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강만세	1997년05월10일 제 156호

소화기 노리는 발암물질

홍원선

1994년 2월 미국 국립보건원은 소화기질병 치료에 역사적인 사건이라 할 수 있는 아주 중대한 발표를 했다. 위궤양과 십이지장궤양은 초발 또는 재발을 막론하고 헤리코박타 피로리(Helicobacter pylori)에 감염되어 있 으면, 반드시 이 균을 제거하라는 것이었다. 또한 같은 해 6월 국제암연 구회(IARC)에서는 헤리코박타 피로리를 사람에 대한 제1군 발암물질, 즉 확실한 발암물질로 분류해 발표했다.

이를 계기로 우리나라를 비롯해 세계 여러나라에서 헤리코박타 피로리에 대한 관심이 집중됐고, 체계적인 연구가 시작됐다. 그때까지만 해도 이 균의 존재는 확실히 판명되지 않았다. 오히려 위에는 위산이 있어, 세균 의 증식이 불가능하다는 이른바 ‘위내무균설’이 정설로 인정받고 있었 다. 일부에서 심심찮게 위 속에 균이 있다고 주장하는 사람이 있었으나, 학계에서는 외부에서 들어온 균, 즉 오염된 균으로 결론짓고, 더이상 연 구를 하지 않았다. 그런데 연구 결과, 위점막과 점액 사이에 기생하는 균 의 존재가 입증된 것이다.

위궤양이나 십이지장궤양은 20세기 초까지만 해도 음식물이나 스트레스가 일으키는 병으로 생각했다. 그런데 최근 궤양환자의 90%는 헤리코박타 피 로리 때문에 발병한 것으로 밝혀졌다. 따라서 궤양을 감염성 질환이라고 주장하는 사람까지 생겨났다. 헤리코박타 피로리 감염률은 인종과 나라, 그리고 경제상태에 따라 차이가 난다. 그러나 성별이나 술과 담배의 소비 량, 채식주의 또는 육식주의에 따른 차이는 없는 것으로 밝혀졌다.

이 균에 감염되면 급성 위염, 만성 활동성 위염, 만성 위축성 위염, 위궤 양, 십이지장 궤양, 위암 같은 다양한 질병이 발생한다. 그런데 증상은 없는 경우가 많아 대부분은 무증상 감염이 지속되고, 일부에서만 증상이 생긴다. 특히 성인에서는 자연치유가 불가능하다. 감염경로는 주로 사람 에서 사람으로 전파되거나, 물을 통해 전파되는 것으로 추정된다. 따라서 가족내 감염률이 높게 나타난다.

많은 의사들은, 헤리코박타 피로리에 감염된 모든 사람이 제균치료의 대 상이 되지는 않는다고 주장하여 왔다. 그러나 헤리코박타 피로리에 감염 된 사람은 조직학적으로는 100% 위염이 있으며, 일부에서는 궤양이나 위 암으로 진전될 가능성이 있으므로 제균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이 균은 1~ 2주간 약을 먹으면, 90% 제균된다.

1996년 9월 네덜란드의 마스트리히트에서는 유럽 19개국과 일본, 캐나다, 미국의 대표들이 모여 ‘헤리코박타 피로리 박멸을 위한 새로운 유럽의 지침’을 제정했다. 이 지침에 따르면, 이 균에 감염된 모든 궤양은 반드 시 제균해야 한다. 궤양이 아니더라도 위염이 심하거나 수술받은 위암환 자, 가족 중에 위암이 있는 사람, 소염진통제 복용자, 역류성 식도염으로 치료받는 사람은 본인이 희망하면 제균할 것을 권고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