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상의 허가제로 통제받는 남한의 물자 반출… 북한 ‘테러지원국’ 해제돼야 경제특구 가능
▣ 임을출 기자 chul@hani.co.kr
전략물자 통제제도는 남북경협의 심화·발전을 가로막는 ‘복병’과 같다.
이석기 산업연구원 연구위원은 “남북경협이 단순한 물자교역이 아닌 투자협력으로 발전하면 설비의 대북 반출 문제가 크게 늘어날 것이며, 이때 전략물자의 대북 반출을 적절하게 통제하지 못한다면 남북경협이 큰 위험에 처할 수 있다”고 말했다. 지난 2004년 개성공단 시범단지에의 전략물자 반출 문제가 조심스럽게 고비를 넘어왔으나 아직 안심하기에는 일러 보인다. 이미 크리스토퍼 힐 주한 미 대사가 최근에 한 말에서도 명시적으로 드러난 미국의 태도다. 그는 지난해 12월15일 워싱턴의 한 강연에서 “14일 가동에 들어간 개성공단은 북한에 (핵 포기시) 무엇을 얻을 수 있는지 맛을 보여주는 것”이라면서도 “그러나 북한이 (개성공단으로부터) 모순된 신호를 받지 않도록 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북한이 핵 포기에 응하지 않을 경우 더 큰 거래를 할 수 없다는 점을 분명히 할 필요가 있다”고 밝혀 북핵 문제에 대한 진전이 없을 경우 개성공단의 확대 발전은 어렵다는 점을 강하게 내비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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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략물자의 대북 반출 규모가 점차 커지면서 이에 얽힌 통제들이 남북 교류에 큰 장애가 될 가능성이 높다. 개성공단에서 북쪽 근로자들을 교육하고 있는 남한 기업 에스제이테크 직원들. (사진/ 사진공동취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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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성공단 입주못한 기업 벌써 있어
물론 그가 이처럼 큰소리를 치는 배경에는 ‘전략물자 북한지역 반출제한’이라는 강력한 무기가 쥐어져 있기 때문이다. 국내 기업들이 북한에 투자용 설비·자재를 보내면 특정 품목이 반출제한(전략물자·수출통제품목)에 해당하는지에 대한 심사·판정과 반출 승인 등의 절차를 거쳐야 한다. 정부가 국제사회의 대량살상무기(WMD) 확산 방지에 동참하기 위해 가입한 다자간 전략물자 수출통제 체제와 미국이 자국 안보와 WMD 확산 방지 등을 위해 북한 등 문제 국가에 미국산 제품·기술이 일정 부분 이상 포함된 품목의 수출을 통제하는 미국 국내법인 수출통제규정(EAR) 등에 따른 절차를 거쳐야 한다.
그 밖에도 북한은 다른 제재들에 얼히고설켜 있다. 북한이 핵확산금지조약(NPT)에 복귀하지 않고, 비밀 핵개발 의혹을 갖고 있으면서 WMD를 개발할 우려가 있는 국가라는 이유에서다. 즉, 북한은 미국에 의해 테러지원국가뿐 아니라 WMD 확산 우려 국가 등의 낙인이 찍혀 있다. 그간 북한 제재의 핵심은 무역·투자·원조의 금지이며, 이는 적성국교역법(TWEA), 국제테러 제재 규정, 공산국가 제재 규정 등 여러 법규에 의해 다중적으로 규제되어 있다. 전략물자 통제제도는 그 맨 앞에 자리잡고 있는 셈이다. 미국 중앙정보국(CIA)은 2004년 11월23일 의회에 제출한 보고서에서 “북한이 우라늄 농축 프로그램에 필요한 물건들을 구하기 위해 서방에 접근했다”면서 “원심분리기 배관 4천개 분량의 알루미늄 배관을 실은 선박이 독일 당국에 적발됐고, 2003년 9월에는 중국이 국경에서 핵 프로그램에 사용될 수 있는 화학물질 적재 선박을 저지했다”고 밝히기도 했다.
당장 개성공단 시범단지에 입주할 예정이던 15개 기업 가운데 두 기업은 여전히 승인을 받지 못하고 있다. 전략물자 반출의 걸림돌을 넘지 못해서다. 미 행정부는 북한 지역에 수출 또는 반출되는 거의 모든 품목에 대해 사실상의 허가제를 실시하고 있다. 한국 기업이 실질적으로 전략물자를 관리할 수 있는 개성공단 지역도 이런 방침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정부의 한 관계자는 “미국이 한국의 반미 여론 등을 감안해 전략물자의 시범단지 반출에 대해서는 비교적 누그러진 태도를 보였으나, 본 단지에 수백개 기업이 들어가 물자를 반출할 경우에도 당시의 유연성을 보일지는 아직 미지수”라고 조심스럽게 말한다.
