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문화시대 |
1997년02월27일 제 146호
|
|---|
문학작품이 영화, 방송드라마, 연극 등으로 만들어지는 일이 흔해지면서 우리나라에서도 2차저작권 문제가 작가·출판계의 새로운 현안으로 등장 하고 있다.
<펠리칸브리프>의 존 그리샴, <쥐라기 공원>의 마이클 클라이튼 같은 미 국의 초대형 베스트셀러 작가들이 수백만달러를 받고 소설의 영화판권을 팔고 있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한국에서도 액수는 크지 않지만 문 학작품의 영화화나 드라마화는 새로운 경향이 아니다. 최근만 하더라도 방송사의 문예물을 비롯해 이인화의 <영원한 제국> 장정일의 <너에게 나 를 보낸다> 하일지의 <경마장 가는 길> 공지영의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 권현숙의 <인샬라> 등이 영화화됐다.
출판시장 다변화에 맞춘 제도적 뒷바침
미국을 비롯한 외국의 경우 문학작품의 2차판권은 작가와 출판사가 5:5 등 쌍방이 합의한 일정 비율에 따라 분배된다. 즉 출판사가 작가의 이미 지 관리, 작품 광고. 홍보, 매니지먼트 및 에이전트(계약대행) 활동을 대 행하는 대가로 출판사가 일정 지분을 챙기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나라는 이런 계약문화가 정착되어 있지 않아 대개는 작가가 직접 영화사 방송사 등과 계약을 맺는다. 때로는 양쪽을 잘 아는 제3자가 중개하기도 하지만 이 경우도 술 한잔 사면 되는 것이 보통이다. 물론 원작료도 일정한 기준 이 있는 것은 아니라 작품의 인기도나 작가의 유명도에 의해 좌우된다. 그러나 대부분의 경우 작가쪽의 ‘교섭능력’에 따라 값이 정해진다고 보 면 된다.
하지만 출판시장이 개방되면서 점차 출판영업의 다각화가 요구되고, 이른 바 영상문화가 대형 비즈니스로 등장하면서 한국문단과 출판계도 합리적 인 계약문화의 필요성이 점차 현실적인 문제로 나타나고 있다.
연초 문단의 ‘뜨거운 감자’로 떠오른 ‘2차저작권 논쟁’은 그 대표적 인 예이다.
2차저작권이란 소설을 예로 들 경우 외국어로 번역·판매되거나 영화 드 라마 시디롬 만화 등 다른 형태로 재생산될 때 발생하는 소유권을 말하는 것으로 저작권법상 원저작자의 고유권리로 인정되고 있다. 그러나 미국이 나 유럽에서 보듯이 2차저작권을 작가와 출판사가 공동소유하기도 한다. 물론 작가가 이를 거부한다면 이런 공동소유형태의 계약이 이뤄질 수 없 다.
이처럼 작가의 고유권리에 속하는 2차저작권의 귀속 문제가 새삼스럽게 현안으로 떠오른 것은 일부 유명 문학출판사들이 우리 문학의 해외소개 활성화와 2차저작권료의 합리적 결정 등을 명분으로 출판사의 지분을 요 구하고 나서면서부터이다. 지난해 말부터 일부 출판사들 사이에서 조심스 럽게 제기된 이 문제는 그러나 결론부터 얘기하면 원점으로 돌아갔다. 작 가들이 강력하게 반발하고 나섰기 때문이다.
창작과비평사 문학과지성사 문학동네 세계사 등 대형 문학출판사들은 지 난해 12월부터 모임을 갖고 2차저작권을 일정 비율에 따라, 번역출판의 경우 5:5, 영화 드라마화 등 7(작가):3 따위로‘분배’하는 문제를 출판 계약서상에 명시하는 ‘표준계약서’를 공동으로 만들어 사용하자는 데 의견을 모았다. 단행본뿐 아니라 영화 드라마 연극판권까지 함께 계약하 는 이른바 ‘매머드 계약’을 우리 출판계도 도입해보자는 취지였다.
이런 소식이 알려지자 문학작품 발표가 활발한 30~40대 작가들이 출판사 의 이런 움직임을 “작가의 재산권인 저작권을 원천적으로 제약하고, 작 가를 특정 출판사에 예속시킴으로써 작가 고유의 창작정신을 굴절시킬 위 험이 있는 상업주의적 발상” “우리나라 출판사들이 외국 출판사처럼 출 판 이외의 매니지먼트나 에이전시 능력을 제대로 갖추지 못한 상황에서 계약관행만을 도입하자는 것은 출판사 이기주의” 등으로 비판하고 나섰 다.
최인석 김영현 이순원 구효서 공지영 김인숙 김형경 차현숙 이혜경 은희 경 채영주 임영태 등 작가들은 지난 2월13일 모임에서 이런 인식을 같이 하고 ‘2차저작권에 대한 우리의 입장’이란 문건을 통해 “1차 출판계약 시 2차저작권 귀속문제의 결정을 요구하는 출판사와는 계약을 거부한다” 는 입장을 해당 출판사와 언론사에 전달하기로 했다.
