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me > 문화&과학 > 과학 기사목록 > 기사내용   2005년12월07일 제588호
공개검증의 쓴 잔을 들어야 한다

‘줄기세포주 불일치’라는 의혹 제기로 또 위기에 처한 황우석 교수
논란 잠재우기 위해선 DNA 지문 검증으로 정면 돌파할 수밖에 없어

▣ 김수병 기자 hellios@hani.co.kr

마침내 서울대 황우석 석좌교수팀을 둘러싼 논란이 전면전 양상으로 치닫고 있다. 체세포 복제를 통한 배아 줄기세포 연구로 의학혁명을 예고했던 황우석 교수팀. 제럴드 섀튼 교수의 결별 선언이 윤리적 상처를 예고했다면, 문화방송 의 줄기세포주 검증은 과학적 진정성까지 의심케 한다. 황 교수의 배아 줄기세포 연구가 ‘허위’라는 주장이 구체적인 자료과 함께 제기되는 지경에 이른 것이다. 생명과학 연구윤리를 세우는 과정에서 황 교수팀의 연구성과가 송두리째 무너지면서 ‘과학사의 사기극’ 목록에 오를 수도 있는 형국이다. 연구자의 윤리 문제로 치명타를 맞은 황 교수팀은 ‘제2라운드’를 어떻게 돌파할 수 있을까.

〈사이언스〉“의문 제기할 이유 없다”

지금까지 밝혀진 줄기세포 논란의 전말은 이렇다. 올해 5월 황 교수팀이 <사이언스>에 발표한 논문의 진위 검증에 들어간 팀은 연구팀에서 제공한 5쌍의 줄기세포와 체세포(모근)의 DNA 지문 분석 결과, 한 개의 세포주가 환자의 것과 일치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더구나 대다수가 판정을 내리기 불가능한 데이터가 나와 불일치 가능성에 무게를 실어주기도 했다. 이를 받아들인다면 황 교수팀의 줄기세포가 체세포 핵이식을 거친 배아에서 얻은 것인지 의심할 만하다. 만일 다른 배아에서 얻은 줄기세포라면 ‘치료용 복제’라는 말은 헛다리를 짚은 격이고, 의학사의 신기원이라는 찬사도 수정돼야 한다. 게다가 과학저널 <사이언스>의 명성에도 치명적인 흠집을 남길 게 틀림없다.

사실 황 교수팀이 배아 줄기세포를 처음으로 만든 것은 아니다. 미국 위스콘신대학 제임스 톰슨 교수팀은 지난 1998년 수정 직후의 냉동되지 않은 신선 배아를 이용해 배아 줄기세포를 만들었다. 이를 계기로 오스트레일리아와 싱가포르에서도 같은 방법으로 배아 줄기세포를 만드는 데 성공했다. 문제는 신선 배아일지라도 환자에 적합한 ‘맞춤 치료제’ 개발로 이어가기 쉽지 않다는 데 있다. 이에 견줘 황 교수팀이 체세포 핵이식으로 만든 배아 줄기세포는 환자의 유전물질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어 면역거부 반응을 원천적으로 막는다. 환자 유래 배아 줄기세포에 지구촌이 열광한 까닭은 난치병 치료 파급효과 때문이었다.


△ 황우석 교수팀이 겪어야 할 시련의 끝은 어디일까. 지난 11월27일 서울대학교 수의대의 황 교수 연구실에서 연구원들이 체세포 핵이식 실험을 하고 있다. (사진/ 연합)

이런 가운데 황 교수팀의 줄기세포가 가짜라는 의혹이 불거졌다. 아무리 방송사가 개입된 검증이라 해도 대학 법의학교실과 유전자 검사업체의 전문가들을 통해 검증된 만큼 의혹을 무시할 수만은 없는 일이다. 애당초 줄기세포 진위 논란이 황 교수팀의 연구원에 의해 제기된 만큼 사안을 가볍게 여기기 힘들다. 사정이 이런데도 황 교수팀은 “진위 의혹은 언급할 가치도 없다”면서 “언론이 과학적 검증기관도 아닌데 거기에 대해 언급할 필요가 없다”고 잘라 말하고 있다. 이런 항변도 일리는 있다. 이미 황 교수팀은 <사이언스>에 논문을 제출하면서 과학적 검증을 받았기 때문이다.

