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짜장면과 자장몐의 ‘영혼’은 다르다

라오베이징자장몐 집, ‘영혼이 다른’ 음식 두고 원조 논쟁을 하는 건 ‘상상의 적’ 만들 뿐
등록 2021-04-05 06:18 수정 2021-04-07 02:08
중국 라오베이징 자장몐. 연합뉴스

중국 라오베이징 자장몐. 연합뉴스

우리 집에서 유일한 토박이 ‘베이징 사람’은 아들 녀석이다. 베이징에서 태어나고 자랐기 때문이다. 딸은 한국에서 태어난 지 두 달쯤 돼 베이징으로 와서 ‘토박이’이라는 명예를 누리지 못한다. 하지만 토박이 베이징 사람인 아들이 좋아하는 음식 중 하나는 ‘한국 짜장면’이다. 짜장면보다 더 좋아하는 음식은 ‘한국 치킨’이다. 어릴 때는 짜장면이 자기 고향 베이징 음식인 줄도 모르고 엄마 고향인 한국 음식인 줄 알았다. 지금도 치킨의 고향은 한국이라 생각할 것이다.

아이들이 초등학교에 입학할 무렵, 베이징의 오래된 자장몐(짜장면은 원래 ‘자장몐’의 중국어 발음이 변형된 것) 맛집인 ‘하이완쥐 라오베이징 자장몐 다왕’(海碗居老北京炸酱面大王)에 가서 ‘정통’ 베이징 자장몐을 먹은 적이 있다. 아들은 “이게 무슨 짜장면이냐”며 “한국 짜장면 짝퉁 아니냐”고 따지듯이 물었다. 춘장 소스 윤기가 자르르 흐르는 한국 짜장면은 젓가락으로 휘리릭 잘도 비벼지는데 베이징 자장몐은 잘 비벼지지도 않을뿐더러, 짜장 소스에 비빈 면발을 우물우물 씹으면 입안 가득 행복한 ‘단짠’ 맛이 가득 퍼지는 한국 짜장면과 달리, 쓴맛과 짠맛밖에 안 난다는 것이다. 아들 녀석은 그 뒤로 두 번 다시 베이징 자장몐을 쳐다보지도 않는다. 아무래도 내가 어릴 때부터 입맛을 잘못 길들인 것 같아서 짜장면 ‘원조’에 여간 미안한 게 아니다.

한국의 짜장면. 한겨레 박미향 기자

한국의 짜장면. 한겨레 박미향 기자

자장몐 전문가의 한국 ‘미식 여행’

10여 년 전 우연히 알게 된 베이징 자장몐의 달인 왕씨 할아버지는 자신의 자장몐 기술에 대한 자부심이 대단했다. 베이징 야윈춘 뒷골목에 ‘라오베이징 자장몐’이라는 간판을 내건 허름한 식당에서 자장몐 소스를 전담하던 왕씨 할아버지의 당시 나이는 78살. 베이징 토박이인 그는 17살 때부터 자장몐을 만들었다. 일흔 살쯤 일하던 식당에서 퇴직했지만, 그의 솜씨를 아깝게 여긴 한 작은 자장몐 전문 식당 주인의 간청으로 왕씨 할아버지는 퇴직 뒤에도 여전히 자장몐을 만들고 있었다. 왕씨 할아버지는 모든 음식에 ‘맛’을 결정짓는 핵심이 있다며 그것을 ‘요리의 영혼’이라고 불렀다. 그에 따르면 자장몐의 ‘영혼’은 비빔소스인 자장을 볶는 비법이다.

베이징 자장몐 소스는 우리나라 짜장면 소스인 춘장과는 조금 다르다. 대두를 볶아서 발효해 만든 소스에 설탕과 캐러멜 등을 첨가한 것이 우리가 먹는 짜장면 소스 춘장인데, 중국식 자장몐 소스 ‘황장’(黄酱)은 짠맛만 난다. 황장을 돼지고기 등과 적정한 비율로 잘 볶아서 만든 게 자장몐의 최종 소스다. 왕씨 할아버지에 따르면, 잘 발효해 만든 최고 품질의 황장과 돼지고기를 선별한 뒤 불의 강약과 볶는 시간을 ‘장악하는 것’이 바로 맛있는 자장 소스의 비법이다. 그리고 쫄깃하게 늘인 면발과 그 위에 올리는 제철 채소가 자장몐의 ‘영혼을 불사르는’ 동반자다.

