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me > 특집 > 기획 기사목록 > 기사내용   2004년10월06일 제529호
수소자동차의 험난한 레이스

수소경제를 위한 국제협력은 가능할까, 숱한 기술·경제적 난관은 극복할 수 있을까

▣ 김수병 기자 hellios@hani.co.kr

지난 9월24일 ‘수소경제를 위한 국제협력 파트너십’ 운영위원회에 참석하려고 레이캬비크를 방문한 사람들은 이색적인 경험을 했다. 세계 각국에서 열리는 국제회의 경험이 많은 사람들일지라도 이날은 쉽게 잊기 어려울 것이다. 올라퓌르 라그나르 그림손 대통령이 영빈관에 리셉션 자리를 마련해 참가자들과 일일이 악수를 하고 기념사진까지 찍었기 때문이다. 으레 있을 법한 경호원도 한 사람 두지 않은 소박한 리셉션 자리에서 대통령은 수소경제를 위한 국제협력을 특별히 당부했다. 그것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는다면 ‘2040년 수소 사회’ 계획도 속절없는 바람에 머물 수밖에 없다.

수작업으로 한대 만드는 데 20억원


아이슬란드 전역에 10만여대의 자동차가 있지만 자국에서 생산한 것은 한대도 없다. 아무리 넘치는 재생에너지 자원으로 수소를 만들어도 수소연료를 충전할 자동차가 없다면 소용없는 일이다. 그림손 대통령이 기다리는 것은 수소원자를 양성자와 전자로 쪼개어 전기모터를 구동하는 수소자동차다. 자동차와 트럭, 선박 등이 수소연료를 사용하면 수증기만 배출하기에 아이슬란드의 생태적 가치를 그대로 후손에게 물려줄 수 있다. 아이슬란드는 연간 60만 배럴(1배럴은 약 160ℓ)의 기름을 온천수로 대신하고, 지열·수력 발전으로 전기를 만들고 있다. 수소 연료전지 자동차만 들어온다면 네스자벨리르 지열발전소 등의 시설을 확충하면 된다.


△ 아이슬란드는 수소자동차의 대중화를 손꼽아 기다린다. 지난 9월 25일부터 열리고 있는 파리 모터쇼에 선보인 제너러모터스의 수소자동차(맨위)와 다임러크라이슬러의 태양광 디젤 자동차(위). (사진/ 김수병 기자)

하지만 수소 연료전지 자동차가 대중화되기까지는 적잖은 시간이 걸릴 것으로 보인다. 지난해 가을 조지 부시 미국 대통령은 화석연료에 ‘덜’ 의존하는 자동차를 개발하는 데 17억달러를 투자하겠다고 발표했다. 화석연료를 대신하는 게 아니라서 내연기관 연구자들에겐 반가운 소식이었다. 21C 프론티어연구개발사업 ‘고효율 수소에너지 제조·저장·이용 기술개발 사업단’의 김종원 단장은 “수소를 우주 발사체의 연료로 사용한 지 오래됐지만 누구나 적은 비용으로 안전하게 사용하려면 수많은 난관을 극복해야 한다. 현재 수소자동차 한대를 수작업으로 만드는 데 20억원이 들어가는데 이를 획기적으로 낮춰야 한다”라고 말한다.

사정이 이렇기에 신기술로 각광받던 수소 연료전지 자동차도 모터쇼에서 빛을 잃고 있다. 지난 9월25일 개막한 파리 모터쇼에 등장한 수소 연료전지 자동차는 단 한대뿐이었다. 그것도 새롭게 선보이는 게 아니었다. 제너럴 모터스의 수소 연료전지 콘셉트카 ‘오토노미’(AUTOnomy)의 개량형 차량으로 노르웨이의 하메르페스트에서 포르투갈의 리스본까지 9696km를 안전하게 주행한 것을 자랑했다. 대신 다임러크라이슬러가 이산화탄소 배출량을 50%가량 줄인다는 태양광 디젤 자동차를 선보였다. 거대 자동차 회사들은 미국 항공우주국이 인간을 화성에 보낼 즈음에나 수소 연료전지 자동차가 본격적으로 시판될 것으로 보고 있다.

