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me > 표지이야기 > 표지이야기 기사목록 > 기사내용   2005년01월24일 제545호
“운동권 정서 하루빨리 벗어야”

[인터뷰 | 김창현 민주노동당 사무총장]

신뢰와 동지애를 기반으로 상호 토론하는 당풍쇄신 필요… 대선 위해 결선투표제 도입 주장할 것

▣ 박창식 기자 cspcsp@hani.co.kr

김창현 민주노동당 사무총장은 “지금 당 지도부의 상당수가 운동권이지만 당 차원에서 운동권 정서를 하루빨리 벗어나 국민 정서에 맞는 대중적 진보정당으로 변신하는 게 우리의 초미의 관심사”라고 말했다.

김 총장은 또 소모적인 당내 정파 논쟁과 관련해 “실용적인 전술 토론이 아니라 과도한 정파 의식에서 서로를 박멸하기 위해 싸우려는 사람들이 문제”라며 “신뢰와 동지애를 토대로 공존과 경쟁의 룰을 만들어나가는 당풍 쇄신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그는 2007년 대통령선거를 앞두고 펼쳐질 개헌 논의와 관련해 “‘올 오어 낫팅’(전부 아니면 전무) 싸움인 대선에서 제3당이 피해를 보게 돼 있다”며 “1차 투표에서 각 정당이 자기 내용을 갖고 지지를 모아보고, 2차 투표에서 다양한 선택이 가능하도록 결선투표제 도입을 요구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를 1월21일 중앙당사에서 만났다.

노동자·농민 비율, 최소한 절반은 돼야

민주노동당의 지지율이 15% 수준으로 꽤 높다. 그러나 당이 한길리서치에 의뢰한 여론조사 결과를 보면 ‘이념과 노선이 좋아서’ 지지한다는 응답자보다는 기성 정당이 싫기 때문이라는 반사이익 성격의 지지층이 더 많다.

반사이익도 순간적인 반사이익은 아니다. 기성 정당에 대한 실망감이 수십년 된 보수정당 양당 구도에서 정치 혐오감이 극대화된 가운데 형성된 것으로 본다. 새로운 정치에 대한 희망을 보고 15%가 민주노동당에 현재 모여 있다. 진보정당에 대한 기대층이 일단 안정된 것으로 본다. 앞으로 20~30% 수준으로 더 끌어올리려 한다.

최근 늘어난 지지자 가운데는 고학력·고소득·화이트칼라가 많다.

우리는 원래 진보적 대중정당을 지향한다. 당연히 다양한 계급계층의 요구를 반영하면서 대중정당으로 갈 것이다. 그러나 대중정당이 된다 해도 당의 다수가 노동자·농민이어야 한다는 창당 정신은 날아가선 안 된다. 당원이 10만~20만명으로 늘어날수록 노동자·농민의 비율이 유지되도록, 최소한 절반은 되도록 노력해야 한다.

‘500만 지지자’ 시대에 이르러 지지자들의 당에 대한 요구도 변화할 것으로 생각된다.

초기에는 노동운동이 워낙 힘드니까 정치적으로 지원·엄호하는 역할을 당에 기대한 것 같다. 그러나 지금은 노동자들조차 파업은 우리가 할 터이니, 파업 엄호에 머물지 말고 국회에서 잘못된 법을 바꾸거나, 당 정책활동을 통해 근본적인 대안을 내주기를 기대한다. 기대치가 훨씬 높아졌다.

노동자가 아닌 일반 대중들은 ‘민주노동당이 참신한 정치세력이다’ ‘한국 사회의 향후 과제를 실현할 것이다’ ‘깨끗한 당이다’라는 말을 많이 한다.


△ (사진/ 이용호 기자)

지지자가 기대하는 ‘새로운 정치’의 내용이 뭐라고 생각하나.

