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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발 들어주오, 카슈미르 ‘통곡의 소리’를

한국으로 망명한 독립운동가 리즈완 바이그가 전하는 ‘분쟁의 땅, 카슈미르’
등록 2019-03-13 09:27 수정 2020-05-03 04:29
카슈미르 난민 사르다르(가명)가 한국에 오기 전 자신이 살던 곳을 지도에서 가리키고 있다. 박승화 기자

카슈미르 난민 사르다르(가명)가 한국에 오기 전 자신이 살던 곳을 지도에서 가리키고 있다. 박승화 기자

그 소식을 들었을 때 나는 너무 절망적이었다. 차라리 내가 그곳에 있었으면 싶었다. 낯선 땅, 낯선 생명 가운데 어색하게 살기보다, 우리 민족의 친숙한 죽음 가운데서 죽고 싶었다.

분쟁은 이슬람 극단주의 무장단체인 카슈미르 반군 ‘자이쉬에무함마드’가 2월14일(현지시각) 인도령 카슈미르(잠무카슈미르)에서 인도 중앙예비경찰부대(CRPF)를 상대로 자살폭탄 공격을 하면서 시작됐다.

계속되는 폭격에, 성폭행의 고통에

자이쉬에무함마드의 폭탄 테러로 40여 명의 경찰이 목숨을 잃자, 인도도 가만있지 않고 역공에 나섰다. 인도 공군은 2월26일, 1971년 이후 48년 만에 처음으로 파키스탄을 공격했다. 인도 정부는 인도 공군이 통제선(LoC, Line of Control)을 넘어 카슈미르 바라코트 지역의 테러리스트 캠프를 공습했다고 밝혔다. 그곳이 자이쉬에무함마드의 파키스탄 내 가장 큰 훈련 캠프였고, 인도군의 폭격으로 캠프가 완전히 파괴됐으며 테러리스트와 훈련 요원, 간부 등이 목숨을 잃었다고 발표했다. 이날 공습에는 전투기 12개가 동원돼 1톤 넘는 폭탄을 떨어뜨린 것으로 알려졌다. 이튿날 파키스탄 공군도 통제선을 넘어가 인도 항공기 두 기를 폭격하면서 긴장감은 더욱 높아졌다.

아자드카슈미르(파키스탄령)와 잠무카슈미르(인도령) 사이를 가르는 통제선 인근에는 양국 군대의 폭격이 끊이지 않았다. 나는 폭격이 계속되던 3월3일, 통제선 인근에 사는 고향 친구와 통화했다. 친구는 수시로 쏟아지는 폭격 때문에 3일 동안 제대로 잠을 잘 수 없었다고 했다. 내가 들은 바로는 최소 30명의 무고한 카슈미르 사람이 이번 분쟁으로 목숨을 잃었다고 한다. 인도와 파키스탄이 쏘아대는 포탄에 힘없는 카슈미르 주민들의 집은 박살이 났고, 카슈미르 영토 내 모든 병원엔 비상이 걸렸다. 하지만 세계의 그 어떤 언론도 카슈미르 주민의 죽음을 주목하지 않았다. 카슈미르에는 언론사가 있지만 자율적으로 보도할 수 없다. 어떤 보도도 하지 못하도록 통제한다.

카슈미르 관점에서 파키스탄과 인도는 모두 ‘침략자’다. 그들에게 카슈미르는 서로의 군사력을 과시하기 위해 싸움을 벌이는 ‘놀이터’다. 하지만 이 싸움은 단순히 인도와 카슈미르의 알력 다툼이 아니다. 양쪽 카슈미르에 살고 있는 2천만 동포들의 목숨을 위협하는 전쟁이다.

카슈미르는 독립국가다. 1947년 이후 인도와 파키스탄에 분할 점령을 당했지만 우리는 고유의 깃발과 언어, 문화가 있다. 우리는 지난 70년 동안 양국의 군대를 몰아내고 자결권을 행사하고자 했지만 성공하지 못했다. 카슈미르 사람들은 카슈미르 땅에서 고문당했고 죽임당했다. 인권침해는 카슈미르 땅이면 어디든 있었다. 8살부터 80살 노인까지 군인에게 성폭행을 당하기도 했다.

폭력이 없는 평화적인 저항도 용인되지 않았다. 지난 2년 동안 1천 명 넘는 사람이 시력을 잃었다. 인도군이 시위대를 해산하기 위해 쏜 고무탄에 맞아서다. 300명이 넘는 순교자가 나왔다. 그들은 자신의 삶을 카슈미르의 독립과 자유를 위해 바쳤다.

