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커스
1997년02월27일 제 146호 한겨레21

“민주계 당권 포기 못한다”

(사진/민주계 배제론은 당직과 행정부에로까지 확대될 것인가. 2월11일 신한국당 수뇌부와 함께 인천.수원 보궐선거 후보 공천장 수여식에 입장하는 김 대통령.)

신한국당의 민주계는 한보위기를 돌파할 수 있을까.


‘민주계 인사’회동에 비상한 관심

정치권에서는 서정화 의원이 내무장관에 임명된 데 대해 “민주계가 모두 상처를 입었기 때문에 불가피한 인사였다”면서 “당정개편에서도 당 대 표나 총리 등에 민정계나 관료 출신이 포진할 것 같다”는 전망이 쏟아져 나왔다. 민주계 배제론은 여권 대선후보뿐만 아니라 당직과 행정부까지 확대된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2월12일 있었던 민주계 핵심인사의 회동은 이런 전망을 무색하게 했다. 이날 모임에는 최형우 김덕룡 의원과 강삼재 사무총장, 이원종 대 통령 정무수석 등이 참석했다. 한보사태 이후 민주계 핵심인사들은 모임 을 삼가왔다. 아니 그 전에도 이런 모임은 별로 없었다. “민주계가 모여 무슨 일을 꾸미는 것 아니냐”는 오해를 걱정했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이날 모임은 정치권의 비상한 관심을 끌 만했다. 황장엽 북한 노동당 비 서의 망명으로 벌겋게 달아올랐던 한보수사의 열기가 한풀 꺾이면서 여권 의 수습책 논의가 본격화하는 시점이어서 수습책의 방향이 논의될 가능성 이 컸다. 김영삼 대통령의 재가가 없이는 모임이 성사되기도 어려웠다. 저녁 모임에 앞서 최형우 의원과 김덕룡 의원은 단 둘이 만나 한보사태를 더이상 방치하기 어렵다며 적극 대처하기로 의견을 모으기도 했다.

여권핵심에 정통한 소식통에 따르면 이날 모임에서는 현재의 위기를 정면 돌파하자는 쪽으로 의견이 모아졌다. 즉 민주계가 위기를 맞고 있지만 결 코 밀려서는 안 되며, 당권을 고수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따라서 얼굴마 담에 불과한 대표자리에 누가 오든 관계없이 당 사무총장과 대통령 정무 수석 자리가 흔들려서는 안 된다는 점을 분명히 했다. 또 김덕룡 의원이 제기한 음모론을 포함해 민주계 내분을 가져온 불화도 일단 봉합됐다.

참석자들은 민주계 주도론에 대해서 김 대통령의 차남인 현철씨쪽에서도 동의했다는 사실을 확인한 뒤 김 대통령에게 이런 뜻을 전달하기로 했다. 최형우 김덕룡 의원은 2월13일에 다시 김수한 국회의장, 김명윤 서석재 의원 등과 조찬모임을 갖고 전날 논의내용을 전달했다. 김 대통령이 이런 보고에 어떤 반응을 보였는지 정확하게 확인되지는 않고 있지만, 부정적 이지는 않았던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김 대통령이 민주계 핵심인사들의 정면돌파론을 수용할지는 장담 하기 어렵다. 부담이 너무 크기 때문이다. 사실 민주계는 한보사태로 쑥 대밭이 됐다. 민주계 초선의원은 “민주계 치고 의혹의 대상에서 제외되 고 있는 정치인이 없다”고 말했다. 민주계 핵심인사의 측근은 “한보사 태는 민주계에 대한 인상을 개혁과 도덕성에서 부패한 정치집단으로 바꾸 어 놓았다”고 말했다. 살아남은 인물이 거의 없어 당정개편 때 중용하기 도 쉽지 않다.

정무장관에서 물러난 뒤 의욕적인 움직임을 보였던 김덕룡 의원은 한보로 부터 돈을 받았다는 언론보도로 심대한 타격을 입었다. 김 대통령의 집사 장 역할을 해왔던 홍인길 의원은 깃털론을 펴면서 반발했지만, 감방에 갇 히는 신세를 면하지 못했다.


구주류-신주류 등 내부분열도 심각

김 대통령의 비서실장을 지냈고, 토지개발공사 사장과 건설부 장관을 지 낸 김우석 내무부 장관은 현직 장관 신분으로 구속돼 충격을 주었다. 3당 합당 때 기존 민주계 인맥을 제치고 막후협상을 맡을 정도로 김 대통령의 신임을 받았던 황병태 의원도 알선수재 혐의로 구속됐다.

이뿐만이 아니다. 보사부 장관을 지냈던 민주계 중진의 김정수 의원이나, 김 대통령의 비서출신으로 대통령 민정비서관을 지낸 박종웅 의원, 그리 고 문정수 부산시장 등도 한보연루 혐의를 받고 있다. 최형우 의원이나 서석재 의원에게도 의혹의 눈길은 가시지 않고 있다.

