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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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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 우린 '조센징' 입니다

등록 2000-07-26 15:00 수정 2020-05-02 19:21

일본 침략행위 합리화하는 재일동포 지식인들… “일본 우익 뺨치네!”


“한국인이기를 그만두고 일본국민이 되자.”

일제 말기에 나온 내선일체론이 아니다. 최근 일본의 대표적인 우익 잡지 (正論) 8월호에 실린 재일동포 지식인 데이 다이킨(鄭大均)이 쓴 글의 제목이다. 재일 한국인이 일본에 완전히 동화되어 있으면서도 한국 국적을 계속 유지하고 참정권까지 주장하는 것은 논리적 모순일 뿐만 아니라, 한·일 두 나라 관계는 물론 재일 한국인의 지위 문제에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게 이 글의 뼈대다. 얼핏보면 객관적이고 타당한 듯 보인다. 하지만 이 글 속에는 역사와 현실에 대한 은폐와 전도가 숨어 있다. 현상에 대한 모든 책임을 피해자에게 전가하는 일본 우익의 전도된 도덕의식이 재일 지식인의 입을 빌려 표현되고 있는 것이다.

“종군위안부는 매춘부”라니…

‘자유주의 사관’이라는 세련된 논리로 치장한 일본 우익은 전후의 역사서술을 ‘자학 사관’ ‘도쿄재판 사관’으로 비판한다. 또한 일본이 2차대전에서 저지른 범죄를 숨긴 채, ‘남경학살은 없었고, 종군위안부는 상행위였다’ ‘태평양전쟁은 미국에 대한 방위전쟁이었다’는 대동아전쟁 긍정론을 펼친다. 종군위안부 문제가 일본 역사교과서에 실리는 것에 반대해 96년에 결성된 ‘새로운 교과서를 만드는 모임’을 중심으로 이들은 사죄에 급급한 일본 정부를 비판하고, 강연과 저술활동을 통해 네오내셔널리즘의 확산에 분주하다. 에서 펴내는 월간잡지 은 그들의 핵심 이데올로기 선전 매체이다. 그들은 자기들의 주장이 일본인만의 것이라는 한계점을 극복하기 위해, 한국 내셔널리즘에 비판적인 재일 지식인들을 동원하는 단계에까지 이르렀다. 도쿄 도립대학에서 한일관계론을 가르치는 데이 다이킨, 을 쓴 저널리스트 오선화(吳善花), 인류학자이자 히로시마대학 교수인 최길성(崔吉城)이 그들이다.

를 쓴 데이 다이킨은 한국인이 가진 반일 감정을 과거사에 고착한 원한으로서 파악하고, 그것에 대한 청산없이 진정한 한-일 관계는 성립할 수 없다는 뒤틀린 ‘한일관계론’을 펼치고 있다. 또한 식민지 침략에 대한 일본 정부의 배상과 사죄, 재일 외국인의 지위보장을 주장하는 재일 한국인과 일본 좌익의 행동을 일본의 국제적 이미지를 추락시키기 위한 음모라고 몰아붙인다. 오선화는 등의 책을 통해 추한 한국인상을 부각시키는 데 힘을 기울이고 있다. 오선화와 함께 을 쓴 최길성은 스스로 황국사관을 계승하고 있다고 공언하고 있다.

이들의 공통된 주장 가운데 하나는 ‘식민지 긍정론’이다. 식민지는 좋은 점도 있었고 나쁜 점도 있었는데 한국인들과 재일 한국인 및 일본 좌익은 식민지의 좋은 점은 보지 않는다는 것이다. 지금 한국이 갖고 있는 근대적 제도와 학문은 모두 식민지 시대를 통해 만들어진 것인데, 이 때문에 속으로는 일본에 대한 선망을 가지면서도 겉으로는 반일감정을 강하게 드러내고 있다는 것이다. 그들이 한국의 내셔널리즘을 비판하는 주된 뿌리는 여기에 있다. 한-일 관계가 진정한 우애와 신뢰로 다져지기 위해서는 반일 감정에 대한 비판에서 시작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일본 우익의 주장인 ‘자유주의 사관’과 일치하는 점은 이 뿐만이 아니다. 침략 역사를 은폐하기 위해 이들은 ‘자유주의 사관’을 앵무새처럼 되풀이하고 있다. “한국의 초대 통감이었던 이토 히로부미에게는 한국 침략의 의도가 없었다”라는 오선화의 주장은 “안중근은 열사나 의사가 아니다”라는 후지오카의 주장과 통한다. “종군위안부는 직업적인 매춘부였다”는 주장은 자유주의 사관의 ‘상행위’라는 주장의 반복이다. 한걸음 더 나아가 이들은 식민지 시대 일본의 침략과 한국 민중에 대한 억압을 가르치는 한국에서의 역사 교육을 ‘자학사관’이라고 규정짓는다. 일본의 침략행위와 전범행위에 대해 가르치는 역사 교육은 일본인으로 하여금 자괴감과 자기학대 의식을 키울 뿐이라는 뜻에서 자유주의 사관 논자들이 붙인 ‘자학 사관’이라는 말을, 재일동포 우익들은 피해자인 한국의 역사교육에 그대로 적용하는 아이러니를 연출하고 있는 것이다.

데이 다이킨의 뒤틀린 한·일관계론

이러한 왜곡된 역사인식에 선 그들은 현실의 모순과 부조리에 대한 책임을 역사의 피해자들에게 돌리고 있다. 지난해 5월 이시하라 도쿄 도지사의 망언에 대해 중국 정부의 거친 항의가 있었다. 이를 두고 데이 다이킨은 “중국이 말하는 우호라는 것은 자국의 역사, 도덕적 우월성, 반론에 대한 비관용적 발상을 다른 국민에게 강요하는 것이다”라는 요지의 소감을 에 실었다. 이것은 침략전쟁을 일으킨 일본에 대해 주변 국가는 관용적이어야 하며, 도덕적 우월성도 가질 수 없다는 논리가 된다. 미래지향적인 우호관계가 이뤄질려면 침략전쟁을 묵인하거나 덮어두어야만 가능하다는 주장인 것이다. 일본 내 많은 지식인들은 이들의 삐뚤어진 인식과 행보에 할말을 잃고 있다.

도쿄=윤대석 통신원yds70@yaho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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