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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포 |
1997년02월27일 제 146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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멕시코 농촌 원주민들의 희망은 무엇일까. 과연 그들은 무엇을 고민하고 어떤 것에서 즐거움을 찾을까. 이들의 삶은 또 우리의 농민들과 어떻게 다른가.마야와 아즈텍의 옛 문명을 자랑하던 멕시코 원주민들은 4백여년에 걸친 스페인 식민통치를 거쳤고 현재 멕시코 정부와도 일정한 긴장관계를 유지 하고 있다. 이런 긴장은 지난 95년 1월 남부 치아파스주의 사파티스타 농 민봉기로 표출되기도 한다. 그러나 이들의 소식을 전하는 단편적인 외신 에서 이들의 인간적인 고민을 읽기는 쉽지 않다.
이에 <한겨레21>에서는 김세건 통신원의 ‘멕시코 농촌일기’를 소개한다 . 지난 93년 6월 멕시코로 건너가 멕시코국립자치대학 인류학 박사과정에 재학중인 김세건 통신원은 현재 멕시코 농촌에서 1년여 동안 농민들과 함 께 생활하고 있다. 이런 김 통신원의 ‘농활’은 박사논문작성의 한 과정 인 ‘현지참여관찰’ 활동으로 이루어진 것이다. 김 통신원은 ‘산업화에 따른 농촌의 환경문제’를 주제로 박사논문을 쓰고 있다.
김세건 통신원의 현지참여관찰 장소는 멕시코 남부 모렐로스주 테포스틀 란군의 한 마을이다. 이 마을 연구는 이미 로버트 레드필드(1926)와 오스 카 루이스(1951, 1956) 등 두 인류학자에 의해 이루어졌으며, 이들 논문 은 부족사회에서 농민사회로 옮겨가는 농민공동체를 연구한 몇 안 되는 연구서로 평가된다.
김세건 통신원의 눈에 비친 멕시코 농촌은 근대화의 물결 속에 공동체가 와해되는 불안정한 모습이다. 또 좀더 높은 임금을 좇아 미국과 멕시코로 단기농업이민을 떠나는 사람도 속출하고 있다. 골프장 건설을 둘러싸고 자치정부를 세우는 등 중앙권력과의 갈등양상도 나타난다. 그러면서도 이 들은 1백일 가까운 축제와 ‘땀의 아름다움’을 간직하고 있기도 하다. 이제 ‘젊은 인류학자’의 눈을 따라 멕시코 농민들을 만나보자.
편집자
(사진/농사철이 가까워오면 마을 사람들은 좋은 비를 기원하며 동굴에 제물을 바치는 의례를 올린다. `동굴의례'를 준비하는 제사장 할머니.)
95년 11월2일(목)
가슴 설레는 마음으로 아침을 맞이했다. 오늘 지도교수와 함께 현지참여 관찰 장소인 멕시코 남부 모렐로스주 테포스틀란군에 속한 마을인 ‘산 안드레스 델 라 칼’을 방문했다. 이 마을은 모렐로스주의 주도 쿠에르나 바카에서 자동차로 30여분 거리에 있다. 마을 입구에 들어서기 전까지는 어느 곳에서도 집이 보이지 않을 만큼 바위산들이 병풍처럼 둘러싸고 있 었다. 정이 가는 마을이다.
멕시코에서 몇년을 보냈지만 앞으로는 농촌에서 농민들과 똑같이 생활해 야 한다는 생각이 들자 각오가 새로워진다. 아즈텍과 스페인의 오랜 지배 를 거쳐, 멕시코 중앙정부와도 많은 갈등을 빚고 있는 테포스틀란의 원주 민들. 그들의 고민은 무엇이고 ‘현대화’의 물결 속에서 그들은 어떤 변 화를 겪고 있을까.
멕시코시티로 돌아오는 고속버스 차창을 물들인 황혼빛이 복잡한 머리를 식혀준다.
