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하는 경제
1997년02월27일 제 146호 한겨레21

금융개혁의 불안한 미래

유진수/ 숙명여대 교수·경제학

우리나라 금융산업이 낙후돼 국제적인 경쟁력을 갖추지 못하고 있는 것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그래서 금융산업을 발전시키기 위해 정부도 나 름대로 노력을 기울여 온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그와 같은 노력이 실효 를 거둘 수 없었던 것은 금융산업에 대한 규제기관이라고 할 수 있는 재 정경제원의 주도로 이루어져 왔기 때문이라는 것이 일반적인 시각이다. 규제기관은 피규제산업을 규제하도록 돼 있지만 실제로는 피규제산업에 포획되어(captured) 이들을 보호하는 기관으로 변하는 경우가 많고, 따라 서 규제기관은 개혁에 소극적일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또 노개위 꼴 나는가

결국, 청와대가 직접 금융개혁 작업에 나서 대통령이 금융개혁을 선언하 기에 이르고 말았다. 금융개혁을 위한 위원회의 구성도 규제기관의 입김 을 배제하기 위해 정부관료를 제외하고 금융기관이나 기업과 관련된 인사 들을 중심으로 구성됐다. 금융개혁위원회의 사무실이 마련되고 실무를 담 당할 분과별 전문위원들도 선정됐으며 위원회의 단기 개혁과제가 채택되 기도 했다.

그러나 금융개혁위원회의 본격적인 활동을 앞두고 금융개혁에 대한 기대 보다 불안감이 앞서는 것은 어째서일까? 이에 대한 해답은 지난해 연말까 지 의욕적인 개혁작업을 벌인 노사관계개혁위원회(노개위)의 경험에서 찾 아볼 수 있을 것이다.

첫째로, 노·사·공익대표로 구성된 노개위에서 합의안이 도출되지 않은 것은 개혁안에 의해 커다란 영향을 받게 되는 노·사가 모두 자신의 이익 을 강하게 주장함으로써 몇번 있었던 합의의 기회를 놓쳤기 때문이라고 한다. 금융개혁위원회의 경우에도 이와 유사한 결과가 일어날 가능성이 매우 높다. 위원들의 구성에서도 알 수 있듯이 변화에 소극적인 금융인들 , 그리고 금융기관의 경영권을 확보하거나 금융기관의 대기업 서비스에 일대 혁신을 가져오려는 기업인들 모두가 자신의 이익을 강력히 주장할 것이 예상되기 때문이다. 더욱이 공익대표의 성격을 갖는 위원들의 숫자 가 적어 이들을 객관적인 입장에서 중재하고 균형잡아 나가기도 쉽지 않 을 전망이다.

둘째로, 금융개혁위원회 전문위원의 구성을 보면 당초 정부입김을 배제하 기 위해 정부관료를 배제하겠다던 원칙과는 사뭇 거리가 있음을 쉽게 알 수 있다. 전문위원의 대부분이 정부출연 연구기관, 특히 재정경제원 산하 연구기관의 연구위원들로 구성됐기 때문이다. 이것이 노개위에서 공익대 표가 제시한 개혁안에 정부가 수정을 가하고 국회에서 또한번 덧칠을 함 으로써 야기된 노동법 파문과 같은 사태를 미연에 방지하기 위해서인지는 모르지만, 금융개혁위원회가 얼마나 정부의 입김에서 벗어나 독자적인 개 혁안을 마련할 수 있을지 우려를 낳고 있다.

이와 같은 문제점들을 극복하고 금융산업의 발전을 통한 우리 경제의 선 진화를 이루기 위해서는 금융개혁은 다음과 같은 방향에서 추진돼야 할 것이다.

첫째, 금융개혁은 장기적인 시각에서 구조적인 문제를 해결하는 방향으로 이루어져야 한다. 기업인이 많이 참여한 금융개혁위원회에서는 금리인하 등 기업의 어려움을 덜기 위한 방안들이 많이 제기될 것이다. 그러나 경 제가 어렵다고 해서 금융개혁이 눈에 보이는 단기적인 효과에 치중하거나 불황을 타개하기 위한 수단으로 전락해서는 곤란하다.


금융기관간 경쟁 촉진해야

둘째, 금융개혁은 금융기관들에 대한 보호가 아니라 금융기관간의 경쟁을 촉진하는 데 초점이 맞추어져야 할 것이다. 이는 업무영역의 확대를 포함 해서 금융기관간에 실질적인 경쟁이 가능하도록 규제를 완화하고, 경쟁력 없는 금융기관이 도태될 수밖에 없는 상황을 만들어야 함을 의미한다.

셋째, 금융개혁은 금융기관 지배구조의 논의와 동시에 이루어져야 한다. 현재의 금융기관은 주주들에 의한 경영참여보다는 사실상 정부가 경영을 지배하고 있는 구조를 이루고 있다. 이와 같은 구조 아래서 정부는 금융 기관을 보호하는 대신 인사, 대출 등에 있어서 영향력을 행사하는 상호 공존공생의 관계에 빠질 수밖에 없다. 금융개혁은 금융기관이 하나의 기 업으로 경영 전반에 걸쳐 자율성을 확보할 수 있는 장치를 마련하지 않는 한 또한번의 일과성 구호에 머물고 말 것이다.

© 한겨레신문사 1997년02월27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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