론 소련도 책임이 있다. 사후에 동의한 것이니. 그러나 그 책임을 소련놈, 미국놈 다 똑같다, 이렇게 하는 것은 전형적인 양비론이다. 90%는 미국 책임이고, 10%는 소련 책임인데, 미국에 40%로 면죄를 줘서는 안 된다. 역사는 그렇게 해석해서는 안 된다. 또 맥아더와 북쪽의 소련군 사령관 치스차코프의 포고문을 봐라. 둘 다 점령군임에는 틀림없지만, 맥아더의 포고문을 보면 그가 구세주고 생명의 은인이라는 것은 완전히 우리만의 짝사랑이다. 오히려 소련군 사령관 치스차코프의 포고문, 그거야말로 조선 민중에 대한 애정이 담겼다. 그래서 난 두개의 포고문을 내 글에 모두 적었다. 빨갱이몰이 하는 것은 좋은데 이런 것을 좀 읽고 제대로 하라는 것이다.
“한국전쟁 책임, 미국90% 소련10%”
단순히 선언 수준의 차이가 아니라, 북쪽에는 소련의 점령 정책은 있었지만 직접적인 군사정부는 없었다. 북조선 임시 인민위원회, 다시 말해 조선인 자치정부가 행정을 다 맡았다. 물론 이것도 (소련) 점령군이 허용하는 범위 안에서 했겠지. 하지만 미국은 도대체 뭐냐. 바로 군정 장관을 보냈고, 군사정부를 세웠다. 왜 남쪽에 군사정부를 세웠겠냐. 당시 조선 민중의 80%는 좌익을 지지했고, 조선인 스스로 자치정부를 세우도록 놔두면 사회주의를 무너뜨리고 자본주의를 세우려는 미군의 점령 정책이 실현되지 않을 테니 그런 것이다. 여기서 발생한 게 대구항쟁, 제주 4·3항쟁이다.
글 가운데 6·25를 통일내전으로 규정하고, 미국이 개입하지 않았다면 전쟁이 한달 안에 끝나고, 사상자는 1만명 미만일 것이라며 미국 개입으로 399만명이 더 죽었다고 주장한 대목이 재향군인회 등을 심하게 자극한 것 같은데.
=그들에게 제일 뼈아픈 부분이겠지.
학자로서 해석을 달리할 수는 있지만 좀 심한 비약이라는 비판도 있는데.
=전혀 비약이 아니다. 거기서 틀린 게 뭐가 있는가. 통일내전을 부정하는 것은 최소한의 이성적 판단도 못하는 것이다. 북한 지도부가 전쟁을 확대한 게 그냥 사람을 죽이려고 한 것이냐. 통일을 이루려 한 것이다. 맥아더가 38선을 넘어갔을 때 이승만은 왜 사람을 동원해 휴전에 반대했나. 휴전에 참여도 않고 반대 투쟁만 했겠나. 북한 주민을 죽이려는 것인가. 아니다. 통일을 하려는 것이다. 남쪽, 북쪽 모두 통일이 핵심 목표였다. 이게 문제가 된다면 한국 사회는 최소한의 이성마저 없는 것인가. 그동안 불법 남침 외에 다른 것을 전혀 허용하지 못하는 눈뜬 장님을 강제했기 때문에 그게 당연한 것처럼 보였을 뿐이다. 일반 시민이 그렇게 생각할 수는 있지만, 지식인이 거기에 토를 다는 것은 지식인의 자격이 없는 것이다. 더구나 언론이 사설에서 통일전쟁에 대해 이의를 다는 것은 최소한 이성적 판단력에 대한 의심을 품게 하는 것이다.
분단·수구세력이 가장 아파하는 문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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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 윤운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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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 교수의 논리적 결론은 북한 중심의 한반도 통일이 정의라는 것으로 귀결되는데.
=그런 말이 어디 있는가. 그런 말이.
명시적인 말은 없지만 결론적으로 그렇게 해석될 수 있는 것 아닌가.
