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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7년02월27일 제 146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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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품인기’인가, 아니면 한국 프로농구의 발전을 예고하는 좋은 징조인 가.지난 2월1일 막을 올린 한국프로농구(KBL: Korean Basketball League)가 용병들의 활약에 힘입어 예상밖의 폭발적 인기를 누리고 있다. 프로농구 출범과 관련해, 그동안 농구계에서는 “시기상조다”, “강행해야 한다” 는 찬반론이 엇갈려 있었다. 때문에 93년 5월 대한농구협회 안에 ‘프로 농구추진위원회’가 설치된 이후 3년9개월여의 우여곡절 끝에 국내 프로 농구가 결실을 보게 되었다.
어쨌든 농구 본고장 출신 용병의 도입으로, 프로농구 개막 이후 그동안 미국 프로농구 (NBA)에서나 볼 수 있었던 ‘덩크슛’이 매경기마다 줄이 어 터져 나오는 등 묘기가 백출하자, 국내 농구팬들은 “농구가 더 재밌 어졌다”며 입을 다물지 못하고 있다. 하지만 “한국농구인지, 용병들의 농구인지 분간이 안 간다”, “재미는 있지만 왠지 뒷맛이 개운치 않다” 는 등의 회의적 반응도 농구팬들 사이에서 심심치 않게 나오고 있다.
그럼에도 KBL은 일단 성공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어렵게 발걸음을 내 디딘 KBL에 대해 집중 점검해본다. 편집자
(사진/농구 본고장 출신의 용병선수들은 국내선수들이 넘볼 수 없는 슬램덩크 등 고도의 기술을 자유자재로 구사한다.)
필리핀, 대만, 중국에 이어 아시아에서 4번째로 프로의 길에 들어선 한국 농구는 이제 아주 새로운 양상으로 치닫고 있다. 전에 맛볼 수 없었던 재 미있는 경기장면과 새 풍속도를 그려내고 있는 것이다.
한국농구는 그동안 특유의 ‘속공 플레이’와 ‘화려한 외곽슛’, 이 두 가지 요소로 팬들의 인기를 누려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또 경기외적 으로는 ‘오빠부대’의 열광적 성원도 그런 인기를 가능하게 한 요소였다 .
그러나 프로화에 따른 새 규칙의 실시와 용병들의 합세는 이런 우리 ‘토 종농구’에 일대변화를 일으키고 있다. 우선 미국 출신의 젊은 용병들이 대거 가세함으로써, 덩크슛 등으로 대표되는 ‘NBA 특유의 파워있는 플레 이’가 우리 농구코트에서도 선을 보이게 됐다는 점이다. 이런 선진기술 을 구사해본 경험이 없는 국내 선수들로서는 이제 어깨 너머로, 혹은 실 제 몸을 부딪치며 이를 익히고 이에 대항할 수 있는 기회를 얻게 된 셈이 다. 농구팬들로서도 슬램덩크, 백덩크, 덩크블로킹 등 평소 텔레비전을 통해서나 볼 수 있었던 고도의 기술을 경기현장에서 직접 경험할 수 있게 됐다.
환상적 플레이 속출하며 볼거리 풍성
그전 아마 때와는 전혀 다른 규칙이 도입된 것도 농구의 재미를 더욱 부 추기고 있다.
먼저 공격제한시간이 30초에서 NBA 수준인 24초로 단축된 점이 주목할 만 하다. 이로 인해 선수들은 예전보다 속도감있는 경기를 펼쳐야 한다. 공 수전환이 빨라지고, 불필요한 패스가 줄어들게 되는 것은 당연한 귀결. 실제 매경기 농구코트에서는 숨 쉴 틈 없는 공격으로 팬들을 사로잡고 있 다. 공격시간 단축으로 득점이 줄어들 것이라는 당초 우려와는 달리 득점 도 많아졌다. 개막전 이후 1백점대를 넘는 경기가 쏟아지고 있다. 지난 농구대잔치에서 경기당 평균 77.8득점을 올리던 서울방송가 개막전에서 무려 1백8점을 올린 것은 대표적 예다.