이 밖에도 민주계로 분류되는 김 대통령의 전현직 비서들이나 신한국당 의원과 당직자들도 한보와 연루돼 있다는 소문이 나돌고 있다. 김 대통령 차남 현철씨는 야권에 의해 한보 최대배후로 지목되고 있다.

더욱 심각한 것은 민주계 내부가 심각한 분열과 반목 양상을 보이고 있다 는 점이다. 민주계는 구주류와 신주류간, 대선주자와 비주자간은 물론, 대선주자끼리도 갈등이 심화되고 있다.

홍인길 의원은 검찰소환에 앞서 이원종 정무수석과 현철씨 등 여권핵심부 에 억울함을 호소하고 항의하면서 한때 기자회견까지 시도한 것으로 알려 졌다. 그는 자신이 돈을 받은 것은 축재를 하기 위해서가 아니고 청와대 비서진과 민주계 식구들을 보살피기 위한 것이라면서 자신에게 총대를 메 라는 요구를 수용할 수 없다고 강하게 반발했다.

민주계 일부에서는 그의 이런 행동을 강하게 비난했다. 한 의원은 “깃털 론을 펴는 바람에 김 대통령의 차남인 현철씨에게 의혹의 시선이 쏠리고 있다”고 비판했다. 그는 “권노갑 의원은 총대를 메는데 홍인길 의원은 자신의 잘못을 떠넘겼다”면서 “돈을 받았다는 사실보다는 이를 부인한 것과 책임지지 않으려는 태도가 괘씸하다”고 주장했다.

김덕룡 의원이 제기한 음모론도 민주계 내분의 전형처럼 비치고 있다. 김 의원의 음모론은 애초 현철씨를 중심으로 한 민주계 신주류를 겨냥한 인 상이 짙다. 김 의원은 지난 대선 때 대선자금 문제를 놓고 현철씨와 불화 가 생겼으며, 현철씨의 해외유학을 거론하면서 둘 사이의 관계는 매우 심 각한 상태로 발전한 것으로 전해진다. 김덕룡 의원쪽에서는 민주계 배제 론이나 불가론이 모두 신주류에서 나오는 것으로 받아들여져 왔다.

김 의원쪽은 음모론이 민주계의 심각한 내분과 여권의 권력투쟁 양상으로 비치자 방향을 돌려 김영삼 대통령과 당을 뒤흔들려는 보수·공안세력이 라고 후퇴했다.

김 의원의 음모론은 신주류는 물론, 최형우 의원과 서석재 의원 진영에 불쾌한 분위기를 조성하면서 민주계 분열양상을 심화시켰다. 서석재 박관 용 의원과 신상우 해양수산부 장관은 2월12일 별도의 모임을 갖고 “민주 계 대선주자들이 마음을 비워야 한다”는 등의 얘기를 나눈 것으로 알려 졌다.

민주계를 중심으로 전열을 가다듬어 대선을 치르려면 여론의 비판을 감수 해야 할 뿐만 아니라 당내 반발도 이겨내야 한다. 김 대통령이 민주계의 정면돌파론을 그대로 받아들이기 어려울 것이라는 전망도 여기에서 출발 하고 있다.

그러나 민주계 정면돌파론도 이런 현실에 기초한다. 정공법을 쓰지 않으 면 민주계는 그야말로 회생이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김 대통령이 그동안 진행해온 개혁작업이 변질될 가능성도 있고, 퇴임 이후의 안정성에도 문 제가 발생할 수 있다. 잔여임기 동안 심각한 권력누수도 감수해야 한다. 민주계 핵심인사들은 “그럴 바에는 차라리 정면돌파를 택하자”고 주장 하고 있는 셈이다.


이수성-이홍구 교체 가능성 높아

김 대통령이 민주계의 정면돌파론을 수용한다면 이원종-강삼재 라인은 바 뀌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물론 당정개편은 불가피하기 때문에 이수성-이 홍구 카드는 바뀔 가능성이 높다. 청와대 비서진이나 당직자들도 대폭 교 체될 것으로 보인다. 그렇더라도 대선과정을 요리할 당 사무총장과 정무 수석의 핵심라인은 변동 가능성이 적다. 이원종 수석이 비서실장으로 자 리를 옮기는 등의 변화 가능성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어쨌든 두 자리는 민주계가 맡을 것이 확실시된다.

민주계 인사들은 최근 이한동 의원이 총리나 당 대표에 기용될 가능성이 높을 것이라 점치고 있다. 일부에서는 최형우 의원이나 김덕룡 의원 등 민주계 대선주자가 대표가 될 것이라는 전망도 나오고 있다. 반면 당 대 표는 한보사태를 수습하는 과정에서 많은 상처를 입을 가능성이 커 대선 을 염두에 둔 쪽에서는 원하지 않을 것이라는 예상도 하고 있다.

신현만 기자/ 한겨레 정치부 한겨레21

© 한겨레신문사 1997년02월27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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