=아니, 역사는 그렇게 흘러갈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미국이 개입하지 않았다면 한달 정도 만에 전쟁은 북한의 승리로 끝났을 것이고, 북쪽 주도의 통일정부, 사회주의 계파의 연립정부가 들어섰을 것이라는 점은 누구나 인정하는 것이다. 그것이 잘됐고 잘 못됐고는 각자가 판단할 문제다. 역사는 결과론적으로 해석해서는 안 된다. 오늘날 이 시점에서 보니, 사회주의는 다 망했고 남쪽이 힘도 더 세어졌다. 그러니 미국이 개입한 게 잘했다는 것이 그야말로 당대사적, 그 시점에서 조선 사람의 민중적 요구나 사회 보편적 규범, 가치를 전혀 고려하지 않은 것이다. 당시 80% 이상이 사회주의를 원했는데, 그것은 뭔가. 그건 사람 없는 역사로 만드는 것이다. 당시 우리 선배들이 원했던 세상, 독립, 자주는 완전히 팽개치고 요즘 미국하고 짝짜꿍해서 잘 사니까 정당하다?
취지를 충분히 알겠는데, 많은 사람들이 좀더 세련되게 문제를 제기할 수 없는지 안타까워한다. 또 교수의 말이 옳다 해도 왜 지나간 50~60년 전 얘기만 붙잡고 떠드냐는 비판도 있다.
=세련? 말은 쉽지만, 그렇게 세련된 방식의 문제를 제기할 수 있는지 묻고 싶다. 냉전 때문에 빨갱이는 무조건 나쁘고 주한미군은 무조건 평화지킴이고, 전쟁의 위협은 무조건 북한에서 비롯되고, 6·25는 북한의 불법 남침이라는 표준정답이 존재했다. 이 정답에서 조금만 어긋나면 끌려갔고, 조봉암도 그래서 죽고, 인혁당 사건도 생겼다. 통일사회과학의 과제는 냉전 성역을 깨는 것이다. 그래서 나는 미군, 민간인 학살 문제를 체계적으로 제기해왔다. 텔레비전 토론에서 미군, 한국전쟁 문제만 나오면 전부 뒤로 물러선다. 지금까지 주한미군 문제는 모두 변죽만 울렸다. 그 사람들은 그게 좋은지 몰라도, 난 학문 하는 입장, 이 땅의 민족 구성원으로 태어나서 그런 식으로 살아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현대사 전공자로 지난 20년간 나름대로 통일을 위한 활동을 벌였지만 이제 환갑이 됐으니 정말 실천적으로 이바지하자는 생각에서 분단·수구 세력이 가장 아파하는 부분, 본질적인 문제를 찌른 것이다. 내가 얘기한 게 정말 틀린 얘기냐? 미국이 없었다면 기껏해야 1만명 미만이 죽었을 것인데, 미국이 개입해서 399만명 더 죽은 것은 사실 아닌가.
“만경대 사건은 내 잘못”
강 교수의 학자적 양심, 분단 이데올로기를 깨려는 노력을 인정한다 해도 지난 2001년 ‘만경대 사건’(8·15 평양통일 대축전 행사에서 김일성 주석 생가인 만경대를 방문해 ‘만경대 정신 이어받아 통일 위업 이룩하자’라는 소감을 쓴 사건)도 그렇고, 교수님의 행동이 오히려 보수 세력에게 도발의 명분만 준다고 비판하는 사람도 있는데.
=만경대 사건은 사실 준비가 안 된 상황에서 엉겁결에 가면서 생긴 문제다. 한 사람이 안 간다고 해서 밤 12시에 통보받고 내가 갔는데, 그 전에 만경대학원을 연구했고, 그래서 자연스럽게 그런 글을 써 의도하지 않은 결과가 나타난 것이다. 학자로서 충분히 쓸 수 있는데, 통일 운동하는 사람으로서는 적절치 못했다. 잘못된 것이다. 하지만 이번 건은 특별한 게 아니다. 냉정하게 논쟁하자는 제안까지 담아 60여쪽짜리 준논문을 쓴 것이다. 최소한 이성을 가진 사람이면 이성적으로 대응해야 하는데, 이렇게 반이성적 대응을 할 줄 몰랐다. 난 이런 논쟁을 바란 게 전혀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