실제로 <사이언스> 쪽은 논문 게재를 앞두고 국내에 전문가를 보내 자체 검증과 함께 국립과학수사연구소의 DNA 분석 등을 진행했다. 당시 DNA 검증을 맡았던 국과수 담당자는 “모든 결과가 아무런 문제 없이 일치했다”고 밝혔다. <사이언스> 쪽도 논문의 진정성을 의심하지 않고 있다. <사이언스>의 대변인 구실을 하는 진저 핀홀스터 미국과학진흥협회 퍼블릭프로그램 국장은 국내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체세포 핵이식을 통해 만든 배아에서 환자 맞춤형 줄기세포를 추출했다는 황 교수 연구의 핵심 결론에 대해 지금 의문을 제기할 이유가 없다”고 말했다.

문제 밝혀지면 국가적 대망신

그럼에도 황 교수팀의 줄기세포가 진위 논란에 휘말리면서 조작 가능성까지 제기되고 있다. <사이언스>의 검증 때 ‘속임수 분석’이 이뤄졌을 수도 있다는 것이다. 예컨대 미즈메디병원이 보유하고 있는 냉동배아 유래의 줄기세포를 국과수에 넘겨 DNA 시료 분석을 받는 식이다. 그야말로 말장난에 가까운 웃기는 과학인 셈이다. 설령 DNA 지문이 일치하지 않는다 해도 가짜라고 못박을 수 없다는 주장도 나온다. 배아 줄기세포를 분리하는 과정에서 오류가 있거나 배양하는 도중에 DNA 변성이 일어날 수도 있기 때문이다. 황 교수팀이 검증 결과에 적극 대응해야만 해명될 수 있는 사안이다.

지금으로선 황 교수팀이 공개 검증으로 논란을 잠재울 수밖에 없는 처지다. 팀의 “치료용 복제 배아 줄기세포 배양을 재실험하자”는 제안은 연구자의 자존심 차원에서 받아들일 수 없다 해도, 공신력 있는 기관에서 적절한 절차만 밟으면 되는 DNA 지문 검증을 마다할 이유는 없기 때문이다. 지난 10월 인간 냉동 배반포기 배아 줄기세포로 미국 특허를 받은 마리아생명공학연구소 박세필 박사는 “생명과학을 연구하는 사람으로서 진위 논란은 안타깝지 그지없는 일이다. 이미 검증을 받은 것만을 내세워 논란을 잠재우긴 힘들 것이다. 황 교수팀이 적극 대응하면서 돌파하는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현재 황 교수팀은 미국을 비롯해 여러 나라에 ‘체세포 복제에 의한 배아 줄기세포주 배양기술’을 특허 출원 중이다. 지난 11월30일 특허청은 황 교수팀의 줄기세포 연구성과를 ‘국가 핵심원천기술’로 지정할 방침이라고 밝혔다. 이를 위해 특허청은 황 교수팀의 연구성과에 대한 기술성 검토 작업을 한 뒤 해외특허 출원경비 등을 지원하게 된다. 국가생명윤리위원회가 윤리 의혹 전반에 걸처 종합적으로 재검토해 12월13일 최종 결론을 내리기로 했다. 이렇듯 연구윤리 논란이 사그라지지 않는 상황임에도 정부에서는 황 교수팀의 연구성과에 깊은 신뢰를 보내고 있음을 확인케 하는 대목이다.


△ 지난해 6월17일 <사이언스>에 실린 황우석 교수팀의 배아 줄기세포주. 이 사진은 배아 줄기세포주가 분화한 모습을 보여준다. (사진/ 연합)

이런 상황에서 황 교수팀의 줄기세포 연구 논문의 진실성에 문제가 있는 것으로 밝혀진다면 국가적 망신에 이를 수밖에 없다. 황 교수팀을 비롯해 청와대와 정부부처 등이 ‘사기극 공모’ 혐의에서 벗어날 수 없기 때문이다. 지금으로선 조작 가능성에 무게를 싣기는 어렵다. 황 교수팀의 이병천 교수는 “에 제공한 줄기세포는 여러 차례 검증 절차를 마친 것”이라 밝혔고, <사이언스>는 “올해 5월 발표한 ‘환자 맞춤형 배아 줄기세포 배양’ 논문의 진정성을 의심하지 않는다”고 거듭 밝히고 있다. 다만 11개의 배아 줄기세포 가운데 완전한 것은 7개가 아닌 4개인 것으로 논문을 수정했을 뿐이다.

