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
1997년02월27일 제 146호 한겨레21

테포스틀란 마을의 어제와 오늘

멕시코의 인류학자 오스카 루이스는 지난 51년과 56년 김세건 통신원이 농촌활동을 벌이고 있는 테포스틀란군을 연구해 <떼뽀스뜰란마을>(1988· 교문사 번역출간)이라는 연구저서를 남겼다. 그는 이 책의 서장에서 테포 스틀란의 특징을 개략적으로 설명하고 있다. 상당한 시간이 지났지만 이 설명은 지금도 테포스틀란의 특성을 이해하는 데 유효할 것으로 판단해 이를 골라뽑아 소개한다.

편집자

테포스틀란 마을은 전래의 토착민들로 구성돼 있다. 이들은 토지에 강한 집착을 가지고 주로 농업에 생계를 의존하며, 기술은 비교적 원시적(괭이 와 쟁기)이다. 테포스틀란은 농민과 식민지 주민에게서 특징적으로 나타 나는 정부를 향한 적대감과 의존이라는 독특한 양면성을 보여주고 있다. 테포스틀란은 전체 멕시코의 많은 특징을 적잖이 반영하고 있다. 테포스 틀란에는 전체 멕시코에서와 마찬가지로 원시적인 요소와 현대적인 요소, 그리고 스페인 식민지 시기의 것과 현대적인 것 등 대조적 요소들이 있다 .

테포스틀란은 인디언의 유산을 강하게 보여준다. 스페인 통치 이전 시기 의 많은 특질들이 끊이지 않고 이어져 왔으며 오늘날에도 이 마을에서 발 견된다. 공유지 체제는 지난 4백년 동안 사실상 고스란히 유지돼왔으며 스페인 통치 이전 시기 농업의 요소들이 많이 발견되고 있다. 옥수수, 콩 , 호박류가 여전히 주요 농작물이다.

테포스틀란은 멕시코시티와 인접해 있기 때문에 새로운 사조에 쉽게 접할 수 있다. 이 마을에서는 1850년대 이래로 향촌 지식계급이 존재해왔고, 문자를 해독할 수 있는 오랜 전통을 가지고 있다.


스페인 통치 이전 시기

멕시코시티와 마찬가지로 테포스틀란 역시 인종과 문화가 뒤섞인 길고도 복잡한 역사를 지니고 있다. 이 마을은 수많은 외침을 겪었고 스페인인들 이 침입하기 이전에도 오랫동안 정치적인 통제와 권위체제에 예속돼 있었 다.

테포스틀란은 10세기 초에는 톨테카제국의 침략을 받았으며, 15세기에는 약 1백년 동안 아스텍의 지배를 받았다. 아스텍 지배하의 테포스틀란 주 민들은 어린 아이를 비의 신에게 바치고 포로의 심장을 전쟁 신에게 바치 는 등 아스텍 풍습을 따랐다.


스페인 정복기(1521~1810년)

테포스틀란은 스페인 코르테스 정복군에게 1521년 항복했다. 코르테스의 부하들은 이곳에서 “많은 아름다운 여자들과 전리품들”을 발견했다고 보고했다. 스페인은 통치문제에서 정복 이전의 제도들을 없애기보다는 수 정함으로써 마을을 서서히 변화시켜 나갔다. 기독교는 별 어려움 없이 테 포스틀란에 전파되었고 다신교인 토착종교는 비교적 쉽게 옛날 신을 새로 운 신으로 대체할 수 있게끔 했다.


독립 이후(1810년~ )

멕시코 독립 초기 테포스틀란에서는 식민시대의 생활방식이 여전히 지속 됐고 독립됐다는 사실조차 거의 모르고 지나갔다. 교회개혁의 결과 교회 에 속했던 토지는 새로 토호가 된 소수의 카시케들이 나눠 가졌다. 이들 은 값싼 노동력을 확보하기 위해 공유지 경작을 금지시켰다. 토지가 없는 사람들에게는 가혹한 시기였다. 테포스틀란 역사에서 획기적인 사건 중 하나는 북부지역을 통과하는 철도가 1897년 부설된 것이다.

혁명기 동안 멕시코에서 테포스틀란보다 더 많은 고통을 당한 마을은 찾 아보기 어렵다. 모렐로스에서 사파타가 혁명을 일으키기 전인 1911년 테 포스틀란 사람들은 자신들의 힘으로 이 고장의 카시케들의 속박에서 해방 됐다. 그뒤 마을은 처음에는 반란군에 의해, 그 다음에는 정부군에 의해 교대로 짓밟혔다. 1919년 말 모렐로스주는 다시 평화를 되찾았고 테포스 틀란 마을도 정상을 되찾기 시작했다.

혁명 이후 마을 주민들의 사파타군 참여는 주민들의 마음속에 깊은 인상 을 남겼으며, 평등이라는 개념을 인식하는 데 영향을 주었다. 또한 카시 케에 의해 금지된 공유지를 마을주민들이 다시 이용할 수 있게 됐다.

<떼뽀스뜰란 마을>(교문사)에서 발췌요약.

© 한겨레신문사 1997년02월27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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