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커버스토리 |
1997년02월27일 제 146호
|
|---|
(사진/잠수함 사건으로 썰렁해졌던 남북관계는 망명사건으로 아예 찬물벼락을 맞았다.)
황장엽 노동당 비서는 “남과 북의 화해와 통일에 도움을 주기 위해” 망 명을 결심하게 됐다고 밝히고 있으나 단기적으로 그의 망명은 남북관계를 벼랑 끝으로 몰고갈 것으로 보인다. 지난해 9월 발생했던 잠수함 사건이 올 1월 북한의 유감표명으로 남북관계가 간신히 위기를 넘기고 있는 순간 에 터진 황 비서의 망명사건은 북한의 자존심을 여지없이 짓밟는 결과를 불러왔기 때문이다.
미·일 대북정책 큰 변수
가뜩이나 대만과의 핵폐기물 계약을 둘러싸고 불거져 나온 긴장이 채 가 시지 않고 있고, 북-미 사이의 쌀 교섭이 여의치 않아 4자회담을 위한 3 자설명회마저 계속 연기돼 그나마 기대됐던 남북대화도 무산된 상황이다.
이와 관련해 한 북한 전문가는 “황 비서의 망명은 자유민주주의사회의 우월성을 좀더 극명하게 보여주는 성과로 꼽힐지는 모르나 남북관계에 찬 물을 끼얹는 악재로 작용할 것이다”면서 “북한에 김정일이 살아 있고 남한에 YS가 대통령으로 있는 한 양쪽의 화해는 기대하기 힘들 것”이라 고 진단했다.
한편 현재 코앞에 닥친 김정일의 권력승계를 위해서는 식량난의 해결과 국제관계의 개선이 우선이기 때문에 남북관계를 지나치게 경색국면으로 몰고 가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도 있다. 북한이 속에서는 열불이 나지만 우선 새로운 김정일시대부터 매끄럽게 열고 보자고 판단할 것이라는 연유 이다.
그러나 남북관계를 오랫동안 주시해온 많은 전문가들은 이러한 안일한 전 망에 대해 우려를 감추지 않고 있다. 북한이 직면한 위기를 벗어나기 위 해 주변 강대국의 힘을 빌려 성사된 남북대화가 남한쪽에 얼마나 실리를 가져다 주겠느냐는 주장이다. 그래서 북한을 자극하는 정책이나 수단은 긴 안목에서 오히려 남북관계를 망치게 된다는 설명이다.
또하나 우려되는 것은 남북 사이에서 유일하게 간접적인 민간대화채널 역 할을 해온 남북교역과 물밑 경제협력 논의가 위축될지 모른다는 점이다. 실제로 북한과의 경협을 위해 깊숙한 접촉을 해왔던 많은 기업들은 잠수 함 사건 이후 해빙을 기대했으나 다시 주저앉은 꼴이 돼 버린 것이다. 더 구나 황 비서의 망명과정에서 한국 기업인이 중개해 왔다는 사실 때문에 북한당국이 그들 무역상사원들로 하여금 한국인사와의 접촉을 제한시킬 가능성도 있다.
북한의 갑작스런 몰락을 원치 않고 있는 미국, 일본 등의 대북정책도 남 북관계에 미칠 변수로 작용할 것 같다. 황장엽의 망명을 곧 김정일의 망 명으로 받아들일 만큼 큰 충격을 받았던 주변국으로서는 북한의 내부 균 열이 심상치 않음을 인식해 이전보다 적극적인 개입정책을 펼지 모르기 때문이다. 남한의 눈치만을 보면서 북한이 그대로 주저앉는 것을 방치해 국가이익을 손상시키지 않으려는 주변국의 속성으로 미뤄볼 때 예상되는 수순이기도 하다.
북한카드, 신중하고 차분하게
대북 사업컨설팅을 전문으로 하고 있는 한 인사는 “황 비서의 망명으로 미국과 일본이 좀더 적극적으로 쌀을 지원하고 경제협력을 추진할 것으로 예상된다”면서 우리 정부의 대응이 주목된다고 덧붙였다. 결국 북한은 남한배제전략을 더욱 확고히 하면서 미국, 일본 등과는 실리 외교를 계속 펼 것으로 전망된다.
임을출 기자
© 한겨레신문사 1997년02월27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