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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1 |
1997년02월27일 제 146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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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한보창고에서 발견된 김현철씨의 저서 1만권. 출판사는 5천2백만원을 선 인세로 김현철씨에게 주었다.)
‘김현철 뇌관’이 터질 것인가?
‘단군이래 최대의 사기극’이라고 일컬어지는 ‘한보사건’은 아직도 수 많은 의혹을 풀지 못하고 있다. 요란스런 검찰의 수사에도 명쾌한 핵심이 밝혀지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최대 의혹은 한보와 정치권으로 이어지는 검은 커넥션이다. 그 가운데서도 김영삼 대통령의 차남 현철씨의 ‘배후 설’이 핵심이다. 과연 현철씨가 한보사태의 배후세력인가 하는 것에 관 심이 쏠려 있다는 얘기다. 국민회의를 비롯한 야권은 이미 현철씨를 배후 인물로 규정하고 철저한 수사를 촉구하고 있다. 반면에 현철씨는 야권의 주장을 근거없는 흑색선전이라고 반박하면서 국민회의의 한영애, 설훈 의 원을 명예훼손 혐의로 검찰에 고소했다.
국민 의혹 증폭에도 수사종결 서둘러
여야간 치열한 정보전과 폭로전이 펼쳐지고 있다. 검찰의 조기 수사종결 의도가 정치권뿐만 아니라 국민여론으로부터 집중 공격을 받고 있는 실정 이다. 속시원히 배후가 밝혀지지 않는 한 증폭되는 의혹을 가라앉히기란 쉽지 않아 보인다. 다시 말해 현철씨 관련설 여부가 정치권의 대폭발을 야기할 수도 있는 ‘뇌관’으로 공식화됐다는 것이다. 왜 그런지를 살펴 보기 위해 ‘한보사건’과 관련된 앞뒤 전개과정을 정밀히 추적해 볼 필 요가 있다. 특히 정치권의 변화가 판단의 주요 근거가 될 것으로 보인다.
(사진/김현철씨로부터 명예훼손으로 고소당한 설훈 의원과 한영애 의원. 국민회의는 임시국회에서 한보국정감사를 벼르고 있다.)
정치권 공방 제1회전: 한보사건이 터지고 대출의 외압논란이 일어나면서 시작됐다. 특히 야권은 현철씨가 정태수 한보그룹 총회장의 셋째아들이자 한보 회장인 보근씨와의 관계가 심상치 않음을 지적했다. 야권의 주장을 들어보자. “한보사건은 김현철씨가 주동자다. 나는 이렇게 주장할 근거 를 갖고 있다. 현철씨는 한보철강 현장에 공식적으로 두번 방문했으며 나 는 언제, 어디에, 누가 동행했는지를 알고 있다(국민회의 한영애 의원). ” “김영삼 대통령은 성역을 만들었고 그 성역에 현철씨가 있었다. 구속 시키든 해외추방하든 해야 한다. 한보사건의 몸체는 김현철이다(설훈 의 원. 이상 지난 2월11일 국민회의-자민련 합동의원총회에서).”
야권의 이러한 공세는 현철씨가 “보근씨를 단 한차례밖에 만난 적이 없 다”고 주장한 데 대한 반박으로 제기됐다. 김현철-정보근 관계를 좀더 분명히 하기 위한 공격인 것이다. 또 야권은 지난 93년부터 6차례 권면가 2천4백70억원어치가 발행된 한보철강의 전환사채의 소유자에 의혹을 보내 고 있다. 물론 의혹의 시선은 현철씨로 모아지고 있다. 그러나 제1회전은 현철씨가 2월17일 검찰에 국민회의의 두 의원을 명예훼손 혐의로 고소함 으로써 마감됐다.
“특정 음모세력과 수구언론의 모함” 경고
제2회전: 현철씨가 검찰에 고소장을 제출하면서 야권에 대한 전면적인 반 격에 나서는 것으로 시작됐다. 새로운 국면으로 접어든 것이다. 현철씨가 검찰조사를 받게 됐다는 점이다. 물론 배후세력 여부를 확인하려는 정식 조사는 아니다. 참고인도 아니고 더더욱 피의자로서의 검찰소환도 아니기 때문이다. 거꾸로 고소인의 자격으로 검찰조사를 받게 됐다. 그러나 이는 모양새를 중시하는 정치권의 생리에서 비롯된 것일 뿐 사실은 사건종결을 위한 형식적인 조사라는 인상이 짙다. 김씨는 야권뿐만 아니라 광범위한 국민들로부터도 한보사태 배후라는 의혹의 눈길을 받아왔기 때문이다. 따 라서 정권 차원에서는 어떤 형태로든 김씨 문제를 털고 지나가야 할 형편 이었다. 그 방법을 고소인 자격으로 선택한 것으로 봐야 한다는 것이다. 특히 한보창고에서 김씨 책이 1만여권이나 나오는 ‘사건’은 여권을 고 민 속으로 빠뜨리기에 충분하다. 이는 한보에 정통한 인사의 제보에 의한 야권의 ‘창고 기습’을 통해 밝혀진 것이어서 여권을 더욱 답답하게 만 들고 있다. 어쩔 수 없이 정공법을 통한 혐의 벗기 발길을 재촉할 수밖에 없었던 것으로 야권은 분석하고 있다.