작가들 강한 반발로 원점에서 재론
작가들이 이처럼 강경하게 반발하자 출판사들도 “작가들이 반대한다면 굳이 이를 강행할 생각이 없다”며 한발 물러섰다. 그러나 “작가들은 변 화하는 출판환경 속에서 장기적으로 무엇이 작가에게 더 이익이 되고 우 리 문단의 발전에 도움이 되는 것인지를 심사숙고해주기 바란다”며 아쉬 움을 나타냈다.
출판사쪽은 애초 2차저작권 귀속문제를 제기한 것이 결코 출판사 이기주 의가 아니라우리 문학의 해외 소개를 활성해 보자는 데 기본 취지가 있었 다고 주장한다.
2차저작권 귀속문제를 주도적으로 제기했던 문학동네 강태형 사장은 “애 초 이 문제는 작가의 저작권을 출판사가 나눠가지겠다는 것이 아니라, 2 차저작권 행사를 위한 출판사의 구실을 인정해 달라는 것이었다”고 말한 다. “우리 문학작품을 해외에 적극소개하고 번역출판계약을 맺으려면 출 판사가 외국어로 작가와 작품을 북페어나 인터넷 등을 통해 적극 홍보하 고 구체적으로 계약을 대행할 수 있어야 하는데, 그러려면 그에 따른 영 업 인력과 비용이 필요하다. 영화나 드라마화도 마찬가지다. 작가가 출판 사에게 그 대행을 위임해 두면 계약시 작가에게 불리할 것이 없다. 출판 사도 2차시장 진출을 위한 판매 홍보 및 광고계획 수립 등 장기적인 마케 팅 계획을 수립할 수 있다. 그러나 현재 개별 출판사의 인력·자본 역량 은 이에 미치지 못하기 때문에 제도를 도입하되 2~3년의 유예기간을 두고 출판사들이 공동으로 이런 영역을 개척해 보자는 취지였다. 결코 출판사 들이 작가의 2차저작권에 무임승차하자는 게 아니었다.”
이미 2차저작권 귀속 여부를 계약서에 담아오고 있는 창작과비평사의 이 시영 부사장도 작가가 반대한다면 일률적으로 강요할 생각이 없다는 입장 이다. 창비의 경우 유홍준의 <우리문화유산답사기>를 시디롬으로 제작하 면서 저작권료를 7(작가):3(출판사)으로 나눴다. 반면 황석영의 <장길산> 은 작가의 반대로 2차저작권 문제를 명시하지 않았다. 앞으로도 이처럼 사안별로 대처하면 별 문제가 없지 않겠느냐는 것이다. 민음사도 이 문제 를 개별 작가와 출판사간의 계약상의 문제라는 쪽으로 원론적 입장을 정 리했다.
작가쪽도 일단 2차저작권이 작가의 침해받을 수 없는 고유권리임을 확인 하는 한편 점차 합리적인 계약관행이 요구되는 상황을 받아들이고 있다. 2월13일 작가들의 모임에서 공동변호사 선임이나 작가들이 협의체 수준의 기구를 만들어 작품계약 및 분쟁해결을 대신하는 안이 제기되기도 했다. 현실적으로 출판사에 구속되지 않으면서 계약에 따른 번거로움과 불이익 을 최소화해보자는 생각이다.
그러나 출판사의 주장처럼 작가들도 우리보다 높지 않은 수준의 작품들이 출판사의 적극적인 영업활동으로 해외시장에서 유리하게 판매되고 있는 외국의 사례를 장기적인 안목에서 고려해야 할 시점에 이르지 않았느냐 하는 지적이 제기되고 있다.
기본적으로 영리목적인 출판사에 이익발생의 동기를 부여함으로써 적극적 으로 작품의 해외 판매나 매니지먼트 활동에 나설 수 있도록 하는 방안이 2차저작권의 유연한 행사 이외에 무엇이 더 있을지를 작가들도 함께 고민 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합리적 계약관행 정립 미룰 수 없다
문학동네 강태형 사장은 “출판사들이 제대로 능력을 갖추려면 지금부터 매년 5천만~6천만원씩 이 분야에 투자해도 10년 안에 이익을 내기 어렵다 . 작가들이 반대하는 상황에서는 어느 출판사도 이런 투자를 할 수 없을 것이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면서 마냥 지금처럼 우물안 개구리식으로 21세기를 맞는 것이 옳은지 심각하게 생각해볼 때가 아닌가”라고 강조한 다.
민음사 이영준 주간은 “작가나 출판사 모두 합리적인 계약관행의 필요성 이 점증하고 있는 현실에는 동의하고 있다고 본다”며 “이번 일은 그런 변화의 과정에서 생긴 진통으로 이해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한다. 출판 시장 개방, 영상문화의 성행 등 변화하는 시대에 맞춰 작가의 이익을 보 호하면서 문학작품의 2차시장 영역을 넓혀가기 위한 폭넓은 토론과 대국 적인 합의의 도출을 기대해본다.
이인우 기자
© 한겨레신문사 1997년02월27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