선거 때만 보이는 사람들, 선거 때 좋은 이야기를 많이 하지만 나중에 실천하지 않는 사람들, 당리당략으로 싸우는 사람들이 기성 보수 정치인들로 되어 있지 않나. 우리는 그 반대로 가야 한다. 일상적으로도 늘 서민의 목소리에 귀기울이며 당리당략이 아니라 전체 민중과 국가 이익을 위해 움직이는 당이 되어야 한다. 그래서 부담이 많이 된다.

보수 정치권이 ‘당리당략 정치’가 문제라면 민주노동당에선 비생산적인 정파 논쟁이 염증의 대상으로 꼽힌다.

우리나라 사회운동에서 민족 문제를 중시한 그룹과 계급 문제를 중시한 그룹이 국제통화기금(IMF) 사태를 겪으며 두 문제가 불가분의 관계임을 깨닫고 대통합해 당을 함께 만들었다. 따라서 근본적인 분열과 대립은 없다. 다만, 과거의 경향성에서 비롯된 마찰과 대립이 존재함을 부인하진 않겠다.

이러한 대립이 자꾸 식상한 모습으로 등장하는 이유는 내부의 일부 사람들이 경향성에서 비롯된 문제를 자꾸 정파 대립으로 비화·증폭하기 때문이다. 그 결과 마치 당내에 두 흐름이 서로를 박멸하기 위해 엄청난 싸움을 하는 것처럼 된 것이다. 과도한 정파 의식이라고 해야 할지…. 비판할 때도 저 사람들이 지도부를 쥐고 있는 한 우리는 망한다며 공포감을 조장하고, 다른 쪽에선 저런 사람들을 쫓아내지 않으면 당이 망한다고 주장한다. 그런 사람들이 수적으로는 얼마 안 되는데도 소수가 인터넷에서 논쟁이 붙으면 당 전체가 엄청나게 붙어 있는 것처럼 언론에 보도되곤 한다. 그 결과 다수 지지자들이 고개를 흔들게 된다.

이렇게 더뎌서 되겠는가

어떻게 풀어야 하나.

나는 실사구시로 접근하고 있다. 이를테면 의원 보좌관들과 만나면 새벽부터 밤늦게까지 의원하고 붙어 일하는데 임금이 비슷하다면 평등이 아니라 평균주의 아니냐라고 주장한다. 일리가 있다고 생각한다. 그런 구체적인 문제를 놓고 해법을 찾는 식으로 논의해야 한다.

사무총장 혼자 뛴다고 되나? 근본적인 해법은 없나?

우리 당은 인터넷 게시판 논쟁이 일상화돼 있다. 토론 문화를 올바르게 선도하는 게 필요하다. 이름을 숨기고 무책임하게 ‘~카더라’ 하는 것은 자제해야 한다. 그러나 그것도 당내 네티즌들의 자율적인 규율로 풀어가야지, 당이 지침을 만들어 막는다고 해결될 문제는 아니다.

근본적인 문제로는 당풍 쇄신이 필요하다. 상호 박멸이 아니라 당의 발전을 위해 신뢰와 동지애를 기반으로 상호 토론하는 문화를 만들어야 한다. 그런 운동을 적극적으로 펼칠 것이다. 이를 위해선 공존과 경쟁의 풀이 필요하다. 당이란 틀 안에서 건강하게 경쟁할 룰을 어느 정도 만들어야 하고, 거기서 일탈하는 것은 어느 쪽도 막아주는 자율적인 기제가 있어야 한다. 그런 것이 지금 우리에게 너무 무너져 있다.

총선 때 인기를 끈 ‘판갈이.넷’ 같은 인터넷 매체가 왜 몇달째 안 나오느냐는 지적도 많다. 유력한 홍보수단 아닌가.

민주노동당은 뭔가 하나를 결정하는 과정이 오래 걸린다. 구성원이 워낙 다양하고 합의를 끌어내는 과정이 오래 걸려서 그렇다. 그러나 논의가 막판에 와 있다. 2월 중앙위원회에서 방침이 결정되면 곧 출범한다.


