뮤지컬
1997년04월10일 제 152호 한겨레21

뮤지컬, 겨울이여 안녕!

(사진/`동백아가씨')

꽃피는 4월 무대에 뮤지컬 향기가 춘곤증에 젖기 쉬운 우리들을 깨운다. 불황의 끝이 보이지 않는 우리 연극계에서 뮤지컬은 거의 예외없이 상당 수의 관객을 유인해왔고 또 연극무대에 익숙하지 않은 일반인들에게도 뮤 지컬은 영화나 드라마와는 또다른 연극적 재미를 더해줘 환영받아왔다. 매년 봄이 되면 그래서 가족 단위의 대형뮤지컬이 요란한 광고와 함께 시 작되는데 올해는 여기에 소극장을 중심으로 한 소형 창작뮤지컬이 대형의 틈새에서 독특한 빛을 발하고 있다. 올봄 대형뮤지컬로는 `신데렐라' `동 백아가씨' `이수일과 심순애' 등이, 소형뮤지컬로는 `개똥이' `구로동 연 가' `신 국물있사옵니다' 등이 막을 올렸거나 막바지 연습이 한창이다.


어린이에서 청장년층까지 공략한다

가장 먼저 관객을 찾은 뮤지컬은 3월29일 막을 올린 `신데렐라'다. 10여 년 넘게 가족뮤지컬을 공연해 온 극단 예일이 탤런트 이상아와 KBS 어린 이프로 `혼자서도 잘해요'의 초롱언니 이정화를 신데렐라 역으로 더블캐 스팅했고 계모 역으론 배연정을 출연시키는 등 친숙한 브라운관 스타들을 무대 위로 끌어올렸다. 여기에 별님·달님 요정, 황금마차가 무대 위를 날아다니는 환상적 연출이 어린이 관객들의 탄성을 내지르게 할 것 같다. 서울공연이 끝난 뒤 6월 말까지 지방공연도 계획돼 있다.

`신데렐라'가 어린이들을 겨냥했다면 제목만 봐도 알 수 있는 `동백아가 씨'와 `이수일과 심순애'는 평소 연극무대를 찾지 않던 장년층을 공략하 기 위한 것이다. 극단 불수레의 `동백아가씨'는 해방 이후 최대히트곡인 이미자의 64년 노래와 65년 영화를 리메이크한 것이다. 68년에서 74년까 지를 시대배경으로 한 이 뮤지컬은 한 작곡가 청년과 바닷가 시골 소녀와 의 사랑, 살인자가 돼 쫓기는 청년, 청년을 기다리다 폐렴에 걸려 피를 토하고 스러지는 소녀 등 유랑극단류의 이야기가 그대로 전개된다. 여기 에 극 마지막엔 “헤일 수 없이 수많은 밤을/ 내 가슴 도려내는 아픔에 겨워/ …”의 `동백아가씨'가 피날레를 장식한다. 복고풍이 판을 치는 세 태에 그 시절의 분위기를 흠모하는 이들의 발길이 만만치 않을 것 같다. 극단쪽은 여주인공인 탤런트 조용원의 대중적 인기, 록밴드의 라이브 연 주, 권호성의 탁월한 연출에 큰 기대를 걸고 있다. 서울공연에만 3만5천 명의 관객을 예상하고 있는데 60년대 1백만장 이상의 음반과 1백만명 이 상의 관객에 비하면 초라한 숫자지만 일반 뮤지컬에선 상당한 수준이다. 5~6월 지방공연과 7~8월 해외공연도 계획중이다. 지방과 해외에서 인기가 더욱 높을 것같다는 게 극단의 전망이다.

