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당 5돌, 외형은 커졌지만 정당문화는 칙칙하고 과거지향적… ‘현대화’ 못 이루면 벼락처럼 소멸할 수도
▣ 글 박창식 기자 cspcsp@hani.co.kr · 사진 이용호 기자 yhlee@hani.co.kr
민주노동당의 지지율이 지난해 4월 총선 이래 12~15%가량의 고공행진을 계속하고 있다. 총선 이전까지 5~7%에 비해 비약적인 발전이다. 열린우리당과 한나라당의 지지율이 26~28% 사이를 오르내리는 것에 비춰볼 때, 또 민주노동당 원내 의석이 10석밖에 안 되는 것에 견줘보면 더욱 그렇다. 민주노동당에서는 지지율 15%를 기준으로 ‘500만 지지자 시대’가 열렸다고 자평하기도 한다.
‘10만 당원’ 확보 낙관적
당비를 납부하는 진성 당원 증가세도 호조이다. 2000년 1월 창당 당시 1만1087명이던 당원이 2004년 12월 말 6만376명(후원회원을 합치면 7만명 육박)으로 늘었다. 김혜경 당대표는 지난해 6월 취임하면서 ‘10만 당원 확보운동’을 제기했다. 애초에는 “되겠느냐”라는 비관론도 있었다. 그러나 ‘총선 특수’가 없는 지난해 하반기에도 신규 입당 대열은 꺾이지 않았다. 따라서 이제 ‘10만 당원’은 머지않아 확보될 것으로 예상된다.
그렇다면 민주노동당의 앞길은 이러한 ‘외형’처럼 ‘장밋빛’으로 짙게 채색되어 있는 것일까? 지금처럼 탄탄대로를 순항해 당이 공언하는 대로 ‘2012년 집권’으로 직행할 수 있을까?
불행인지 다행인지는 모르겠다. 그러나 민주노동당 내부의 견해만 봐도 전망이 썩 밝지 않다.

△ 당세가 급상승하고 있는 민주노동당은 오는 2월27일 창당 5돌 정기 전당대회를 연다.
|
민주노동당 부설 진보정치연구소가 1월12일 연 내부 포럼에서 장석준 상임연구위원은 이렇게 진단했다. “벼락부자의 전성기는 벼락같이 끝날 수 있다. 과거에도 우리는 수차례 진보정치의 갑작스러운 개화와 급박한 사망을 경험한 바 있다. 해방공간의 좌파정당들이 그랬고 1950년대 말의 진보당이 그러했으며 4월혁명 공간의 혁신정당도 그러했다. 민주노동당이 그 전철을 밟지 말라는 보장은 아무 데도 없다.”
실제로 미국에서는 사회당이 1912년 대통령 선거에서 6% 득표로 반짝 바람을 일으켰다가 돌연 지지세가 소멸된 예가 있다. 일본 사회당은 2차대전 종전 뒤 40여년간 제1야당으로 자민당과 자웅을 겨뤘으나 지금은 ‘사회민주당’으로 당명을 바꾼 가운데 소수당으로 전락했다.
최근의 여론조사 흐름에서도 위험신호들이 감지된다. 당 기관지인 <진보정치>는 올해 초 한길리서치에 의뢰해 국민 정치의식 여론조사를 했다. 그 결과 민주노동당 지지자들 가운데 ‘정치노선이나 이념이 마음에 들어서’ 지지한다는 응답자는 24.2%에 그쳤다. 대신에 ‘다른 기성 정당들이 싫어서’가 32.4%로 가장 많았으며 다음으로는 ‘변화와 신선한 감이 마음에 들어서’(22.3%), ‘민주노동당 의원들의 의정활동이 마음에 들어서’(15.3%) 순서로 나타났다.
같은 조사에서 민주노동당 지지자의 74.5%는 ‘상황이 바뀌면 민주노동당 지지를 철회할 가능성이 있다’고 응답했다. 반면에 ‘상황이 바뀐다 하더라도 지지를 철회할 가능성이 없다’는 23.7%에 머물렀다.

△ 지난 1월12일 서울 용산구민회관에서 열린 민주노동당 중앙위원회의.
|
민주노동당 기획조정실은 내부 문건에서 이 결과를 “당의 이념·정체성과 별도로 이미지와 유동적인 정치적 지형에 기반하여 지지층이 형성되었음”이라고 분석했다. 여기서 ‘이미지’에 기반했다는 대목은 ‘젊고 신선해 보이니까 좋다’ ‘진보라는 트레이드마크가 참신하다’ ‘신당이니까 기성 정당처럼 부패했거나 구태의연하진 않을 것 아니냐’는 등의 대중적 기대가 투영된 것으로 분석된다.