△ 1월12일 중앙위원회의에 참석한 김창현 사무총장(가운데). 그는 “지금 당 지도부의 상당수가 운동권이지만 당 차원에서 운동권 정서를 하루빨리 벗어나야 한다”고 말했다. (사진/ 이용호 기자)

지도부가 팔을 걷어붙이고 나서서 토론이 빨리 진행되도록 지도력을 발휘할 문제 아닌가. 다른 문제들도 민주노동당이 다른 정당에 비해 의사결정이 느린 것 아닌가.

인터넷 매체만 떼어내 생각하기보다는 주간 <진보정치>와 월간 <이론과 실천>과 함께 종합적으로 기관지를 개선하려다 보니 그렇게 됐다.

(전반적으로) 의사결정이 더딘 것은 맞다. 혁신할 대목이 있다. 사무총장으로 6개월 일하면서 이렇게 더뎌서 이 시대에 되겠느냐라는 평가와 반성을 하고 있다. 지도부는 결단해서 빨리 집행하고 대신에 결과를 평가받고 책임지는 것 아니냐라고 생각한다. 민주적 토론 절차를 생략하면 안 되지만 너무 오래 끌어선 안 된다고 본다.

1월12일 중앙위원회를 보면 사업평가 등을 놓고 위원들이 13시간을 논쟁하다가 정작 국민들이 중시하는 정책 사안인 행정수도 후속대책 당론은 논의도 못하는 일이 벌어졌다.

(다소 난감한 표정으로) 당 중앙위원들이 가장 관심을 갖는 분야가 아직 국민 대중의 전체 관심사와 일치하지 않는 경향이 우리한테 있다. 운동권적 관심사가 내부에 있는 것이다. 어쨌든 제3당, 원내 정당이 되면서 과거에 비해 많이 달라졌다. 그럼에도 아직 과도기에 있는 것 같다. 그렇게 이해해달라.

‘대중적 진보정당’변신이 초미 관심사

당풍 혁신 방향을 결론적으로 요약하면.

지금 당 지도부의 상당수가 운동권이다. 그러나 당 차원에서 운동권 정서를 하루빨리 벗어나 국민 정서에 맞는 대중적 진보정당으로 변신하는 게 우리의 초미의 관심사다.

그렇게 하기 위해 지도부 구성의 인적 변화가 필요하진 않나.

(기층 외에) 중간 여러 계층, 이를테면 시민운동 영역 지도자들도 주저없이 민주노동당에 참여하겠다고 나서며, 그들을 허심탄회하게 받아들일 정도로 당이 열릴 때 우리는 집권으로 간다고 본다. 당 지도부에 다양한 계급계층의 지도자들이 서는 것은 좋은 일이다. 그런나 지금 우리의 단결 수준이 그걸 쉽게 허용해주는 분위기가 아니다. 우리가 대중정당으로 가려는 목표와 현실 사이에 딜레마가 있다. 그러나 꾸준히 노력할 것이다.

2007년 대선을 앞두고 개헌 논의가 열릴 전망이다. 결선투표 문제에 대한 견해는.

우리는 결선투표 도입을 주장할 것이다. 3당이란 세력이 다른 때는 몰라도 대선 때는 가장 큰 피해를 보게 돼 있다. 대선이 ‘올 오아 낫팅’ 싸움이기 때문에 국민들이 평소 국회의원 선거 같으면 500만표를 주다가도 대선에서는 ‘이번에는 안 되니까’ 하면서 빠질 수 있다. 그러나 결선투표가 도입되면 1차 투표에선 각 정당이 자기의 정치적 내용을 갖고 지지를 모아보고, 2차 투표에선 자기 판단에 따라 누구를 밀거나 하는 등의 다양한 전술을 구사할 수 있다. 지금 같은 제도에선 민주노동당이 집권에 실제 근접할 힘을 갖추기 전까지는 계속 양당 구도에서 헤어나지 못한다. 다만 결선투표제를 열린우리당과 한나라당이 받아들일지 의문이 든다. 특히 한나라당은 받아들이지 않을 것 같다. 이런 생각은 아직 개인적 의견이다. 그러나 조만간 공론화될 때 강하게 주장할 생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