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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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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윈의 ‘마법시대’는 저무는가

지난 몇십 년간 최고 대리만족을 줬던 ‘알리바바 무협지’,
마윈은 공산당 위협에 강호를 떠날 처지
등록 2021-05-16 12:07 수정 2021-05-17 02:50
중국 베이징에 있는 알리바바 건물 앞 로고. REUTERS

중국 베이징에 있는 알리바바 건물 앞 로고. REUTERS

“영웅은 무슨 개뿔 영웅이랍니까? 내 소원은 그가 망하는 꼴을 보는 거예요. 나에겐 아주 ‘죽일 놈’이라고요!”

저장성 항저우 샤오산 공항에 도착한 시간은 자정이 가까운 무렵이었다. 운 좋게 아주 ‘좋은’ 택시기사를 만나 숙소까지 가는 1시간 넘는 긴 시간 동안 항저우에 관한 온갖 ‘알쓸신잡’ 강의를 얻어들었다. 그중 하이라이트는 마윈에 대한 ‘악담’이었다. 마윈이 누군가? 중국뿐만 아니라 전세계에서 가장 잘나가는 인터넷 전자상거래 기업 알리바바의 창업자 아니던가. 게다가 항저우는 마윈의 고향이자 알리바바 본사가 있는 곳이다. 같은 고향 사람끼리 너무 박하다 싶을 정도로 그 택시기사는 마윈을 ‘입으로’ 잘근잘근 씹어서 곤죽을 만들고 있었다.

밥 안 하고 결혼 안 하는 젊은이를 만든 마윈

“마윈 때문에 죽어나간 사람이 한둘이 아니에요. 나도 예전엔 택시 운전을 해서 하루 평균 600위안(약 10만원)은 벌었다고요. 마윈이 등장해 온갖 무슨 인터넷 플랫폼인가를 만들면서 모바일 예약차량 서비스 같은 게 마구 생기니, 요즘은 온종일 택시를 몰아도 200~300위안(약 3만~5만원)밖에 못 벌어요. 마윈은 우리 애들 인생도 망가뜨렸어요. 지금 서른 살 가까운데 둘 다 결혼할 생각은 하지 않고 종일 휴대전화를 끼고 살면서 밥도 혼자 안 해먹어요. 손가락만 누르면 편하게 배달시켜 먹을 수 있는 ‘배달경제’ 시대인데 왜 밥을 해먹냐면서요. 결혼하라고 노후 자금까지 다 털어서 집도 사주고 차도 사줬지만 ‘혼자 사는 게 이렇게 편한데 뭐 하러 귀찮게 결혼하냐’며 아예 결혼은 꿈도 안 꾼대요. 버는 족족 다 쓰는 것 같아 제발 좀 아껴 쓰고 저축하라고 했더니, 요즘은 손가락으로 휴대전화만 누르면 소소한 생활비 대출은 아주 쉽다는 거예요. 이게 다 그 망할 놈의 마윈이 만든 일이라고요! 그뿐인 줄 아세요? 마윈은 구멍가게들도 망하게 했어요. 타오바오(인터넷 쇼핑몰)로도 배가 안 부른지, 인터넷 슈퍼마켓과 오프라인 무인 슈퍼마켓까지 만들어서 동네 구멍가게와 슈퍼마켓을 죄다 망하게 했어요. 그 사람들 지금은 택배나 배달기사로 먹고살고 있어요. 자기가 무슨 영웅호걸이나 대협객이라도 된 양 온갖 똥폼은 다 잡고 다니더니만 결국 공산당에 때려잡히는 거 보세요. 중국에서 강호의 최고 고수는 공산당인데, 마윈이 숭배하는 진융(홍콩 무협소설 작가) 선생이 그건 안 가르쳐줬나봐요?”

마윈은 한때 중국인들의 우상이자 영웅이었다. 마윈이 펼쳐놓은 인터넷 세상에서 나고 자란 지금 중국의 이삼십 대 젊은이들은 현실 세상의 ‘알리바바’ 마윈이 되기를 원했다. 1990년대 중후반 전세계가 인터넷경제 시대로 들어설 때, 중국은 인터넷은커녕 컴퓨터도 제대로 보급되지 않은 시절이었다. 그때 홀연히 강호에 나타난 무림의 숨은 고수가 바로 마윈이다.

마윈은 1990년대 중반, 중국에 최초로 인터넷이라는 신비한 ‘요술램프’를 들고 나타나 온갖 마법과 신공을 선보이더니 얼마 안 지나 강호를 평정하고 무림 최고의 고수가 됐다. 마윈이 ‘독고구검’(진융의 소설 <소오강호>에서 무림의 숨어 있는 고수 풍청양이 주인공 영호충에게 전수해준 검법. 마윈은 진융의 광팬으로, ‘풍청양’은 자신에게 부여한 별칭이기도 하다)으로 이베이 같은 세계 최강의 전자상거래 기업 등 강호의 경쟁 문파들을 물리치고 고개를 들었을 때, 그는 “망원경으로 사방을 둘러봐도 내 상대는 보이지 않는다”고 고백했다. 알리바바에 이어 인터넷 종합쇼핑몰 타오바오와 톈마오를 열어 세상의 금은보화를 쓸어 담은 마윈은 곧이어 ‘금융제국’의 꿈을 이루기 위해 인터넷결제시스템인 즈푸바오(알리페이)를 만들고 ‘개미들’의 돈을 장악하기 위해 앤트그룹을 만들었다. 그리고 드디어 2020년 11월5일 마윈은 자신의 최종 목표라고 했던 금융제국으로 가는 관문인, 앤트그룹의 미국 증시 상장을 눈앞에 두고 있었다.

