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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커스 |
1997년05월10일 제 156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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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대에서 93년 8월에 발생했던 우 조교 사건의 악몽이 되살아나고 있다 . 지난 2, 3월에 학생들의 성추행 사실로 망신을 당했다. 그리고 지난 3 월 시작된 약대 박사과정 7년차인 정아무개(35)씨와 정씨의 지도교수 구 아무개(50)씨 사이의 성추행 논란은 결국 법정공방으로 번진 것이다.
문제터지자 “학생과 접촉 자제하라” 권유
사건은 지난 3월31일 정씨의 아버지가 “딸이 지도교수인 구아무개 교수 에게 성추행당했다”는 진정서를 서울대 총장에게 제출하면서 시작됐다. 당시 이 진정서 사본이 약대학생회를 통해 교내에 공개되면서 파문은 끝 간 데 없이 확대됐다. 정씨가 이 진정서를 통해 “94년 4월28일 구 교수 와 경남 마산으로 식물채집을 갔을 때 구 교수가 호텔방으로 끌고가 성폭 행하려고 해 반항하자 ‘너는 내 생각은 조금도 안 한다. 우 조교보다 더 악종이다’는 등의 욕설을 퍼부었다”는 충격적인 주장을 하고 있었기 때 문이다. 구 교수로부터 그와 비슷한 일을 당했다는 이아무개(26)씨의 증 언도 포함돼 있었다.
학생들은 약대학생회를 중심으로 공동대책위를 구성해 진상규명을 요구하 는 등 즉각 반발하고 나섰다. 하지만 구 교수는 정씨의 주장에 대해 “함 께 채집여행을 갔다가 짐을 날라주려고 호텔방에 따라 올라갔는데 정씨가 자기 방을 따로 구해야 한다는 등 자신을 의심해 나무랐을 뿐”이라며 “ 정씨가 이를 왜곡했다”고 맞섰다.
결국 사태 해결의 책임은 학교로 돌아갔다. 하지만 학교쪽의 태도는 미온 적이었다. 진실규명을 위한 적극적인 조사에 나서기보다는 약대교수회의 를 통해 불미스러운 사태가 발생한 만큼 당분간 학생들과 접촉을 자제하 도록 권유하는 선에서 처리된 것이다. 학교쪽의 한 관계자는 “정씨쪽도 3년이나 지난 문제를 제기하는 등 불완전한 부분이 있어 쉽게 판단할 수 없었다”고 그 이유를 밝혔다.
하지만 학생들의 반발은 더 거세졌다. 진상규명을 요구하는 서명을 받아 총장에게 전달했고 약대 3학년의 경우 구 교수의 수업을 거부했다. 더욱 이 총학생회와 약대학생회, 관악여성모임연대, 대학원자치연대 등으로 구 성된 공동대책위는 자체 진상조사에 돌입했다. 그리고 최근 그동안의 진 상조사를 통해 정씨의 주장이 사실이라는 내부 결론에 도달한 것으로 알 려진다. 공동대책위의 한 관계자는 “정씨와 이씨 등의 주장이 사실이라 는 확증을 갖게 됐다”며 “이 문제의 공론화 등 해결방법을 고민중”이 라고 밝혔다.
그러나 지난 4월21일 구 교수가 정씨 부녀를 비롯해 진정서에서 비슷한 일을 당했다고 증언한 이아무개(26)씨 등 여자 대학원생 4명을 무고 및 명예훼손 혐의로 서울지검에 고소하면서 이제 학교 밖으로 문제가 확대됐 다. 진위 여부는 법정의 판단으로 넘어간 것이다. 하지만 학생들은 법의 판단과는 상관없이 학교 안에서 해결해야 할 문제는 여전히 남아 있다고 주장한다. “법정에서 풀어야 할 부분과 학내에서 풀어야 할 부분은 명확 히 다르다”고 주장하는 총학생회 한 관계자는 “오히려 학교가 법정에서 책임을 떠맡겨 두고 수수방관해서는 안 된다”고 경고했다.
학생들이 학내 해결과제로 가장 먼저 지적하는 것은 절대적인 약자인 학 생과 지도교수의 관계에 대한 재검토이다. 현재 대학원 학생에 관한 한 지도교수가 전권을 가지고 있다는 게 학생들의 일반적인 평가다. 프로젝 트를 지시하면 무조건 해야 하고 논문제출과 심사, 통과가 모두 지도교수 의 재량권에 놓인 도제식 상하관계가 형성돼 있는 것이다. 한 대학원 학 생은 “단순히 교수의 도덕성이나 배려에 모든 것을 맡기기에는 현실적으 로 지도교수에게 집중된 권력이 너무 크다”고 지적한다. 결국 “이런 문 제가 해결되지 않는다면 정씨의 경우와 같은 사건이 일어날 개연성은 얼 마든지 있다”는 게 그의 주장이다.
최근 성추문 사태 등을 두고 이런 문제 인식은 일부 교수들에게까지 확산 되고 있다. 공법학과 최대권 교수는 이런 문제를 공개적으로 지적했다. 지난 4월14일 대학신문을 통해 “교수의 표절시비, 성희롱 문제 등은 세 월이 지나면 입방아의 대상이 될 뿐 묻혀버리고 만다”며 “이 문제를 대 학 차원에서 다룰 수 있는 기구와 공정한 절차 및 윤리장전이 마련돼야 한다”고 주장한 것이다. 사회대쪽의 일부 교수들도 ‘윤리위원회 등의 제한 조치가 필요하다’는 의견을 표출하고 있다. 하지만 아직 구체적인 논의까지는 이르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이에 최근 학생회를 중심으로 성폭력 방지를 위한 학칙을 만들자는 움직 임이 일고 있다. 당장 교수의 권한을 제한하거나 윤리위원회를 설치하기 가 어렵다면 적어도 이번과 같은 사건을 방지하고 해결할 수 있는 제도적 인 장치를 마련하자는 것이다.
성폭력 방지 학칙개정 무산된 경험
이번 사태 해결에 미온적인 태도를 보여왔다는 비판을 받고 있는 학교쪽 도 이 문제에 대해서는 적극적인 자세를 보이고 있다. 4월24일 잇따르는 교수와 사제 사이, 학생들 사이의 성희롱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성적 괴롭힘에 대한 정책(안)’을 내놓은 것이다. 이 안은 성폭력피해 사건 발 생 뒤 3개월 이내에 신고하면 교수와 학생 등으로 진상조사위원회를 만들 어 사실 여부를 규명한 뒤 사실과 일치할 경우 제재하는 것을 내용으로 하고 있다.
하지만 이런 움직임이 현실화될지는 더 지켜봐야 할 것이다. 지난 93년 우 조교 사건 뒤에도 서울대는 성폭력 방지를 위한 학칙개정을 시도했지 만 무산된 경험이 있기 때문이다. 또 학칙안이 마련된다 하더라도 지도교 수가 대학원생의 일생을 판가름할 수 있는 전권을 가진 구조 속에서 얼마 나 ‘고발’을 할 수 있을지도 의문인 것이다.
신승근 기자
© 한겨레신문사 1997년05월10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