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영화 |
1997년02월27일 제 146호
|
|---|
(사진/감독 이창동/주연 한석규,심혜진, 문성근)
최미애/ 영화평론가
초록물고기의 생생한 퍼덕거림, 당당하고 의젓하게 수년 동안 한곳을 지 켜온 집앞 고목의 짙푸름, 그 고목을 스치고 지나가는 바람의 속살거림, 그 바람을 물들이는 은은한 달빛, 그 달빛 그림자 아래서 사랑하는 사람 들과 함께 하는 평안한 꿈, 이것은 <초록물고기>가 푸르름 가득한 강물과 나무를 짓밟고 일어선 고층건물들, 부패하고 타락한 도시의 공기, 조잡하 기 이를 데 없는 환락가의 불빛, 그 불빛 아래서 질식당해가는 사람들의 꿈을 향해 보내는 메시지이다.
이미 연극과 문학계에서 명성을 쌓고 <그 섬에 가고 싶다>와 <아름다운 청년 전태일>의 시나리오로 영화계의 주목을 받고 있는 이창동 감독은 일 산 신도시개발로 뿌리를 잃어버린 사람들과 유흥가의 밤거리에서 소비산 업사회의 부스러기들을 주워먹고 사는 사람들의 삶을 그의 첫 영화에 담 는다. 이미 단단한 시멘트벽 뒤로 감금당해버린 과거에 대한 아련한 향수 를 주술처럼 불러들이는 그의 능력은 두드러져 보이고 그 과거 속에 묻어 나는 자연의 숨결을 탁월하게 담아내는 촬영은 놀랍도록 아름답다.
이제 막 군대를 제대한 막동이, 그의 고향은 신도시개발이라는 미명으로 치장되고 있지만 그에게는 아무런 희망이 없다. 그를 기다리는 것은 파출 부일을 하는 어머니와 다방종업원이 된 여동생, 달걀장수로 근근히 생계 를 꾸려가는 셋째 형과 알콜중독자가 된 말단경찰 둘째 형이다. 그래서 그는 뇌성마비에 걸린 큰 형처럼 마냥 순수하고 행복하게 세상을 바라볼 수 없다. 영화는 그들의 삶에 이런 비극을 안겨주는 사회의 이면을 드러 내 보이기 위해 암흑가 세계로 발길을 돌린다.
한장의 스카프가 인연이 되어 조직폭력배 보스 배태곤과 그의 정부 미애 가 사는 암흑가 세계에 발을 들여놓게 된 막동이는 그곳에서 자신의 분신 들을 만난다. 어린시절 배고픔을 면하기 위해 김밥을 훔쳐먹다가 유치장 신세를 지게 된 배태곤은 폭력을 통해 세상을 지배하는 방식을 익힌다. 그는 다시는 어두웠던 과거로 돌아가고 싶지 않은 욕망 때문에 암흑가의 비열한 약육강식의 논리대로 행동한다. 나이트클럽에서 노래를 부르며 배 태곤의 지시대로 몸을 파는 미애는 이 희망없는 세계를 떠나기 위해 수없 이 노력하지만 번번히 실패하고 심한 우울증에 빠져 있다.
<초록물고기>는 자기를 짓눌러오는 몰인정한 세상에 대해 폭력과 자기 파 괴로밖에는 저항할 수 없는 사람들의 모습을 그리고 있다. 그들은 나름대 로 영악하게 세상에 저항하려 하지만 그곳은 출구없는 폐쇄회로이다. 막 동이는 미애의 비참한 삶에 연민을 느끼고 그녀를 사랑하지만 이미 쇠잔 해질 대로 쇠잔해진 미애는 막동이의 순수한 사랑을 받아들일 수 없다. 배태곤은 자기를 돕기 위해 목숨을 걸고 상대조직 보스를 살해한 막동이 에게 감동하지만 그가 세상을 지배하고 있는 법칙을 어겼기 때문에 잔인 하게 그를 처치한다.
언제부턴가 한국영화에서는 암흑가 세계를 산업사회의 비정함에 대한 은 유로 사용하는 것이 하나의 전형화된 방법이 되었다. 이 세계는 영화가 말하고자 하는 모든 비극의 집결점이고 우리가 살아가는 사회에 대해 행 하고자 하는 비판의 도약대이다. 이 은유의 방법은 세상의 환부를 드러내 보이고 끊임없이 회귀하는 도시에 대한 악몽을 환기시키는 데 유효한 방 법이다.
그러나 마지막으로 이 영화가 취한 모든 부분적인 성공에도 한 가지 덧붙 이고 싶은 점은 왜 우리가 예리한 비판의 칼을 들고서도 항상 유흥가 주 변만을 맴돌아야만 하는가 하는 의문이다. 그 동안 많은 영화에서 안이한 방식으로 정착시켜버린 지하세계를 통한 은유는 이미 수사적 탄력을 잃은 사(死)비유가 되어가고 있다. 그래서 우리는 영화의 에필로그에서 막동이 가 생전에 사랑했던 짙푸른 고목을 발견하고 오열하는 미애의 허무함에 동조하지만 그 이상은 나아가지 못한다. 진정으로 우리가 초록물고기의 강인한 생명력을 되찾을 수 있는 방법을 발견할 수 있기를 간절히 소망한 다.
© 한겨레신문사 1997년02월27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