숱한 대립의 역사 간직한 농촌공동체
(사진/11월부터 1월 사이에 이뤄지는 옥수수 수확은 씨뿌리기, 흙북돋워주기 등을 통한 농민들의 땀의 결과이다. 수확한 옥수수를 건조시키는 멕시코 농민.)
드디어 오늘 간단한 조사도구 등을 준비해 조사지에 입주했다! 테포스틀 란 읍에서 마을로 향하는 승합차 안의 모든 이들이 낯설기만 하다. 이들 과 다정스럽게 인사를 나누고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날이 빨리 오도록 최선을 다해야 겠다.
1월19일(금)
어젯밤의 착잡한 기분과는 달리, 아침의 신선한 공기가 나를 맞이한다. 멕시코시티의 대기오염에 찌든 때가 한꺼번에 씻겨나가는 기분이다. 간단 히 아침식사를 하고 마을지도를 작성하기 위해 집을 나섰다. 지도를 그리 는 데 사람들이 호기심어린 얼굴로 말을 건넨다. “무엇을 하느냐” “어 디서 왔느냐” 등의 질문이 꼬리를 문다. 마을엔 두개의 가톨릭성당(성 살바도르성당과 성 안드레아성당)과 몰몬교 교회가 하나 있다. 몰몬교는 50년대에 들어왔는데, 신자들은 주민 약 1천명 중 85명에 불과하다. 나머 지는 대부분이 가톨릭신자라고 한다. 몇 사람과 이야기를 하느라중심가의 5블록밖에 그리지 못했지만, 기분 좋게 하루를 끝냈다.
1월21일(일)
폭죽소리에 일찍 잠을 깼다. 잠이 덜 깬 눈을 비비며 성 살바도르성당으 로 향했다. 마요르도모(성당집사)인 셀소(61)를 비롯한 몇몇 사람이 교회 를 청소하고 있다. 어젯밤 늦게까지 술을 마시며 축제를 준비하던 사람들 이 어질러놓은 것이다. 오늘이 바로 성 살바도르 축제이다. 원래 성 살바 도르 축제는 8월6일인데, 이때가 농번기이기 때문에 1월 셋째 일요일인 오늘 앞당겨 축제를 하는 것이다. 멕시코는 특히 축제가 많은 나라다. 자 기 마을의 수호성인뿐만 아니라 다른 마을 수호성인 축제, 부활절 등 가 톨릭 고유축제에 이르기까지 축제일이 1백일 가까이 된단다. 물론 모든 사람이 모든 축제에 다 참석하는 것은 아니다.
아침이 되자 멀리 떨어진 마을에서 보낸 프로메사가 도착해 축제가 아연 활기를 띤다. 프로메사란 각 마을이 자기 마을 수호성인 깃발이나 꽃·양 초·기부금 등을 가져와 축일을 축하하는 것이다. 이것은 일종의 품앗이 다. 프로메사를 보낸 마을의 축제 때면 이 마을에서도 답례를 하는 것이 관례이기 때문이다.
오후 1시에 미사가 있었다. 3백여명의 마을사람들이 말끔히 차려 입고 미 사에 참석했다. 미사 뒤 사람들은 자기 집을 방문한 사람들에게 몰레(멕 시코 전통요리로 얼핏 보면 자장 같지만 맛은 전혀 다르다), 타말(옥수수 로 만든 우리의 송편 같은 전통음식) 등으로 점심대접을 한다. 각 가정은 초대받은 사람들로 가득하고, 특히 마요르도모의 집은 축하를 위해 온 외 부 사람들로 시끌벅적하다. 모든 날이 오늘만 같다면, 조사지에서 음식 먹는 걱정은 안 해도 될 것 같다. 폭죽이 밤하늘을 아름답게 수놓는다.
