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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19 통해 존재증명한 ‘숄츠 자판기’

등록 2021-10-03 03:05 수정 2021-10-05 09:01
2021년 독일 총선 다음날인 9월27일, 사회민주당의 올라프 숄츠 대표(가운데)가 베를린에서 열린 당 대표자 대회에서 당원들과 함께 16년 만의 선거 승리를 자축하며 활짝 웃고 있다. AP 연합뉴스

2021년 독일 총선 다음날인 9월27일, 사회민주당의 올라프 숄츠 대표(가운데)가 베를린에서 열린 당 대표자 대회에서 당원들과 함께 16년 만의 선거 승리를 자축하며 활짝 웃고 있다. AP 연합뉴스

숄초마트(Scholzomat). 2021년 9월26일 독일 총선에서 제1당을 차지한 사회민주당(SPD·사민당)의 올라프 숄츠 대표를 부르는 별명이다. 성씨 ‘숄츠’(Scholz) 뒤에 ‘아우토마트’(Automat, 자동판매기)를 붙인 합성어다. ‘숄츠 자판기’라는 별명은 숄츠 대표의 언행 스타일에서 비롯했다. 로봇처럼 무미건조한 말투와 기계처럼 척척 일을 해내는 모습이 자판기를 연상시킨다는 것이다.

앙겔라 메르켈 총리의 4기 연립정부에서 재무장관 겸 부총리를 역임한 숄츠 대표가 이번 총선에서 사민당 승리를 견인하며 ‘포스트 메르켈’ 시대를 이끌 차기 총리에 가장 가까이 다가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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숄츠 대표는 고등학생이던 17살에 사민당에 입당했다. 함부르크 대학에서 법학을 공부한 뒤 노동 및 고용법 전문 변호사로 일했으며, 사회주의자청년국제연맹(IUSY) 부의장도 지냈다. 1998년 총선 때 함부르크 선거구에서 연방의회 의원으로 당선하며 40살에 중앙 정치 무대에 발을 디뎠다. 1998년 총선은 사민당이 헬무트 콜 총리의 기독민주당(CDU·기민당) 16년 집권의 막을 내리게 한 선거였다. 사민당은 그러나 2005년 총선에서 메르켈이 이끄는 기민/기사연합에 패배한 이후 총선에서 또다시 4연패를 하다가 이번에 극적인 승리를 일궈냈다. 숄츠 대표는 메르켈 1기 대연정 당시 노동·사회부 장관(2007~2009년)을 지낸 데 이어, 2011년부터 2018년까지는 함부르크 제1시장을 역임했다. 그러나 메르켈 연정에 참여하기 전까지는 사민당 안에서도 중량감이 낮은 인물이었다. 사민당 지도부의 주류가 선명한 좌파 노선을 강조하는 것과 달리 숄츠는 당내 온건파 내지 보수파로 분류된다. 2019년 사민당 대표 선거에서도 경쟁자들에게 밀린 까닭에 그의 대표직 당선이 의외로 받아들여졌다.

숄츠 대표가 대중을 휘어잡는 카리스마와 친화력이 부족하다는 평을 듣는 것은 정치 지도자로서 약점일 수 있다. 그러나 풍부한 행정 경험을 갖춘데다 침착하고 냉철한 판단력과 실용주의적 성향이 메르켈 총리의 이미지와 겹치는 것은 강점이다. 사민당의 정치 커뮤니케이션 컨설턴트를 지낸 프랑크 슈타우스는 “메르켈 총리는 그만의 통치 방식으로 독일 정치 문화에 매우 큰 영향을 끼쳤다. 숄츠가 ‘메르켈 복제인간’은 아니지만, 메르켈 같은 스타일을 원하는 유권자들을 끌어당기기에 충분하다”고 평가했다. 벨기에 브뤼셀에 본부를 둔 싱크탱크 ‘독일 마셜 펀드’의 코리나 회르스트 선임연구원도 “숄츠는 차분하고 신중하며, 안정적이라는 인상을 준다”고 평가했다고 CNN 방송이 전했다.

독일 주재 대사를 지낸 정범구 청년재단 이사장은 “숄츠 대표는 메르켈 연정에서 재무장관을 지내는 동안 코로나19 확산에 따른 경제위기 국면에서 재정정책을 통해 자영업자들을 구제했고, 이번 총선에선 최저임금을 12유로로 인상하는 공약을 당내에서 관철했다”며 “숄츠 대표의 리더십이 이번 총선에서 사민당 승리를 견인했다”고 말했다. 실제로 총선을 2주 앞둔 9월13일 주요 정당 대표들의 TV토론 직후 실시된 ‘차기 총리 적합도’ 여론조사에서 숄츠는 49%의 지지를 얻어, 최대 경쟁 상대인 기민당의 아르민 라셰트 대표(26%)를 압도했다. 이제 숄츠 대표는 총선 득표율에서 불과 1.6%포인트 차이로 제1당이 된 사민당이 성공적으로 연정을 구성해 집권하는 것으로, 유력한 차기 총리 후보로서 리더십을 증명해야 할 시험대에 올랐다.

조일준 선임기자 ilju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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