‘전당포’ 이후 열리지 않는 마윈의 입

그러나 지금까지 잘 통했던 마법의 주문 ‘열려라 참깨’가 더는 통하지 않았다. 중국 당국이 마법 주문을 바꾸었고, 마윈은 한동안 강호에서 자취를 감췄다. 중국 내외 언론매체와 저잣거리 여기저기서 마윈에 대한 소문이 나돌았다. 인터넷 강호를 제패한 무림의 패자 마윈이 미처 방어할 새도 없이 중국 공산당의 최신 ‘검법’에 당해 한칼에 날아갔다는 소문이 대세를 이뤘다.

<소오강호>에서 영호충의 스승 풍천양은 “아무리 뛰어난 검법을 쓴다 해도, 상대방이 사랑하는 사람이나 가족의 목에 칼을 들이댄다면 어찌할 도리가 없다”고 했다. 강호에는, 마윈 역시 중국 공산당의 칼끝이 자신뿐만 아니라 자기 목숨과도 같은 회사의 목을 겨누자 스스로 ‘검’을 내려놓게 하는 ‘금분세수’(金盆洗手·무협소설 용어로 금분대야에 손을 씻고 강호를 완전히 떠나는 의식)를 ‘당했다’는 뒷말이 무성하게 나돌았다. 하지만 2020년 10월24일 상하이 금융서밋에서 마윈은 중국 금융시스템을 아주 후진적이고 전근대적인 ‘전당포 경제’로 비유하며 중국 정부에 비수를 겨눴다. 마오쩌둥의 어록 다음으로 중국에서 가장 많이 인용되는 어록을 남긴 마윈이지만, 실수인지 계산된 의도인지 알 수 없는 그날의 ‘설화’로 강호에 칼바람을 불러온 뒤 그의 입은 굳게 닫혔다.

사람들은 막장드라마와 무협소설에 열광한다. 가장 센 막장드라마도 흉내 낼 수 없는 최강 ‘막장 현실’이 매일 눈앞에 펼쳐지고, 정의와 의리를 지킬 줄 아는 협객은 진즉에 강호에서 사라진데다 앞날이 어떻게 될지 모르는 우울과 불안이 지배하는 세상이다보니, 사람들은 막장드라마와 무협소설 속에 나오는 ‘인간의 욕망과 본능’에서 위안을 찾는 듯하다.

그런 의미에서 보면 마윈이 지난 몇십 년간 선보인 ‘알리바바 무협지’는 중국인에게 최고의 대리만족과 희열을 안겨다줬다. 그가 시진핑 국가주석과 다른 중국의 정재계 요인들처럼 집안의 막강한 정치경제적 배경을 등에 업고 쉽게 ‘출세한’ 경우였다면 마윈 신화는 탄생하지 않았을 것이다. 깡마르고 볼품없는 외모를 가졌고 대학 입시에서 수학 점수가 1점밖에 안 된 ‘낙제생’에, 영어를 잘한다는 것 외에 가진 ‘재산’이 한 푼도 없었던 항저우 시골뜨기가 중국을 넘어 세계 제일의 전자상거래 왕국을 일궈낸 ‘서사’는 20세기 말과 21세기 초 중국 인터넷 시대를 대변하는 한 편의 무협활극이었다. 마윈은 보통 사람들이 가질 수 있는 인생의 모든 ‘꿈’과 ‘판타지’를 대변했다.

강호에 떠도는 풍문에 따르면, 마윈이 중국 공산당에 결정적 ‘한방’을 먹은 것은 어느 날 갑자기 일어난 뜬금없는 일이 아니다. 강호 무림의 세계에서 오로지 맹주 자리를 차지하기 위해 여러 문파가 각종 검법과 신공으로 혈투를 벌이듯이, 공산당이 지배하는 중국에서도 ‘집안의 붉은 깃발’은 오로지 하나여야 한다. 그런데 ‘언젠가부터’ 마윈은 ‘집안에 두 개의 붉은 깃발’을 꽂으려 한다는 의심을 샀고, 대내외에서 들려오는 그의 언행도 갈수록 오만방자해져서 ‘맹주’의 심기를 건드렸다는 것이다. 게다가 마윈은 다양한 문파를 만들거나 확장해 문하생들을 받아들이고 훈련해서 자신만의 절대왕국을 만들려 했다는 혐의를 받았다. 일각에선 마윈이 표면적으로 중국 정부의 ‘반독점법’과 무분별한 핀테크 규제 등 금융 리스크 방지 차원에서 제재받는 것처럼 보이지만, 그보다 더 본질적인 제재 이유는 ‘정치적 위험성’ 때문이라고 말하기도 한다.

