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me > 특집 > 특집1 기사목록 > 기사내용   2005년01월12일 제543호
미국에 찍히면 수출도 못한다

날로 강화되는 전략물자통제의 실상… 미승인 물자 적발당하는 한국기업들 파산에까지 이를 수도

▣ 임을출 기자 chul@hani.co.kr

미국이 전략물자 통제 체제를 디딤돌로 삼아 ‘신봉쇄 정책’을 펴는 조짐이 확연해지고 있다.

최근에 속속 도입되고 있는 신종 봉쇄 조처는 미-소 냉전 때의 강경 조처들을 뛰어넘는다는 평가까지 나오고 있다. 물론 1차적인 봉쇄 대상은 북한을 비롯해 쿠바, 이란, 수단, 시리아 등 이른바 미국에 ‘찍힌’ 나라들이다. 최근에는 중국마저 집중 통제의 표적이 되고 있다. 9·11 테러가 일어난 지 3년이 지난 지금 세계는 미국이 쳐놓은 촘촘한 전략물자 통제 그물망에 걸려 허우적거리는 셈이 됐다.

화물항공기 강제착륙시킬 수도 있어

미국의 세계적인 전략물자 통제 체제는 나날이 강화돼왔다. 이전에는 엄포로만 그쳤던 강제사찰(Challenge Inspection)이 직접 실행되고, 용어조차 생소한 컨테이너안전협정(CSI·Container Security Initiative), 확산방지구상(PSI·Proliferation Security Initiative) 등이 나오면서 이중, 삼중으로 전략물자 통제 체제가 구축되는 것이다. 강제사찰은 상대방 나라의 주권도 무시하고 국제안보와 질서유지라는 명분으로 강제사찰을 통해 위험물질을 사전에 제거하는 정책으로, 이라크가 이미 여러 차례 당한 바 있다. 일반인에게는 다소 생소한 단어인 CSI는 세계 주요 항구에 미국 세관원을 상주시켜 불법 물자 적재 여부를 당사국의 세관과 함께 수시로 검색하는 정책이다.

강제사찰의 또 다른 수단인 PSI는 기존 국제통제 체제에 대한 불신에서 나온 산물이다. 즉, 이전의 전략물자 국제수출 통제제도가 불량 국가와 테러집단과 개인 사이의 불법·위법·밀거래를 효과적으로 막지 못했다는 판단 아래 혐의가 있는 화물을 운반하는 항공기의 강제 착륙, 배에 대한 정지·승선·압수와 같은 조처를 취해야 한다는 취지에서 나온 게 PSI다. PSI에는 14개 나라가 참여하고 있고, 60개 나라가 지지를 보내고 있다. 미국은 하늘과 땅, 바다 모두를 전방위로 감시하는 전무후무한 봉쇄 체제를 착착 구축하고 있는 셈이다.


△ 전세계적 감시 체제를 구축하기 위해 미국이 전략물자 통제를 강화함에 따라 한국의 수출산업에 적신호가 들어오고 있다. 부산항 7부두에 있는 차량 이동식 컨테이너 엑스레이 검색기에서 검색을 받고 있는 트럭의 모습. (사진/ 부산경남본부 세관)

CSI는 특히 눈길을 끈다. 한국의 부산항에도 2003년 8월부터 5명의 미국 세관원이 상주해 미국으로 가는 컨테이너를 밀착 검색하고 있다. 이들은 2004년 4월 말까지 9개월 동안 월 평균 11건의 검사를 실시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는 미국이 주시하는 전략물자 유출 우려 국가 중 하나로 한국을 염두에 두고 있음을 시사한다. 미국 관세청과 CSI를 맺은 나라는 한국을 비롯해 모두 18개 나라다. 산업자원부에 따르면 2003년 기준으로 전략물자일 가능성이 있는 품목의 수출액이 140만건 720억달러에 이른다. 한국 전략물자무역정보센터 관계자의 지적처럼 한국도 전략물자 대량생산 국가의 반열에 올라와 있는 셈이다. 그러나 1990년대 후반부터 한국 기업들의 기술 수준은 급격하게 향상되어 대부분의 첨단제품을 생산·공급할 능력을 갖췄으나 이를 잘 관리하면서 수출을 극대화하는 준비는 덜 갖췄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2003년 전략물자로 추정되는 수출물품 140만건 가운데 477건만 수출허가를 받았다는 사실이 이를 잘 보여준다.