‘프로리그’ 뺨치는 뜨거운 축구열기
(사진/7월6일 마을의 `최고 교육기관' 초등학교의 졸업식이 열렸다. 재학생들은 춤과 노래로 선배들의 졸업을 축하하지만 졸업생의 눈믈은 우리와 다르지 않다.)
2월17일(토)
어제 드디어 마을지도를 완성했다. 생각보다 마을지도를 작성하는 일이 늦어졌다. 오늘부터 약 한달 정도를 가족현황, 토지·가축 소유현황, 직 업 등에 대한 기초자료 조사기간으로 정했다. 한달가량 생활하면서 이제 사람들과 어울리는 데 큰 문제는 없지만, 그래도 조금은 걱정이 앞선다. 오늘부터는 길거리 등에서 자연스럽게 만나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라, 각 가정을 방문해 미주알고주알 캐물어 그들의 신상명세서(?)를 만들어야 하 니 말이다. 이제까지 숲만 보다가 나무를 보기 위해 본격적인 현지참여관 찰의 첫발을 디딘 하루였다.
2월25일(일)
기초자료 조사를 위해 나섰다가 하루종일 축구경기를 구경했다. 주말마다 축구복을 입은 사람들을 수없이 봐왔지만, 단지 동네축구 정도로 생각하 고 지나쳐왔다. 호기심이 없으면 ‘산송장’과 다름 없음을 절실히 느꼈 다.
오늘 엘레아사르(31) 집에 들러 기초조사를 마치고, 축구경기를 하러 가 는 그를 따라 축구장으로 갔다. 축구장은 마을과 석회산이 맞닿는 곳에 위치해 있다. 그 옆에는 건기엔 거의 말라버리는 호수가 하나 있다. 비탈 진 길을 따라 조금 내려가 보니 입이 벌어진다. 조금 과장하면, 비록 스 탠드도 없고 조금은 좁은 잔디구장에 남녀노소 구별없이 모든 마을사람이 모여 있는 것 아닌가!
6곳의 노점상에선 맥주와 음료수, 간단한 요깃거리 등을 팔고 있다. 이곳 저곳에 어른들이 모여 응원을 하면서 술판을 벌리고 있다. 나를 아는 몇 몇 사람이 맥주를 권한다. 중남미의 축구열기가 어느 정도인지 정말 피부 로 실감했다. 인구 1천의 이 마을에만 8개의 축구팀이 있다. 성인 4팀, 청소년 2팀, 어린이 1팀, 여성 1팀이다. 토요일엔 청소년, 어린이 그리고 여성팀의 경기가 있고, 일요일엔 성인팀의 경기가 있다. 이는 우리 마을 팀끼리의 친선경기가 아니다. 각 팀은 일정한 지역을 중심으로 축구리그 를 결성한다. 마을의 팀들은 인근마을인 오코테펙리그, 아우아테펙리그에 속해 있다. 경기는 리그의 일정에 따라 홈경기와 원정경기로 이루어진다. 시원스럽게 트인 축구장에서 축구경기를 실컷 구경하고, 세계적인 상표인 ‘코로나 맥주’까지 한잔 했으니 오늘밤엔 잠이 잘 올 것 같다.
3월6일(수)
라이문도(54) 집에 점심초대를 받아 갔다. 타말로 점심을 한 뒤 라이문도 부부의 일을 도와줬다. 옥수수 껍질을 벗겨서 묶는 일이다. 마을의 주작 목인 옥수수는 11월 중순부터 1월 중순까지 추수를 한다. 추수 뒤 농민들 은 집에서 수확한 옥수수 껍질을 벗기고 탈곡을 한다. 벗겨낸 껍질 가운 데 상태가 좋은 것을 골라 3다발씩 묶는다. 그리고 이를 쿠에르나바카나 테포스틀란 시장에 나가 판다. 대개 1다발에 2페소. 옥수수 알곡이 2~2.5 페소인 것과 비교하면, 옥수수껍질 수입이 어느 정도인지 알 수 있다. 이 렇게 가격이 좋은 것은 옥수수 껍질로 만드는 음식인 타말이 축제·생일 등 특별한 날의 기본적인 음식이기 때문이다. 예전에는 타말을 만들기 위 한 약간의 껍질 외에는 들판에서 껍질을 벗겨 버린 채 옥수수를 수확했다 . 그러나 옥수수 껍질도 판매가 되면서 건기 동안 농민들의 주요한 부수 입원이 됐다. 시장경제가 확산되면서 농업양태를 변화시키고 있는 것이다 . 여기에 부차적 효과가 덧붙여지는데, 부부가 함께 옥수수 껍질을 벗기 면서 금슬이 좋아져 마을에서 거의 부부싸움이 사라졌다고 한다.