중국 당국은 원래 그룹명도 싫어했다

그들에 따르면, 마윈과 알리바바 사태는 마치 명나라 말기에 일어난 ‘동림당 사건’을 떠올리게 한다. 동림당은 명나라 만력제 시기, 조정에서 정치싸움에 밀려 유배당한 세력이 1604년 중국 장쑤성 우시에 있던 북송시대 유학자 양시가 세운 동림서원을 재건하고 그곳에 모여 학문 연구 활동을 하며 세를 키우던 반정부 세력을 이른다. 나중에 동림당 세력은 환관 위충현 세력에게 대대적인 반격과 탄압을 당해 멸문지화를 당했지만, 결론적으로 만주족에게 틈을 내줘 명나라 몰락을 초래한 ‘정치세력’으로 평가된다.

마윈이 21세기판 동림당을 만들려 한다는 혐의를 받은 건, 그가 참여했거나 주도해서 만든 여러 기업가 조직과 2015년 항저우에 세운 ‘후판대학’의 성격 때문이다. 마윈은 아이비엠(IBM)을 인수·합병해 세계 최대 컴퓨터 생산 기업이 된 레노버의 류촨즈 회장 등이 주도해서 만든 ‘타이산회’라는 비밀 기업가 클럽의 회원이었고, 저장성 일대 유명 기업인들이 주축이 된 ‘장난회’라는 상인 클럽을 주도했는가 하면, 중국 최대 기업가 모임 ‘중국 기업가 클럽’의 회장도 했다.

후판대학은 다른 경영전문대학원(MBA)과 달리 입학 경쟁률이 하버드대학이나 스탠퍼드대학 등 미국 유명 대학보다 더 높은 ‘세계 최강’으로 기록되며 무수한 입길에 올랐다. 게다가 공산당원 가입 추천제보다 더 ‘빡센’ 입학 추천제를 적용해 ‘공산당원을 능가하는’ 조직력을 갖추려 한다는 의심을 받았다. 몇 년 전부터 마윈과 ‘뜻을 같이한’ 주요 기업가들이 속속 사라지거나 당국의 조사를 받았고, 관련 기업들이 여러 이유로 행정적·경제적 제재를 받았다. 여기에는 마윈과 그 주변 기업가들이 후판대학을 중심으로 정부에 대항하는 자신들만의 ‘문파’를 만들려 한다는 ‘맹주’의 오랜 의심이 작용했다는 풍문이 나돌았다. 후판대학은 얼마 전 학생 모집이 중단됐고, 2021년 안에 착공하려던 윈난의 제2캠퍼스 건설도 사실상 백지화됐다.

또 다른 풍문에 따르면, 시진핑 주석을 ‘모시는’ 중국이라는 강호의 맹주 공산당은 애초부터 마윈이 만든 ‘알리바바’라는 이름을 썩 마뜩잖게 여겼다고 한다. 마윈은 그룹 이름을 <알리바바와 40인의 도둑>에 나오는 ‘열려라 참깨’ 아이디어에서 얻었다고 밝혔다. 하지만 원작 속 알리바바가 ‘열려라 참깨’를 외치며 문을 열고 들어간 소굴은 원래 도둑들이 훔쳐온 금은보화를 숨겨둔 장소였다. 중국 공산당이 이 이야기를 듣고 어떤 상상을 했을까.

“삼성 기업이 망하고 한국이 망했나요”

자신의 인생사 불운을 ‘마윈 탓’이라고 욕하던 항저우 택시기사는 목적지가 가까워질 무렵, 또 하나 중요한 사실을 가르쳐준다는 듯이 나에게 말했다. “앞으로 머지않아 마윈은 무공을 잃고 강호를 떠나야 할 거예요. 지금 정부가 마윈의 즈푸바오를 박살 내기 위해 디지털화폐를 만들어서 시범 사용 중인데, 만일 그것이 보편화하면 마윈의 금융제국도 끝장나죠. 그리고 시진핑 주석이 말했다고요. 앞으로 중국은 인터넷 플랫폼 경제 시대를 넘어 인공지능이나 반도체, 우주항공 등 최첨단 과학기술로 대표되는 ‘잉커즈’(硬科技·하드코어 테크놀로지) 시대를 향해 갈 것이라고요. 마윈의 시대는 이제 한물갔어요. 중국 공산당이 그렇게 호락호락한 조직이 아니라고요. 마윈이 망한다고 알리바바가 당장 무너지는 것도 아니고 더군다나 중국이 무너지는 것도 아니에요. 당신네 나라 삼성 부회장이 감옥에 들어갔다고 당장 삼성 기업이 망하고 한국이 망했나요?”

베이징(중국)=박현숙 자유기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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