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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1 |
1997년02월27일 제 146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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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문민정부 초기 개혁을 지지했던 각계 원로들이 부정부패와 정경유착 근절을 위해 국민이 나설 것을 촉구하고 나섰다.)
한보 특혜의혹에 대한 검찰수사가 의혹의 실체를 밝히지 못한 채 사실상 마무리되면서 정치권을 비롯한 사회 전반에 긴장이 감돌고 있다. 노동법 ·안기부법 날치기 처리 이후 촉발됐던 시민저항이 검찰의 날치기 수사를 계기로 재연될 조짐을 보이고 있는 것이다. 실제 검찰의 수사발표를 앞두 고 축소수사를 규탄하는 시민단체의 성명이 잇따르는가 하면, 진상규명을 촉구하는 대중집회도 고개를 들고 있다. 총파업 와중에서 한보사태가 터 지자 추이를 관망하던 노동운동 세력도 이 문제를 그대로 두고 넘어가지 않겠다는 의지를 분명히 하고 있다.
“대통령, 정권재창출 욕심 버리시오”
이런 움직임은 지난 2월12일 나온 사회원로들의 시국선언을 계기로 두드 러지고 있다. 김수환 추기경, 송월주 조계종 총무원장, 강원룡 목사, 한 완상 방송대 총장, 고은 시인 등 우리 사회의 지도급 인사 75명이 서명한 이 성명은 한보 의혹을 미봉하려는 움직임에 대해 국민적인 저항을 촉구 하고 있다. “지금의 정경유착과 부정부패를 근절하고 낡은 정치를 청산 하기 위한 국민운동이 일어나야 합니다. (중략) 그럴 때만이 우리는 지금 의 위기를 새로운 기회로 전환시켜 밝은 미래를 열어갈 수 있을 것입니다 . 종교계, 시민운동 등 사회 각계가 연합해서 나라를 살리기 위한 운동을 일으켜줄 것을 호소합니다.”
시국선언은 김영삼 정권에 대한 강도높은 비판을 담고 있다. 특히 대통령 을 비롯해 주변인물에게까지 책임을 물은 것은 원로들의 평소 언행을 고 려할 때 충격적이라는 평가가 많다. “우리는 대통령 스스로 마음을 비워 정권재창출에 연연하지 말고, 나라와 민족의 장래를 위해 애국적 결단을 하여 줄 것을 호소합니다…. 아울러 대통령의 주변이 깨끗하게 정리되어 국민의 목소리가 여과없이 대통령에게 전달될 수 있어야 할 것입니다.” 완곡한 표현이지만 거국내각을 구성하라는 요구로도 들릴 수 있는 대목이 다.
성명에 참여한 원로들은 사회운동세력과 이념영역을 대부분 포괄하고 있 다. 특히 종교계 인사 상당수는 그동안 보수적이라는 평가를 듣거나, 김 대통령과 가까운 이들로 알려졌다. 학계나 여성계, 법조계, 사회운동 대 표 가운데도 평소 사회참여 방식을 놓고 갈등했던 이들이 골고루 섞여 있 다. 서명을 주선한 서경석 우리민족서로돕기운동 집행위원장은 “성명에 참여한 인사들은 정치적 입장과 이해를 떠나 우리 사회가 심각한 위기에 직면하고 있다는 데 원칙적으로 공감했다”고 말한다.
원로들의 시국선언이 나오기까지 과정은 더욱 의미심장하다. 서 위원장에 따르면 서명작업은 2월8일 몇몇 인사들이 모여 시국선언을 발의한 이후 일사천리로 이뤄졌다. 서 위원장을 포함해 이세중 전 대한변호사협회 회 장, 손봉호 서울대 교수, 유재현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경실련) 사무총장 등이 주축을 이룬 것으로 알려진다. 이들은 한보사태로 불거진 우리 사회 의 병폐를 근본적으로 청산하기 위해서는 국민적인 대중운동이 필요하다 는 데 뜻을 같이 했다. 이때부터 진보와 보수를 망라해 각 분야에서 대표 성을 갖춘 원로들과 접촉이 시작됐다. 연락실무를 맡은 이용선 우리민족 서로돕기운동 사무총장은 “노동법·안기부법 철폐를 촉구하는 시국선언 이 잇따를 당시 형성된 인간적인 신뢰관계가 원로들을 묶는 접착제 구실 을 했다”고 말한다.
시국성토장 된 원로들의 간담회
성명을 작성하고 발표하는 과정에서 진통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2월12 일 오전 서명인사들의 간담회에서 공개된 시국선언 초안이 최종단계에서 일부 수정된 것이다. 전체적인 흐름과 내용은 유지됐지만, 애초의 강도높 았던 몇몇 문구는 순화되거나 사라졌다. 이 때문에 주변에선 원로들 사이 에 이견이 생긴 게 아니냐는 관측이 돌기도 했다. 간담회에서 나온 서명 인사들의 강경한 발언을 감안할 때 최종적으로 나온 성명 문구의 유연함 은 뚜렷했다.