골프장 건설 몸살 겪고 자치정부 구성
3월17일(일)
모든 것이 귀찮은 날이다. 처음 세집까지의 기초조사가 일사천리로 진행 되었다. 그런데 저절로 나던 콧노래가 일순간에 성난 황소의 콧바람으로 바뀔 줄이야! 네번째 집에 들어서자 안주인 글로리아(28)가 나를 맞이한 다. 연구 목적을 간단히 설명하고 신분증을 제시했다. 그런데 웬 아닌 밤 중의 홍두깨인가! 이제까지 아무 문제가 없던 테포스틀란 군정부가 내준 신분증이 아무 쓸모없는 종잇조각이 될 줄이야!
하긴 그의 말도 일리가 있다. 지난 94년부터 시작된 골프장 건설문제로 마을주민과 충돌을 빚은 군 정부가 주민들에 의해 밀려나고, 대신 주민들 의 자치정부가 들어섰다. 따라서 현 자치정부는 주·연방정부가 인정하는 정부가 아니다. 소위 정부가 인정하는 합법적(?) 군 정부는 임시로 인근 산타 카타리나로 옮겨 사무를 보고 있다. 그런데 내 신분증은 현 자치정 부에서 받았으니, 중앙정부에 충실한 국민의 입장에서는 불법일 수밖에 없다. 한국적 관점에서 보면 이런 이중권력은 그야말로 혁명적인 상황이 지만 글로리아에 앞서 내가 만났던 마을사람들은 이를 또 자연스레 용인 했다. 이게 멕시코 원주민과 중앙정부 관계의 한 단면이구나 싶으면서도 어쩐지 이상하다.

(사진/테포스틀란군의 장터 모습. 원시와 현대가 공존하는 이 마을에도 점차 시장경제가 확산되어 농업양태도 바뀌고 있다.)
5월4일(토)
사울(33)의 ‘집 신축’과 관련해 오후 7시에 마을총회가 열렸다. 사울이 집을 신축하면서 공유지인 계곡을 약 10평 정도 침범했는데, 이의 허가 여부를 마을주민들이 결정하기 위한 것이다. 18살 이상의 성인이면 누구 나 참석할 수 있는데, 오늘은 93명이 참석했다. 사울과 그 지지자들이 우 선 목소리를 높인다.
“사울에 반대하는 사람들도 공동토지를 점유한 사례가 있다. 그들은 10 평이 아닌 수백평을 점유했는데, 아무 말도 하지 않는다. 이들이 마을에 뿌리를 박고 살기 때문이다. 사울도 마찬가지로 살기 위해서 집을 짓는 것이지 팔기 위한 것은 아니니 이를 허가해야 한다.”
이에 반대하는 사람들은 “원칙적으로 공동토지는 사적인 용도로 쓸 수 없으며, 만약 이를 마을총회에서 공식적으로 허가하면 다른 사람들이 공 동토지를 점유하는 것을 어떻게 막을 수 있느냐”고 반문했다. 또 일부 주민들은 사울이 대부분의 생활을 쿠에르나카에서 하고 있고, 술을 좋아 하는 것을 들어 외부인에게 팔려고 집을 짓는다며 반대한다.