이는 대부분의 전략물자들이 대충 다른 나라에 팔려나가고 있음을 보여준다. 2003년 9월에는 북한으로 화학무기의 원료인 청화소다가 불법 수출된 사실이 적발됐고, 2004년 1월에는 리비아로 역시 전략물자인 밸런싱 머신이 불법 수출된 사실이 드러나 한국 정부와 기업이 곤욕을 치른 바 있다. 더구나 이런 불법 수출은 미국과 국제원자력기구(IAEA)에 의해 발각된 탓에 한국 정부로서는 할 말이 없게 됐다. 이뿐만 아니라 1999년부터 2003년까지 한국 기업이 이란과 리비아 등에 수출한 물건 가운데 상당수가 수출 통제 품목일 가능성이 커 나중에 사찰이 이뤄질 경우 더 큰 파문이 일어날 수도 있다고 정부 관계자들은 걱정하고 있다.


△ 이미 한국정부와 기업은 전략물자 수출 절차를 준수하지 않아 곤혹을 치른 바 있다. 적극적인 대처 장안이 논의되지 않으면 수출에서 불이익을 당할 수 있다. (사진/ 연합)

사정이 이렇다 보니 미국 행정부가 한국의 수출통제제도에 보내는 시선도 그렇게 곱지 않다. 사실 대다수 나라들은 미국의 안보이익보다 자국의 경제이익을 우선 챙겨왔다. 수출에 사활을 거는 많은 한국 기업들도 실적 우선에 매달려 전략물자 수출통제 제도에 그다지 신경을 쓰지 않았다. 그러나 이제는 사정이 크게 달라지고 있다. 미국이 전략물자의 불법 밀거래를 색출·추적하기 위한 최첨단 시스템을 운영하고, 수출 컨테이너 검색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급선회하는 바람에 정부나 기업이 바짝 정신을 차리지 않으면 자신도 모르게 코가 베여나갈지도 모르는 현실에 부닥친 꼴이 됐다. 그동안 전략물자라는 단어가 생소했던 기업들은 사전에 수출물품의 전략물자 여부를 꼼꼼히 따져보고 관련 승인 절차를 밟지 않으면 큰 불편을 감수해야 하고, 나아가 대미 수출에 치명적인 타격을 입고 파산에까지 이를 수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한목소리다.

미국에 반입되는 컨네이너엔 FRID 도입

심성근 산업자원부 전략물자관리과장은 “국제 체제에 위반한 기업이 적발될 경우 모든 회원국으로부터 3년간 수출입 제한을 받고, 미국으로부터는 20년까지 그 회사에서 취급하는 모든 품목에 대한 교역을 제한받을 수 있다”고 말한다. 수출로 먹고사는 한국 기업들로서는 적잖이 신경을 쓰지 않을 수 없게 된 것이다. 지금까지 전략물자를 수출해도 운좋게 감시망을 피해왔다고, 앞으로도 그렇게 할 수 있을 거라는 안이한 생각은 일단 접어야 할 듯하다. 미국은 테러 방지를 목적으로 국토보안부를 신설하고, 엑스레이(X-ray) 투시기 등 첨단 장비를 이용한 전략물자의 불법 및 밀거래를 색출하고 추적하는 시스템을 끊임없이 업그레이드하고 있다.


△ 전략물자의 불법 밀거레를 색출하기 위해 미국은 끊임없이 감시 시스템을 업그레이드하고 있다. 조립이동식 컨테이너 엑스레이 검색기(왼쪽 사진)와 부산시 남구 감만동 신선대의 모습.

특히 미국 관세청은 올 초부터 미국에 반입되는 컨테이너에 전파식별장치인 무선주파수 인식장치 태그인 RFID(Radio Frequency Identification)를 부착하는 제도를 도입할 예정이다. 미국에서는 이미 일부가 도입한 RFID는 나라간 이동화물에 부착될 경우 관세청이 화물의 통관과 이동에 관한 모든 정보를 추적할 수 있다. 오늘날 세계를 풍미하고 있는, 우리의 모든 일상을 네트워크로 연결하는 유비쿼터스(Ubiquitous) 실현을 위한 핵심 기술이기도 하다. 이 제도가 시행되면 RFID를 부착한 컨테이너(스마트 컨테이너)는 간단한 검사만으로 통관되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는 선별적으로 전수 검사를 받아야 한다. 이에 따라 스마트 컨테이너를 도입하지 않은 기업의 수출입 화물은 미국 세관의 집중적인 보안점검 대상이 되며, 장기적으로 수출입에 치명적인 손해를 입을 수도 있다. 울며 겨자 먹기로 미국의 일방적인 정책을 따를 수밖에 없는 현실인 셈이다. 대한무역투자진흥공사(KOTRA) 관계자는 “미국의 보안검색 강화로 통관 지연 및 세관 억류 사태가 빈번해지고 있다”면서 “이런 조치들은 자칫 새로운 무역장벽이 될 가능성이 있다”고 지적했다.