KBL의 경기규칙은 국제농구연맹(FIBA)의 룰을 원칙으로 삼고 있지만, NBA 룰을 많이 따랐다. 공격시간 제한 말고도, ‘지역방어 금지’가 바로 그 것이다. 수비팀의 백코트에서 3초 제한구역에 인접하여 공격하는 선수를 수비하는 선수는 제한구역 안에 있을 수 있다. 공이 제한구역 밖에 있을 때 그외의 수비선수는 제한구역 안에 들어올 수 없다. 단 제한구역 안으 로 들어가는 선수를 따라가며 수비를 할 수는 있다. 그렇지 않을 경우 불 법수비(Illegal Defence)가 된다. 지역수비를 금지하고 대인방어만 할 수 있게 됨에 따라, 자연 개인기량이 우수한 선수들의 설 자리가 넓어졌다. 시간이 지날수록 많이 나아졌지만, 이에 적응 못해 애를 먹는 선수도 나 왔다. 서울방송의 정재근은 지난 2월1일 개막전 4쿼터에서, 두번째 지역 방어 위반으로 5반칙을 기록해 코트서 쫓겨나야 했다. 각 팀이 처음부터 끝까지 체력소모가 엄청난 대인방어를 펼치다 보니, 경기후반에는 체력이 달려 범실이 잦고, 수비도 허술해질 수밖에 없는 양상도 나오고 있다.
새 규칙 가운데 특이한 점은 심판이 한 사람 더 늘어 ‘3심제’가 됐다는 것이다. 이에 따라 NBA 심판으로부터 합숙훈련까지 받은 심판들은 예전보 다 더 세밀하게 선수들의 파울을 잡아낼 수 있게 됐다. 또 NBA처럼 쿼터 제를 도입해, 1쿼터에 10분씩 4쿼터로 경기를 진행한다. 1쿼터를 12분씩 잡고 있는 NBA에 비해 시간이 약간 축소된 게 다르다. 특히 경기 종료 2 분 전부터는 야투가 성공되는 순간부터 실점한 팀이 첫 패스를 할 때까지 시간이 정지됨에 따라, 박빙의 득점차로 경기가 진행될 경우 막판까지 승 부예측을 불허한다. 종료 2분 전 선수가 작전타임을 요청할 수 있는 점도 색다르다.
벌금제도도 대폭 강화해 스포츠맨십에 어긋나는 행동에 철퇴를 가하도록 하고 있다. 가장 큰 벌금을 무는 행위는 코트에서의 폭력이다. 직접 폭력 행위에 가담한 경우, 3백만원 이하의 벌금을 물어야 한다. 또 심판이나 경기기록원 등에 대해 공개적으로 비난하는 경우도 1백만원의 벌금이 부 과된다. 그리고 경기가 끝나면 1분 내에 경기장을 떠나야 하며, 그렇지 않으면 개인당 10만원의 벌금이 내려진다.
“용병 활약에 따라 승패 결판난다”
(사진/국내 프로농구가 박진감 넘치는 플레이로 팬들을 사로잡고 있다. 스타선수를 환호하던 오빠부대의 자리를 20,30대 남성들이 차지하고 있다.)
지난 2월1일 출범한 한국 프로농구는 이런 새 규칙에 따라 ‘영원한 승부 , 뜨거운 감동’을 슬로건으로 내건 가운데, 각 팀이 초반부터 치열한 접 전을 벌이고 있다. 초반보다 열기가 못한 감은 있지만, 경기장마다 달라 진 농구경기를 보기 위한 관중들의 열기가 후끈하다. 원년리그에 출전한 팀은 모두 8개팀. 부산 기아 엔터프라이즈, 원주 나래 블루버드, 광주 나 산 플라망스, 인천 대우증권 제우스, 대구 동양 오리온스, 수원 삼성 썬 더스, 안양 서울방송 스타즈, 대전 현대 다이냇 등으로 각기 지역을 연고 로 하고 있다. 여기에 경남 LG 세이커스, 청주 진로 카스가 조만간 공식 창단식을 갖고 출범하며, 올 후반기에 시작되는 다음 리그부터 출전하게 된다.