사울은 결코 집을 팔지 않을 것임을 약속하고 다른 사람들을 비방한 것을 사과한 데다, 친인척들의 도움을 받아 38 대 36으로 승리(?)했다. 그러나 승리의 원인은 무엇보다도 미묘한 문제에 끼어들기 싫어하는 마을 사람들 의 무관심에 의한 것이었다. 토지점유와 관련된 문제는 사울의 건으로 끝 날 것이 아니라 지속적으로 마을이 부딪힐 문제다. 점차 도시화되면서 공 동토지의 점유문제가 빈번해질 것 같기 때문이다. 실제로 테포스틀란 군 내의 약 90%를 차지하는 공유지는 세월의 흐름 속에 점차 사적 소유화해 왔다.
근원적인 문제는 이제 마을의 2백10가구 중 80여가구가 농업에 종사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이들은 오늘 총회의 안건 같은 미묘한 문제에 끼어들고 싶어하지 않는다. 결국 공동체로서의 마을이 결합력을 잃어가는 한, 공동 토지에 대한 마을의 통제력과 공동토지가 지닌 의미 또한 약화될 것은 뻔 하다. 해체돼가는 공동체의 한 단면은 나에게까지 “땅을 사지 않겠느냐 ”고 물어보는 사람이 있는 데서도 확인된다.
공동토지에 대한 통제력 약화 뚜렷
5월17일(금)
새벽 6시에 부족한 잠을 억지로 이기며 일어나자마자 마을사무소를 직행 했다. 오늘은 ‘좋은 비를 기원하며 동굴에 제물을 바치는 의례’가 있는 날이다. 테포스틀란에서 이 의례를 행하는 것은 이 마을뿐인데, 이는 스 페인 식민지시기 이전부터 전해져온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 의례는 씨앗 을 성당에 가지고 가 축복받는 5월15일 성 이시드로의 날과 함께 본격적 인 농사철 시작을 알리는 중요한 의례였다.
하지만 올해 5월15일엔 씨앗을 축복하기 위한 미사가 없었다. 전통이 예 전 같지 않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동굴의례도 사람들의 관심 이 줄어들면서 참여인원이 눈에 띄게 줄고, 의례에 대한 의미부여도 떨어 지고 있다. 하긴 근대 과학교육을 받은 사람들이 동굴에 좋은 비를 기원 하는 행위를 이해하겠는가? 하지만 이 의례는 건기와 우기가 뚜렷이 구분 되고, 하늘에 의존해서 농사를 지어온 농민들의 간절한 바람의 응결체임 에 틀림없다. 예로 지난해에는 지나치게 비가 많이 와서 농사를 망쳤다고 하는데, 많은 사람들이 지난해 의례를 하지 않아서 그랬다고 말한다.
의례의 날엔 성당에 들러 간단히 기도를 한 뒤 출발한다. 마을 주변에 위 치한 산에 있는 5개의 동굴로 30명이 동행했는데, 젊은이들이 대부분이었 다. 장난치는 모습들이 마치 소풍을 가는 것 같다. 각각의 동굴에는 원주 민 언어로 된 이름이 있는데, 대부분 사람들이 이름을 잘 기억하지 못했 다. 오히려 마을 노인들과 이야기를 나눈 내가 더 잘 알고 있었다.
동굴은 비의 신이 사는 지하로 통하는 문이며, 비를 만드는 공기가 있는 곳으로 여겨진다. 그래서 동굴의 신을 통해 좋은 시절을 기원하는 것이다 . 옥수수 경작에 악영향을 주는 거센 바람·장대비 그리고 우박 등을 동 반하지 않고, 필요한 시기에 적절한 양의 비가 오는 좋은 시절을 기원한 다. 동굴의 의례가 끝나면, 모두 성당에 들러 기도를 드리고 마을사무소 로 돌아간다. 사무실에 들어가기 전에 코팔향료로 몸을 씻는다. 그리고 준비한 음식으로 잔치를 벌인다. 마을사무소에서 점심을 먹고 집으로 돌 아오는데 “신이여, 우리들을 용서하소서”를 되뇌며 끝내 울음을 터뜨렸 던 제사장 도냐 호비타(70·여)의 모습이 눈앞에 선하다.