개성공단만이 아니다
개성공단 사업 추진 과정에서 전략물자 문제가 본격적으로 제기된 것은 지난해 5월 시범단지 입주기업 선정 때부터다. 정부와 한국토지공사 등이 136개 입주희망 기업 가운데 15개 기업을 고르는 심사 과정에서 가장 많이 고민한 대목이 전략물자 문제였다. 그래서 한국토지공사는 분양 공고(고시)에 입주기업들이 공장 건축 허가 전까지 전략물자 반출을 승인받는 것을 조건으로 내걸기도 했다. 이에 따라 지난해 8월 초부터 15개 입주기업이 개성공단으로 갖고 갈 1300여개 반출물자·설비 등에 대한 전략물자 여부를 심사 판정하였다. 그러나 일부는 아직도 전략물자 심사가 진행 중이다.
문제는 전략물자의 북한 반출에 대한 미국 행정부의 완고한 정책이 비단 개성공단에만 그치는 게 아니라는 점이다. 그간 북한은 미국 등이 전략물자의 수출을 엄격하게 통제하는 나라 가운데 하나였지만, 지금까지 개성공단을 빼고는 거의 문제 삼지 않았다. 남북경협이 고만고만하게 진행돼왔기 때문에 교역이나 투자 등을 위한 물자의 대북 반출시 전략물자 수출통제 문제는 상대적으로 관심을 끌지 못했다. 그러나 앞으로 남북경협이 본격화될 경우에는 사정이 크게 달라진다. 북핵 문제가 진전되지 않으면서 북한이 여전히 테러지원국가에 묶여 있다면 남북경협을 통한 경제공동체 건설은 그저 ‘수사’에 그치기 쉽다. 결국 개성공단이 지향하는 전자산업 클러스터 구축 등의 과제는 북핵 문제 해결과 북-미 관계 개선을 전제로 한 전략물자의 대북 반출 제약이 없어져야 가능한 셈이다. 이런 맥락에서 전문가들은 북한 경제특구의 성공조건으로 미국의 전략물자 반출 허용과 테러지원국 해제 등을 꼽는 데 주저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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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북한에 대한 미국의 완고한 정책듣은 풀리기 쉽지 않다. 개성공단의 남한 기업 부천공업(위). 경기도 파주 비무장지대 안 도로를 통해 북으로 향하고 있는 남한 트럭들(아래). (사진/ 토지공사, 한겨레 김정효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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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도 이를 잘 인식하고 있다. 정동영 통일부 장관은 1월3일 시무식에서 신년사를 통해 “북한 핵은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우리의 사활적 이해가 걸린 문제”라고 지적하고, 특히 올해에는 “남북경제협력 사업이 심화·발전될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고 밝혔다. 이를 위해 “개성공단은 짜인 계획에 따라 차분히 진행될 수 있도록 하고, 북한의 경제재건 지원계획도 보완해나가자”고 말했다. 정부는 북핵 문제 해결과 남북경협의 병행 추진을 조심스럽게 추진하고 있다. 그러나 실제로 핵 문제나 이와 사실상 연계된 전략물자 통제제도 등은 남북 관계를 강하게 짓누르는 큰 부담임이 틀림없어 보인다. 그러나 동시에 기회도 존재한다. 정부의 한 고위 관계자는 “북핵 문제 해결이 몇cm라도 앞으로 나아가면 남북경협은 몇m 더 도약할 수 있다”면서 “어차피 북핵 문제의 완전 해결에 오랜 시간이 소요될 것으로 예상되는 만큼 해결 징후만 포착돼도 이를 빌미로 더 과감한 경협사업을 추진하겠다는 생각에는 변함이 없다”라고 말했다.
정부 ‘평화적 목적’ 강조
그러나 정부는 북핵 문제 해결 이전이라도 남북경협의 기반을 최대한 넓혀나가겠다는 자세다. 정부는 우선 개성공단 사업 추진 과정에서 다자 전략물자 수출통제 체제 가입국으로서의 의무 준수와 함께, 국내 기업 보호 측면 등을 종합적으로 감안해 전략물자 문제를 해결하겠다는 원칙을 갖고 있다. 다만, 개성공단 지역으로의 반출이 갖는 특수성, 즉 우리 기업이 반출 물자의 최종 사용자이고 평화적 목적으로만 사용할 것이며, 우리쪽 인원이 전략물자를 철저히 관리할 수 있고, 사용 뒤 다시 남쪽으로 반입한다는 점 등을 강조한다. 개성공단으로 반출되는 물자에 대한 사전·사후 통제관리를 더욱 철저히 하겠다는 다짐이다. 정부가 전략물자에 대해 얼마나 민감하게 대응하고 있는지를 생생하게 감지할 수 있는 대목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