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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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빼앗긴 땅에 들어선 한국 팜유 농장

포스코대우 팜유 농장으로 몸살 앓는 인도네시아 메라우케…

언론 출입 금지된 현지 르포
등록 2018-12-29 04:37 수정 2020-05-02 19:29
‘우리 땅은 어디에?’ 인도네시아 파푸아주 메라우케 수부르 마을의 만도보족 전통 가옥 앞에서 만난 아우테 가족은 조상 대대로 살아온 땅을 잃은 사연을 전했다.

‘우리 땅은 어디에?’ 인도네시아 파푸아주 메라우케 수부르 마을의 만도보족 전통 가옥 앞에서 만난 아우테 가족은 조상 대대로 살아온 땅을 잃은 사연을 전했다.

“누구든 우리의 관습적 토지소유권을 침해하고 빼앗는 자는 다음과 같은 관습법상 제재를 받게 됨. a) 돼지 3천 마리로 보상, b) 사고(사고 야자나무에서 나오는 흰 전분) 1만 바구니로 보상, c) 원시 숲이 있던 토지 원상 복구, d) 숲 원상 복구.”

2018년 11월20일 오후 5시께, 인도네시아 영토의 동남쪽 끝 파푸아주 메라우케 시내에서 차로 7시간을 달려 도착한 수부르 마을은 경고 팻말로 방문객을 맞았다. 1972년 인도네시아 정부가 행정 편의를 위해 인근 숲에 흩어져 살던 만도보족 17개 씨족 집단을 한데 모아 새로 만든 마을이다. 이곳에 한국 기업 포스코대우의 팜유 농장에 땅을 빼앗겼다고 호소하는 원주민들이 살고 있다.

술라웨시섬 마카사르 출신 운전기사 아궁은 마을을 찾아가는 지름길로 포스코대우 팜유 농장 1구역을 가로지르는 방법을 택했다. “돌아가면 2시간은 더 걸릴 텐데, 하늘이 흐린 걸 보니 비가 쏟아지기 전에 도착하려면 서둘러야 한다. 비가 오면 마을 앞 진흙길에 갇혀 오도 가도 못한다.” 지난 2년간 사륜구동 미쓰비시 스트라다 트라이톤을 마을버스처럼 운행하며 수부르를 드나들었다는 아궁이 말했다.

인도네시아 메라우케의 포스코대우 농장
인도네시아 파푸아주 메라우케의 포스코대우 팜유 농장을 가로지르는 비안강의 농장을 잇는 나무다리에 마을 주민들이 올라서 있다

인도네시아 파푸아주 메라우케의 포스코대우 팜유 농장을 가로지르는 비안강의 농장을 잇는 나무다리에 마을 주민들이 올라서 있다

“환영합니다. ‘바이오 인티 아그린도’(PT Bio Inti Agrindo·이하 PT BIA).” 메라우케 시내를 출발해 파푸아뉴기니~인도네시아 국경을 오른쪽에 두고 파푸아 종단 고속도로를 따라 북쪽으로 5시간을 달리면 포스코대우 소유의 팜유 농장 1구역 입구에 도착한다. 들머리의 경비 초소 너머로 현대(HYUNDAI) 로고가 박힌 대형 굴착기가 땅을 다지고 있다. 지나온 길가의 공사 현장에선 주로 일본산 고마쓰 굴착기를 쓰고 있었다. 한국 기업이 소유한 농장에 들어섰다는 걸 실감할 수 있었다.

PT BIA는 2006년 인도네시아에 설립된 팜유 생산 업체다. 2010년 포스코에 인수·합병된 대우인터내셔널이 2011년 4월 PT BIA의 지분 85%를 인수했다. PT BIA는 2018년 말 현재 지배회사인 포스코대우의 직전 사업연도 말 자산총액 750억원 이상인 주요 종속회사 83개 가운데 하나다.

