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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7년03월06일 제 147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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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른 새벽 5시, 7살난 아들 놈하고 전세버스에 몸을 실었다. 멀고 먼 서 울 땅, 민의의 정치가 실종해버린 그 ‘여의도’를 향해, 김(41) 교사는 그렇게 전남 해남을 떴다.
“이번에야말로 전교조 합법화가 이루어져야 하는데….” 온갖 생각들이 차창을 통해 교차해갔다. 그러기를 7여시간, 김 교사는 마침내 여의도 광 장에 섰다. 강원도 속초에서, 경북 점촌·문경에서, 전남 목포에서, 전국 방방곡곡에서 1천5백여명의 선생님들이 그렇게 모여들었다.
그러나 1997년 2월24일, 야당은 이들의 절박한 소망을 외면해버렸다. 국 민회의와 자민련이, 이들의‘교원 노동기본권 보장’요구를 외면한 노동 관계법 개정 단일안을 국회에 제출해버린 것이다. 그래서 교사들은 이날 오후 1시부터 ‘교원·공무원 노동기본권 보장을 위한 전교조 학교 분회 장 결의대회’를 열고, 목이 터지도록 김영삼 정권을, 국민회의를, 자민 련을 규탄했다.
89년이후 8년동안이나 계속되고 있는 전교조의 합법화 요구는 이번에도 끝내 무산될 것인가. “바윗처럼 살아가보자. 모진 비바람이 불어친데도 ….”절망감 속에서도 교사들은 힘찬 투쟁가를 부르며 내일의 희망을 지 피고 있었다.
© 한겨레신문사 1997년03월06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