5월28일(화)
오늘 따라 기분이 축 처진다. 아마 아니세토(43) 때문인 것 같다. 마을에 서 자주 만나 이야기를 나누는 사람 가운데 하나인 그가 내일 캐나다로 간다. 약 5개월간 캐나다 알베르타주의 애드먼튼에 있는 농장에 채소 수 확 등의 농사일을 하러 가는 것이다. 이번이 6년째란다. 사실 아니세토 같은 사람이 한둘이 아니다. 4월부터 6월 사이 캐나다·미국으로 일시 농 업이민을 가는 사람은 80여명이다. 이들은 불법으로 국경을 넘는 사람에 비하면 행복한 사람들이다. 2월 초에 미국의 국경을 넘기 위해 멕시코의 국경도시 티후아나에 갔던 이 마을 청년 미겔은 결국 뜻을 이루지 못하고 돌아와야 했다. 뜻을 이루기 위해선 엄청난 돈이 필요하다. 안전하게 국 경을 넘기 위해선 최소한 미화 1천달러를 알선업자에게 주어야 한다. 돈 이 없으면 언덕, 강 등을 통해 국경을 넘어야 하는데, 요즘은 경계가 엄 해져 쉽지 않다고 한다. 현재는 불법이민보다는 합법적인 일시 농업이민 이 주를 이룬다. 일시 농업이민을 간 사람들은 대개 3개월에서 길게는 6 개월간 일하고 돌아온다. 이들이 일시이민을 가는 원인 중 가장 중요한 것은 경제적 요인이다. 땅을 갖고 있든 갖고 있지 않든간에 미국이나 캐 나다에서 버는 돈이 훨씬 많다. 이곳 농업노동자의 하루 품삯(30페소)이 그곳의 한 시간 품삯(5.5달러=약 40페소)에도 미치치 못한다.
문제는 일시 농업이민을 가는 시기가 이곳의 농사철과 맞물린다는 사실이 다. 또 이들이 땀흘려 지은 캐나다와 미국의 농산물이 이곳으로 수출돼 결국 멕시코 농촌의 경쟁력을 저하시키고 나아가 농촌을 피폐화시키고 있 다는 데 아이러니가 있다.
돈벌이 위해 일시 농업이민 떠난다
6월13일(목)
4월23일에 첫비가 내리더니, 5월 말부터 본격적으로 우기가 시작됐다. 우 기와 함께 농민들의 농사일이 활기를 띠기 시작한다. 오늘은 그레고리오( 65)와 함께 옥수수 씨앗을 뿌리러 갔다.
그레고리오의 부인이 가져온 점심이 무척 맛있다. 그레고리오의 미국생활 이야기(그는 57년 불법으로 미국에 갔었다)가 밥맛을 한껏 돋워주었다. 그는 “힘든 일을 해도 그와 함께 하면 힘든지 모른다”는 말을 들을 만 큼 입담이 대단한 ‘`아저씨 같은’ 할아버지다. 마을에서 ‘고함 잘 치 는 사람’이라는 별명이 말해주듯, 하는 이야기마다 고함을 치듯 해 재미 를 더해준다. 그와 함께 씨앗을 뿌리고 돌아오니 몸에서 흙내음이 물씬 풍긴다. 아마 흙의 정기가 내 몸 속에 스며들었는가 보다.