전남 고흥군 거금도보다 조금 더 큰 1구역 농장 부지(6669.1ha)를 통과하는 길은 비포장길이었다. 길 양쪽으로 크고 작은 야자나무들이 직선으로 행과 열을 맞춰 끝없이 이어졌다. ‘PT BIA’라고 적힌 트럭과 퇴근하는 직원들의 오토바이가 지나갈 때마다 빨간 흙먼지가 흩날렸다. 오랫동안 비가 오지 않은 탓인지 야자나무 잎에는 적갈색 흙먼지가 두껍게 쌓여 있었다.

“안녕히 가세요. 바이오 인티 아그린도.” PT BIA의 1구역 표지석을 뒤로 하고 수부르 마을까지 다시 28㎞를 달려가는 내내 열대우림 숲에 세워진 수십 개의 나무 십자가와 경고 팻말을 볼 수 있었다. 팻말에는 “수부르 마을 씨족들이 소유한 관습적 토지는 팜유를 위한 것이 아니다”라고 쓰여 있다. 지역 가톨릭 사제와 수부르 마을 주민들이 함께 세운 것이다.

“아버지가 돌아가신 뒤 찾아가보니 우리 숲은 완전히 사라져버리고 없었다.” 수부르 마을 주민 리디아 톰바(35)는 마을 성당 관리인의 숙소에서 한국 회사가 대대로 내려오던 숲을 밀어버렸다고 말했다. 전기가 들어오지 않아 디젤 발전기로 불을 밝힌 방 안에는 만도보족 주민 6명이 모여 앉았다. 이들은 만도보족 톰바, 토와, 부록 씨족의 땅이 “끝나버렸다”고 했다. 세 씨족은 현재 포스코대우 팜유 농장에 포함된 셀릴의 숲을 터전으로 살다가 1972년부터 수부르 마을에 살고 있다.

처음부터 얘기를 해달라고 청하자 자리에 있던 서베리아스 아우테(40)가 “그러니까 회사 사람들과 종족 대표들만 모아놓고 공청회를 했는데…”라며 말문을 열었다. 리디아는 그의 말을 끊고 성난 목소리로 말했다. “공청회는 없었다! 사전 설명도 동의도 없이 우리 숲이 끝나버렸다.” 마을 남자들이 하는 말을 들어보니 만도보족 땅을 마린족 사람들이 팔아버렸다고 한다.

수부르 마을 사람들이 이 사실을 알게 된 것은 2012년이다. 2012년은 PT BIA가 1구역 토지 사용 등기를 취득하고 처음 야자나무를 심은 해다. 아버지의 땅과 숲을 물려받았다고 생각한 만도보족은 숲이 사라진 다음에야 뒤늦게 진상 파악에 나선 셈이다.

2018년 12월24일 포스코대우가 에 공개한 A지구(포스코대우에서 PT BIA 농장 1구역을 분류하는 명칭) 토지 보상 합의와 선수금 지불 합의서를 보면, PT BIA는 2010년 12월21일 마린족의 바식-바식 씨족과 마후세 씨족 대표에게 6669.1㏊ 땅과 숲에 대한 보상금의 25%를 선지급했다. 나머지 75%의 보상금은 2011년 7월16일에 치렀다. 역시 마린족의 같은 씨족 대표에게 주었다.

만도보족 땅인데 보상금은 다른 씨족에

포스코대우 쪽은 만도보족과 마린족의 토지소유권 혼동에 대해 “PT BIA A지구는 바식-바식 씨족과 마후세 씨족의 거주지다. 만도보족 대표자인 셀릴 마을 촌장이 해당 지역의 토지 보상을 대표 종족인 바식-바식 씨족과 마후세 씨족에게 지급하는 것에 대한 증인으로 A지구 토지 보상 합의서에 서명했다”고 설명했다.