왕씨 할아버지는 한국인들이 짜장면을 무지 좋아하고 한국에는 교회만큼이나 짜장면집이 널렸다는 소문을 들은 터라, 언젠가 꼭 한번 한국에 가서 짜장면을 먹어보는 게 꿈이었다. 퇴직할 무렵, 온 가족이 큰맘 먹고 한국으로 ‘미식 여행’을 떠났다. 인천 차이나타운에 가서 유명하다는 중화요리 맛집을 다니며 ‘한국 짜장면’을 먹었고, 고 김대중 대통령이 즐겨 찾았다는 서울 강남의 고급 중화요릿집에도 가서 최고급 짜장면을 먹었다고 자랑했다. 하지만 왕씨 할아버지는 여행 자랑담 끝에 웃음인지 비웃음인지 아리송한 표정을 지으며 이렇게 말했다. “그게 무슨 자장몐이야! 자장몐의 영혼을 모욕하는 맛이지. 어떻게 자장몐에서 그렇게 단맛이 날 수 있느냐 말이야!”

중국보다 더 빨리 한국인의 ‘솔푸드’로

“중국에 짜장면이 있을까요 없을까요?” 몇 년 전 텔레비전 음식 프로그램에서 ‘요리 달인’ 백종원씨가 베이징 거리에서 물었다. 한국인들의 솔(Soul)푸드가 되다시피 한 짜장면의 ‘원조국’ 중국 베이징의 자장몐 맛집을 찾은 백종원씨도 중국식 자장몐을 ‘짠맛’으로 표현했다. 그러면서 그는 베이징 자장몐과 한국 짜장면의 유래도 설명했다. ‘설’이라는 전제하에 그가 들려준 베이징 자장몐의 유래는, 1900년 8개국 연합군이 베이징에 쳐들어왔을 무렵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8개국 연합군이 베이징으로 진군하자, 서태후와 황제 일행은 긴급히 피란했다. 서태후 일행이 시안에 도착한 날, 길거리 식당에서 맛있는 냄새를 풍기는 면요리를 보고 그것을 먹었다. 그 맛에 반한 서태후가 베이징으로 돌아갈 때 길거리 식당 요리사를 데려가서 만든 게 지금 베이징 자장몐이라는 것이다.

이 ‘설’은 중국에서도 많이 회자된다. 하지만 중국 음식문화연구 전문가들은 신빙성 있는 유래로 받아들이지 않는다. 우리나라에 처음 짜장면이 들어온 시기와도 모순되는 점이 있다. 우리나라에 짜장면이 들어온 시기는 1882년 임오군란 무렵이다. 당시 청나라 군인들과 함께 들어온 산둥 출신 노동자들에게서 전해졌다고 한다. 임오군란은 서태후가 시안으로 피란하기 약 18년 전에 일어났다. 더군다나 자장 소스를 만드는 원료인 대두의 주 생산지는 동북 지방인데, 서부에 있는 시안에서 황장이 먼저 만들어졌을지도 의문이다.

<라오베이징 잡담>(杂谈老北京)을 쓴 민속학자 왕융빈에 따르면, 베이징 자장몐의 유래는 청나라 제8대 황제 도광제(1820~1850년) 시대에 베이징 룽푸쓰 거리에 있던 식당 룽성반점에서 비롯했을 가능성이 많다. 그 식당에는 ‘량란러우몐’(凉烂肉面)이라는, 베이징에서 아주 유명했던 면요리가 있었다. 삶아서 찬물에 세 번 헹군 차가운 면발 위에 거의 으깨질 정도로 흐물흐물하게 푹 삶은 고기와 목이버섯, 각종 채소를 넣고 볶아서 만든 소스를 부어서 비벼 먹는 요리였다. 거기다 채 썬 오이와 다진 마늘 등을 얹어 먹으면 더 상큼한 맛이 났다고 한다. 왕융빈은 량란러우몐이 오늘날 베이징 자장몐으로 진화했을 것으로 봤다.

이런저런 온갖 ‘설’을 종합해봐도 베이징 자장몐의 역사는 불과 150여 년밖에 안 된다. ‘라오베이징(老北京) 자장몐’이라고 부르는 베이징 자장몐이 본격적으로 베이징 서민들이 즐겨 먹는 대표 음식이 된 것은 1960년대 이후다. 오히려 19세기 말 처음 우리나라에 들어온 자장몐이 화교들을 통해 ‘한국화된’ 입맛으로 개조돼 ‘짜장면’으로 재탄생하고, 1970년대 ‘철가방’의 등장과 함께 짜장면은 중국보다 더 빨리 한국인의 솔푸드가 됐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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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조가 그렇게 중요한 문제인가

사실 베이징에는 고유의 특색 있는 음식이 거의 없다. 수도의 특성상, 전국 각지의 온갖 먹거리와 문화가 모이고 뒤섞이다보니 베이징 음식이라고 할 만한 게 거의 없다. ‘서울 음식’ 하면 떠오르는 게 별로 없는 것과 똑같다.

