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버스토리
1997년03월06일 제 147호 한겨레21

“김현철을 청문회로!”

한보사태는 수많은 유행어를 낳았다. 그 가운데 백미는 뭐니뭐니 해도 ‘ 깃털론’과 ‘몸체론’이다. ‘깃털론’은 신한국당 홍인길 의원이 한보 사태의 곁가지인 자신이 왜 희생양이 되어야 하느냐는 불만에서 터뜨린 얘기다. 이것으로부터 야권이 한보사건의 배후세력으로 김영삼 대통령의 차남인 현철씨를 지목하며 ‘몸체론’이 불거져나왔다. 이와 관련해 정치 권은 한보사건의 사실규명 차원을 넘어 정쟁으로 밤낮을 지새우고 있다. 급기야는 현철씨는 자신을 배후세력의 ‘몸체’로 지목한 야당 의원들을 무더기로 검찰에 고소했다. 자신의 명예를 훼손했다는 이유에서다.


63.5%가 ‘몸체론’에 동의

그러면 정치권의 논쟁을 떠나 과연 국민들은 이러한 ‘깃털론’과 ‘몸체 론’을 어떻게 바라보고 있을까. 해답은 간단했다.

“김현철씨를 국회 청문회에 소환하라”는 것이다. 철저한 진상규명을 위 해 의혹의 핵심관련자가 청문회에 나오라는 것이다. 이는 <한겨레21> 여 론조사팀(팀장 원성연)이 최근 전국 성인남녀 5백명을 상대로 실시한 전 화 여론조사 결과 나타났다. 이번 조사의 오차한계는 95% 신뢰수준에서 ±4.4%이다.

질문 내용은 다음과 같다. 먼저 ‘한보사태와 관련해 김 대통령의 차남인 현철씨가 깊게 연루되어 있다는 의혹이 제기되고 있다. 이러한 의혹이 사 실일 것이라고 생각하는가?’라고 물었다. 이에 대한 답변은 간단명료했 다. △그런 편(63.5%) △매우 그럼(18.6%) △안 그런 편(14.7%) △전혀 안 그럼(3.2%) 순이었다. 응답자의 82.1%가 현철씨의 ‘관련설’이 사실 일 것이라고 보고 있는 것이다. 국민들의 인식은 야당이 주장하는 ‘몸체 론’과 일맥상통함을 알 수 있다.

이어 ‘의혹의 진실을 밝히기 위해 검찰조사와는 별도로 현철씨를 국회청 문회에 소환조사해야 한다고 생각하는가?’라는 질문을 던졌다. 이에 대 한 답변은 좀더 명확하다. △그런 편(62.8%) △매우 그럼(28.8%) △안 그 런 편(6.0%) △전혀 안 그럼(2.4%) 순으로 응답했다. 91.6%가 국회청문회 에 현철씨를 소환해야 한다고 답했다. 단 8.4%만이 국회청문회에 소환할 필요가 없다고 대답했다. 이번 한보사태를 바라보는 민심의 흐름을 제대 로 보여주고 있는 조사결과다. 한마디로 절대다수의 국민은 분명히 현철 씨의 ‘관련설’을 믿고 있으며 그만큼 그의 조사가 불가피하다고 보고 있는 것이다. 특히 현철씨의 국회 소환문제와 관련해서는 현철씨가 한보 사건과 관련이 없다고 응답한 사람들 가운데서도 필요성에 동의했다. 진 실을 갈구하는 민심의 소재를 읽을 수 있는 대목이다.

이러한 민심의 흐름은 또 검찰조사에 대한 국민들의 불신이 얼마나 깊은 가도 보여주고 있다. 이번 조사에서 응답자의 79.4%가 검찰이 한보비리의 진상을 제대로 밝혀내지 못했다(전혀 못 밝힘 22.4%, 별로 못 밝힘 57.0% )고 답했다. 반면 검찰조사에 만족한다는 답변은 20.6%에 그쳤다.

특히 현철씨를 처음부터 적극적으로 조사했어야 했다는 의견이 82.9%나 돼 절대다수의 국민들이 검찰에 강한 불만을 표시했다. 이는 진상을 밝히 기 위해서는 김 대통령까지도 조사해야 한다는 주장이 13%에 이르는 등 검찰에 대한 민심의 불만이 증폭되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검찰에 대한 불신은 비단 현철씨 조사여부에서만 강하게 나타나는 것은 아니다. 수사과정 전반에 대한 불만이 여러 곳에서 터져나왔다. 먼저 ‘ 청와대, 과학기술처, 은행감독원 등 관련 행정기관의 고위 공직자는 혐의 가 드러나지 않았다는 이유로 단 한명도 구속되지 않았다. 이에 대해 어 떻게 생각하느냐’고 질문을 했다. 이에 대한 답변은 △전혀 납득 못함(5 0.2%) △납득 못한 편(40.7%) △납득하는 편(5.0%) △충분히 납득(1.8%) 순이었다. 응답자의 90.9%가 납득할 수 없다는 의견이다.


77.6% “정태수 리스트 공개하라”

(사진/검찰에 출두하는 김현철씨. 82.9%가 "현철씨를 처음부터 적극적으로 조사했어야 했다"는 의견을 밝혔다.)