7월26일(금)
한 울타리에 살고 있는 마리오(45)와 함께 ‘첫 흙 북돋워주기’를 하러 갔다. 이 일은 옥수수 농사일 중 가장 힘들지만, 옥수수 성장에서는 빼놓 을 수 없는 작업이다. 파종한 지 약 20일이 지나 옥수수가 20~30cm 자랐 을 때, 줄기마다 흙을 북돋워준다. 흙 북돋워주기는 여러 가지 구실을 한 다. 먼저 옥수수보다 빨리 자라는 잡초 등을 제거해 옥수수의 성장을 도 와주고, 흙을 북돋워줌으로써, 옥수수가 바람에 쓰러지는 것을 막아준다. 하지만 이 일은 허리를 구부린 채 해야 하기 때문에 허리에 하중이 많이 가 무척 힘이 든다. 일을 하면서 ‘왜 따라왔지’ 하는 후회가 시도때도 없이 밀려올 정도였다. 이 후회를 통해 우리 어머니들의 ‘아이구 허리야 ’하는 외침이 어떤 것이었는지를 조금은 느낄 수 있을 것 같았다.
8월1일(목)
점차 진짜 농군이 다 되어가는지 일을 하러 가자는 사람이 늘어난다. 하 긴 6~7월 두달간을 들판에서 살다시피 했으니, 어느 정도 옥수수 경작에 눈이 뜨일 만하지. 내년에 나도 옥수수 농사를 지어볼까 한다. 오늘은 노 르마(35)의 밭에 두번째 흙 복돋워주기를 하러 갔다. 그의 남편은 파종을 한 뒤, 6월28일 미국 버지니아의 담배 농장에 일을 하러 갔다. 따라서 남 겨진 농사일은 노르마의 몫이 됐다. 두번째 흙 복돋워주기 작업이 끝나면 이제 일년 농사는 ‘하늘의 뜻’에 맡겨진다.
일이 끝나서 돌아올 무렵 농민이자 ‘전통 춤꾼’인 펠리페(27)가 작업이 끝난 곳을 가리키며, “아름다움은 항상 땀이 함께 한다. 김! 아름답지 않나?”하고 묻는다. 농약사용을 적극 반대하고 전통경작방식을 고집하며 , 축제가 있는 곳이면 동료들과 함께 며칠간 전통 춤을 추러 가는 그를 마을 사람들은 ‘미친 놈’이라고 손가락질하지만 내겐 다시 없는 말동무 다. 그의 말마따나 나에겐 아름다운 ‘땀의 하루’였다.
“아름다움은 항상 땀이 함께 한다”
11월26일(화)
오늘은 펠리페와 함께 수확을 하러 갔다. 옥수수 수확은 대개 마을의 수 호성인 축제인 11월30일을 전후해 시작해 1월 말쯤 끝이 난다. 추수는 아 야테라는 보자기를 목에 걸치고 옥수수를 하나씩 따서 보자기에 담는다. 보자기가 가득 차면 이를 큰 자루에 옮겨 담는다. 작열하는 햇볕과 옥수 수 부스러기에 의한 가려움증이 조금 괴로울 뿐, 각각의 이랑에서 보조를 맞춰, 농담도 해가면서 하는 수확작업은 즐거운 일임에 틀림없다. 게다가 풍년이라면 말할 것도 없다. 다만 9월에 세찬 바람이 불어 옥수수가 많이 넘어져 수확이 좋지 않은 곳도 있지만 말이다. 오후 6시께 일을 마치고 수확물을 트럭에 싣고 돌아오는 길에 마주치는 신선한 바람과 저녁햇살은 배고픔을 잊을 만큼 아름답다.
