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2
1997년02월27일 제 146호 한겨레21

권노갑 흙탕에 DJ 대선호 비틀

정가를 강타한 ‘한보 태풍’은 김대중 국민회의 총재에게도 커다란 정치 적 시련을 안겨 주었다. 김영삼 대통령의 상도동이 ‘토붕와해’(흙이 무 너지고 기와가 바스러짐)의 정치적 타격을 받았다면 김 총재쪽은 ‘`대들 보’가 빠져나간 셈이다. 물론 그 대들보는 권노갑 의원이다. 김 총재의 40여년에 걸친 정치역정에서 권 의원은 그의 분신으로서 손에 때묻을 일 이라면 어김없이 나서 처리해내는 ‘`해결사’ 노릇을 톡톡히 해왔다.

권 의원 구속으로 인한 김 총재 진영의 타격은 아직 그 피해정도를 정확 히 헤아리기 어렵다. 마치 대지진이 수많은 여진을 앞뒤로 동반한 채 파 상적으로 몰려오듯 ‘한보’ 라는 지진도 아직 그 파괴력을 가늠하기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


한보는 ‘3김 동침’ 노린 신실세 작품?

김 총재가 입은 손실 중 분명한 것은 우선 정통야당세력으로서의 도덕성 에 먹칠을 한 것을 들 수 있다. 권 의원의 한보 연루는 부패했던 집권세 력에 맞서 싸웠던 야당도 거대한 정경유착의 먹이사슬 속에 갇혀 있었음 을 드러냈기 때문이다. 검찰이 밝힌 권 의원의 혐의가 사실이라면 야당은 그동안 국정감사를 미끼로 기업인들로부터 ‘떡고물’을 챙겨온 셈이 된 다.

국민회의 내부의 혼선도 대선국면에서 당장 타격이다. 권 의원의 공백으 로 인해 전열정비가 불가피해졌을 뿐만 아니라 당 내부로부터의 ‘당풍쇄 신’ 움직임도 가시화될 것으로 보인다.

무엇보다 우려할 만한 것은 `한보 태풍을 지렛대로 한 세대교체론이라고 할 수 있다. 정가에서는 이번 사태 처리 과정에서 여권 내 신실세 그룹이 형성됐으며, 이들이 한보를 매개로 현재의 신한국당 내 민주계뿐만 아니 라 김대중, 김종필 총재를 일거에 도태시키려는 모종의 시나리오를 만들 고 있지 않느냐는 관측이 나돌고 있다.

김 총재로서는 여권 내에서 김 대통령의 묵인 아래 3김의 ‘동반추락’을 시도하고, 당내에서도 ‘제3후보론’ 등이 급부상할 경우 대선국면에서 ` 내우외환의 어려운 처지에 빠질 수도 있다. 김 총재가 2월13일 권 의원 구속 이후 일산 자택에 한동안 칩거하며 `장고에 들어간 것은 이같은 우 려할 만한 상황에 대한 다각적인 검토의 필요성을 절감했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발등에 떨어진 당 내부의 전열정비 문제에 대해 김 총재가 어떤 구상을 내놓을지는 아직 분명치 않다. 그의 칩거는 애초 고질적인 무릎질환 악화 에다 감기까지 겹쳐 시작됐지만 “몸과 마음이 모두 불편했다”는 것이 주변의 얘기다. 특히 권 의원이 이번 사태 와중에서 한보로부터 돈을 받 은 사실을 사전에 전혀 내색도 하지않다가 뒤늦게 두번에 걸쳐 `자복한 것에 대해 김 총재가 크게 노했다는 얘기도 들린다.

김 총재로서는 정계복귀 이후 권 의원이 ‘딴 주머니’를 찼다고 생각할 수밖에 없고, 이는 가신들 전반에 대한 불신으로 이어질 소지도 있다. 한 가신의원은 “총재 앞에서 뭐라 얘기할 수가 없다”고 냉랭한 분위기를 전했다. 이 때문에 예상되는 당직개편 등에서 그동안 전면에 나서기를 자 제해 왔던 가신들이 더욱 뒷전으로 물러날 수밖에 없으리라는 관측도 제 기되고 있다. 하지만 가신이든 아니든 김 총재 주변의 기용가능한 인물이 극히 한정돼 있어 선택의 폭이 그다지 넓지 않은 것도 사실이다.


“국민회의도 집권하면…” 회의론 확산

관심의 초점은 김 총재의 정국돌파 구상이다. 당내의 예비경선제 주장 수 용, 총재권한의 대폭이양, 정치개혁운동 주창 등등이 거론되고 있지만 한 보정국을 일거에 탈출할 만한 묘안을 찾기가 쉽지 않다는 얘기다. 한 측 근 의원은 이와 관련해 “김 총재 구상의 핵심은 상도동과의 차별화가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권 의원 구속으로 국민들 사이에는 “국민회의도 집권하면 저렇게 될 것이다. 더 나을 것이 없다”는 회의론이 급속히 확 산될 수 있다는 판단 때문이다. 김 총재가 가장 우려하는 상황도 국민 일 반에 이런 인식이 널리 자리잡게 될 경우라고 할 수 있다. 그가 이런 `‘ 위기’를 어떻게 `‘기회’로 반전시킬 수 있느냐에 따라 그의 대선가도 의 순항 여부가 좌우될 것으로 보인다.

백기철 기자/ 한겨레 정치부 한겨레21

© 한겨레신문사 1997년02월27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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