민주노동당을 떠나는 사람들
또 ‘정치적 지형’ 대목은 우리나라 특유의 ‘제3당 틈새’를 반영한 것으로 해석된다. 이를테면 1992년 대선에선 정주영 대표의 국민당으로, 1997년 대선에선 이인제 후보의 국민신당으로 옮겨다닌, ‘여당도 야당도 싫다’는 일군의 유권자들이 지금은 민주노동당에 호감을 품고 ‘바라보고’ 있다는 분석이다.
한국사회여론연구소(www.ksoi.org·소장 김헌태)가 <한겨레21>의 의뢰로 지난 1년간의 여론조사(격주 단위 실시) 흐름을 재분석한 자료도 시사점을 제공한다. 이 자료에 따르면 민주노동당 지지자의 주력은 고학력·고소득·화이트칼라 계층으로 나타난다. 노동자·농민·빈민의 이익을 옹호하는 정당을 표방하면서도 정작 빈곤층에서는 지지율이 약세다. 연령·남녀별로는 30대(2004년 12월 경우 23%), 20대(19%)가 핵심 지지층이며 40대(13%)가 일부 뒷받침하고 있다.
이런 흐름은 당이 가능성과 한계를 동시에 안고 있음을 의미한다. 즉, ‘빛의 속도’로 증가한 지지자의 욕구와 눈높이에 맞춰 당의 변신에 성공하느냐, 그렇지 못하느냐가 핵심 과제라는 이야기다. 홍형식 한길리서치 대표는 “민주노동당의 지지율이 이례적으로 높은 것은 집권 가능성이 없는 신생 정당인 탓에 유권자들이 상대적으로 너그럽게 평가해주는 측면이 크다”며 “그러나 이런 추세가 장기간 계속되리라고 낙관하긴 어렵다”고 말했다.
자주파와 평등파간의 계파싸움
세계 정당사는 지지자의 눈높이에 맞추지 못한 정당이 이내 쇠잔하고 만 경험들을 기록하고 있다. 따라서 민주노동당도 당의 혁신을 통한 내실 다지기가 시급하다고 할 수 있다. 그렇다면 민주노동당의 실제 활동상은 지지자의 눈높이를 충족해주고 있을까?
이와 관련해선 민주노동당 정책실에 근무하다 1월14일 사직서를 낸 윤종훈 회계사의 사례가 주목된다. 그는 참여연대에서 회계·조세 전문가로 활동하면서 삼성그룹을 집중 공격해 명성을 쌓은 인물이다.
그는 인터넷 매체 <프레시안>과의 인터뷰에서 “민주노동당에 과연 ‘진보’가 있는지 의심스럽다. 언제부터인가 당은 모든 이슈에 ‘이것이 어느 정파, 어느 조직에 유리하냐’는 주판알을 튕기기 시작했다. 부유세와 조세개혁에 대한 최소한의 인식과 기본 원칙조차 없었다”고 성토했다. 그는 “희망도 없는데 배고픔을 참을 이유가 없었다”며 당을 떠났다.
그는 당내에서 부유세와 조세개혁 구체화 작업을 맡았다. 그러나 필요한 태스크포스 충원 등이 감감무소식이었다고 한다. 대신에 충원의 원칙인 ‘적재적소’보다는 이른바 자주파(NL), 평등파(PD)간의 계파 싸움만이 난무했던 것으로 그는 전하고 있다.
역시 전문직인 변호사로서 정책위원회 법제실장을 맡고 있는 김정진씨의 지적도 비슷하다. 그는 <한겨레21>과의 인터뷰에서 “진보정당인 만큼 노선 논쟁은 불가피하다. 그러나 우리 정책을 어떻게 구체화하며 세련화하고 현대화해 국민들에게 전달할 것이냐보다는 정파간의 과거지향적 논쟁만 난무하는 게 문제”라고 말했다.

△ 서울 여의도의 민주노동당사 내 사무실 모습. 지지자의 욕구와 눈높이에 맞춰 변신하느냐가 핵심 과제다.
|
서울 여의도동에 자리잡은 민주노동당사 일대에선 실제로 내부 논쟁이 연중 그칠 날이 없다. 크게는 2003년을 풍미한 당 강령에 사회주의를 어떻게 표현할 것이냐에서 비롯했다. 논쟁 결과 어정쩡하게 계파간 의견을 절충했는데, 문제는 그 논쟁의 향배와 이듬해 총선 공약이나 선거전략과 거의 아무런 연관이 없었다는 점이다. 김정진 법제실장은 “한마디로 논쟁의 ‘실용성’이 의문스러웠다”고 말했다.