당시 원로들의 간담회는 시국성토장을 방불케 했다. 서영훈 우리민족서로 돕기운동 상임의장은 인사말에서 “지난 연말 악법 날치기 이후 국민들이 깊은 허탈감에 사로잡혀 있는데, 새해들어 사상유례없는 금융비리가 터져 아예 좌절을 느끼고 있다”며 정치권을 매섭게 질책했다고 전해진다. 송 월주 조계종 총무원장도 “한보에 거액의 은행대출이 들어가는 과정에서 큰 외압이 있었던 것으로 드러나 사회정의가 온통 무너지고, 국민은 말을 잊었다”고 통탄했다고 한다. 특히 시민단체 대표로 참여한 일부 인사들 은 성역없는 수사를 촉구하며, 이를 위해 국민의 힘을 조직할 필요가 있 다고 역설한 것으로 알려진다.
그렇지만 시국선언이 최종단계에서 일정 정도 순화된 것은 애초 초안작성 에 간여하지 않았던 김수환 추기경의 입장이 막판에 많이 반영됐기 때문 이라고 한다. 서명인사들에 따르면 김 추기경은 간담회가 열리는 동안 성 명초안을 전달받고 몇가지 대목에서 우려를 표시했다. “대통령에 대한 예의를 고려해야 하고, 사실로 확인되기 전까지는 특정인물의 혐의를 문 제삼아선 안 된다”는 것이다. 결국 서명인사들은 5인 위원회를 꾸려 초 안을 수정하기에 이른다. 이 때문에 “이 모든 왜곡과 파행의 근본적인 책임을 국정 최고책임자인 김영삼 대통령에게 묻지 않을 수 없습니다”는 구절이 “이 모든 왜곡과 파행의 근본적인 책임이 정부와 여당에 있다고 봅니다”로 바뀌는 등 일부 내용이 수정됐다. “대통령의 최측근”이란 표현도 “대통령의 주변”이란 문구로 바뀌었다.
서명인사들은 이런 추기경의 입장을 수긍하는 태도다. 이용선 사무총장은 “추기경이 사회운동 지도자가 아닌 만큼, 그분의 위치와 무게를 고려할 때 그 정도의 충고는 충분히 받아들일 수 있다는 의견이 지배적이었다” 고 당시 분위기를 전한다. 서명인사들은 그보다는 시국선언의 취지에 추 기경이 공감했다는 데 고무됐다고 한다. 일부 서명인사들은 오히려 추기 경이 국민운동의 필요성에 전적인 동의를 표하고 나서자 놀라움을 표시하 기도 했던 것으로 알려진다. 추기경은 이후 자신의 입장이 전폭 반영된 시국선언을 직접 낭독함으로써 한보의혹을 얼마나 심각하게 느끼고 있는 지를 드러냈다.
국민운동에 대한 이런 공감은 곧바로 운동의 방향과 내용을 논의할 소위 원회 결성으로 나타났다. 이세중, 손봉호, 서경석, 유재현, 조창현 한양 대 교수, 손봉숙 한국여성정치연구소 소장, 지은희 여성단체연합 공동대 표, 법륜 불교환경교육원 원장, 오태순 천주교한마음한몸운동본부 회장 등 9명으로 구성된 소위원회는 국민적인 대중운동의 구체적인 설계도를 꾸미고 있다. 시국선언 이후 첫모임에서는 개략적이나마 정치개혁과 경제 살리기를 두축으로, 운동을 전개한다는 방침을 정한 것으로 알려진다.
앞으로 전개될 대중운동의 방향 제시
원로들의 시국선언은 또 시민·노동·재야단체의 성명으로 이어졌다. 참 여민주사회시민연대(참여연대), 경실련 등 시민단체와 전국민주노동조합 총연맹(민주노총), 민주주의민족통일전국연합(전국연합) 등 노동·재야단 체가 잇따라 검찰의 축소수사를 규탄하는 성명을 발표했다. 사흘 뒤인 2 월15일 서울역 앞에서는 ‘노동법·안기부법 개악 철회 및 민주수호를 위 한 범국민대책회의’(범대위) 주최로 한보 비리의혹의 진상규명을 촉구하 는 집회가 열리기도 했다. 총파업국면 이후 한보 문제를 중심에 내건 첫 대중집회였다. 민주노총의 한 관계자는 “원로들의 시국선언은 원칙적인 수준에서 앞으로 전개될 대중운동의 방향과 내용을 일정 부분 담고 있다 ”고 평가한다.
원로들의 시국선언은 개혁을 바라는 국민의 열기가 높아갈 때, 그 도덕적 우월성을 무기로 정권을 압박하곤 했다. 이번 시국선언이 대학교수를 비 롯한 지식인 사회와 다양한 전문가 집단의 시국선언으로 이어져, 대중운 동을 촉발하는 기폭제가 될지도 모른다는 시각은 그런 역사적 사실에 근 거한다. 시국선언 직후 청와대를 비롯한 여권의 핵심부는 당혹감을 감추 지 않았다. 청와대의 한 관계자는 “문민정부 에 지지를 보냈던 인사들마 저 이번 시국선언에 참여한 것을 보고 충격을 받았다”고 토로한다. 사실 새학기를 맞아 학생들이 한보 의혹 진상규명을 내걸고 거리로 나설 경우 시국선언의 폭발력이 현실화할 공산이 크다. 국회의 노동법 개정논의를 지켜보는 노동자들도 불씨를 안고 있다. 이번 시국선언은 한보사태로 깊 어진 정권의 위기가 아직 끝나지 않았음을 알리는 신호탄인지 모른다.
유강문 기자
© 한겨레신문사 1997년02월27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