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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이야기 |
1997년02월27일 제 146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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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모임이 한국에도 있습니까?”
일본 규수의 후쿠오카 현립대학에서 한국어를 가르치는 니시오카 겐지 교 수의 질문은 아프도록 날카롭다. 지난 2월15일 오후 경기도 의왕시 내손 동 계원조형예술대학 세미나실. 윤동주 시인의 52주기를 기념하는 한-일 문학세미나 자리에서였다. 그가 말하는 모임이란 바로 ‘윤동주의 시를 읽는 모임’을 가리킨다. 그는 이 세미나에 참석차 회원 여덟명과 함께 한국을 찾은 것이었다.
정치권의 부패에도 일본의 풀뿌리 민주주의는 매우 발달해 있다. 지역사 회를 기반으로 삼는 시민운동이 다종다양한 분야에 걸쳐 조직되어 있다. 그 뚜렷한 하나의 증거가 ‘무슨무슨 모임’이라는 이름의 자그마한 결집 들이다. 일본에는 그야말로 별별 모임이 다 있다. 그러나 아무리 그렇다 손치더라도, ‘윤동주의 시를 읽는 모임’이라는 게 있으리라는 것은 전 혀 예상 밖의 일이 아닐 수 없다. 니시오카 교수의 질문에 뒤통수를 한방 맞은 듯한 느낌을 갖는 것이 기자만은 아니리라.
‘윤동주의 시를 읽는 모임’이 처음 결성된 것은 지난 95년 11월이었다. 그에 앞서 후쿠오카에서 발행되는 <니시니혼신문>은 94년 여름 15회에 걸 쳐 윤동주의 일대기를 연재해 시민들의 관심을 모았다. 알다시피 후쿠오 카는 윤동주의 마지막을 지켜 본 역사적인 도시이다. 교토에서 체포된 윤 동주는 후쿠오카 형무소에서 복역하던 중 해방을 불과 반년 앞둔 1945년 2월 중순 스물아홉의 꽃다운 나이를 접었다.
마침 10년 남짓의 한국 유학을 마치고 94년 10월에 후쿠오카로 돌아온 니 시오카 교수가 ‘윤동주의 시를 읽는 모임’의 지도교수가 되었다. 학생 과 주부, 무용가와 시인, 교사와 기자, 거기다가 한국인 유학생 2명을 포 함한 모두 35명이 회원으로 참여해 95년 12월부터 매달 한차례씩 모임을 가지고 있다.
“처음 서너번은 한회에 시 두편씩을 읽었는데, 다음부터는 한회에 한 작 품씩으로 하고 있습니다. 우선, 일본어와 한국어로 해당 작품을 낭독합니 다. 이어서 두 사람의 발표자가 같은 시에 관해 발표를 한 뒤, 전체 회원 이 토론을 벌이고 마지막으로는 제가 정리합니다. 회원들은 농담 삼아 이 방식을 ‘`니시오카 메소드’라 부르죠.”
마지막 모임인 지난 1월31일에는 <윤동주 시집>의 28번째 작품인 ‘위로 ’의 토의를 마쳤다. 전문가들이 아님에도, 아니 바로 그렇기 때문에, 단 어 하나하나마다 다양한 해석이 나와 중구난방의 토론을 벌이기 때문에 모임은 정해진 시간을 훨씬 넘겨서야 끝나기 일쑤이다. 정규 모임이 끝난 뒤에는 참가자들이 근처의 간이주점에서 술잔을 기울이며 `본격적인 토론 에 돌입하는 것이 정해진 순서이다.
모임은 95년 2월 후쿠오카 형무소에서 열린 ‘윤동주 50주기 추모 위령제 ’와 교토 도시샤대학의 윤동주 시비 제막식에 이은 문학 심포지엄에 적 극 참여했다. 그해 여름에는 처음으로 한국을 방문해 연세대의 윤동주 시 비를 참배했으니, 이번 방한이 모임으로서는 두번째가 된다.
“일본의 서남부 해안 도시인 후쿠오카는 ‘아시아로 열린 창’을 자임하 고 있습니다. 이 도시의 여러 소학교들이 한국의 학교들과 자매결연을 맺 고 있죠. 설사 윤동주가 후쿠오카에서 죽지 않았더라도 이웃나라를 대표 하는 시인의 시를 읽는 모임은 마땅히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일본군위안부 할머니들에게 겹의 고통을 주는 정치인들의 망언시리즈 한 켠에는 이 모임처럼 우리를 ‘유쾌하게’ 괴롭히는 것들이 있다. 일본의 진정한 힘은 바로 여기에 있는 것이 아닐까. 그들을 부러워하고 두려워하 며 생각해 본다. 가령, 우리나라의 경상도 진주쯤에 ‘미야자와 겐지의 시를 읽는 모임’ 같은 게 생길 날은 언제일까?
최재봉 기자/ 한겨레 문화부
© 한겨레신문사 1997년02월27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