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쪽이 부부의 ‘작은 세상’
1997년02월27일 제 146호 한겨레21

유치원에 돈 바른다?

하예린이 이제 세번째 유치원 졸업식을 맞게 됐다. 지난 두번이 수료식에 해당된다면, 이번은 초등학교 입학 바로 전 졸업식이므로 유치원 졸업식 으로는 이번이 진정한 졸업식이 될 터이다. 하지만 유치원 졸업식이라면 뭔가 어린이다운 구석이 있으리라는 생각은, 두번의 졸업식으로 이미 기 대를 접게 됐다. 두번의 경험은 유치원에서도 하나같이 사각모를 씌우고 가운을 입혀서, 어린아이들을 졸업식이라는 이름으로 행사장에 모이게 하 고, 상장을 주고, 사진을 찍는 과정의 반복이었기 때문이다.

지난 두번의 졸업식의 경우 유치원에서는 가정통신문을 통해서 ‘사진비 ’를 보내달라고 했다. 정확한 기억은 나지 않지만 사진 비용이 엄청났다 . 남편이 무슨 사진비가 이렇게 비싸냐고 투덜댔지만, 나는 부모가 돼서 이런 일에 왈가왈부하고 싶지 않은 게 솔직한 심정이었기 때문에 아이 편 에 조용히 사진비를 보냈다.

어쩌면 졸업식 사진에 관한 나의 우울한 기억도 이런 행동에 한몫 했을 것이다. 나는 초등학교 졸업식 사진이 없다. 졸업식 행사날 사진을 찍었 지만 나오지 않았고, 며칠 뒤 휴일에 아버지께서 나를 위로한다고 다시 한번 졸업한 학교에 가서 또 사진을 찍은 경험이 있다. 그러나 사진이 또 나오지 않았다. 그때 아버지가 “졸업식은 앞으로도 여러 번 있을 테니 그때 가서 사진 찍으면 되지”하시며 위로하던 기억이 난다. 하지만 그게 그렇질 않았다. 당시에 예민한 나이여서 그랬는지 나는 내색은 하지 않았 지만, 어쩌다 일이 잘 안 풀리면 졸업식 생각이 나면서 한없이 우울하고 서러워지는 것이었다. 마치 그 졸업식이 내 운명의 불길한 징조로까지 생 각된 적도 있었다.

하지만 가능한 한 아이가 즐겁게 졸업식을 맞게 하고 싶었던 나는 아이의 졸업식이 끝난 뒤 막상 사진을 받고 나서 어안이 벙벙해졌다. 사진의 크 기가 상당히 컸는데, 가장자리에는 조잡한 액자가 달려 있었다. 우리 집 안의 환경미화 담당자인 남편은 그 흉물스러운 액자에 혀를 차면서 아예 그것을 떼어내고 사진만 꺼내었다. 액자를 버리고 보니 정말 너무 비싼 사진이었다! 사진비를 청구할 때 사진 크기에 대해서 아무런 언급도 없고 , 액자를 해서 걸어 놓을지 말지 파악도 하지 않은 채 무조건 액자에 넣 어 판매한다는 것도 이해가 되지 않았다.

그런데 이번 졸업식은 사진값과 함께 졸업비까지 보내라고 하지 않는가. 아니, 유치원 다녔으면 당연히 졸업하는 것이고, 그것도 수업의 연장 아 니냐는 생각에 고개를 갸우뚱하던 나는 갑자기 화가 나기 시작했다. 지난 번에도 유치원에서 난방비 보내달라고 해서, 아니 유치원시설이면 겨울에 난방을 하는 것은 당연한데 왜 난방비를 따로 받느냐는 생각이 든 적이 있기 때문이다. 그때 못 따진 게 후회가 되기 시작했다.

하지만 결국 이번에도 나는 또 조용히 아이의 가정통신문에 따랐다. 아마 많은 부모들이 그렇게 했으리라. 이것은 조용히 마무리를 하고 싶다는 우 리의 전통적인 생각일 수도 있고, 아이 맡긴 부모 입장에서 아이의 선생 님과 이런 얘기를 한다는 것에 대한 심적인 부담일 수도 있다. 그럼에도 이러한 우리의 위치와 태도가 유치원과 부모가 함께 아이들 교육을 한다 기보다는, 일방적으로 한쪽이 또 한쪽에 맞춰나가는 교육이 되게 하는 것 은 아닌지 묻게 된다. 그리고 그 직접적인 피해자는 어른들의 행사처럼 형식에 갇혀 그에 따르도록 요구받는 우리 아이들일 것이다.

변재란/ 영화평론가

© 한겨레신문사 1997년02월27일


커버스토리 포커스 문화시대 특집 지난호 전체보기 처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