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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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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맹검사'는 감옥 안에서 싸운다

등록 2000-11-02 00:00 수정 2020-05-03 04:21

사법권력에 맞선 맹광영씨의 외롭고 끈질긴 권리찾기… 그는 왜 서울구치소에 7년째 있는가

지난 10월26일 오후 경기도 의왕시 서울구치소 재소자 면회실. 바깥의 푸근한 가을 햇살 탓인지 더욱 칙칙하고 비좁아보이는 면회실에 들어서자 검은 뿔테안경이 유리창 너머에 먼저 와 기다리고 있었다. 7년 넘게 이곳 구치소에 갇혀 있는 재소자 맹광영(34)씨였다.

“억울하게 고소당했다”고 줄곧 주장하는 그에게 면회를 오면서 짐짓 가졌던, 혹시 어떤 편집증을 갖고 있는 사람이 아닐까 했던 걱정은 금세 사라졌다. “교도관 독직폭행사건 말이요? 그 부분(구치소에서의 특별사동 운영이나 수갑과 쇠사슬 등 계구 사용)은 98년 1월20일 대법원으로부터 위법이 확정된 상태인데….” 말끝을 흐린 게 아니었다. 면회시간이 7분도 채 안 되는 탓에 그의 말허리를 계속 잘라야 했다.

그는 7년8개월 남짓 자신을 둘러싸고 복잡하게 얽혀 있는 사건들을 날짜까지 정확히 기억하며 꿰고 있었다. “삐이익, 삐이익.” 면회시간 종료를 알리는 신호음이 울리자 곁에서 면회를 지켜보고 있던 교도관이 그를 잡아 일으켰다. “오늘 모자란 것은 제가 나중에 편지로…” 하며 돌아서는 그의 말이 신호음에 묻혔다.

기결수이자 미결수… 서울구치소에만 7년째

형이 확정되지 않은 미결수를 수용하는 구치소에 한 재소자가 7년 넘게 있는 경우는 흔치 않다. 그는 왜 교도소가 아닌 구치소에 수감돼 있을까? 최근 그가 법원을 상대로 싸우고 있는 모습을 보면 그 이유를 쉽게 알 수 있다.

맹씨는 지난 8월7일 자신의 사건 담당재판부인 서울지법 형사 항소7부에 법관 기피신청을 냈다. 그러나 법원은 8월18일 이 신청을 기각했다. 그러자 맹씨는 이에 불복해 8월31일 대법원에 재항고했다. 이어 9월21일에는 법관 기피신청을 이유로 법원이 자신의 구속기간 진행을 정지시킨 것이 부당하다며 법원에 다시 준항고장을 냈다. 법원은 9월26일 준항고 기각결정을 내렸고 10월2일 맹씨는 준항고 기각결정에 불복해 재차 대법원에 재항고장을 냈다.

맹씨 자신이 제기한 재판부 기피신청을 비롯한 숱한 소송으로 본안소송이 늦춰지고 있는 것이다. 맹씨를 상대로 검찰이 공소를 제기한 사건은 세 가지다. 첫째가 93년 2월 기소된 폭력행위 등 처벌에 관한 법률위반 등 사건, 둘째가 93년 9월 기소된 역시 폭력행위 등 처벌에 관한 법률위반 등 사건, 세 번째가 96년 6월 기소된 무고 사건이다. 앞의 두 사건은 92년께 동거녀와 부인을 각각 강제추행, 폭행, 강간한 혐의다.

처음에는 동거녀가, 몇달 뒤에는 부인이 차례로 그를 고소하면서 구치소에 갇히는 신세가 된 것이다. 세 번째 것은 서울구치소에 수감돼 있던 중 96년 3월 구치소 교도관들로부터 독직폭행 당했다고 고소했다가 곧바로 고소를 취하했으나 검찰에 의해 되레 무고 혐의로 기소된 사건이다.

첫 번째 사건은 징역 7년형을 선고받은 뒤 올해 1월19일 형기를 다 채움으로써 집행이 끝났다. 그러나 두 번째 사건과 세 번째 사건은 아직 항소심이 진행중이다. 기결수이자 동시에 미결수인 어정쩡한 상태인 셈이다. 공소제기된 그의 죄명은 폭행, 강간, 강제추행, 무고 등이다. 시국사범도 아니고 어찌보면 파렴치범에 가깝다. 물론 그는 아직까지 무죄를 주장하고 있지만.

맹씨는 서울구치소와 법원 주변에서 ‘맹 검사’로 알려져 있다. ‘맹 검사’란 말은 그의 만만찮은 형사소송관련 법률지식 때문에 붙여졌다. 그가 현재 서울지법에 제기해 진행중인 사건은 형사사건 재심, 준항고, 손해배상소송, 재판부 기피신청, 사무관 기피신청, 집행에 관한 이의신청 등 수십여건에 이른다. 모두 자신이 직접 낸 것들이다.