문제는 이 지역에 대한 관습적 토지소유권을 가진 만도보족이 1970년대 정부 시책에 따라 자신들의 숲에서 반강제로 격리된 것에서 시작된다. 수부르 마을 만도보족 리디아 톰바가 말했다. “아주 어릴 때는 아버지를 따라 셀릴에 있는 우리 숲까지 하루 종일 걸어간 적도 있지만 수부르 마을에서 웬만한 먹을거리를 구할 수 있게 되면서 가지 않게 되었다. 아버지 혼자 종종 찾아갔고, 1990년대부터 우리 발길은 끊겼다.”

잦은 종족 간 전쟁으로 만도보족과 마린족이 뒤섞여 살던 숲에서 사람들이 떠났다. 그래도 그들은 숲이 원래대로 남아 있었으면 떠나온 땅이 누구 것인지 알아볼 수 있었다. 마린족 통역 코시는 “원주민들이 말하는 땅과 숲에 대한 소유권은 우리가 생각하는 위도·경도 같은 위치 정보나 공증받은 서류 등으로 존재하지 않는다. 눈에 띄는 나무, 바위, 강이 꺾이는 자리 등 특이한 지형지물로 씨족의 땅과 숲의 경계를 기억하고 알아본다”고 설명했다.

포스코대우의 팜유 농장으로 변한 땅에 대한 관습적 토지소유권을 주장하는 5개 마을의 대표 격인 ‘왐본 테카메롭 음비안’(테카메롭 방언을 쓰는 왐본족이 사는 지역. 왐본족은 만도보족, 음비안은 코코넛을 뜻함) 관습법 공동체 기구가 2012년 10월28일 메라우케 군수에게 항의 문서를 냈다. 종족 간 회의도 여러 차례 열고, PT BIA 관계자와도 수차례 대화를 시도했지만 답보 상태였다.

PT BIA 농장에서 야자열매 수확이 시작된 2015년 이후 갈등은 격해졌다. 야자열매 수확을 기념해 토지 보상에 합의한 마린족 씨족 대표가 감사의 금일봉을 받는 현장에서 만도보족이 항의했다. 2016년 8월에는 수부르 마을 등 만도보족 남자들이 PT BIA 1구역 경비 초소 앞까지 가서 반대 시위를 벌였다.

왐본 테카메롭 음비안 관습법 공동체 기구가 2016년 8월 작성한 자료에는 2015년과 2016년 시위 때 인도네시아 군인이 만도보족을 쫓아내기 위해 공중에 공포 사격을 한 것으로 기록돼 있다. 당시 현장에 있던 수부르 마을 주민 프란시스쿠스 토아(30)는 “맨 처음 시위대를 막아선 것은 마린족 씨족 대표들이었다. 우리는 PT BIA 직원들을 만나 얘기하려 했는데 특전사령부 군인이 탄창 하나를 비울 때까지 공중에 대고 사격을 했다”고 말했다.

팜유 농장 인근 마을의 환경 변화
포스코대우의 팜유 농장에는 땅을 빼앗긴 현지 주민들도 일한다.

포스코대우의 팜유 농장에는 땅을 빼앗긴 현지 주민들도 일한다.

11월21일 아침, 수부르 마을에서 PT BIA의 농장으로 출근하는 만도보족 가족을 태우고 다시 PT BIA 1구역을 통과했다. PT BIA에 반대하는 마을 사람들의 눈을 피해 몰래 취업한 만도보족이 10명 이상이라고 한다. 2017년 완공한 팜유 제조 공장 건물과 제분 공정 뒤 남은 야자열매 찌꺼기가 쌓인 공터가 눈에 띄었다. 멀리 직원 숙소도 보인다. 남쪽으로 2시간여를 더 달려 이 지역의 젖줄 비안강 하류의 거대한 습지를 끼고 있는 무팅 마을에 도착했다.