아이슬란드는 재생연료 자원이 풍부하기에 수소 공급에서 제기되는 문제는 없다. 하지만 지열·수력·풍력·태양광 등의 재생연료 자원이 마땅치 않은 나라에서 수소를 만들려면 기존의 화석연료나 천연가스 등을 주로 이용해야 한다. 화석연료로 수소를 만들 때 나오는 탄소를 막는 것은 자동차 배기가스의 탄소를 없애는 것보다 어려운 일이다. 미생물을 이용하거나 물과 섞은 에탄올 등으로 수소를 만드는 것은 매력적인 방법이지만 아직까지 기술적으로 확립되지 않았다. 자동차를 운행할 때 수소 연료전지 효율(40% 안팎)은 내연기관의 효율(20~25%)보다 좋은 게 사실이지만 수소 제조에서 장벽이 도사리고 있는 셈이다.

너무나 부피가 큰 저장탱크

어디서나 수소를 제조한다고 해서 손쉽게 이용할 형편도 아니다. 우주에서 가장 가벼운 수소를 담을 수 있는 저장탱크가 너무 큰 탓이다. 수소 연료전지 자동차를 400km 운행하는 데 필요한 압축 수소가스 탱크는 뒷좌석을 모두 채울 정도로 크다. 섭씨 영하 241도를 유지해야 하는 액체수소의 부피도 만만치 않다. 지금으로선 금속 수소화물의 탱크가 가장 부피가 적지만 무게가 너무 나간다. 한국에너지기술연구원 기술평가연구센터 신희성 박사는 발상의 전환을 권한다. “당장 비용을 생각하면 화석연료를 대체하기 힘들다. 현재의 자동차처럼 이용하려면 시간이 걸린다. 지금은 연료 주입을 자주 하는 수고가 필요하다.”

일부에서는 수소 연료전지 자동차의 친환경적 비전에 이의를 제기하기도 한다. 수소 연료전지 자동차 엔진에 문제가 있다는 것이다. 자동차에 주입한 수소의 10% 이상이 연소되지 않은 채 공기 중으로 누출된다는 것이다. 미국 캘리포니아기술연구소 연구원들에 따르면 석유와 가스를 연료로 사용하는 자동차를 수소 연료전지로 대체하면 대기 중에 방출되는 수소량이 지금보다 4~8배나 늘어난다고 한다. 공기 중에 방출된 수소는 산화를 거쳐 물로 변한다. 문제는 이 물이 성층권을 덮어서 대기 온도가 낮아지고 오존을 파괴한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수소 연구자들은 기술적으로 누출을 방지하는 게 가능하다는 주장을 펴고 있다.

그렇다고 수소 연료전지 자동차의 의미 있는 진전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1990년대 후반부터 수소 연료전지 연구가 성과를 보이면서 출력 밀도를 10배가량 늘리면서 비용은 그만큼 줄였다. 연료전지를 만드는 데 쓰이는 값비싼 금속 촉매제를 최소화하고 중합체막 박막물질의 가격을 낮추는데도 성공했다. 전기 접속으로 새시와 차체를 결합하고, 기계적인 연결장치를 최소화하는 자동차 디자인도 개발되고 있다. 수소를 저장하는 탱크 대신 나노기술을 이용해 직접 자동차에서 만들어 사용하려는 연구까지 진행되고 있다. 적어도 2020년 이내에 수소 연료전지 자동차의 대량 생산이 이뤄질 것으로 예측된다.

사실 부나기 아르나손도 수소 연료전지 자동차의 기술혁신은 따라잡지 못한다. 이제 일흔을 바라보는 그가 아이슬란드에서 수소 자동차를 타게 될지는 단언하기 어렵다. 수소경제의 산파 구실을 한 그가 바랐던 지열 수소의 수출까지 지켜보는 것은 아무래도 여의치 않아 보인다. 더구나 가솔린 1ℓ로 약 20km 이상 달리는 하이브리드 자동차가 거침없이 달리는 상황에서 수소 연료전지 자동차는 갓길로 피해 있어야 할지도 모른다. 그래도 연구자들의 수소에너지가 자동차의 미래다라는 신념은 흔들리지 않는다. 아무리 에너지 효율을 개선한 하이브리드 자동차라하더라도 화석연료에 의존하기에 석양을 향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