FILA배 97프로농구로 명명된 원년대회는 8개팀이 ‘홈 앤드 어웨이’ 방 식으로 경기를 치르는데, 팀당 21경기씩의 정규시즌을 갖는다. 이후 6팀 을 추려 플레이오프전을 갖고 챔피언을 가린다. 플레이오프전은 7전4선승 제의 토너먼트 방식으로 치러진다.
국내 프로농구가 출범초기부터 뜨거운 호응을 얻고 있는 이유는 무엇보다 용병들 때문이다. 용병들은 확실히 국내 농구계에 신선한 자극제가 되고 있다. 이들은 농구 본고장에서 익힌 다양한 선진기술과 특유의 몸놀림으 로 이미 각 팀에서 주전을 꿰차고, 경기리더로 부상하고 있다.
지난 2월2일 부산 사직체육관에서 열린 부산 기아와 대전 현대의 경기는, 용병의 위력을 실감나게 하는 한판이었다. 용병 드래프트에서 1순위로 기 아에 지명돼 일찌감치 주목을 받은 클리프 리드(27)는 이날 무려 5개의 덩크슛을 터뜨리며 경기장을 찾은 농구팬들을 흥분의 도가니로 몰아넣었 다. 그는 또 이날 팀의 94득점 가운데 30%에 육박하는 31득점을 올려, 기 아가 쾌조의 스타트를 끊는 데 견인차 노릇을 했다.
용병들의 활약상은 기록으로도 잘 나타난다. 지난 2월10일 처음으로 중간 집계한 득점 등 5개부문 랭킹을 용병들이 거의 점령해버린 것이다. 득점 부문에서는 전희철(동양 오리온스)만이 네이트 터브스(대우증권 제우스) 와 함께 공동 7위에 올랐을 뿐이다. 나머지 1~10위는 모두 용병들의 차지 였다. 리바운드도 랭킹 10위까지 모두 용병들이 차지했다. 반면 도움주기 에서 기아의 허재와 강동희가 나란히 1, 2위에 올라 눈길을 끌었다. 3점 슛 부문은 정인교(19개), 김상식(15개) 등 한국선수들의 독무대였다. 외 곽슛이 강한 한국농구의 특징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코트에 보이지 않는 국내 스타들
현재 한국무대에서 뛰고 있는 용병들의 기량은 그런 대로 좋은 편이다. K BL에 따르면 이들은 처음 3백50명의 경쟁자 가운데 서류전형으로 추린 40 명에서 뽑힌 선수들이다. 모두 미국 출신으로 지난해 11월 로스앤젤레스 에서 실시한 KBL의 용병선수 드래프트에서 선발됐다. 김영기 한국농구연 맹 전무는 “이들의 기량은 미국 대학농구(NCAA) 수준”이라면서 “기량 도 기량이지만 학교성적도 좋고, 매너도 좋다”고 말한다. 또 이들은 술 과 담배는 물론 커피도 안 마시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용병들의 도입으로 단기적으로는 국내 프로농구가 박진감 넘치는 플레이 를 보이며 팬들의 사랑을 받고 있지만, 장기적으로 부정적 영향을 미칠 것이라는 지적도 설득력있게 제기되고 있다.
그 첫번째는 우리 농구가 죽는다는 것이다. 현재 팀당 2명씩 모두 16명의 용병이 8개팀에서 거의 주전으로 활약하고 있다. 5명의 주전 중 40%가 용 병 차지인 셈이다. 때문에 그만큼 국내선수들의 설 자리가 좁아졌다. 이 는 국내 농구 저변확대에 심대한 영향을 미치고, 외국선수에 대한 의존도 를 더욱 심화시키는 악순환을 초래할 것이라는 지적이다. 특히 용병들의 대부분이 센터를 맡게 됨에 따라, 국내의 센터 지망생이 급격히 줄어들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다. 실제 우리보다 프로농구를 먼저 시작한 필리핀 과 대만의 농구가 아시아권에서 급격히 추락한 것은 이런 이유 때문이라 는 게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사진/프로농구는 수준 높은 경기력과 함께 여러 볼거리로 관객의 흥미를 불러일으키고 있다. 치러이러들이 작전시간과 중간 휴식시간에 율동을 선보이고 있다.)
