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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버스토리 |
1997년02월27일 제 146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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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지난해 2월 `한겨레21' 취재진과 만났을 당시 이한영씨 모습.)
김정일 비서의 옛 동거녀인 성헤림의 조카 이한영(37)씨가 괴한이 쏜 총 탄에 맞아 쓰러졌다. 공안당국은 당장 비상이 걸렸고, 국민들이 느끼는 불안감도 예사롭지 않다. 범인이 누구인가를 두고 갖가지 추론이 나도는 것도 어지럽다. 황 비서 망명 직후, “응당한 대응조치”를 공언한 북한 이 마침내 보복에 나섰다는 분석에서, 단순한 형사사건이라는 지적에 이 르기까지 구구한 해석이 번지고 있다.
책 출간 놓고 안기부와 마찰
북한이 정말 보복에 나선 것일까. 공안당국은 일단 그쪽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이씨가 피격 직후 “간첩”이라는 말을 남겼고, 범행에 쓰인 권총 이 북한공작원들이 주로 사용하는 벨기에제 브로우닝이라는 점 등이 그 근거로 강조된다. 이씨를 제물로 삼아 중국에 머물고 있는 황 비서와, 그 의 한국행을 추진하고 있는 남한 정부에 강한 반발의 메시지를 보내려 했 을 것이라는 설명이다.
이씨가 원한관계에 의해 피격됐을 가능성도 아직 배제할 수 없다. 검찰에 따르면 이씨는 지난 93년 탤런트와 모델, 고위층 자녀들이 낀 도박단을 내사하는 과정에서 핵심인물로 떠올랐다고 한다. 이씨는 같은 해 한국방 송공사, 기무사 등이 참여한 조합아파트 조합장을 맡았다가 수억원을 횡 령한 혐의로 구속되기도 했다. 더욱이 이씨는 그동안 잇단 사업실패로 돈 에 쪼들렸던 것으로 알려진다. 그러나 이런 추론은 의례적인 수사설명일 공산이 크다. 실제 우리 현실에서 개인적인 원한을 품었다고 권총으로 보 복한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
공안당국의 발표와 목격자들의 진술을 토대로 사건을 분석해도 이해하기 가 만만치 않다. 당시 이씨는 최근 임시로 머물던 대학선배 김장현(46)씨 의 아파트로 귀가하는 중이었다. 이씨는 김씨 집 현관 앞에서 40대로 보 이는 괴한 2명의 기습을 받는다. 목격자들에 따르면 이씨는 괴한들과 격 투를 벌인 것으로 보인다. 김씨의 부인 남상화(44)씨는 “웅성거리는 소 리가 들려 비디오폰을 켜보니 괴한 2명이 이씨의 머리에 총구를 들이대고 있었다”고 증언한다. 김씨의 맞은 편 아파트에 사는 박종은(46)씨는 여 기에 범인의 정체와 직결된 증언을 더한다. “괴한들이 달아난 뒤 문을 열고 나가 이씨를 흔드니, 이씨가 오른손 검지와 중지를 펴보이며 ‘간첩 ’이라고 말했다”는 것이다.
공안당국은 곧바로 북한의 보복테러일 가능성이 크다고 보고 수사에 나섰 다. 특히 사건 10일 전 전화국 직원을 사칭한 전화가 걸려오고, 당일엔 잡지사 기자를 사칭한 전화가 왔던 점으로 미뤄 치밀하게 준비된 테러로 여기는 듯하다. 범행에 쓰인 도구와 범인들이 세련된 옷차림을 한 점 등 을 근거로 고정간첩이나 남파공작원, 혹은 양자의 합동공작일 가능성을 점친다. 대검 공안관계자는 “목격된 범인은 2명이지만, 이들의 도주와 은신을 돕기 위해 남한 사정을 잘아는 공범들이 가세했을 것으로 본다” 고 말한다.
공안당국이 북한을 지목하는 까닭은 최근의 정세인식을 깔고 있다. 북한 은 김경호씨 일가 등 최근 잇단 탈북사태에 제동을 걸기 위해 오래 전부 터 범행계획을 세워왔을 것으로 보고 있다. 특히 김정일의 생일을 며칠 앞두고 터진 황 비서 망명으로 몹시 격앙됐던 것으로 알려진다. 이 때문 에 망명 이후 북한체제를 비판해온 이씨를 제물로 삼아, 황씨는 물론 탈 북자들에게 남한으로 넘어가도 안전치 못하다는 점을 경고하려 했다는 것 이다. 괴한들이 범행을 시끄럽게 처리하고, 물증인 탄피를 남긴 점을 들 어 바로 이런 메시지를 전하기 위한 의도적 행동으로 풀이하기도 한다. 그러나 아직 의문은 남는다. 무엇보다 범인들이 간첩이라면 이씨의 소재 를 그토록 정확히 알아낼 수 있었다는 게 놀랍다. 이씨가 성혜림씨 사건 으로 노출되기는 했지만 신변안전을 위해 거처를 자주 옮겨다녀 그의 소 재지는 거의 알려지지 않은 상태였다. 사건 직후 경찰은 “이씨가 여기에 사는지도 몰랐다”고 했다. 안기부는 “이씨가 82년 합법적인 신분을 얻 은 이후, 학업을 마치고 사업을 하는 등 정상적인 생활을 해와 적극적으 로 보호하지 않았다”고 말한다. 일각에선 이씨가 최근 <대동강패밀리의 서울잠행 14년>이란 수기를 낸 뒤 책 내용을 둘러싸고 안기부와 마찰을 빚었다고 지적하기도 한다.
피격사건 장기화할 듯
북한이 테러를 감행했다면 얻을 게 없다는 분석도 있다. 황 비서가 중국 에 머무는 상황에서 국제여론을 나쁘게 만들 이유가 없다는 것이다. 복잡 한 외교전을 치러야 할 북한이 이런 일로 궁지에 빠질 일을 자초한다는 것은 비합리적이라는 얘기다. 일부 북한전문가는 “황 비서 망명 직후 북 한의 공식반응에서 뚜렷한 보복의지를 읽을 수 없었다”고 분석하기도 한 다. 지난해 10월 잠수함 침투사건 당시 “백배 천배 보복하겠다”는 말에 비하면 “응당한 대응조처”란 점잖은 경고였다는 것이다.
이씨 피격사건은 장기화할 것으로 보인다. 사건의 진상에 대한 세간의 궁 금증도 쉬 풀리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남북관계가 최악의 상황으로 빠져들고, 국내 정국도 그만큼 경직될 것이라는 점이다.
유강문 기자
© 한겨레신문사 1997년02월27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