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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단 |
1997년02월27일 제 146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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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세균/ 서울대 교수·정치학
망명에 정보기관 개입했나
노동자투쟁이 휴지기에 들어선 이후 곧이어 ‘한보사건’이 터져 나왔다. 이러한 한보사건과 같은 비리사건은 어느 것이든 권력과의 결탁 아래 빚 어지는 사건이다. 그런 류의 사건이 발생하면, 경우에 따라서는 대통령의 단호한 사정의지를 돋보이게 하고, 정권이 정국의 주도권을 되찾게 하는 계기가 마련되기도 한다. 그래서 다른 시점이 아닌, 바로 그 시점에 한보 사건이 터진 것은 정권이 노동자총파업투쟁 등이 만들어낸 궁지로부터 벗 어날 수 있는 호기가 될 수 있었다. 이 점에서 한보사건은 정권에게 위기 를 벗어나기 위한 ‘필사의 탈출책’과 같은 효과를 지니고 있었던 것이 다. 그러나 한보사건에는 권력 핵심부가 광범하게 관련되어 있다는 점이 누구의 눈에도 드러났다. 따라서 ‘성역없는 조사’는 ‘성역을 지키기 위한 조사’로 끝날 운명을 이미 지니고 있었다. 그러나 구속된 인사들을 희생양으로 삼는 정도로 한보사건으로 촉발된 격심한 국민적 분노를 잠재 우기는 불가능한 일이었다. 이로 말미암아 한보사건의 처리과정에서 조성 된 통치위기를 벗어나기 위해 정권에게는 다시금 ‘필사의 탈출책’이 요 구되고 있었다.
한보사건 처리가 끝내기 수순을 밟고 있을 무렵, ‘황장엽 망명사건’이 라는 충격적인 사건이 돌출적으로 터져 나왔다. 주지하다시피 황장엽은 북한 최고의 ‘국가이데올로그’로 활동해온 인물로 국내외로부터 북한 최고의 인텔리로 평가받고 있다. 언론보도를 종합하면 그는 망명하기 이 전부터 이미 한국의 정보기관과 연락관계를 유지하면서 망명의 시기와 장 소 등을 고르고 있지 않았느냐는 인상을 풍긴다. 그런 그가 중국이라는 매우 불리한 지역을 택하는 위험을 감수하면서까지 다른 시점이 아닌 바 로 그 시점에 망명한 데에는 한국 정보기관 등의 의사가 개입됐을 것으로 해석될 여지도 있다. 이같은 추론이 사실이라면 대선에서의 필승을 위해 가장 잘 활용될 비장의 카드가, 한보사건의 처리과정이 만들어낸 위기로 부터 벗어나기 위한 카드로 빨리 사용돼 버린 셈이다. 이점에서 바로 그 시점에 발생한 황장엽 망명사건은 정권이 한보사건의 늪으로부터 빠져나 오는 ‘필사의 탈출책’으로 적격이었다고 평가될 수 있을 것이다.
황장엽은 북한의 국가적 통치이념인 ‘주체사상’을 주창한 이론가이다. 대외적 자주성의 견지와 민족자립경제 건설 등을 지향하는 정치노선을 무 오류의 절대적 진리체계로 격상시키고, 누구나 복속해야 할 지고의 국가 적 지배이데올로기로 변질시키는 과정에서 성립된 주체사상은 그러나 북 한 체제를 극도로 경직시키고 북한 민중을 신민적 종속민의 위치로 떨어 뜨린 거대한 사상적 질곡으로 기능하고 있다. 이 점에서 주체사상을 주창 하는 데에 앞장선 황장엽은 북한 민중의 자유로운 발전을 가로막은, 북한 민중의 제1급 죄인에 속하는 셈이다. 그런 그가 현재의 김정일 체제에 회 의를 느끼고 제3국이 아닌 남한을 망명지로 택한 것은, “어느 편에 서서 한몫 하려는”것이 아니라는 그의 공언과는 달리, 이미 처음부터 남한 지 배층에게 투항해 이들에게 봉사함으로써 이들로부터 추앙받으려는 노욕을 부린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실제로 그는 망명하기 이전에 이미, 남한의 시위하는 학생들과 ‘건방진’ 노조지도자들은 민족반역자로 처형받을 만 하며, 통일에 대비해 안기부와 여당의 힘을 키워야 한다는 등 남한의 수 구적 지배층이 환호성을 지를 만한 메시지를 전하고 있다. 북한민중의 제 1급 죄인이 이제 남한 민중의 자유로운 발전을 가로막는, 남한민중의 제1 급 죄인으로 둔갑하고 있다. 그는 역사에서 이중의 범죄를 저지르고 있는 것이다.
봉합된 위기는 더 큰 폭발 부른다
황장엽 망명사건과 그 사건이 가져올 여파는 우리 사회에 새로운 역풍을 불러일으키면서 우리 사회의 민주와 진보를 참답게 담보할 밑으로부터의 새로운 정치의 활성화를 크게 방해할 것이다. 그러나 한총련 사건과 북한 잠수함 사건이 노동자총파업투쟁의 발생을 막아내지 못한 것처럼, 황장엽 망명사건 등이 위기의 ‘봉합’에 급급한 지배층의 의도를 만족시키는 것 도 극히 일시적일 수밖에 없다. 표출되지 못하고 봉합된 위기는 이후에 더 큰 폭발을 가져온다는 점을 역사는 이미 우리에게 가르쳐 주고 있다.
© 한겨레신문사 1997년02월27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