그가 형사소송법 등을 혼자 공부하기 시작한 것은 지난 94년부터. 면회 오는 어머니를 통해 법률관련 서적을 구해 밑줄 쳐가며 읽고 또 읽었다고 한다. 맹씨를 접견한 적이 있는 한 변호사는 “‘권리 위에 잠자는 자는 보호받을 수 없다’는 법 격언을 무서우리만치 철저하게 지키는 사람이 맹씨”라고 말했다. 법원과 교도소라는 골리앗과 벌이고 있는 그의 끝없는 싸움의 무기는 물론 자신의 터득한 형사소송법이다. 김형태 변호사 등 ‘도와주는’ 변호사들이 몇 사람 있긴 하지만 그에게 정식으로 선임된 변호사는 없다.

드디어 승리 하나를 쟁취하다

한 변호사는 “비록 파렴치범으로 지목받고 있지만 구치소와 법원을 상대로 한 그의 외롭고 기나긴 싸움은 어찌보면 재소자 또는 피고인의 인권을 실질적으로 지키려는 투쟁의 기록이라고 볼 만한 대목도 있다”고 평가했다.

팍팍한 구치소 안에서 벌이고 있는 그의 숱한 싸움 중 하나가 최근 승리로 끝났다. ‘상소제기 단계의 구금도 복역일수에 넣어야 한다’는 헌법재판소의 결정을 받아낸 것이다.

그는 첫 번째 형사사건 1심 판결이 난 뒤 검찰이 항소할 때까지 걸린 5일이 구금 일수에서 빠진 사실을 뒤늦게 알고 형사소송법 제482조(상소제기 뒤 판결 전 구금일수의 산입) 조항이 위헌이라며 지난해 9월 담당 재판부에 형 집행에 관한 이의신청을 냈다. 헌법재판소는 이에 대해 지난 7월20일 “판결선고 뒤부터 상소가 제기되기 전날까지의 구금일을 복역기간 계산에서 제외시키는 것은 당사자의 신체의 자유를 침해한다”며 헌법불합치 결정을 내렸다. 억울하게 닷새 더 옥살이한 부분을 되찾을 수 있는 길이 열린 것이다.

맹씨로 인해 고쳐진 서울구치소의 행형 관행도 한둘이 아니다. 한 변호사는 “서울구치소 안에서 재소자들이 신문을 보고 텔레비전을 보는 게 그 전에는 금지돼 있었는데 그의 줄기찬 요구로 텔레비전 시청이 받아들여졌다”고 말했다. 실제로 맹씨는 “구치소 피고인은 형이 확정되기 전까지는 무죄추정을 받는데 왜 교도소와 같이 다루느냐”, “행형법에도 이러저런 권리와 규정이 있는데 왜 제대로 안 지키느냐”며 법무부 장관과 구치소장 등에게 수차례 이의를 제기하기도 했다.

그가 구치소 안에서 싸워 얻어낸 것 중 대표적인 게 타자기 사용이다. 그동안 법정에 제출할 각종 서류나 외부로 부칠 수많은 편지를 일일이 펜으로 써오면서 불편을 겪던 그는 타자기를 쓸 수 있도록 해달라며 구치소쪽에 건의했다. 행형법에 보장된 권리 등을 들이대며 수차례 거듭된 그의 요구에 구치소쪽은 결국 손을 들었고 그는 요즘 어느 변호사가 넣어준 타자기를 이용해 편지를 쓰고 있다.

맹씨는 또 법률공부를 통해 피고인에게 소송기록을 열람하고 복사해볼 수 있는 권리가 있다는 점을 알게 된 뒤부터 1주일에 두세 차례 법원에 나가 자신의 정당한 권리를 행사하고 있다. 재판기록을 열람하거나 등사하기 위해 법원을 찾고 있는 것이다. 열람과정에서 증인신문조서가 잘못돼 있는 부분이 발견되면 재판부나 법정 서기관에 대한 기피신청서를 곧바로 내고 나중에는 그렇게 신청했던 기록을 보기 위해 다시 법원을 찾기도 한다.

한 법원 직원은 “맹씨가 형사접수실에 올 때면 워낙 까탈스러워 우리가 잘해주는 게 오히려 편했다”고 털어놓은 뒤 “오랫동안 앉아서 꼼꼼히 열람하고 복사할 것을 지정해준 뒤 다음에 올 날을 미리 가르쳐주기도 하는 아주 특이한 인물”이라고 말했다. 특히 김형태 변호사는 “법정 서기에 대해서까지 기피신청을 낼 수 있는지는 그동안 다른 변호사들도 몰랐을 만한 것인데 맹씨가 거기까지 생각한 것을 보면 변호사인 나도 부끄럽다”고 말했다.