지난 2002년 어드밴스드 셀 테크놀로지(ACT)가 발표한 ‘최초의 인간 배아복제’에 관해 연구자들이 제기한 과학적 의혹은 끝내 밝혀지지 않았다. 온라인 저널에 발표한 논문을 대중 과학잡지 <사이언티픽 아메리칸>이 의미를 부여했을 뿐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황 교수팀의 줄기세포는 엄청난 파급효과가 있을 것으로 기대되는 만큼 한 치의 의혹도 남기지 않아야 한다. <사이언스> 줄기세포에 치명적인 하자가 없는 것으로 밝혀진다면 의 문제의식도 선정적 접근이라는 비판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황 교수가 스타 과학자로서 감당해야 할 것은 박수만이 아니었다.


논문 심사에 구멍 있을까

깐깐하기로 유명한 <사이언스> 검증 절차… 사고의 가능성도 배제할 순 없어

과학자들이 실험으로 얻은 결론을 인정받으려면 험난한 과정을 통과해야 한다. <사이언스>가 거대과학을 주도하는 미국의 자존심이라면, <네이처>는 기초과학의 토대를 다진 영국의 자존심이다. 이런 과학저널이 한 세기를 훌쩍 뛰어넘는 역사 속에서 영향력을 키울 수 있었던 것은 깐깐하고 엄격한 심사에 있었다 해도 지나친 말은 아니다. 그래서 과학자들은 실험보다 논문이 어렵다는 말을 곧잘 한다.

황우석 교수팀에게도 논문 심사는 간단한 일이 아니었다. 처음으로 체세포 핵이식을 통해 인간배아 줄기세포를 얻은 게 2003년 5월이었다. 그리고 8월에 논문을 작성했는데 발표하기까지 6개월여의 논문 심사 과정을 밟아야 했다. 일단 과학저널에 논문을 보내면 편집자는 해당 분야 전문가로 3~4명의 심사단을 구성해 전문가 평가를 한다. 이들이 지적한 내용을 연구자에게 보내 확인과 수정하는 과정을 거친다.

만일 환자 맞춤형 줄기세포처럼 획기적인 내용의 논문이라면 실험 과정을 검증하는 절차를 밟기도 한다. 황 교수팀의 줄기세포를 둘러싸고 국내에서 진위 논란이 벌어지고 있음에도 <사이언스>가 논문의 진정성은 확실하다고 밝히는 까닭이 여기에 있다. 지난 11월24일 황 교수가 기자회견에서 밝힌 대로 “일부 내용을 보완하는 수준에서 기술적인 수정은 있더라도 연구 성과를 부정하는 정도는 아니다”는 것이다.

그렇다고 <사이언스>의 게재 논문 검증 절차가 완벽한 것은 아니다. 기초와 응용 등에 따른 학술적 구분이 모호해지면서 과학저널이 속보 경쟁을 벌이는 과정에서 예기치 않은 사고가 발생하기도 한다. 새로운 내용의 경우 연구자가 내놓은 데이터를 그대로 싣기도 하기 때문이다. 미국 벨연구소가 운영하는 루슨트테크놀로지의 물리학자 얀 헨드릭 쇤 박사는 21세기 과학사 사기극의 주인공이었다.

그는 핀 끝에 1천만 개를 놓을 수 있는 획기적인 트랜지스터를 발표해 노벨상 후보로까지 꼽혔다. 문제는 다른 과학자들이 같은 실험을 했을 경우 쇤 박사에게서 나온 결론을 얻지 못한다는 것이었다. 이에 따라 벨연구소와 <사이언스>가 공동으로 조사했는데 쇤 박사가 데이터를 조작한 것으로 드러났다. 이 과정에서 <사이언스>와 <네이처>는 모두 15편의 게재 논문을 거둬들이는 수모를 감내해야 했다.

지금으로선 <사이언스>가 황 교수팀의 논문을 거둬들일 가능성은 희박하다. 하지만 DNA 지문의 신빙성을 놓고 떠도는 소문이 있는 만큼 명쾌한 검증이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이 과정 역시 과학자를 중심으로 이뤄져야 한다. 만일 DNA 지문이 일치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밝혀냈다면 연구자가 문제를 제기하는 게 옳다. 과학적 실험의 검증도 과학자의 몫이기 때문이다. 그래야만 황 교수팀을 둘러싼 논란이 생산적인 결실을 맺을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