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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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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식 짝 찾아 공원에 이력서 붙이는 부모들

중매 장터 열리는 중국 공원…
가족계획생육시대를 산 부모와 아무것도 욕망하지 않는 ‘탕핑족’ 자녀
등록 2021-05-29 12:22 수정 2021-06-04 01:36
중국 베이징 시내에 있는 중산공원과 천단공원, 옥연담공원 등에서 매일 중매 장터가 열린다. 부모는 자식의 나이와 학력, 직업, 재산 정도를 적은 종이를 코팅해서 바닥에 늘어놓거나 나무에 매달아놓고 적임자를 기다린다.

중국 베이징 시내에 있는 중산공원과 천단공원, 옥연담공원 등에서 매일 중매 장터가 열린다. 부모는 자식의 나이와 학력, 직업, 재산 정도를 적은 종이를 코팅해서 바닥에 늘어놓거나 나무에 매달아놓고 적임자를 기다린다.

아주 오래전 첫째 아이 임신 검사를 위해 집 근처 산부인과 병원에 갔을 때 일이다. 간단한 검사 뒤 임신 사실을 확인해준 담당 의사는 무표정한 얼굴로 나에게 물었다. “야오부야오?”(아이를 원하냐 원하지 않느냐?) 처음에는 의사가 하는 말이 무슨 의미인 줄 몰랐다. 내가 잠시 어리둥절해하자, 외국인이라 말귀를 못 알아듣는 줄 알고 밖에 있는 남편을 불러서 다시 한번 물었다. “야오부야오?” 남편의 ‘통역’을 거쳐서야 나는 그 말의 정확한 의미를 알 수 있었다. 임신이 확인됐으니 (원하지 않으면) 지금 당장 낙태할지, 아니면 임신을 지속할지 ‘결정하라’는 뜻이었다. 중국 산부인과에서는 ‘임신을 축하드립니다’가 아닌 ‘야오부야오’를 가장 먼저 묻는다는 걸 그때야 알았다.

왜 결혼 못했을까 싶은 이력

그날 병원을 나오는 길에 자세히 살펴보니, 산부인과 대기실 복도 한쪽에 수많은 여성이 세숫대야를 하나씩 들고 있었다. 저마다 표정이 참 기묘했다. 배를 움켜잡고 엎드린 여성도 있고 허공을 쳐다보며 점점 얼굴이 일그러지는 여성도 있었다. 그들은 모두 ‘부야오’(원하지 않음)를 선택한, 임신 초기에 가능한 약물 복용 낙태를 하기로 결정한 여성이었다. 임신 서너 달이 지난 뒤 ‘부야오’를 선택하는 여성도 많았다. 대부분이 배 속 아이가 ‘여아’라는 사실을 알고 망설임 없이 바로 낙태를 결정한 경우다. 국가 정책상 한 자녀밖에 낳을 수 없으니 이왕이면 딸보다는 아들을 낳겠다는 ‘의지’의 결정이었다.

중국에는 동네마다 크고 작은 공원이 많다. ‘공원의 나라’라고 불러도 손색이 없을 정도다. 이 중 주요 공원에서는 매일 아주 기이한 ‘장터’가 열린다. 중매 장터다. 베이징 시내에 있는 중산공원과 천단공원, 옥연담공원 등에서도 매일 중매 장터가 열린다. 좌판을 펼치고 ‘거래’하는 사람들은 아직 결혼 상대를 찾지 못한 자녀를 둔 노부모다. 늙은 부모는 자식의 나이와 학력, 직업, 재산 정도를 적은 종이를 코팅해서 바닥에 늘어놓거나 나무에 매달아놓고 적임자를 기다린다. ‘명문대 졸업, 34살, 외국기업에서 일함, 아파트와 자동차 소유’ ‘박사학위 소지, 32살, 국책연구기관에서 일함, 용모 단정’.

종이에 적힌 화려한 ‘소개글’만 보면 ‘왜 이런 능력 있는 선남선녀들이 아직 결혼 상대를 못 찾았나’라는 의구심이 들 정도다. 늙은 부모 손에 들려 매일같이 공원 중매 장터에 나오는 자녀 ‘이력서’를 보면 대부분이 1980년대 이후 가족계획생육시대에 태어났다. 이들의 부모가 매일 절박한 심정으로 공원 내 중매 장터로 ‘출근’하는 이유는 ‘하나밖에 없는’ 금쪽같은 자식이 나이 서른을 훨씬 넘기고도 결혼할 짝을 구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자식이 제때 결혼해서 손주를 낳고, 또 그 손주를 돌보면서 남은 생을 보내는 게 ‘완벽한 인생’이라고 생각하는 부모 세대에게는 자신보다 훨씬 더 좋은 문화·경제적 조건을 갖춘 자식이 왜 결혼을 못하고 ‘빌빌대고’ 있는지,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일이다. 특히 가족계획생육시대에 태어난 딸을 가진 부모는 그 심정이 더욱더 참담하다. 남들처럼 딸이라고 해서 일부러 낙태하지 않고 ‘과감하게’ 낳았고, 딸이 여느 아들 부럽지 않게 대학과 대학원 등을 마친 고학력에 중국 최고 직장에 다니지만 결국 공원 중매 장터에서는 ‘성뉘’(剩女·결혼할 나이가 지났는데도 결혼하지 않은 여성을 조롱하는 말로, 여성차별적 용어로 지정돼 공식 매체에서는 언급을 자제함)로 취급받기 때문이다.