유엔 통한 국제규범화도 시도

미국은 나아가 회원국들이 자율적으로 준수해오던 국제수출 통체 제제를 확 바꿔 국제 규범화를 시도하고 있다. 그 첫 단계가 2004년 4월 유엔안전보장이사회에서 만장일치로 채택된 전략물자 비확산에 관한 1540호 결의다. 이 결의에 따르면 앞으로 각 나라는 전략물자의 생산, 운송, 유통, 보관은 물론 경유, 통과, 중개, 환적, 수출 뒤 사후관리까지 통제하는 법을 제정해야 하며, 관리 시스템을 구축하고 이행 상황을 유엔안보리에 보고해야 한다. 이런 큰 흐름은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아시아유럽정상회의(ASEM) 등 거의 모든 다자간 정상 또는 외무장관 회의에서 빠짐없이 공동선언으로 재확인되고 있으며, 2004년 11월22일에 열린 APEC 정상 공동선언문에도 포함돼 있다.


북한수출 때도 미국에 승인받아

미국에 부응하는 국내법 체계 갖춰… 일본에선 1천개 기업이 ‘기업 내부 자율준수제도’ 구축

국내 기업들이 설비·자재를 반출하는 데 있어 특정 품목이 반출제한(전략물자·수출통제품목)에 해당하는지에 대한 심사·판정과 반출 승인 등 통제 절차는 크게 두 가지로 나눠진다. 하나는 우리 정부가 국제사회의 대량살상무기(WMD) 확산 방지에 동참하기 위해 가입한 다자간 전략물자 수출통제 체제에 따른 절차이며, 다른 하나는 미국이 자국 안보와 WMD 확산 방지 등을 위해 북한 등 문제국가에 미국산 제품·기술이 일정 부분 이상 포함된 품목의 수출을 통제하는 미국 국내법, 즉 수출통제규정(EAR)에 따른 절차다.

먼저 WMD 확산 방지를 위한 다자간 전략물자 수출통제 체제로는 핵(NSG핵), 생화학(AG), 미사일(MTCR), 재래식 무기·이중 용도(WA) 등이 있다. 이들 다자 체제는 국제적 강제력이 없는 자발적인 체제로 동 체제가 정한 수출통제 기본원칙과 통제대상 품목의 성능과 규격 등을 감안해 회원국 정부가 구체적인 절차와 기준 및 통제대상 품목을 자국의 국내법에 반영해, 전략물자 수출(또는 반출)을 통제하고 의무 위반자를 처벌하도록 하고 있다.

4개 비확산 체제에 모두 가입한 한국도 이 체제에 부응하는 국내법 체계(대외무역법, 대외무역법시행령, 전략물자수출입공고 등 20여개)를 갖추고 전략물자 수출을 통제·관리하고 있다. 북한 반출의 경우 남북교류협력법은 대외무역법을 준용토록 해 전략물자 반출을 통제하고 있다.

또 미국은 국내법인 EAR에 따라 북한 등 문제 국가에 미국산 상품의 재수출, 미국 기술·소프트웨어가 일정 부분 이상 포함된 외국산 제품을 재수출하는 경우 미국 상무부의 승인을 받도록 규정하고 있다. 미국은 한국의 전략물자에 해당하는 반출제한물품을 상무부 수출통제품목(CCL·Commerce Control List)으로 관리하며, 국가별로 통제품목의 범위를 다르게 적용하고 있다. 테러지원국으로 분류된 북한으로 수출할 경우 미국산 기술·소프트웨어가 10% 이상 포함된 제품은 미 상무부의 사전 승인 절차가 필요하다.

전문가들은 이런 전략물자 통제 체제에 기업들이 효율적으로 대응하기 위해서는 우선 ‘기업 내부 자율준수제도’의 구축이 시급한 과제라고 입을 모은다. 이런 제도를 채택한 기업은 일본의 경우 1천개 기업이 넘고, 미국과 유럽연합(EU)에서는 일반화되어 있다. 지권중 무역협회 부설 전략물자무역정보센터 팀장은 “이것(수출통제제도)을 잘 지키는 기업은 기술이전을 받을 수도 있고 더 유리해질 수도 있다”면서 정직하게 지키는 기업한테는 도움이 될 수도 있다고 강조한다. 그러나 기업이 전략물자 수출을 자율적으로 통제하기 위해서는 많은 인력과 비용, 시간이 소요된다는 점이 고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