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째 아이가 아팠다. 병원에 갈 일부터가 걱정이었다. 어릴 적부터 피부 알레르기가 심했던 아이는 여러 번 ‘죽을 고비’를 넘겼다. 온몸이 풍선처럼 부어오르고 호흡곤란을 일으켜서 급성 쇼크사를 할 뻔한 일이 몇 차례 있었다. 그런 아이를 차에 태우고 한밤중에 온 베이징 시내 병원을 전전한 게 한두 번이 아니다. 당직 의사가 없거나 아이 상태를 보더니 “다른 병원에 가보라”는 등 갖가지 이유로 거절당했다. 급기야 어떤 병원에서는 열에 받친 내가 접수조차 거부하는 간호사를 붙들고 울부짖기까지 했다. 심지어 “이게 사회주의냐? 말해봐! 이게 사회주의냐고!”라며 애꿎은 남편을 붙잡고 화풀이하기도 했다.
먼저 카드에 보증금을 넣으시라
최근 몇 차례 알레르기 증상이 나타난 아이를 ‘큰 병원’에 데려가서 전문의의 진료를 받아보기로 했다. 중국에서 가장 좋은 아동병원은 베이징에 있는 ‘수도 아동병원’이다. 병원 안은 전국 각지에서 몰려드는 어린이 환자와 그 가족으로 항상 인산인해를 이룬다. 병원에 도착해 진료 접수부터 치료까지 ‘걸어서 별까지’ 가는 과정이다.
첫째 아이의 치료를 위해 베이징 아동병원으로 가자고 결정한 뒤, 남편은 먼저 “사람을 찾아보겠다”고 했다. 병원 내부 관계자나 의사와 잘 아는 사람을 찾아서, 그 모든 ‘귀찮은’ 과정 없이 일사천리로 일을 진행하기 위해서다. 중국에선 돈이 없다면 ‘관시’(인맥)라도 좋아야 그럭저럭 구차하지 않게 ‘사람 구실’ 하며 살 수 있다. 며칠 뒤, 남편은 “사람을 찾았다”며 병원에 가자고 했다. 특권층이라도 된 양 뿌듯한 마음에, 모처럼 남편의 ‘능력’을 우러러봤다.
병원에 도착하니 의사 가운을 입은 사람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는 아동병원 내 의사였다. 그의 안내로 우리는 일반 환자가 아무리 빨라도 반나절 정도 걸리는 접수 과정을 생략하고 바로 의사와 대면진료를 할 수 있었다. 진료실로 올라가기 전 의사는 우리에게 병원카드 한 장을 주면서, 카드에 먼저 ‘보증금’을 넣어야 한다고 했다. 모든 진료와 약처방까지 받으려면 “넉넉하게 넣어두라”고 했다. 중국 병원에선 무조건 돈을 먼저 내야지 모든 진료를 받을 수 있다. 중국에는 웬만해선 후불제가 없다. 대부분 선불제로, 일단 준 돈을 환불받으려면 속이 천 번은 뒤집어져야 한다.
베이징 아동병원 풍경은 야전병원을 방불케 한다. 전국 각지에서 온 어린 환자와 가족으로 북새통을 이루고, 진료 접수증을 수속하기 위해 병원 안팎으로 줄이 빼곡하게 늘어서 있다. 지방에서 올라온 사람들은 숙박비를 아끼기 위해 병원 근처 공원에서 텐트를 치고 생활하기도 한다. 대부분 자기가 사는 지역 병원에서 “여기선 더 이상 치료 방법이나 의료시설이 없다”는 말을 듣고 올라온 사람들이다. 베이징 병원에 가서도 치료받지 못하거나 병을 고치지 못하면 중국에선 더 이상 갈 병원이 없다. 살아날 가망이 없는 것이다. 그래서 중병에 걸린 아이들에게 베이징 아동병원은 마지막 ‘희망의 문’이다.
병원 입구에 한 여자가 아이를 안고 바닥에 주저앉아 있다. 휴대전화로 누군가에게 쌍욕을 하면서 불같이 화내고 있다. 남편과 통화하는 듯했다. “내가 좀더 서두르자고 했잖아! 지금 줄이 너무 길어서 언제 접수증을 받을지 몰라. 당신 땜에 애 다 죽게 생겼어!” 여자의 억양을 들어보니 지방에서 올라온 듯했고 그리 넉넉해 보이지 않는 행색이었다. 아이는 어디가 아픈지, 엄마 품에서 힘없이 축 늘어져 있었다.
세상 단 하나의 병, 그것은 가난
접수창구는 설날 귀성 기차역 티켓 판매소처럼 기약 없는 줄이 끝없이 이어졌다. 지금은 인터넷 접수와 당국의 단속으로 많이 사라졌지만, 중국 대형병원에선 접수증을 대신 받아주는 ‘알바’를 하는 이도 있고, 접수증을 미리 사서 응급환자 가족에게 고가로 파는 ‘암표상’도 판친다. 이들을 ‘황뉴’(黄牛·브로커)라고 한다.