중국 베이징 시내에 있는 중산공원과 천단공원, 옥연담공원 등에서 매일 중매 장터가 열린다. 부모는 자식의 나이와 학력, 직업, 재산 정도를 적은 종이를 코팅해서 바닥에 늘어놓거나 나무에 매달아놓고 적임자를 기다린다.

중국 베이징 시내에 있는 중산공원과 천단공원, 옥연담공원 등에서 매일 중매 장터가 열린다. 부모는 자식의 나이와 학력, 직업, 재산 정도를 적은 종이를 코팅해서 바닥에 늘어놓거나 나무에 매달아놓고 적임자를 기다린다.

‘선택’받아야 했던 여성들, ‘성뉘’라는 오명까지

1980년대 가족계획생육정책 실시 이후 중국에서는 ‘이왕이면 아들’이라는 인식이 강해서 여아보다는 남아 출생률이 더 높았다. 이로 인해 남초 현상이 나타나 여자는 상대적으로 남자보다 덜 경쟁적으로 ‘짝’을 구할 수 있지만, 남자는 결혼도 입시나 입사시험처럼 경쟁을 통해 좁은 문을 통과해야 하는 신세가 됐다. 하지만 어찌된 일인지 2000년대 이후 중국 사회에서는 결혼을 못한 ‘성뉘’를 향한 조롱과 비난이 난무한 적이 있었다. 여성의 교육수준과 사회적 지위가 상승하면서 갈수록 비혼을 선택하거나 결혼하더라도 아이는 낳지 않겠다는 ‘딩크족’이 늘어나면서 출산율이 떨어졌고, 이로 인해 중국 사회 인구정책에 심각한 부작용을 초래하기 때문이다. 가족계획생육정책으로 배 속에서부터 생사의 갈림길에서 선택받아야 했던 수많은 ‘여아’는, 커서는 결혼도 않고 아이도 낳지 않는 못된 ‘성뉘’라는 오명을 안았다.

최근 중국에서는 갈수록 심각해지는 출생률 저하로 인구 감소와 사회 노령화 문제가 대두하자 ‘특단의 대책’을 내놔야 한다는 주장이 등장했다. 우리나라와 같은 각종 ‘출생장려금’을 지급하는 방법과 ‘가족계획생육정책 전면 폐지’, 심지어 딩크족에게 ‘딩크세’나 ‘사회부양세’를 부과하자는 주장도 나왔다. 어떤 학자는 ‘남녀 불문하고 40살 이하 모든 공민은 월급에서 일정 비율로 생육기금을 납부하게 해야 한다’는 정책을 건의했다. 가족계획생육시대에는 둘째를 임신하거나 낳으면 강제 낙태를 당하거나 엄청난 벌금을 물어야 했고, 공무원인 경우 해직되는 일도 감수해야 했는데, 지금은 오히려 아이를 낳지 않는 사람에게 벌금이나 세금을 부과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웃픈’ 현실이 펼쳐지고 있다. ‘한 자녀 정책’은 사실상 폐기돼 지금은 적극적으로 ‘두 자녀 낳기’를 장려하고 있다.

일본의 유명 경제경영 컨설턴트인 오마에 겐이치는 2018년 펴낸 책 <저욕망 사회>에서 현재 일본 사회와 일본 젊은이의 상태를 이렇게 설명했다. “일본은 이미 인류역사상 유례없는 저욕망 사회로 진입했다. 저욕망화가 가장 명확하게 나타나는 집단은 젊은이로 그들은 원래 가장 소비 욕망이 높은 핵심 인구집단이어야 하지만… 그들 대부분은 자동차와 주택을 살 필요와 욕구도 느끼지 않고, 결혼을 원하지도 않는다.” 그는 ‘저욕망화된’ 일본 사회 젊은이를 ‘가능한 한 최대로 그 어떤 책임과 부담도 지지 않으려는 세대’라고 정의했다.

