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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중음악 |
1997년02월27일 제 146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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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신중현씨는 현재 갖은 고생 끝에 한 허름한 스튜디오에 칩거하면서 창작활동에 몰두하고 있다.)
신현준/ 대중음악평론가
신중현 헌정음반 이 나왔다. 우리 문화에서는 보기
드문 ‘사건’이기에 반가운 느낌을 감출 수 없다. 영미권에서는 몇년 동
안 ‘헌정음반’이라는 포맷이 쏟아져 나왔고 이미 한풀 꺾인 상태라는
보도를 읽었음에도 불구하고. 우리 문화에서는 드문 정도가 아니라 본격
적으로는 최초이다.
신중현의 업적을 기리는 많은 뮤지션들이 뜻을 모아 그가 작곡한 곡들을
리메이크하여 두장의 레코드에 수록했다. 봄여름가을겨울, 김목경, 시나
위, 강산에 같은 이제 중견이 된 록/블루스 뮤지션들이 중심을 잡아주고,
복숭아, 윤도현밴드, 퀘스천스, Non Pig 같은 신예 밴드들이 밑에서 받쳐
주고, 사랑과 평화, 김광민, 한상원/정원영, 한영애, 이중산 같은 베테랑
뮤지션들이 노련하게 빈곳을 채워주었다. 진부한 표현이지만, 오래된 음
악을 새로운 감각에 맞게 편곡해서.
밴드 선정에 대해 불만스러워 할 팬들도 없지는 않겠지만, 그런 불만은
어떻게 하더라도 완전히 잠재울 수 없는 것이다. 이미 늦은 일에 시간을
더 허비할 수는 없는 일이다. 제목도 ‘a’ Tribute 아닌가.
강력한 하드록으로 편곡한 강산에의 <바람>, 그런지 톤의 기타와 고음의
애절한 보컬이 어우러진 시나위의 <꽃잎>, 윤도현의 건강한 보컬이 돋보
이는 <이제 그만 가보자>가 막을 열면, ‘낙원동의 전설’ 이중산의 연주
가 한국의 기타리스트들의 ‘실력’에 대해 자부심을 느끼게 만든다. 이
어 봄여름가을겨울이 <미련>을 연주하여 보헤미안 분위기를 잡아 가면,
젊은 록 밴드 퀘스천스의 신경질적인 기타 소음을 묻혀 놓은 <즐거워>가
분위기를 반전시킨다. 첫번째 디스크의 마지막 곡은 직접 들어 보라.
두번째 디스크
각 뮤지션이 원곡을 얼마나 잘 재해석했는지는 각자의 취향대로 판단할
몫이다. 이 디스크의 마지막 곡이자 신중현 예술의 집적인 곡의 편곡과
음색에 대한 평가도.
나는 신중현의 음악을 ‘좋아할’ 입장은 되지만, ‘평가할’ 주제는 못
된다. 설사 신중현이 직접 연주하지 않은 것이라고 해도 사정은 마찬가지
다. 청소년기에 마음을 사로잡았던 음악, 흥겨우면서도 구슬픈 한이 서린
듯한 멜로디 라인, 단순하면서도 화려하고 ‘야한’ 느낌을 주었던 코드
진행, 무엇보다도 와와(wah wah) 페달(강조해야 할 특정 주파수 대역을
페달을 통해 변화시켜 포만트(음량의 현격한 차이가 발생하는 지점)의 변
화를 주는 임팩트).
그런데 괜한 심술일까? 최근 들어 신중현의 음악에 대한 뒤늦은 평가가
이루어지고 있는 현상을 쌍수로 환영하다가도 마음 한구석에는 석연찮은
구석이 있다. 심정적으로 ‘바람직하다’는 판단과 ‘왜 이제 와서 이리
수선스럽게’라는 의문은 차원이 다른 문제다. 지금의 ‘신중현과 한국
록 계보 세우기’ 운동은 혹시 ‘신화만들기’와 ‘뿌리찾기’는 아닐까.
