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커스
1997년02월27일 제 146호 한겨레21

“정치권 잘하면 파업 안 한다”

날치기에 맞서는 총파업과 시민·노동자들의 시위로 온 나라를 한달 이상 들끓게 했던 노동법 개정 문제가 국회의 최종 개정협상 단계로 접어들었 다. 3월1일 시행 이전에 여야합의로 재개정한다는 목표로 정치권의 협상 이 본격화하고 있지만 노동계가 만족할 만한 개정안이 도출될지는 미지수 다. 민주노총은 정치권 협상의 진전에 따라 2월24일~28일 사이에 총파업 을 벌일 계획을 세워놓고 있어 또한번의 사회적 파장이 예상된다. 노동계 는 개정내용이 만족스럽지 않을 때는 3월 이후에도 단체협약과 총파업 등 을 통해 악법 거부 투쟁을 벌일 것을 공언하고 있어, 올 상반기 내내 노 동법 문제가 사회적 핵심 이슈로 남을 가능성은 더 높아지고 있다.


여당도 ‘복수노조 허용’등 각오

총파업 국면이 김영삼 대통령의 재개정 선언 이후 채 정리되지도 않은 상 태에서 불거진 한보사태와 북한 황장엽 비서 망명사건은 노동법 재개정 문제를 상대적으로 정치권의 관심 밖으로 내모는 효과를 냈다. 그러나 3 월1일 이전 재개정 이라는 국민적 합의는 정치권을 협상테이블로 불러모 았다.

정치권협상이 본격화하면서 여야 각당의 노동법안의 구체적인 내용에 관 심이 모아지고 있다. 내용에 따라 합의의 가능성을 짐작해볼 수 있기 때 문이다. 먼저 신한국당은 표면적으로는 날치기 노동법안 이외에 내부적으 로 준비하고 있는 협상안은 없다고 말하고 있다. 양보안이나 복안도 없다 고 한다. 그러나 전국민적 저항을 불러일으킨 법안이라는 점 때문에 신한 국당도 노동계의 주장을 대폭 수용하지 않을 수 없다는 판단을 하고 있다 는 게 전문가들의 진단이다. 정치권의 일반적인 예상에 따르면 ‘복수노 조 허용’과 ‘정리해고제의 요건 강화’ 등은 이미 여당도 각오하고 있 다는 것이다. 여당은 야당이 하루빨리 구체적인 대안을 제시해야 협상이 진행될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한편 야당은 확정된 노동법안을 공개하지 않고 있다. 미리 발표했다가 노 동계는 물론 재계의 강력한 반발에 부딪혀 협상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국민회의는 지난주 자민련과의 협의를 통해 확 정한 야당단일안을 2월20일 전후에 열리는 국회공청회 직후 공개하고 여 당과의 협상에 나선다는 전략을 세워놓고 있다.

<한겨레21>이 입수한 야당안에 따르면 주요 쟁점 사항에 대한 야당의 대 안은 노동계의 주장을 대폭 수용하고 있다(표 참조). 복수노조의 허용, 공무원 교원의 단결권 보장, 쟁의 기간중 대체근로 금지, 노조전임자 임 금지급 금지 삭제, 단체협약의 유효기간 1년 제한, 긴급조정제도 폐지, 제3자 개입금지 철폐 등을 주요 내용으로 하는 야당안은 노동법의 개혁적 성격 강화라는 대원칙에 상당히 충실한 내용이라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쟁의행위 기간중 임금지급 금지’(무노동무임금 원칙)를 인정(5년 유예 )한 것이나 정리해고제, 탄력적(변형) 근로시간제, 퇴직금 제도 변경을 받아들인 것은 재계의 주장을 무시하지 못한 결과로 보인다. 야당안을 검 토한 민주노총의 한 간부는 “해고자의 조합원 자격 부정, 보안작업·사 업장내 쟁의행위 금지, 교섭권과 체결권의 일원화 등 핵심적인 독소조항 몇개를 언급하지 않은 점이 아쉽지만 대체로 자본편향적인 내용은 아니라 서 안심이다”고 평가했다.

야당안의 내용에 대해 환경노동위 소속의 한 야당의원은 “재계나 노동계 모두 원칙론만을 되풀이해서는 해결의 실마리를 찾을 수 없다. 합의가 가 능한 선을 제시했으니 문제가 풀릴 것으로 본다”고 밝혔다.

여야 완전 합의의 가능성은 그야말로 미지수다. 서로 눈치를 봐야 할 곳 이 너무 많기 때문이다. 먼저 신한국당은 황장엽 비서 망명 국면으로 접 어들고 있는 정치상황이라면 노동계의 총파업이 별로 영향력을 발휘할 수 없을 것이라는 희망섞인 전망을 하고 있다. 환경노동위 소속의 한 의원은 “야당이 대안을 늦게 제시해 결국 물리적인 시간 부족으로 3월1일까지 재개정을 하지 못하면 그 책임은 야당이 져야 하고 노동법을 정부안대로 시행할 수밖에 없는 것 아니냐”고 말해 속내를 드러냈다. 야당 역시 편 하게 행동할 수는 없다. 총파업을 통해 정치세력화의 가능성을 확인한 노 동계의 주장을 무시할 수 없음은 물론이고, 그렇다고 대선이 있는 올해 재계의 의견에 귀를 막을 수도 없는 노릇이다. 야당이 자신들의 대안을 최후의 순간까지 끌어안고 가려는 것도 바로 이 때문이다.


‘전교조 합법화’최후쟁점 될 수도

한편 노동계는 정치권의 협상 추이에 발빠른 대응을 준비하고 있다. 민주 노총(위원장 권영길)은 정치권 협상이 만족스럽지 않을 때는 위원장의 결 정으로 언제라도 파업에 들어가겠다고 밝혔다. 지난 2월17일부터 민주노 총 산하 단위노조 위원장들은 밤샘농성을 하며 비상대기 상태에 돌입했다 . 민주노총 김유선 정책국장은 “복수노조가 허용돼 민주노총이 합법화되 더라도 노조활동을 결정적으로 가로막는 독소조항들이 개정되지 않는다면 파업에 돌입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민주노총은 특히 전교조의 합법 화를 강력히 요구할 예정이어서 이 문제가 개정협상의 최후의 쟁점이 될 가능성도 있다.

민주노총은 만약 정치권의 협상이 실패로 끝나 3월1일 날치기 노동법이 시행되면 파업과 집중적인 단체협약을 통한 투쟁으로 시행 자체를 무력화 시킨다는 복안을 만들어놓고 있다. 이런 상황이 실제로 벌어진다면 노동 계와 정부의 대립전선은 노동계와 재계의 대립전선으로까지 확대되어 장 기적인 갈등으로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이에 비해 한국노총(위원장 박인상)은 국회협상 기간은 총파업 대신 지도 부의 정당 대표 면담 등의 상층 정치활동을 중심으로 한 개정투쟁을 벌이 기로 가닥을 잡았다. 그러나 노동법이 만족스럽지 못한 내용으로 개정될 때는 4월 쟁의발생 신고에 이은 5월 총파업을 강행하겠다고 밝히고 있다.

한달 이상의 총파업에서 비롯된 정치권 협상 결과에 노동계와 전국민의 시선이 모이고 있다.

김창석 기자 한겨레21

© 한겨레신문사 1997년02월27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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