황뉴는 베이징, 상하이 등 대도시 중대형 병원 환자들을 대상으로 은밀하게 움직인다. 이들은 응급환자나 중병에 걸린 환자들에게 전문의 진료 접수증을 ‘쉽게’ 받아주거나 의사와 직접 ‘연결해주는’ 서비스를 해서 뒷돈을 챙긴다. 별다른 사회적 인맥이 없고 고급 사립병원을 갈 형편이 안 되는 일반인은 다급할 때 황뉴의 ‘서비스’를 이용할 수밖에 없다. 요즘은 스마트폰이 발달해 병원마다 같은 병을 앓는 환자와 그 가족들끼리 단체대화방을 만들어서 황뉴 정보를 교환하는 일도 많다. 그나마 이것도 어느 정도 돈이 있어야 가능하다. 돈도 뒷배경도 없는 사람들은 오랫동안 줄을 서서 기다려 ‘인기 없는’ 가장 낮은 등급 의사의 진료를 받아야 한다.
2018년 중국에서 상영해 흥행한 영화 <나는 약신이 아니다>(我不是药神)는 실제 인물을 모델로 했다. 30대 중반 남성 루용은 백혈병에 걸려 2년 동안 항암치료 비용으로만 우리 돈으로 거의 1억원을 썼다. 문제는 계속 그 약을 먹어야 하는데 더는 돈이 없다는 것. 그는 인도에서 똑같은 약을 모방해 생산한다는 얘기를 듣고, 직접 인도에 가서 ‘가짜 약’을 사 복용한 뒤 ‘진짜 약’과 효능이 같다는 걸 알게 된다. 루용은 같은 병을 앓는 주변 환우들에게도 적극 소개하며, 급기야 그들의 부탁을 받고 인도를 오가며 ‘대리구매’를 한다. 인도의 가짜 약 가격은 진짜 약 가격의 20분의 1 수준인데 효능은 같아서, 수많은 가난한 환자에게 한 줄기 희망이 된다. 나중에 루용은 불법 구매 대행 등을 해서 감옥에 가고, 수많은 환자의 탄원으로 결국 기소가 취소돼 풀려난다.
이 영화는 중국 의료 시스템 문제와 가난한 사람들의 인생을 파탄 내는 천문학적인 치료비와 약값 문제, 병원과 제약회사의 횡포를 간접적으로 보여준다. 영화에서 기억에 남는 한마디는 이거다. “세상에는 오직 한 가지 병만 있다. 바로 가난이라는 병이다.”
‘가난이라는 병’ 때문에 아내와 쌍둥이 딸을 잃을 뻔했던 또 다른 남자 이야기는 더 슬프다. 몇 년 전 방영돼 관심을 받은 <생문>(生門)이라는 텔레비전 다큐멘터리에는 ‘찢어지게’ 가난한 농민 정칭밍의 사연이 나온다. 그의 아내는 쌍둥이를 임신했지만 고향 마을 의사로부터 여러 정황상 출산할 때 과다 출혈과 조산의 위험이 있으니 큰 병원에 가보라는 얘기를 듣는다.
우여곡절 끝에 온 대도시의 종합병원에서 들은 이야기는 날벼락이었다. 그는 의사에게서 아내 상태가 언제든 위험해질 수 있기 때문에 반드시 입원치료를 받아야 하고 최소 비용이 5만위안(약 850만원)이라며 당장 준비하라고 한다. 그는 망연자실해서 엉엉 운다. 의사는 무표정한 얼굴로 다시 한 번 강조한다. “살리고 싶으면 열흘 내로 돈을 마련해서 오라.” 결국 같은 고향 마을에 사는 형이 온 마을을 돌아다녀 ‘구걸하다시피’ 해서 극적으로 돈을 빌린다. 어찌어찌해서 아내는 조산이지만 무사히 쌍둥이를 낳는다. 하지만 의사는 또 한 번 그에게 청천벽력 같은 말을 한다. 조산 치료비로 20만위안(약 3400만원)이 든다며 “당장 준비하라”고. 이번에도 그는 대성통곡한다. 지난번 빌린 돈도 갚을 길이 막막한데, 어디 가서 그런 큰돈을 빌리고 어떻게 갚는다는 말인가. 그의 사정을 잘 아는 병원 쪽에선 제안을 한다. “돈 없이 아이들을 어떻게 키울 거냐. 차라리 입양 보내라.” 다음날 “모든 치료비를 부담할 테니 아이를 달라”는 사람들이 병원에 나타난다.
