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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 |
1997년02월27일 제 146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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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재산권 고수에 강한 의지를 내보이고 있는 정태수 회장. 상당량의 미전환 사채를 보유하고 있을 것으로 추정된다.)
정태수 한보그룹 총회장이 뇌물공여죄 등으로 형사처벌을 받게 되더라도, 이와 상관없이 한보철강에 대한 그의 재산권(지분)은 상당 부분 유지될 것으로 보인다. 더욱이 정씨가 최대한의 잔존지분 확보를 위해 각종 소송 을 제기하고 잔존지분을 토대로 경영권 되찾기에 나설 수도 있어, 앞으로 한보철강의 경영권 향방과 관련해 의외의 상황이 빚어질 가능성도 엿보인 다.
이럴 경우 현재 진행되고 있거나 추진되고 있는 포항제철 위탁경영, 법정 관리, 금융지원 등 각종 한보 지원책들이 자칫 정씨에게 ‘좋은 일’이 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는 게 금융계 인사들의 지적이다.
이는 법정관리 제도 등 부도기업 처리와 관련된 현행 법규들이 그같은 맹 점을 지니고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무엇보다 회사정리법이 정씨와 같 은 부실기업인에게도 기존지분의 3분의 1까지는 보호해 주는 조항을 그대 로 유지하고 있고, 정씨쪽에서 보유하고 있는 전환사채의 주식전환에 나 서는 데 대한 명시적인 규제장치가 없다.
대법원은 지난해 7월 부실기업주들이 법정관리를 재산보호 수단으로 악용 하는 사례가 많다는 지적에 따라 ‘회사정리사건 처리요령’을 개정해, 부실경영에 책임이 있는 대주주의 보유주식을 ‘전량’ 소각하도록 했다. 그러나 이 규칙의 상위법인 회사정리법은 그뒤인 지난해 11월에 개정됐음 에도 ‘3분의 2’만 소각할 수 있도록 한 기존 조항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다.
한보철강에 대한 정씨 일가의 지분은 49.9%이며, 이 가운데 28.4% 해당분 은 채권은행 등에 담보로 잡혀 있고 21.5%는 무담보 순수지분으로 남아있 는 것으로 알려졌다. 따라서 3분의 2 소각이 이루어지더라도 나머지 3분 의 1, 즉 지분 16.6%(무담보 순수지분 7.2% 포함)는 정씨의 재산으로 보 호되는 셈이다.
더욱이 정씨는 검찰에 소환되기 전에 “한보철강은 자산이 부채보다 많다 ”고 강조하며 재산권 고수를 다짐하기도 했다. 정씨의 이런 발언은 3분 의 2 소각 규정도 그냥 받아들이지는 않겠다는 뜻을 담고 있는 것으로 해 석된다. 실제로 한보철강의 부도 직후 제일은행이 집계한 채권금융기관들 의 담보는 여신총액에 비해 7천억여원이 부족했으나, 그뒤 다시 정밀집계 한 결과는 정씨의 말대로 담보가 여신액에 비해 장부가 기준으로도 최소 한 1천억여원 이상은 많은 것으로 확인됐다.
한보 관계자는 “3분의 2 소각 조항도 고의적인 부실경영을 한 대주주에 게만 적용되는 것”이라며 “정 총회장은 한보철강의 부도가 부실경영이 아닌 은행의 금융지원 중단 등 경영외부 요인에 기인한 부도라는 입장” 이라고 말했다. 또 대법원 관계자는 “회사정리법 규정과 상관없이 부채 가 자산보다 많을 경우 경영부실에 책임이 있는 기존 대주주 지분을 전량 소각한 판례가 있다”고 말하고 있으나, 여러 정황으로 미루어 이런 판례 가 한보의 경우에는 적용되기는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아울러 한보철강이 그동안 발행한 전환사채(CB)도 정씨 일가의 재산권 확 보에 적지 않은 구실을 하게 될 전망이다. 한보철강은 지난 93년 9월부터 부도 직전인 97년 1월10일까지 6차례에 걸쳐 권면액 기준으로 모두 2천4 백억여원어치의 전환사채를 발행했다. 이 가운데 88% 가량인 2천1백억여 원어치는 아직 미전환 상태로 남아있다. 이들 미전환 전환사채를 주식수 로 환산하면 대략 2천만여주가 되며, 이는 현재 한보철강의 총발행주식 수 1천9백여만주보다도 오히려 더 많은 양이다.
정씨 일가와 한보 계열사들이 이들 미전환 전환사채 가운데 과연 얼마만 큼이나 보유하고 있는지는 알려져 있지 않다. 그러나 한보가 전환사채를 극히 일부만 공모로 소화하고 나머지 거의 대부분은 되사가는 고의적인 리턴발행을 해왔다는 점을 고려하면, 이들이 미전환 전환사채의 상당량을 여전히 손 안에 쥐고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따라서 이들이 앞으로 가장 유리한 시점에 전환권 행사를 해 이를 주식으로 바꿀 경우 한보철강의 경 영권 향방에 결정적인 변수가 될 가능성이 있다.
증권감독원 관계자는 “법정관리 기간 중에 전환사채의 전환청구가 들어 올 경우 이를 채권행사로 보아 거부할 수 있는 것인지, 아니면 이미 부여 된 증자권으로 보아 이를 수용해야 하는지에 대해서는 전례도 없고 명시 적인 법규정도 없다”고 말했다.
물론 법원이 앞으로 회사정리계획을 허가할 때 정씨쪽의 전환권 행사에 모종의 규제장치를 도입할 수 있고, 정부가 채권은행단의 채권을 출자로 전환시키는 ‘물타기’를 통해 정씨 지분을 부분적으로 희석시킬 수는 있 다. 그러나 이런 조처가 실제로 가능한지는 아직 불투명하고, 실행된다 해도 일정한 한계를 넘을 수는 없을 것으로 보인다. 게다가 비자금 운영 에 남다른 능력을 지닌 정씨가 차명주식 등 다른 은닉지분을 갖고 있을지 도 모른다. 이런 점들 때문에 법정관리제도가 또다시 비리·부실 기업인 의 회생약 구실을 할지 모른다는 우려가 제기되고 있다.
이주명 기자
© 한겨레신문사 1997년02월27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