그러나 이런 우려에 대해 KBL쪽은 그렇지 않다며 고개를 흔들고 있다. 용 병의 키를 제한하고 있기 때문에, 그럴 가능성이 거의 없다는 것이다. KB L은 각 팀 보유 용병 2명 중 한명은 2m2 이하, 한명은 1m90 이하로 신장 을 제한했다. 국내 최고 키의 선수보다 작은 선수들을 데려와, 국내파와 용병간에 기술대결을 유도함으로써 국내 농구발전을 꾀할 수 있다는 것이 다. 필리핀의 경우, 용병들의 신장을 제한하지 않고 2m20이나 되는 선수 들을 마구 수입함으로써 자국농구의 추락을 부채질했다는 게 KBL의 분석 이다.
몸값도 국내선수와 크게 차이가 없다. 허재와 전희철이 각각 1억2천만원 의 연봉을 받아 국내선수 중 최고를 기록하고 있다. 지금 국내 코트서 뛰 고 있는 용병들은 계약금없이 5개월 계약만을 체결했으며, 모두 한달에 1 만달러씩 받고 있다.
농구 전문가들의 견해는 대체로 ‘용병 긍정론’이다. 우물 안 개구리 수 준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국내 농구스타들이 함께 뛰면서 보고 배울 게 많다는 것이다. 사실 국내 농구스타들은 그동안 오빠부대의 환호에만 취해 하늘높은 줄 몰랐다. 한국 최고의 스타라는 선수가 걸핏하면 음주운 전으로 말썽을 부릴 정도였다. 그러면서도 국제대회에 나가면 밑바닥권을 헤매기 일쑤였다. 농구의 프로화와 기량있는 용병의 도입은, 자기도취에 빠져 있던 국내선수들에게 자기관리를 철저히 하고, 꾸준히 기량을 연마 해야만 냉엄한 승부의 세계에서 살아남을 수 있다는 경각심도 새삼 일깨 워주고 있다.
저변확대 없으면 용병 독무대 지속
용병들로 인해 현재 경기적인 측면에서 바람직하지 못한 현상도 나타나고 있다. 용병 센터들의 ‘외도’가 바로 그것이다. 용병들은 대개 미국에서 활동할 때, 가드나 포워드로 뛴 선수들이다. 2m2 이하나 1m90 이하의 키 로는 미국에서 센터로 명함을 내밀 수 없는 것이다. 그런데 탄력성이 좋 고, 몸싸움에도 능한 이들은 그런 키로도 한국에서는 골밑을 장악하고, 리바운드를 잡아내는 센터 역할이 가능하다. 때문에 각 팀은 너나없이 용 병들을 센터로 기용하고 있다. 그동안 이름을 떨치던 김유택(기아), 정경 호(현대), 표필상(서울방송) 등이 후보로 밀린 것도 이 때문이다. 그런데 용병 센터들이 ‘골밑 고수’ ‘리바운드’라는 본연의 의무를 버리고 외 곽으로 빠져 나가는 경우가 많아, 감독들을 곤혹스럽게 하고 있다는 얘기 까지 나오고 있다. 국내 센터들의 입지는 좁아지는데, 용병들이 이런 기 현상을 보이는 것은 심각한 문제가 아닐 수 없다.
농구 전문가들은 결국 프로농구의 발전을 위해서는, 중·고교나 대학 등 의 저변확대가 시급한 것으로 지적한다. 현재 남자 프로팀이 10개인 데 비해, 선수공급원인 남자 대학 1부팀이 12개에 불과한 것은 열악한 현실 을 그대로 보여주는 것이다. 전문가들은 앞으로도 이런 추세가 계속되면, 용병 수입은 갈수록 불가피해져 거꾸로 국내 저변을 좁히는 결과를 초래 할지도 모른다고 우려하고 있다.
김경무 기자
© 한겨레신문사 1997년02월27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