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단	1997년05월10일 제 156호

유교문화의 재검토

임석훈/ 독일 바일슈타인 화학연구소 연구원

자신의 모습을 관찰하고 평가하는 일이 자기가 속한 집단 안에서만 이뤄 진다면 이는 객관성을 잃기 쉽다. 외부사람을 통하여 자기를 살피는 일은 , 세계화 작업이 국가적인 과제가 되고 있는 지금의 한국에서 절실히 요 구된다고 하겠다.

한국의 경제적 지위가 높아지면서 독일 언론에서도 한국에 대한 보도횟수 가 늘고 있는데 이들의 관심은 정치·경제뿐만이 아니라 문화적 성향에 대해서도 커가고 있다. 여기 외국인에 의해 지적된 몇가지 점을 소개한다 .

마피아에 비유되는 정치집단

독일의 유수한 경제지 한델스블랏트 특파원은 1년 전 한국인의 대인관계 에 대해 언급하며서 이렇게 평했다. “한국인은 자기가 아는 사람에 대해 서는 친절과 호의가 대단하지만 반대로 관계없는 사람에 대해서는 적대시 할 정도로 냉담하다.” 독일의 최고권위지인 `프랑크푸르터 알게마이네' 특파원 올브리히도 2년 전 출간된 한국기업 소개 책자에서 한국인은 일반 적으로 사고와 행동이 비합리적이어서 기분에 치우치고 신경질적이라고 말한다. 그는 한국적 부정의 특징으로 부정이 거의 전 국민에 확산돼 있 다는 점을 들고 있다. 예를 들어 기업의 기자회견 때에는 돈을 써야 일이 되며 이 돈은 취재기자 이외의 종사자에게까지 분배된다는 것이다. 그러 면서 그는 아파트의 수위실에 건네지는 주민들의 인사치레도 거론했다. 더 직설적이고 가혹한 평가도 있다. 한국정치인은 범죄단체 마피아에 비 유되기도 한다. 한국의 정치인은 정치이념으로 모이지 않고 물욕과 권력 욕에 따라 이합집산한다는 것이다. 특히 흥미있는 사실은 이런 현상을 한 국의 특수성과 연결시키고 있다는 점이다. 이와 관련해 해외교포들은 민 감하다. 교육과정을 한국에서 거친 1세대 해외교포에게 동서문화의 이질 감은 가장 첨예하게 부딪친다.

근래 국내사회나 정계의 지극히 ‘한국적인 현상’을 보면서 그 원인분석 으로 제시된 내용은 주로 단편적이며 피상적으로 핵심을 우회하고 있다는 인상이다. 해결방안으로 제시되고 있는 ‘정신개혁’이나 ‘법질서 존중 ’이라는 말들은 모호하다는 느낌이다. 우리에게 정신교육이 부족하고 민 주주의나 법질서에 대한 이해와 포용력이 결여되어 있다고 볼 수 있겠는 가. 오히려 그 근원적인 원인을 우리의 전통에 뿌리박은 정신문화에서 찾 는 것이 타당할 것이라고 본다. 문화적 전통이 행동과 사고를 지배한다는 사실은 자명하다. 여기서 우리는 근대화과정에서 무비판적으로 재수용된 유교의 본질을 문제삼지 않을 수 없게 된다.

특히 30년에 걸친 군사문화는 유교사상과 친화력을 지니면서, 여기에 서 구 자본주의까지 혼합되었다. 결국 새로운 형태의 한국적 국민의식이 형 성된 것이다. 인간관계는 적과 아군을 구별하는 군대의 흑백논리에 의해 지배되고, 민주주의의 기본인 의견수렴의 과정은 무시되고 있다. 새벽시 간을 이용하여 법 개정을 강행하는 군사기습작전이 벌이지고 떡값이란 명 목으로 나타나는 크고 작은 전통적 관행이 우리 생활양식이나 전 기업경 영의 바탕을 이루는 것은 이와 무관하지 않다. 이것이 외국인의 눈에는 부정의 형태로 이해되고, 여기서 우리의 유교윤리가 강조해온 ‘예의’는 사실은 ‘비리’와 동전의 앞뒤관계로 비춰지는 것이다. 이런 맥락에서 보면 가신정치나 대통령 아들의 정치개입에 대해 분노할 일이 아니다. 유 교적인 봉건의식에 의해 인간평등은 도외시되고 권력의 권위에 대한 절대 적인 충성을 요구하는 유교적인 위계질서는 법률 위에 군림하는 최고의 행위규범으로서 우리의 무의식 안에서 작용하기 때문이다.

현대화·전통에 대한 비판적 성찰 했어야

현재 한국에서 벌어지고 있는 한국 특유의 정치현실은 유교이념과 군사문 화의 결합에 따른 결과로 밖에 달리 설명의 여지가 없다. 우리에게는 192 0년대 중국에서 있었던 것과 같은 현대화와 전통에 대한 비판적인 성찰이 없이 60년대 경제성장과 정치질서를 정당화하기 위해 ‘전통’이 새롭게 주입되었다. `역사의 종말'의 저자인 프랜시스 후쿠야마도 언급하듯이 60 년대 이후 한국의 독특한 정경관계가 경제발전에 긍정적인 영향을 끼친 점은 부정하기 힘들다. 그러나 경제성장과 독재시기에 타당성을 지녔던 이념이 이제 이 단계를 벗어나 저성장 시기를 맞고 민주주의와 세계화를 지향하는 시점에서도 과연 문화이념으로서 구실을 할 수 있을지 심히 의 심스럽다. 한국의 정치 경제 행태의 토대를 이루는 이러한 문화풍토에 대 해 철저한 검토와 반성이 따라야 하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