2월27일(현지시각) 인도령 카슈미르 지역에서 인도 군인들과 주민들이 파키스탄 공군이 격추한 인도 공군기의 잔해 주변에 모여 있다. AP 연합뉴스

2월27일(현지시각) 인도령 카슈미르 지역에서 인도 군인들과 주민들이 파키스탄 공군이 격추한 인도 공군기의 잔해 주변에 모여 있다. AP 연합뉴스

인도와 파키스탄으로부터 독립할 때까지

국제사회에서 카슈미르의 목소리는 미약하다. 인도와 파키스탄은 카슈미르 문제를 해결할 의지가 없다. 그들의 이익을 위해 이용하려고만 한다. 선거철이 다가오는 인도에선 카슈미르 지역에서 벌어지는 분쟁을 빌미로 표몰이를 한다고 한다.

최근 영국 런던, 프랑스 파리, 벨기에 브뤼셀에 있는 카슈미르 동지와 다시 한번 결의를 다졌다. 이렇게 분쟁이 생긴 시기에 어떻게든 목소리를 내고 우리의 현실을 알리자고. 우리는 한국과 국제사회에 카슈미르 지지를 호소한다. 조금만 관심을 가져달라.

한국도 1945년까지 일본의 식민 지배를 받지 않았는가. 그래도 한국은 운이 좋았다. 일본의 식민 지배를 받았지만 처음부터 분리되지는 않았다. 지금 남한과 북한으로 나뉘어 있다고 슬퍼하지만 한국의 분단은 독립한 뒤에 일어난 일이다. 그리고 자유가 있지 않은가. 당신들은 집이 있다. 우리 카슈미르에는 집이 없다.

나는 장담할 수 있다. 한국이 카슈미르처럼 분리된 채, 외세의 지배를 받았더라면 독립은 쉽지 않았을 것이다. 한국이 역사에 감사해야 하는 이유다.

지금 카슈미르의 현실은 아프지만 새삼스럽지 않다. 지난 72년간 무수히 반복돼왔다. 우리는 노예로 태어났지만 그건 우리 잘못이 아니다. 하지만 우리가 노예로 죽는다면 역사가 우리를 용서하지 않을 것이다. 자유 독립을 위해 마지막 피 한 방울까지 흘릴 것이다. 우리는 카슈미르가 인도와 파키스탄으로부터 독립할 때까지 멈추지 않을 것이다. 나는 우리 조국의 통일과 독립을 원한다.

리즈완 바이그

한국으로 망명한 카슈미르의 독립운동가 리즈완 바이그의 기고 글을 받아 전화 인터뷰한 내용을 추가해 재구성했다. 2014년 1월 한국에 들어와 2016년 10월 난민 인정을 받은 리즈완은 한국에서 카슈미르의 상황을 알리기 위해 분투하고 있다(제1229호 ‘누가 독립운동가를 보호할 것인가’ 참조).


인도와 파키스탄 사이 카슈미르


부드러운 캐시미어 아닌 ‘화약고’


인도와 파키스탄, 중국 사이에 있는 카슈미르는 한국 사람들에게는 낯선 땅이다. 한국에선 이곳 지방 산양의 털로 짠, ‘섬유계의 보석’이라는 캐시미어(cashmere)가 더 잘 알려져 있다.
캐시미어는 일반 양털보다 가볍고 보온성이 뛰어날 뿐만 아니라 부드러운 촉감을 자랑하지만, 이 섬유가 생산된 카슈미르는 수십 만의 인도군과 파키스탄 군대가 대치하는 ‘서남아시아의 화약고’라 한다. 세계에서 가장 군사적 긴장감이 높은 지역으로 손꼽힌다.
1846년부터 카슈미르의 대다수 주민이 이슬람교를 믿었지만 힌두교 정권이 이 지역을 지배했다. 영국이 1947년 인도를 떠나면서 인도 반도가 인도와 파키스탄 두 나라로 분리됐고, 유엔은 “인도와 파키스탄은 카슈미르에서 군대를 철수하고, 카슈미르는 자기결정권을 가진다”고 결의했다. 하지만 카슈미르의 지도자였던 힌두교도인 하리 싱은 일방적으로 인도 편입을 결정했다. 일방적인 결정에 분노한 카슈미르 내 이슬람교도들이 반란을 일으켰고, ‘1차 인도-파키스탄 전쟁’(1947년)이 터졌다.
유엔은 1949년 휴전을 선언하고 카슈미르 지역을 아자드카슈미르와 잠무카슈미르로 나눠 각각 파키스탄과 인도가 분할 점령하도록 했다. 두 카슈미르 사이를 정전 통제선이 가르고 있다.

이재호 기자 ph@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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