11월28일(목)
10월 말부터 오지 않은 비로 인해 점차 대지는 푸른 빛을 잃어간다. 그래 도 집안에 가득히 수확물이 쌓여가고, 돈벌이를 위해 멀리 이국 땅까지 갔던 사람들도 하나둘씩 고향으로 돌아온다. 그리고 마을 수호성인 축제 가 그들을 기다린다. 마을의 수호성인 축제는 정확히 11월30일이다. 그런 데 올해는 이 축제는 10일 전인 11월21일부터 시작됐다. 올해부터 테포스 틀란 안의 모든 마을들이 다른 마을의 수호성인 축제에 참여하게 되면서, 각 마을의 수호성인 축제가 거의 10일간에 걸쳐 이루어지게 된 것이다. 즉 테포스틀란의 23개 공동체는 각각 자기들 공동체 수호성인의 깃발·꽃 그리고 양초 등을 가지고 다른 마을의 수호성인 축제에 참여하는 것이다.
이는 테포스틀란 주임신부 실베르토의 제안에 따른 것이다. 50대의 이 주 임신부에 대한 테포스틀란 사람들의 신임은 대단하다. 특히 그는 모렐로 스 대주교가 골프장 건설에 찬성입장을 보이고 있는데도, 골프장 반대운 동에 매우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있다. 골프장은 주민들의 반대로 이미 주 에서 철회의사를 밝힌 바 있다. 그런데 골프장 문제에 대처하는 데 있어 서 마을간의 결속력이 예전같지 않고, 오히려 골프장 건설회사와 주정부 의 의도 속에서 마을간 갈등도 비쳤었다.
따라서 주임신부는 이런 종교적 행사를 통해 무엇보다도 테포스틀란 마을 간의 결속을 강화하고자 했다. 공동토지의 공동사용, 행정적 통제, 그리 고 가톨릭이 군내 마을간 결속력을 강화해왔지만 이 중에서 지금도 영향 력을 발휘할 수 있는 것은 가톨릭뿐이다. 멕시코에서 가톨릭이 어떤 위치 에 있으며, 나아가 현대사회에서 종교가 어떤 구실을 할 수 있는가에 대 해 많은 생각을 하게 한다. 이렇게 전통은 새롭게 창조되는 것이다. 하루 종일 행진을 따라다니느라 다리가 매우 아프다.
축제의 마을은 영원히 존재할 건가
12월31일(화)
96년의 마지막날. 올해의 마지막 해를 보내는 것이라 그런 것인지, 아니 면 새해를 맞이하는 것이라 그런지, 하여간 철이 들었나보다. 모처럼 빗 자루를 들고 집안을 청소했다. 그리고 오랜만에 연구노트를 놓고 홀가분 한 몸으로 이집저집 드나들며 이야기를 나누고, 청소와 음식 만드는 것을 도와주며 시간을 보냈다. 그렇게 오후가 훌쩍 가고, 또 그렇게 밤이 왔다 . 밤 10시께 도냐 델피나집에서 피냐타놀이(눈을 가리고 작대기로 과자, 과일 등을 넣어 만든 허수아비를 부수는 놀이)를 했다. 처음 이곳에 왔을 때 지도교수로부터 소개받은 델피나를 나는 어머니라 불러왔는데, 그의 아들·손자들은 나를 형제·삼촌처럼 대한다. 그들과 함께 성당으로 향했 다. 나는 신자는 아니지만, 성당에서 마을 사람들과 새해를 맞이했다. 밤 12시가 가까워지면서, 폭죽이 밤하늘을 수놓고, 드디어 새해를 알리는 교 회의 종소리가 울렸다. 모든 사람들은 서로 포옹하며 새해의 건강과 행운 을 기원해준다.
이곳에서 생활한 지 벌써 1년이 되어간다. 이젠 어느 집이라도 마음 편하 게 들어가서 물 한잔을 얻어 마실 수 있게 됐다. 그들의 삶의 양식을 이 해하기 위해 얼마나 많은 길을 우회해야만 했던가. 오늘 다시 ‘첫걸음마 를 배우는 자세로 열심히 저들과 함께 생활하자’고 다짐한다. 이렇게 한 해를 보내며 다시 다가올 멕시코의 농촌생활에 새로운 기대를 걸어본다.
테포스틀란= 김세건 통신원
© 한겨레신문사 1997년02월27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