극단 신시 뮤지컬컴퍼니의 `이수일과 심순애'는 시계를 60년대보다 훨씬 이전인 일제시대로까지 돌려놓는다. 전통적인 ‘악극 놀이마당’ 형식을 취한 `이수일과 심순애'에도 역시 오대규, 최주봉, 김갑수, 허준호 등 유 명 탤런트들이 대거 등장한다. 마당놀이 `황진이', 악극 `홍도야 울지마 라' `울고넘는 박달재' 등의 극본과 연출을 맡은 김상열씨가 각색과 연출 을 담당한다. 마당놀이 특유의 현장성, 즉흥성, 관객참여 등을 십분활용 해 현실풍자와 해학도 곁들여질 예정이다. 2천2백석의 문화체육관에서 두 달여에 걸친 공연을 예정하고 있다는 점에서 나름의 자신감을 보여주고 있다. `동백아가씨'와 관객경쟁을 벌여야 할 판이다.

이런 대형뮤지컬의 진군 속에서도 소극장 중심의 아기자기한 뮤지컬도 마 련돼 있다. 먼저 극단 학전이 기록적인 롱런극 `지하철 1호선'을 접고 ` 개똥이'를 다시 올린다. 곤충들의 모습을 통해 우리 사회의 전반적인 환 경 문제를 파헤치는 풍자극이다. 김민기 극·연출의 본격 창작뮤지컬로 ` 지하철 1호선`이 직선적인 표현과 빠른 속도로 전개되는 다양한 사건들을 통해 우리 모습을 이야기했었다면 `개똥이'는 얼핏 동화적이고 단순해 보 이는 구조의 요소요소에서 사회와 자신의 모습을 발견하게 하는 작품이다 . 기획된 지 11년 만에 지난 95년 초연된 이후 수정과 보완을 거쳐 이번 에 다시 공연되는 `개똥이'는 대부분 음악으로 표현했다. 서정적 노래에 서부터 국악과 록음악까지 다양한 장르를 넘나드는 곡들을 생생한 라이브 로 연주한다. 학전쪽은 `지하철 1호선'의 대성황에 힘입어 `개똥이'의 무 대를 객석 7백석의 문예회관 대극장으로 옮겼지만 소극장 뮤지컬의 땀내 나는 분위기를 잃진 않았다.

가극단 금강의 노래극 `구로동 연가'는 뮤지컬이라기보단 몇년 전 대학가 나 시위대오 속에서 사람들의 마음을 뜨겁게 달구던, 그러나 지금은 어느 새 낯선 것들이 돼버린 그런 노래들로 꾸며졌고 노동자들의 삶을 약간은 감상적으로 그리고 있다. “공단의 연기처럼/ 희미하게 스러져가는/ 빛바 랜 작업복/ …/ 사천원 일당에도 정에 정이 넘치는/ 구로동 어두운 뒷골 목”(`공단의 연기처럼'). 지난 88년 1백2회 장기공연을 했던 작품이다. 꽃다지 출신의 서기상과 초연때 간주곡을 불렀던 안치환도 출연한다. 결 혼식을 올리지 못한 노동자 부부, 해고노동자, 명예퇴직자를 무료로 초대 한다.


라이브 공연 뺨치는 생생한 연주도

마지막으로 극단 이다의 `신국물있사옵니다'가 있다. 60~70년대 대표적 희곡작가 이근삼 원작으로 사회 부조리, 정치비리, 교육, 나아가 문명의 허구성까지 통렬하게 비판하는 작품이다. 뮤지컬이라는 명패를 붙이진 않 았지만 노래가 이야기 되고 노래가 극의 전환을 이끌어 낸다. 노래형식도 스캣송을 시작으로 스윙풍의 재즈, 발라드, 록, 트로트까지 다양한 장르 의 창작곡들이 연극적 재미를 증폭시켜 준다.

이처럼 얼핏 봐도 알 수 있듯 대형뮤지컬과 소형뮤지컬 사이엔 마치 건널 수 없는 강이라도 놓여있는 것처럼 내용, 형식, 주제 등 모든 면에서 차 이가 심하다. 그러나 섯부른 잣대로 예단하기보단 빈약한 우리 뮤지컬의 발전을 위해 다양한 형태의 시도(비록 그것이 흥행에만 맞춰져 있다 하더 라도)들이 계속 전개돼 나가야 할 것이다.

올봄 뮤지컬 무대 앞에서 티켓을 끊는 당신의 뒷모습을 상상해 보자.

권태호 기자 한겨레21

© 한겨레신문사 1997년04월10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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