구속영장 편법 발부에 정면 도전

김형태 변호사 등에 따르면 맹씨가 현재 법원에 맞서고 있는 △구속영장 효력문제 △법관 기피신청에 따른 구속기간 정지문제 등도 인신구속을 둘러싼 인권차원에서 주목할 만한 쟁점이다.

구속영장 효력 문제부터 들여다보자. 항소심 재판부는 맹씨의 첫 번째 사건 형기가 지난 1월19일 끝나자 두 번째 사건을 적용해 1월20일자로 새 구속영장을 발부했다. 그러나 이 영장의 구속기간마저 7월19일자로 만료되자 재판부는 다시 세 번째 무고죄를 적용해 7월20일자로 영장을 재발부했다. 기결수 신분이었던 올 1월19일까지 나머지 두 사건은 불구속 상태에서 재판을 받아온 셈이다.

맹씨는 1월과 7월 구속영장이 두 차례 새로 발부되는 과정에서 법원이 자신에게 이 사실을 사전에 알리지 않았으므로 무효라며 구속영장 발부효력을 다투는 재항고를 대법원에 냈다. 실제 재판부는 집행시기가 7월20일로 표기된 맹씨의 무고사건 영장을 지난 7월7일 미리 발부해 서울구치소로 보냈다.

이에 대해 담당 재판부는 “영장집행 하루 전인 7월19일 맹씨를 불러서 무고죄에 대한 설명을 하고 변명을 할 기회를 줬다”며 “이미 우리 재판부에서 재판을 받고 있었던 피고인인데 7월7일 구속영장을 발부할 당시 꼭 대면을 해 물어봐야 하는가”라고 되물었다.

문제는 영장을 ‘집행’하기 전에 피의자에게 고지해야 하느냐 아니면 영장을 ‘발부’하기 이전에 미리 고지해야 하느냐다. 이에 대해 한 법관은 “맹씨가 제기한 구속영장 고지 시기는 그동안 법원 안에서도 일부 논란이 돼왔던 것”이라며 “문제삼으면 문제가 될 수도 있는 만큼, 이번에 대법원에서 정리되는 계기가 마련된 것으로 볼 수도 있다”고 밝혔다.

맹씨는 나아가 1월20일 영장에 무고죄가 들어가 있는데도 7월20일 무고죄에 대해 다시 영장을 발부한 것은 위법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실제 1월20일 발부된 영장의 죄명에는 폭력과 함께 무고가 포함돼 있으나 정작 범죄사실에는 무고 부분이 빠져 있다.

이에 대해 김형태 변호사는 “논란의 여지가 있을 수 있지만, 무고가 죄명에 기재돼 있는 이상 당시 재판부가 무고를 인지하고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며 “특히 인신구속에 있어서는 되도록 피의자에게 유리하게 해줘야 하는데도 무고죄로 다시 영장을 발부한 것은 구속제도 자체를 법원이 악용한 것이라고 볼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수사편의를 명분으로 그동안 편법을 써서 구속영장을 발부해온 관행에 맹씨가 정면으로 문제를 제기했다는 얘기다.

변호사도 모르던 일을…

법관 기피신청에 따른 구속기간 정지 문제 역시 맹씨가 이미 대법원에 재항고장을 제출한 상태다. 기피신청 기간은 피고인의 구속기간에 넣지 않는다는 법원의 결정이 부당하다는 게 맹씨의 주장이다. 맹씨는 그동안 수차례 재판부가 바뀔 때마다 불공평한 재판을 할 염려가 있다며 법관 기피신청을 내왔다. 김형태 변호사는 “맹씨의 이의제기를 듣고서야 뒤늦게 95년 형사소송법이 개정되면서 법관 기피신청에 따른 소송정지 기간까지 구속기간 산입에서 뺀다는 조항이 들어간 사실을 알게 됐다”며 “이는 사법편의만을 위한 것으로 위헌여부를 따져볼 만한 대목”이라고 말했다.

김 변호사는 공판절차 정지와 달리 소송진행 정지는 구속기간에서 빼지 않는다는 94년 대법원 판례를 무시한 채 법이 개정됐다고 덧붙였다. 몸은 분명 구속돼 있는 상태인데도 법관 기피신청에 따른 소송진행 정지를 구속기간에서 뺀 것은 인권의 후퇴라는 게 김 변호사의 설명이다.

이렇듯 교도소와 법원을 상대로 한 맹씨의 지칠 줄 모르는 권리투쟁을 어떻게 봐야 할까? 한 법관은 “형이 확정되지 않은 상태에서 자신의 형기를 마쳐보자는 게 맹씨의 심산인 것 같다“고 한 반면 어느 변호사는 “사법부와 국가권력에 정면으로 도전하고 있는 외로움 싸움”이라고 표현했다. 서울구치소에서의 짧은 만남으로는 그의 진실과 속내를 다 헤아리기 어려웠지만 그는 여전히 ‘성역’을 깨고 있다.

조계완 기자kyewa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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