최근에는 한 당원이 여성 당원을 손찌검한 사건의 징계 수위를 두고 몇달째 논쟁이 계속되고 있다. 그 당원이 마침 자주파이다 보니 평등 계열이 중앙당기위원회를 향해 엄정 처벌을 집중적으로 요구하고 있으며, 당 홈페이지 게시판에도 연일 논쟁 글들이 오르고 있다. 지도부도 아닌 평당원 한 사람의 도덕성 문제가 이렇게 뜨거운 내부 관심사가 된다는 것은, 민주노동당이 현대적 대중정당이라기보다는 소수 서클정당의 잔재를 벗지 못했다는 근거가 된다.
당 홈페이지 논쟁들의 특징은 ‘운동권 화법’이라고 김정진 법제실장은 말했다. 즉, 소수 운동권 경험자 내지 연고자 외에는 알기 어려운 복잡하고 추상적인 거대 담론과 생경한 용어를 총동원해 상대방을 날카롭게(종파주의자 등의 표현) 공격한다. 그러나 “1980년대 운동권 경험과 무관한 다수의 요즘 신입 당원들은 이런 행태를 건강한 논쟁으로 보지 않는다”고 홍승하 대변인은 말했다. 홍 대변인은 서울 영등포갑 지구당을 이끌고 있어 평당원들의 정서에 밝은 편이다.
영국 노동당에게서 무엇을 배울 것인가
홍 대변인은 “이런 식의 논쟁이 계속된다면 신입 당원들이 소외될 수 있다”고 우려했다. 홍형식 한길리서치 대표도 “자주파, 평등파라는 내부 정파 구조와 무관한 지지자들, 그리고 화이트칼라가 주축인 요즘 민주노동당 지지자들이 과거지향적 당내 정파 논쟁의 용어와 논리를 새로 학습해 끼어들 이유가 없다”며 “지지자들이 당으로부터 멀어지게 할 요인”이라고 말했다.

△ 1월20일 오전 여의도 당사에서 신년 기자회견을 여는 민주노동당 지도부. 당 내부에선 지도부의 취약한 조정력을 비팡하는 목소리가 높다.
|
민주노동당 중앙당의 활동가들은 “그래도 현실적으로 중요한 문제이기 때문”이라며 정파 논쟁을 너무 나쁘게만 볼 일은 아니라는 태도이다. 그러나 이러한 항변들이 ‘500만 지지자’들한테도 통할지는 의문이다. 논쟁 소재의 대다수가 ‘미래’와 무관하며 ‘과거지향적’인, 그리고 정파간 지분·자리 다툼과 연결된 인상이 짙기 때문이다.
이런 풍토에는 당 지도부의 취약한 조정력도 한몫하는 것 같다. 지난해 말 당내에선 국가보안법 폐지 투쟁에 ‘올인’할 거냐(자주파), 아니면 ‘빈곤과의 전쟁’(평등파)에 주력 또는 병행할 거냐라는 논쟁이 제기됐다. 당면한 활동 방향과 관련된 것으로서 모처럼 생산적인 토론을 해볼 만한 소재였다.
그러나 김혜경 대표가 주재하는 최고위원회는 이 문제를 본격적으로 공론화하기보다는, “앞으로 <조선일보>에 대한 인터뷰를 거부한다”는 결론으로 논쟁을 봉합했다. 당시 논쟁이 <조선일보> 보도를 통해 불거지긴 했지만, 논쟁의 ‘몸통’보다는 ‘깃털’을 겨냥한 결과였다. 한 고위 당직자는 “어느 신문을 통해 보도됐느냐와 관계없이 마땅히 당내 공론화를 할 문제인데 인터뷰 거부라는 미봉책을 지도부가 채택했다”고 말했다.

△ ‘서민의 목소리’를 표방한 민주노동당의 민생포럼. 노동자. 농민. 빈민의 이익을 옹호하는 정당을 표방하지만 정작 빈곤층에서는 지지율이 약세다.
|
그 결과 논쟁은, 1월12일 300여명이 참석해 열린 중앙위원회에서 폭발하고 말았다. 당 지도부가 국가보안법 폐지에 주력한 지난해 사업 방침이 정당했다는 요지의 ‘2004년 사업평가 보고서 초안’을 제출하자, 평등파 중앙위원들이 일제히 지도부를 성토한 것이다.
지지자들은 ‘신선함’을 기대한다
1월12일의 중앙위원회는 이런 분위기로 새벽 3시까지 13시간 동안 난상토론을 벌였다. 그러다가 정책위원회가 준비한 ‘신행정수도 후속대책 관련 당론 확정의 건’은 ‘밤이 깊어가면서 성원이 미달된’ 사유로 2월 중앙위로 미뤄지는 일이 벌어졌다. 신행정수도 후속대책은 그날 중앙위 안건 가운데 그나마 민생 관련성이 가장 높은 안건으로 보였다.