그러나 자장몐만은 유일하게 ‘라오베이징’이라는 수사가 붙는다. 자장몐의 원조가 베이징이고 어떤 지역도 라오베이징을 능가하는 자장몐을 만들 수 없다는 강한 자부심이 담겼다. 베이징 자장몐 식당들은 죄다 간판에 ‘라오베이징 자장몐’이라고 써놓았다. 어떤 집이 가장 오래된 ‘원조’인지는 아무도 모른다. 왕씨 할아버지가 자신이야말로 베이징에서 가장 ‘정통’ 자장몐을 만드는 장인이라고 주장하는 것과 같다.

베이징이 고향인, 셰익스피어 연구의 권위자이자 유명 미식 수필가인 량스추는 ‘국수’라는 수필에서 “나는 어릴 때부터 자장몐을 먹고 자랐다”며 고향 음식인 자장몐에 대한 추억과 그리움을 소회했다. 그는 자장몐 한 그릇이 일으킨 기적 같은 일화도 들려줬다. “누이동생이 어느 날 장티푸스류의 병에 걸렸는데, 의사는 더 이상 살 가망이 없으니 동생에게 먹고 싶은 거라도 실컷 먹게 하라고 당부했다. 어머니가 동생에게 ‘뭘 먹고 싶냐’고 묻자, 동생은 다 죽어가는 목소리로 자장몐이 먹고 싶다고 했다. 당장 자장몐 한 그릇을 만들어 먹였다. 그랬더니 동생은 자장몐을 먹자마자 바로 자리를 털고 일어나 며칠 뒤 기적처럼 병이 나았다.”

최근 한국 언론은 중국과의 각종 ‘원조 논쟁’을 보도하고 있다. 중국에서 우리나라 김치의 원조가 ‘파오차이’(각종 절임 채소류)라고 주장하고 한복과 비빔밥, 삼계탕 등도 중국이 원조라고 주장한다며 이는 명백한 ‘문화 동북공정’이자 더 나아가 ‘문화 침략’이라는 일부 ‘전문가’의 견해까지 곁들여 ‘원조 전쟁’에 불을 붙이고 있다. 몇 년 전 벨기에와 프랑스도 ‘프렌치프라이’를 둘러싸고 격렬하게 ‘원조 논쟁’을 벌였다. 그런데 아무리 생각해도 잘 모르겠다. ‘원조’가 그렇게 중요한 문제인가?

한국 김치와 중국 파오차이는 ‘영혼’이 다른 음식이다. 둘의 차이를 가르는 ‘영혼’은 양념, 즉 고추와 고춧가루에 있다. 고추는 처음 어디에서 왔는가? 16세기 ‘콜럼버스의 대교환’으로 멕시코와 페루 등지에서 아시아 지역으로 들어와서 우리나라 김치에 영혼을 불어넣지 않았나. 모든 음식은 원재료가 변신한 것이다. 원재료가 각자 입맛에 맞게 가공돼 특유의 맛을 내는 ‘음식’으로 재탄생되는 것이다.

우리 각자의 ‘영혼’을 이야기하자

한국 짜장면과 베이징 자장몐의 영혼이 달라진 이유도 그렇다. 짜장면은 한국 음식화됐고, 자장몐은 베이징 토박이들의 음식으로 정착됐다. 중국 파오차이가 김치가 될 수 없는 이치도 마찬가지다. 대다수 중국인은 김치를 중국 음식으로 생각하지 않는다. 하지만 파오차이는 ‘중국 것’이라고 여긴다. 애초부터 김치를 파오차이로 퉁쳐서 중국에 소개한 것이 잘못이다. 중국 길거리에서 아무나 붙잡고 물어봐라. “중국에는 김치가 있을까요, 없을까요?”

왕씨 할아버지의 주장처럼 ‘영혼이 다른’ 음식을 두고 원조 논쟁을 하는 것은 ‘상상의 적’을 만들 뿐이다. 우리는 짜장면과 김치를, 중국인은 자장몐과 파오차이를 각자 맛있게 먹으면 된다. 이제부터 우리는 각자의 ‘영혼’에 대해 이야기해보는 게 어떨까.

베이징(중국)=박현숙 자유기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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