한꺼번에 먹으면 죽을 것처럼 많은 약
남편의 ‘능력’ 덕분에 일사천리로 진료를 마치고 받은 최종 소견은 “자세한 원인을 알 수 없으니 면역력을 길러야 한다”는 것이다. 의사는 약 처방전을 주면서 “열심히 복용하라”고만 했다. 약을 받으러 갔더니 약 종류만 10여 가지다. “이 약을 한꺼번에 다 먹어도 안 죽냐”고 했더니 담당 간호사는 예의 그 무표정한 얼굴로 상관없다고 한다. 아무래도 그 약들을 다 먹으면 ‘죽을 것 같아서’ 약은 사지 않고 그냥 나왔다. 예전에도 아이들이 감기에 걸려서 병원에 갔더니, 약만 여덟 가지를 처방해줘서 놀랐다.
중국 공립병원은 정부의 재정 지원이 10%에 불과하고, 나머지 재정은 병원 의료서비스로 충당해야 한다. 그래서 부족한 운영자금과 재정을 마련하기 위해 의료수가를 높이는 과잉진료와 제약회사들과의 뒷거래로 ‘약을 많이 팔아야’ 운영이 된다. 의사들 역시 특정 제품 약을 팔아주는 대가로 제약회사에서 인센티브를 받는 관행이 음성적으로 이뤄진다. 마치 공립학교 교사들이 특정 출판사 문제집을 학생들에게 강매해서 뒷돈을 챙기는 것과 같다.
혹자는 물을 것이다. 중국에는 의료보험이 없냐고? 물론 있다. 국가의료보험도 있고 돈 주고 사는 사보험도 있다. 단, 국가의료보험제도는 일반인에게는 ‘있으나 마나 한’ 제도다. 그리고 의료보험에 등급이 있다. 중요 공립병원에는 고위 관료·공무원 전용 병실과 전담 의사가 있다. 그들은 아프면 별다른 절차 없이 바로 ‘특실’로 직행한다. 치료비도 거의 전액 국가에서 공비로 지급된다. 이 때문에 일반 서민이 겪는 의료 고통을 알 턱이 없다.
중국 의료보험제도는 1998년 전면적으로 개혁됐다. 마오쩌둥이 자랑하던 ‘사회주의 무상의료’는 사라졌다. 골자는 시장화다. 도시 주민은 그나마 10~20%를 소속 회사와 국가에서 부담해주지만, 농민은 의료보험 자체가 없는 경우가 많다. 중병에 걸리면 의료보험은 무용지물이다. 농촌의료보험은 2003년부터 시행됐지만, 강제 가입이 아니라 원하는 사람만 매년 정액을 내야 혜택을 받을 수 있다. 의료보장 혜택도 해당 지역에 국한된다. 대부분 도시에 나와 돈벌이를 하는 농민들에게 의료보험 혜택은 ‘별나라 이야기’다. 이런 중국 의료시스템은 ‘진료받기도 힘들고 진료비도 비싸다’(看病难, 看病贵)로 요약된다.
치료비가 없어 조산한 쌍둥이 딸을 ‘팔 뻔했던’ 정칭밍은 천만다행으로 아이들을 지켜냈다. 결국 병원에서 치료를 포기하고 고향으로 데려가서 ‘운명에 맡기며’ 눈물과 사랑으로 키워낸 결과, 아이들은 건강하게 자라고 있다. 그런데 쌍둥이 딸들의 이름이 참 재미있다. 한 명은 가을 추(秋)고, 다른 한 명은 마음 심(心)이다. 둘을 합치면 근심 수(愁)다. 아버지 정칭밍의 설명에 따르면 ‘돈 걱정이 많다’는 뜻이란다.
부유한 사회주의 국가의 자본주의 의료
세계에서 ‘가난한 사회주의’ 국가 중 하나인 쿠바는 전 국민 무상의료로 유명하다. 가구마다 국가에서 지정한 가정의사가 있다. 의사들은 국가에서 무상교육을 통해 배출한다. 의사 교육생의 70%는 가난한 농민, 여성, 소수민족에서 뽑는다. 1986년 옛소련의 체르노빌에서 원자력발전소가 폭발했을 때, 쿠바는 미국도 거절했던 피폭 아동들을 데려와 무료로 치료해주고 교육과 의식주 등 모든 것을 무상으로 지원해줬다. 쿠바의 무상의료 제도는 과연 무엇이 진정한 사회주의인지 생각해보게 한다.
세계에서 가장 ‘부유한 사회주의’ 국가인 중국은 오히려 자본주의보다 더 자본주의적인 의료시스템을 운영하고 있다. 아직도 중국이 사회주의인지 자본주의인지 헷갈리는 사람들은 아파서 병원에 한번 가봐라. 그리고 다시는 내게 묻지 마라. 혹시라도 “중국은 사회주의가 맞습니다”라고 우기는 이가 있다면 멱살을 잡고 말하고 싶다. “그것은 새빨간 거짓말입니다! 병원에 한번 가보시라니까요!”
베이징(중국)=글·사진 박현숙 자유기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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