또 ‘검찰은 1억원 미만의 돈을 받은 일부 정치인에 대해서는 대가 없이 받은 떡값이라는 등의 이유로 소환조사하지 않았다. 이러한 법적용에 대 해 어떻게 생각하느냐’는 질문에 대해서도 답변은 비슷했다. 전부 소환 조사해야 한다는 의견이 88.3%에 달했다. 한마디로 검찰수사는 낙제점이 라는 얘기다. 이러한 불만은 한보의 로비자금을 받은 정치권 인사들의 명 단인 이른바 ‘정태수 리스트’를 공개해야 한다는 주장(77.6%)으로 이어 진다.

이처럼 검찰수사가 낙제점 수준에 머무른 이유에 대해서 대다수 응답자들 은 검찰의 정치적 중립이 상실된 데서 원인을 찾았다. 이는 ‘이번 한보 비리 수사과정에서 검찰과 청와대가 정보교류 등 사전교감이 있었다는 의 혹이 제기되고 있다. 수사과정에서 검찰의 정치적 중립성이 유지됐다고 생각하느냐’는 질문에 대한 답변에서 확인된다. 이에 대한 답변은 △전 혀 안 그럼(38.1%) △안 그런 편(44.8%) △그런 편(14.6%) △매우 그럼(2 .6%) 순이었다. 응답자의 82.9%가 검찰의 정치적 중립성 여부에 부정적인 의견을 나타냈다. 검찰을 정권의 하수인쯤으로 여기고 있다는 반응인 것 이다.

따라서 국민들은 정치적 중립성을 찾지 못하고 있는 검찰을 대신할 대안 으로 특별검사제 도입을 요구했다. 성역없는 수사를 위해 특별검사제를 도입해 한보비리를 재수사해야 한다는 주장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느냐는 질문에 대해 특검제가 필요하다는 의견은 87.1%에 달했다. 이는 곧 특검 제를 도입해 한보사건을 다시 처음부터 수사해야 한다는 주장인 것이다. 한편 국정조사와 관련한 질문에 대해서는 현철씨의 소환문제와 함께 야권 의 주장에 대체로 동의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국회청문회의 텔레비 전 생중계를 강하게 희망하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국회청문회의 TV생 중계가 필요하다고 생각하느냐는 질문에 △필요한 편(50.2%) △매우 필요 (38.9%) △불필요한 편(8.4%) △전혀 불필요(2.5%) 순으로 응답했다. 89. 1%가 TV청문회의 필요성에 동의했다.

이번 조사에서는 한보사건과 관련한 민심의 흐름을 확인하는 것과 함께 김 대통령의 국정운영 능력에 대한 평가도 질문했다. 결과는 ‘갈수록 태 산’이라는 표현이 제격이다. <한겨레21> 여론조사팀이 여론조사를 시작 한 이래 처음으로 김 대통령의 지지도가 10%대 밑으로 떨어졌다. 김 대통 령의 국정운영 능력을 묻는 질문에 대한 답변은 △매우 잘함(1.0%) △잘 하는 편(7.6%) △그저 그럼(33.7%) △잘 못하는 편(36.4%) △매우 잘못(1 8.0%) △잘 모름(3.3%) 순이었다. 단 8.6%만이 김 대통령의 국정운영 능 력을 평가해줬을 뿐이다. 물태우라는 비아냥을 받으면서 국민적 지지기반 을 상실했던 노태우 전 대통령 때도 지지도가 10%밑으로 떨어진 적이 없 었다는 점을 상기하면 이러한 수치는 김영삼 정권의 존립이 사실상 붕괴 됐음을 보여준다.

당연히 ‘김 대통령이 경제를 회생시킬 수 있다고 생각하는가’라는 질문 에 대한 답변도 비참한 수준이다. 81.6%(전혀 안 그럼 26.0%, 안 그런 편 55.6%)가 부정적으로 응답했다. 그나마 18.5%만이 희망을 버리지 않고 있 는 것으로 나타났다.


야권 지지도는 상승하지 않아

그러나 한 가지 눈길을 끄는 대목은 김 대통령에 대한 지지도가 끝없이 추락하고 있음에도 야권에 대한 지지도는 상승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이 는 ‘만약 내일이 대통령선거일이라면 정당만 보고 투표할 때 어느 정당 의 후보에게 투표하겠느냐’는 질문에 대한 답변에서 나타났다. △신한국 당(12.6%) △국민회의(19.7%) △자민련(7.5%) △무소속(17.2%) △지지정 당 없다(38.6%) 순이었다. 이러한 수치는 지난 1월10일 <한겨레21> 여론 조사팀의 조사결과와 비교해 보면 흥미로운 점을 발견할 수 있다. 당시 조사결과는 △신한국당(12.9%) △국민회의(26.5%) △자민련(8.3%) △민주 당(4.5%) △무소속(11.5%) △지지정당 없다(36.3%) 순이었다.

이를 비교해 보면 여권의 지지도는 별다른 변동이 없는 반면 야권에 대한 지지도는 오히려 추락했고 후보도 없는 무소속 지지도가 상승했다는 점이 특징이다. 이는 곧 기존 정당에 대한 불신의 골이 깊어지고 있다는 것을 반영하고 있는 것으로 풀이된다. 민심의 흐름이 기존 정치권에서 떠나 무 당파 성향으로 변하고 있다는 것을 나타내고 있는 것이다. 결국 한보태풍 은 기성 정치권에 대한 국민의 정서적 거부감을 가속화시키는 결과를 낳 았다고 할 수 있다.

김용성 기자 한겨레21

© 한겨레신문사 1997년03월06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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