이런 상황은 10여년 전 토니 블레어 영국 총리가 ‘노동당의 현대화’를 부르짖기 직전을 연상케 한다. 토니 블레어는 18년간 보수당 장기 집권을 극복해야 한다면서 노동당의 정책, 조직노선, 활동 문화의 현대화를 외쳤다. 런던 일대 금융가 화이트칼라 노동자들이 당의 지지기반으로 대거 신규 참여한 현실을 반영하도록, 종전까지 노동조합이 당직 선출권의 70% 지분을 갖던 당헌규약도 뜯어고쳤다. 영국 노동당의 재집권 신화는 이렇게 해서 가능했다.
한길리서치 조사 결과에 따르면 민주노동당 신규 지지층의 주된 지지 이유는 정치 행태와 문화에 대한 ‘신선함’을 기대하는 것으로 요약된다. 그러나 지금 민주노동당의 실제 활동상을 보면 행태와 문화 측면에서 지지자들의 눈높이와 가장 큰 거리감을 주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민주노동당이 ‘500만 지지자 시대’에 걸맞게 ‘현대화’가 필요해 보이는 것도 바로 이런 까닭이다. 기성 정당과는 다르게, 그리고 진보정당답게 신선하며 미래지향적이고 폼나는 문화를 지지자들은 기대한다는 이야기다. 민주노동당은 오는 2월27일 창당 5주년을 맞아 정기 전당대회를 연다.
 |
 | |
진보정당 현대화의 씨앗 당원 수 늘면서 당 기존 정책과 신규 입당자간에 이해관계 충돌 늘어
민주노동당의 당원 수가 늘면서 당의 기존 정책과 신규 입당자들간에 이해관계가 종종 충돌하고 있다.
민주노동당 정책위원회에 따르면 금융노조 소속 당원들은 2002년 대선 당시 민주노동당의 이자제한법이 비현실적이라며 이의를 제기했다. 금융노조쪽은 상가임대차보호법에 대해서도 “금융기관이 담보를 잡기 어려워진다”며 이견을 표시했다. 금융노조쪽은 이런 식이라면 당비 납부 거부를 불사하겠다고 실력행사 가능성도 비쳤으나 당쪽과 협의해 절충점을 찾았다고 한다.
농협 노조원 가운데 상당수도 단체 입당한 뒤 당 노선과 충돌을 빚었다. 당쪽은 농민단체의 요구를 대변해 협동조합 개혁을 주장한 반면에, 협동조합 직원들은 이 경우 자신들의 신분 불안을 경계했다고 한다. 한국전력은 노·사 가릴 것 없이 대체로 원자력 발전을 지지하는 편이다. 이에 따라 한국전력 노조원인 당원들이 당의 반핵 정책기조에 이견을 제출한 적도 있다.
최근에는 전국교직원노조 보건교사모임과 당 사이에 논쟁이 벌어졌다. 당쪽은 학생들의 신체검사를 시중의 종합 건강검진 수준으로 업그레이드하는 내용으로 학교보건법 개정을 추진 중이다. 이에 보건교사모임은 ‘그렇게 할 경우 보건교사의 업무가 과중해진다’며 반대 의견을 냈다.
보건교사모임은 대신에 보건을 학교 정규 교과목으로 채택함으로써 보건의 비중을 높여줄 것을 당에 요구했다. 그러나 당은 ‘기존의 교과목도 통폐합함으로써 학생들을 편하게 해줘야 한다’는 방침이어서 이런 요구에 난색을 표시했다. 결국 보건교사모임은 자신들의 요구사항을 들고 한나라당쪽을 찾아갔다고 한다.
당과 당원, 또는 지지자 사이에 정책 갈등이 생기는 것은 대중정당으로 변신하는 데 따른 자연스러운 흐름으로 해석된다. 또 진보정당의 정책이 각계각층의 생활상의 요구와 좀더 단단히 결합하는 계기가 될 수도 있다.
민주노동당은 이런 정책갈등 사안이 나올 때마다 당 정책위원회와 해당 당원그룹 관계자가 참여하는 워크숍을 종종 연다. 워크숍 결과는 당 홈페이지에 게시함으로써 공론화를 꾀한다. 이런 게시물은 사안에 따라 6천~1만건의 비교적 많은 조회 수를 기록하고 있다.
이재영 정책실장은 “기성 정당과 달리 민주노동당 당원들은 정무적 사안뿐 아니라 정책 이슈에 대해서도 관심과 참여 의지가 높은 편”이라고 말했다. 이런 접근방식들이 현대적 정책정당화를 앞당기는 씨앗이 될지 주목된다. |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