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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노멀] 여기도 음모론, 저기도 음모론

등록 2021-01-15 17:16 수정 2021-01-16 01:57
AFP 연합뉴스

AFP 연합뉴스

도널드 트럼프는 미국 역사상 처음으로 두 번 탄핵 소추된 대통령이 됐다. 백악관 앞에서 지지자들에게 의사당 진격을 선동하던 때, 트럼프는 무슨 생각이었을까? 트럼프는 가도 트럼피즘은 남는다. 지난 대선에서 트럼프는 7천만 표 이상을 얻었다. 2024년 재출마설도 있지만, 꼭 본인이 나서지 않더라도 누군가 뒤이을 가능성은 얼마든지 있다. 영향력을 확보하기 위해서라도 실력 행사가 필요하다고 봤을 거다.

하지만 기대 이상의 장면이 펼쳐지자 이성을 상실했던 것 같다. 트럼프 패밀리는 의사당에서 난동이 벌어지는 동안 시위대를 “애국자들”이라고 칭했다. 애국자(Patriot)란 우리말로는 ‘나라를 사랑하는 사람’ 정도의 의미지만, 미국 역사에선 영국에 맞선 독립군을 이르는 말로 쓰였다. 조 바이든 당선자와 민주당은 나라를 빼앗은 사람들이란 얘긴데, 부정선거 주장이 진지하게 여겨지고 있음을 엿볼 수 있다.

반면 민주당과 주류 미디어는 트럼프가 ‘내란 선동’을 했다고 본다. 현직 대통령이 민주주의를 위협한 사상 초유의 일임에는 분명하지만 내란 선동으로 볼 것인지는 논란이 있을 것이다. 주류 미디어들은 의회 유린이 미영전쟁 이래 200년 만이라고 하는데, 트럼프와 그 지지자를 외적이나 침략자로 규정한 거다. 그러나 돌려보내면 끝인 영국군과는 달리 트럼프 지지자들은 미국 시민이다. 정치사회적 해법이 필요하다.

트럼프의 극단적 지지자들은 황당무계한 ‘큐어넌 음모론’을 믿는다. 체포된 쇠뿔 모자의 ‘큐어넌 샤먼’(사진 가운데)은 가공식품 섭취를 거부하고 있다. 이런 태도 뒤엔 기성 체제에 대한 불신이 있다. 엘리트 정치인들이 하자는 걸 용인해왔으나 정신 차려보니 내게 좋은 건 하나도 없고, 소수자에게만 유리한 사회가 됐더라는 거다.

소수자에 대한 충분한 권리 보장은 아직 갈 길이 멀지만 이들이 실제 기득권 체제에서 기만적으로 소외된 것도 일부 사실이다. 후자가 전자를 근거로 삼는 정치적 고리를 끊는 게 바이든 행정부에 시급한 과제다.

코로나19는 사람들이 음모론으로 빨려드는 촉매제 구실을 한다. 백신 음모론이 대표적이다. 프랑스에선 에마뉘엘 마크롱 행정부의 방역 실책이 음모론의 근거가 되고 있다. 방역 실책은 사실이다. 하지만 마스크는 필요 없다고 하다가 갑자기 태도를 바꾼 배경에 자본과의 이해관계가 작용했고 백신도 마찬가지일 거라는 인식은 근거 없는 음모론이다. 마크롱 정부는 기성 정치를 불신한 덕분에 탄생했는데, 요즘은 “그놈이 그놈”이란 평가다. 그러니 정부가 하는 모든 일에 ‘은폐된 의도’를 찾으려는 시도가 일상화됐다. 앞서 미국의 ‘큐어넌 음모론’도 트럼프가 당선됐는데도 세상이 바뀌지 않는 이유를 은폐된 무언가로부터 찾으려는 시도에서 시작됐다.

남의 일이 아니다. 우리도 정권이 추진해온 ‘개혁’의 정당성이 의심받자 저항세력의 간계라는 등 음모론적 시각으로 미봉적 대처를 해왔고, 그 한계가 드러났다. 집권세력은 과정을 투명하게 밝히고 문제가 있었던 건 인정하면서 개혁의 정당성을 다시 설득하는 정치를 게을리했다. 김학의 전 법무부 차관 출국금지 문제와 탈원전 정책 감사는 또 다른 시험대가 되고 있다. 정론으로 대응하지 않으면 반대편에서 ‘은폐된 의도’를 찾으려는 또 다른 음모론에 부딪힐 것이다. 악순환의 고리를 끊어야 한다.

김민하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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