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술이야기 |
1997년02월27일 제 146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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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세는 영웅을 만들고, 영웅들은 술 속에서 자신들의 포부를 밝히고 회한 을 푼다. 동서양 고전 중의 고전인 <삼국지>에는 수많은 영웅들과 그들의 술자리가 등장한다. 필자는 <삼국지>를 수시로 읽는데, 여기에 나오는 술 자리의 모양을 살펴보면 아주 재미있다. 이 술자리들은 그 의도에 따라 몇개의 유형으로 나뉜다.
유관장 3형제는 도원결의에서 하늘에 술을 올리고, 스스로 술잔을 나누면 서 죽을 때까지 변하지 않을 의를 맹세한다. 수많은 전쟁터에서 전투를 앞두고 벌이는 술파티가 있는데, 이때의 술은 결심을 다지는 것이었다. 동탁은 자주 연회를 열었는데 이는 자신의 권세를 뽐내고, 육체의 쾌락을 위한 술자리였다. 여포 또한 처첩과 어울려 자주 술판을 벌였는데 같은 유형이었다. 유비는 손권의 동생을 아내로 맞고 반년 동안을 매일 술로 지낸 적이 있다. 방통이 조그마한 현령으로 있을 때, 1백일 동안 업무를 폐하고 술에 젖어 지냈는데 이것은 세월을 달래느라고 마신 술이었다.
왕윤은 초선과 함께 여포와 동탁을 술자리에서 꾀어낸다. 몇 차례의 술자 리 끝에 둘을 이간하는 데 성공한다. 현대의 접대술이 바로 이러한 유형 인데, 어떤 의도를 가진 사람이 술자리에서 상대방을 녹여 자신의 뜻을 관철하는 것이다. 허창에서 조조가 유비를 청하여 단독 술자리를 마련하 여 천하의 영웅에 대하여 논하였다. 주유는 제갈량을 청해 천하의 향방을 논하는 술자리를 만들었다. 이는 상대방의 의중을 떠보기 위하여 마신 술 이었다.
관우는 화옹을 베고 돌아와 제후들 앞에서 술을 마신다. 조조는 전쟁이 끝나면 연회를 열어 공로자들에게 술을 내린다. 이것은 축하의 술이다. <삼국지>의 술꾼 중 가장 호탕한 인물은 장비일 것이다. 술에 취하여 유 비를 모욕하는 독우(감찰관)를 나무에 매달고 매질할 정도로 의협심이 높 았다. 그는 관우가 형주에서 죽자, 육손과의 전투에 앞서 대취하여 수하 장졸에게 살해당하였다. 이것은 울분을 달래기 위한 술이었을까.
이종기/ 두산씨그램 생산팀장
© 한겨레신문사 1997년02월27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