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케밥, 터키 이주노동자의 힘

등록 2002-12-11 15:00 수정 2020-05-02 19:23

독일 사회에서 괄시받던 터키 이주노동자들, 되너 케밥으로 우뚝 서다

독일의 수도 베를린은 제2의 이스탄불이라고 불린다. 의아스럽겠지만 베를린 거리를 활보하는 10명 중 1명이 터키인이라는 통계를 접하고 나면 고개가 끄덕거려진다. 독일로 이주한 터키 노동자들의 역사는 30년을 훌쩍 넘어섰다. 터키인들은 외국인, 특히 이슬람권 출신에게 가해진 온갖 차별 속에서도 독일 전역에서 250만명이라는 규모를 이루며, 이제 부정할 수 없는 독일 사회의 구성원이 돼버렸다.

“맥도널드가 물먹었다”

서러움 가득한 터키인들의 이주 역사 속에도 반짝이는 성공담이 하나 있으니, 이는 ‘되너 케밥’(회전 꼬치구이라는 뜻)이라 불리는 음식이다. 얇게 저민 양고기나 송아지 고기로 쌓아올린 50kg이 넘는 거대한 고기 덩어리가 꼬치에 끼워져 좌우로 회전한다. 기름기가 빠지며 표면이 노르스름하게 익어가면, 노련한 요리사가 휘두르는 80cm에 이르는 긴 칼이 익은 부위를 얇게 썰어낸다. 이 고기가 취향에 따라 마늘 소스나 매운 소스를 곁들여 구운 빵 사이에 채워진다. 여기에 양상추·토마토·오이 등의 신선한 야채가 더해지면 되너 케밥은 완성된다. 현재 1인분 되너 케밥의 베를린 평균가격은 3천원에 조금 못 미친다. 맥도널드 햄버거 하나 가격보다는 조금 비싸지만, 담백한 맛은 같은 패스트푸드라고 비교하기에는 자존심이 상하는 수준이다. 베를린에서만 매일 25t의 고기가, 독일 전역에서는 하루평균 무려 700t의 고기가 되너 케밥으로 소비된다. 이는 연간 7억2천명분에 해당하고, 독일 전체 인구인 8200만명이 한해에 평균 9개의 되너 케밥을 먹는다는 계산이 나온다. 연간 판매규모도 맥도널드와 버거킹을 큰 폭으로 뛰어넘었음은 물론이다. “맥도널드가 이탈리아에서 피자에 고전한다면, 독일에서는 되너 케밥에 물먹었다”라는 말이 있을 정도다.

지금 형식은 16살 소년의 작품

1973년 은 “터키인이 몰려온다, 누가 막을 것인가”라는 제목으로 표지를 장식했다. 61년부터 시작된 터키 이주민들의 행렬은 이미 70년대 초반 100만의 규모에 다다랐다. 그러나 70년대 중반 찾아온 오일 쇼크로 단순노동과 허드렛일에 종사하던 터키 노동자들은 순식간에 거리로 내몰렸다. 독일 정부도 본격적인 터키인 이주 억제정책을 마련하기 시작했다. 이렇게 궁지에 몰린 독일의 터키인들에게 기회를 제공한 것이 되너 케밥 가게와 고기 생산 공장이었다. 1983년 서베를린에 200여개의 되너 케밥 가게가 성업하였고, 통일 직전인 1988년에는 그 수가 400여개로 늘어났다. 1990년대 말에는 1300여개로 껑충 뛰면서 말 그대로 베를린 전역의 ‘되너 케밥화’가 이루어졌다. 베를린에서 시작해 독일 전체로 확산된 되너 케밥 열풍은 현재 유럽과 바다 건너 미국 땅에까지 이어지고 있다. 최근에는 한국에서 일하는 터키 노동자들에 의해 한국에도 되너 케밥이 찾아들었다.

되너 케밥의 성공담에 무수한 ‘원조 논쟁’이 뒤따르고 있음은 어쩌면 당연한 일인지 모른다. 약 160년 전 지금의 터키 땅을 차지하고 있었던 오스만투르크 민족이 커다란 접시에 되너 케밥을 담아 야채와 빵을 곁들여 여럿이 함께 먹었던 데서 유래했다는 것이 정설이다. 그러나 샌드위치처럼 구운 빵 사이로 고기를 넣어 먹는 지금의 패스트푸드 형식은 1971년 베를린에서 한 터키 식당의 점원으로 일하던 16살 소년의 작품이다. 그 16살 소년의 동생 사임 아위귄(41)이 베를린에서 운영하는 6개의 되너 케밥 가게들은, 이러한 탄생신화와 함께 한껏 인기를 누리고 있다. “맥도널드처럼 프랜차이징을 통해 세계 시장에 진출할 때가 되지 않았는가”라는 질문에, 아위귄은 “햄버거가 지금처럼 인기를 누리게 되는 데는 약 100년의 시간이 걸렸다. 되너 케밥의 경우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그러나 현재 그 길 위에 서 있음은 분명하다”라며 자신감을 표현했다.

베를린=강정수 전문위원 jskang@web.d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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