N포 세대, 저욕망 세대… ‘가장 아름다운 자들’

중국에도 최근 이와 비슷한 ‘저욕망 세대’를 지칭하는 사회적 유행어 ‘탕핑족’(躺平族)이 급속도로 회자되고 있다. 탕핑족은 일본의 ‘저욕망 사회 청년’과 비슷한 부류로, 아무리 노력해도 더 나아지지 않는 상황을 타개하기 위해 더 분발하고 노력하기보다는 ‘바닥에 가만히 드러누워서’ 아무것도 욕망하지 않고 사는, 주로 중국의 1990년대 이후 출생자를 상징하는 신종 유행어다. ‘유토피아 세계에 사는 쥐들’의 관점에 보면 이들은 ‘가장 아름다운 자들’이다.

출산율 저하 문제를 논할 때 반드시 등장하는, 존 B. 캘훈의 ‘유토피아 쥐 실험’을 보자. 처음에는 160마리 정도의 쥐가 안락하게 살 수 있는 사각형의 실험공간에 암수 한 쌍을 풀어놓고 충분한 물과 음식을 공급하며 유토피아적인 환경에서 살아가도록 한다. 하지만 쥐들의 교배로 점차 개체가 늘어나 55일마다 두 배가 됐다. 그러다 315일째에는 개체수 증가가 감소하기 시작했고 600일째 이후에는 한 마리도 태어나지 않았다. 애초 유토피아 세상이던 공간은 급격하게 불어난 쥐들로 지옥으로 변했고 쥐들은 서로 먹이와 물, 암놈을 차지하기 위해 물어뜯고 싸우는가 하면 힘의 서열에 따라 먹이와 암컷을 차지했다. 그러다 실험 600일이 지난 뒤 정글 같은 생존 조건에 지친 쥐들이 번식을 포기하면서 더는 새로운 쥐가 태어나지 않았고, 지친 쥐들은 모든 욕망과 욕구를 상실한 채 혼자서 조용히 자기 털만 다듬으며 살아갔다. 이 쥐들을 ‘가장 아름다운 자들’이라고 불렀다. 우리나라의 ‘N포 세대’와 일본의 ‘저욕망 세대’ 그리고 중국의 ‘탕핑족’이 바로 그런 생존에 지쳐 모든 욕망을 포기하고 살아가는 ‘가장 아름다운 자들’인 셈이다.

1934년 스웨덴에서 <인구문제의 위기>라는 책이 나왔다. 1974년 노벨경제학상을 받은 군나르 뮈르달과 1982년 노벨평화상을 받은 그의 부인 알바 뮈르달이 함께 썼다. 이 책에서 내내 강조하는 핵심은 출산율을 높이고 인구를 늘리려면 ‘왜 여성이 아이를 낳지 않는가’에 대한 사회적 원인을 분석한 뒤 ‘여성이 자발적으로 아이를 낳게 하기 위해’ 국가와 사회가 무엇을 먼저 해야 하는지다. 그들은 아이를 낳으면 돈을 준다는 등의 일시적인 유혹책보다는 ‘여성이 안심하고 아이를 낳고 기를 수 있는 사회적 환경’을 만들어주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그것은 곧 여성의 각종 권리와 인권, 사회경제적인 기회 균등 보장을 먼저 정책·제도적으로 마련해줘야 한다는 것이다. 실제로 뮈르달이 주도해 전개한 스웨덴의 여권 신장과 출산율 증가 정책은 큰 성공을 거뒀고, 다른 유럽 국가에도 큰 영향을 미쳤다.

‘가족계획생육시대’에서 ‘멋진 신세계’로

뮈르달 부부가 살아 있다면 이미 결혼은 물론 삶의 모든 욕구와 욕망을 상실한 탕핑족과, 자식의 짝을 찾기 위해 온종일 공원 중매 장터를 배회하는 중국의 가련한 노부모를 보고 해결책을 내놓을 수 있을까? 답은 올더스 헉슬리의 <멋진 신세계>에 나와 있다. 나는 인류의 위대한 지도자들이 이런 철없는 탕핑족으로 인해 ‘인류 멸족의 날’이 도래하는 걸 눈뜨고 보고 있지만은 않을 거라고 확신한다.

<멋진 신세계>에서 예언하듯 ‘중앙 인공부화와 조건반사 양육소’를 만들어 각 병에서 대량으로 필요한 아이를 ‘생산’할 날이 올 거라고 ‘믿는다’. 그날이 오면 중매 장터를 헤매며 야만적인 ‘가족계획생육시대’를 살아가던 중국의 늙은 부모들도 이렇게 외치며 달려갈 것이다. “오, 그런 사람들이 사는 멋진 신세계여, 우리 당장 출발합시다.” 산부인과 의사들도 더는 ‘야오부야오’를 질문할 필요 없이 병에서 태어날, 필요한 계급별 아이들을 잘 ‘수정’시키는 일만 하면 될 것이다. 멋진 신세계가 곧 도래할 것이다.

베이징(중국)=글·사진 박현숙 자유기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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