록 음악은 예외적 기간을 제외하고는 지난 40년간 세대 격차를 넓혀 왔다
. 많은 록 뮤지션들은 ‘Kill The Father!’를 때로는 공공연하게, 때로
는 넌지시 표출해 왔다(주의: 아버지는 ‘상징적’이고, 살해는 ‘무의식
적’ 표현이지, 실제 상황은 절대 아님. 이들 록 뮤지션을 인간망종 후레
아들로 생각지 마시길. ‘아버지’는 권위의 인격화된 상징 이상도 이하
도 아님).
그런데 시간이 지나면서 사태는 변했다. 60년대에 청년기를 보낸 이들이
중년이 되어 미국 ‘주류’ 사회의 일원이 되면서, 이들은 록 음악의 특
정한 계보를 만들어 내고 그 계보에 속하는 뮤지션들을 선별하여 신화로
만드는 작업을 전개해 왔다. 그로스버그라는 학자/평론가는 이를 “록 음
악 및 청년문화의 소유권을 둘러싼 투쟁”이라고 불렀다. 이런 ‘록 신화
만들기’ 작업의 절정은 1995년 클리블랜드에서 문을 연 ‘로큰롤 명예의
전당’일 것이다. 그곳에는 한때 ‘부친 살해’를 외치던 반항아들이 위
대한 업적을 세운 아버지로 변하여 경배의 대상이 되어 있다.
이런 현실을 ‘한심하다’고 비아냥거릴 필요는 없다. 그저 록 음악의 역
사적 운명을 객관적으로 바라보아야 할 필요를 느끼면 그만이다. 90년대
미국 ‘X세대’들의 구호가 ‘Kill The Hippie Parents’라는 사실은 그
리 놀라운 일은 아니다.
한국의 록 공동체(만약 그런 게 있다면)는 그동안 신중현을 ‘한국 록 음
악의 대부’로 불러왔다. 그리고 이 헌정음반을 반김으로써 비로소 공식
적 의례를 마친 듯한 기분이다. 그러면 이제 남은 것은 ‘Kill The Godfa
ther’인가?
그렇지만 아니다. 한국의 록 음악은 이제까지 살해할 부친을 갖고 있지
못하다. 그것은 아버지가 몇천평의 대저택에 살고, 전세 비행기로 이동하
면서 고급 호텔에 묵고, 배에는 지방살이 가득할 때나 가능하거나 필요한
일이다. 반면 우리의 대부는 갖은 고생 끝에 지금은 한 허름한 스튜디오
에 칩거하면서 창작 활동에 몰두하고 있다.
나의 심술은 그저 고약한 성격 탓이거나, 그렇지 않더라도 신중현의 업적
을 충분히 인지하고 있는 사람들에게만 해당된다. 그의 업적을 업신여기
거나 무관심한 다수가 있는 현실에서 그의 ‘우상화’는 한시적이라도 필
요한 것일지도 모른다. 어쩌면 70년대에 독재정권의 족쇄에 묶인 신중현
개인의 음악 인생 못지 않게, 현재 그를 둘러싼 담론적 현실의 양분, 즉
소수의 숭배와 다수의 무관심이라는 현상이 더욱 비극적이다. 또 신화가
될 수 없기 때문에 신화가 더욱 짙어진다는 역설도 비극이다.
한국의 록 음악에는 살해할 아버지, 즉 넘어서야 할 권위가 없다. 아마도
신중현에 대해 ‘가볍게 웃으면서’ 얘기할 수 있는 날 그에 대한 헌정이
마무리되지 않을까. 그런 의미에서 신중현에 대한 헌정은 아직 끝나지 않
았다.
© 한겨레신문사 1997년02월27일
뿌리찾기를 마다할 이유는 없지만…
숭배와 무관심 사이의 비극적 현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