이와 함께 여권 내부의 ‘권력암투’도 현철씨의 정공법 선택을 강요한 것으로 관측되고 있다. 이는 현철씨의 발언에서도 감지할 수 있다. 그는 “나라야 어찌됐든 정권욕에 눈이 먼 야당과 특정 음모세력과 결탁, 보수 를 가장한 수구 언론에 대해 이번 기회에 분명히 경고한다”며 “특정 음 모세력은 여권 내에도 있을 수 있다”고 말했다(2월15일 월간 <신동아>와 의 인터뷰).
사실 여권 내부에서는 차기 대선후보 선정을 놓고 현철씨가 내부적으로 은밀히 후보 조정을 하고 있다는 비판의 목소리가 줄곧 나왔다. 심지어 민주계에서조차 현철씨가 ‘민주계 배제론’을 주도하고 있는 것이 아닌 가 하는 의혹의 시선을 보내고 있는 실정이다. 여권 내부의 복잡한 ‘권 력다툼’을 가늠케 해주는 대목이다. 이런 상황에서 현철씨는 자신에 대 한 안팎의 공세를 일거에 일소할 필요에 따라 ‘해명성 조사’를 선택한 것으로 풀이되고 있다.
물론 이러한 전략변화는 여권 내부의 의견조율을 거친 것으로 관측되고 있다. 현철씨가 소송의사를 공식발표하기 전인 2월15일 오전, 신한국당 서청원 총무가 당무회의 직후 기자 간담회를 갖고 “현철씨에 대한 한보 의혹 제기는 전혀 사실과 다른 것으로 오늘중 고발하게 될 것”이라고 말 한 데서도 이러한 분위기를 읽을 수 있다. 이미 조사방향까지 현철씨의 혐의 ‘털어주기’쪽으로 잡은 것을 볼 수 있는 대목이다. 다시 말해 현 철씨는 검찰의 소환을 받는 형식이 아니라 고소인 자격으로 검찰에 출두 해 자연스럽게 의혹들에 대한 태도를 밝히지 않겠느냐는 얘기다.
이에 대한 검찰쪽의 반응도 일치한다. 역시 15일 최병국 대검 중수부장은 현철씨의 고소내용만 조사하느냐는 질문에 “의혹과 명예훼손은 동일체의 양면과 같은 것”이라고 밝혔다. 이는 한보사건과 관련한 현철씨의 개입 의혹에 대해 폭넓게 조사가 이뤄질 것임을 시사한 것이나 다름없다. 그 동안 현철씨에 관한 한 소극적인 자세로만 일관해오던 검찰이 고소인이 요청하지도 않은 ‘배후설’까지 조사해주겠다는 친절을 베풀고 있는 것 이다. 따라서 제2회전은 검찰조사와 함께 끝날 전망이다.
야권, “임시국회 국정조사에서 보자”
제3회전: 그렇다고 모든 상황이 종결될 것으로 보는 정치권 인사는 아무 도 없다. 17일부터 시작된 임시국회가 제3회전을 이미 예고했기 때문이다 . 또 회기중에도 오는 3월5일에는 인천(서구)과 수원(장안구)에서 보궐선 거가 예정돼 있다. 이미 야권은 검찰의 소극적인 수사결과를 예상하고 임 시국회 회기 동안 열릴 ‘한보 국정조사’에서 현철씨의 ‘배후설’을 집 중 추궁할 계획임을 밝혀 놓고 있다. 국정조사의 모든 준비를 이것에 맞 추고 있다고 해도 지나친 말이 아닐 정도다. 물론 여권도 야권 지도부의 갖가지 ‘치부’를 들춰내며 정면대응한다는 방침을 정해놓고 있다. 한바 탕 전쟁을 치러야 할 판이다.
물론 변수는 있다. 황장엽 망명사건과 이한영 피습사건이다. 공안정국으 로 국내정치문제가 파묻힐 수도 있다는 우려다. 그러나 이는 어느 정도 이미 현실화되고 있다. 신한국당 김철 대변인이 16일 성명을 통해 공안정 국을 예고하는 듯한 여권의 방침을 강도높게 천명했기 때문이다.
제4회전: 이는 올해 초부터 일찌감치 예고된 정치권의 대회전으로 12월18 일로 예정돼 있는 대통령 선거다. 정권교체를 주요 선거이슈로 내걸고 있 는 야권은 최근 여권의 잇단 비리혐의를 재공격하기 위해 단단히 벼르고 있다. 반면 여권은 정권재창출을 위한 반격을 준비하고 있다. 현철씨가 이번 한보 소용돌이 속에서도 건재하게 된다면 ‘4차대전’은 피할 수 없 을 것으로 보인다.
결국 여야 정치공방과 여권 내 ‘권력 암투설’이 뒤엉킨 이번 ‘김현철 배후설’은 언제 터질지 모르는 ‘뇌관’으로 계속 잠재할 것으로 보인다 . 특히 야권의 주장대로 검찰이 현철씨의 고소인 조사를 그의 ‘혐의 벗 겨주기 조사’로 그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는 상황이고 보면 ‘김현철 뇌관’의 폭발력은 점점 커질 수밖에 없다. 이번 검찰조사 내용과 현철씨 가 공개적으로 밝힌 ‘진상’ 가운데 어느 하나라도 거짓이 드러날 경우 ‘배후설’은 다시 원점에서 출발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한층 더 강해 진 폭발력을 가질 것이 분명하다. 이는 또 정치권의 대폭발과도 곧바로 연결돼 있다. 국민적 관심이 계속 집중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김용성 기자
© 한겨레신문사 1997년02월27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