이곳 주민들은 최근 3~4년간 경험하는 기후와 환경 변화의 원인으로 PT BIA의 팜유 공장을 의심하고 있다. 비안강 하류 습지 바로 곁에 살고 있는 나탈리아 카쿠비(30)는 “한국 팜유 농장과 공장이 생긴 뒤로는 오염이 무서워 비안강의 물을 마실 엄두가 나지 않는다”고 했다. 그는 “강에 있던 물고기들이 죽어서 물에 떠 있는 것을 봤다. 많이 잡히던 민물새우는 지금은 전혀 잡히질 않는다”고 그 이유를 설명했다. 나탈리아는 아이에게 젖을 먹이며 “농장과 가까운 셀릴의 강에서 잡은 살아 있는 물고기의 꼬리 부분이 썩은 상태였다는 말도 들어 이제 비안강물은 목욕물, 빨랫물로도 쓰지 않는다”고 했다.

무팅 마을 최고령 여성인 가브리엘라 바식-바식(63)이 말했다. “어린 시절 부모님이 앞으로 자연환경이 파괴되고 오염될 때가 온다는 말씀을 하실 때마다 이해를 못했다. 지금은 손자에게 내 아버지가 이런 말을 했는데 현실이 됐다고 얘기한다.” 가브리엘라의 가장 큰 걱정은 예측할 수 없는 강우량과 강물의 변화다. 2015년부터 2017년까지 강에 물이 마르지 않고 계속 가득하더니 2018년에는 7개월 넘게 비가 오지 않아 물이 없다.

포스코대우 쪽은 강물 오염에 대한 주민들의 우려를 “팜유 제조 공장의 폐수가 비안강으로 흘러갈 수 없는 지형적 구조로 돼 있고, 폐수처리시설을 설치하고 인도네시아 정부 공인 검사기관이 매년 2회 샘플링 분석으로 변화를 관찰·보고하는 등 안전한 수자원 관리 체계를 운영하고 있다”고 일축했다. 그러나 포스코대우 팜유 농장 인근 지역 주민들은 이런 정보를 직접 받은 적이 없다. 포스코대우 팜유 농장에 대한 주민들의 환경오염 우려는 앞으로도 계속 제기될 것이다.

“PT BIA는 닫힌 상태로 소통하고 있다. 지역주민에게 필요한 정보를 정확히 제공하지도 않았고 사전 협의도 하지 않았다. 불신이 커져갈 뿐이다.” 인도네시아 파푸아주 메라우케 가톨릭 대교구 소속 니코데무스 룸바얀 신부의 말이다. “PT BIA와 토지 보상에 합의한 마후세족 대표 스테파누스 마후세도 관습법 공동체 원로들 앞에서 눈물을 흘리며 무엇인지도 모른 채 돈을 주니까 영수증에 서명했다고 고백했다.” 룸바얀 신부에 따르면, 마후세는 씨족 공동체에서 쫓겨나다시피 마을을 떠나 지금은 가족과 함께 PT BIA 1구역 직원 숙소에서 살고 있다. 1년 전까지 닿았던 그와의 연락은 이제 완전히 끊어졌단다.

룸바얀 신부는 지난 5년간 PT BIA와 관련된 갈등을 지켜보며 종족 간 대화를 중재하고 관련 기록을 모아왔다. “처음 보상에 합의하고 보상금의 25%를 지급한 2010년 12월21일은 성탄절 장기 휴일을 앞둔 때였고, 종족 내 회의도 없었다. 관습적 토지소유권을 가진 주민들도 모르게 1ha의 땅과 숲이 5만루피아(약 3900원)에 PT BIA에 넘어갔다.”

룸바얀 신부가 공개한 자료를 보면, PT BIA는 6669.1㏊의 땅을 3억3345만5천루피아(약 2576만7200원)에 샀다. “지도 위에 씨족 대표 2명이 서명했다. 단 2명이…. 그리고 여러 해째 갈등이 커져가고 있다. 한국 팜유 회사들은 분쟁 중인 파푸아에서는 시민들이 대규모 시위나 항의 집회가 열리면 군병력이 무력 대응한다는 사실을 알고 영리하게 움직인다.” 룸바얀 신부는 고개를 내저었다.

만도보족 항의에도 꿈쩍 않는 한국 기업

1969년 인도네시아에 합병된 파푸아는 자치독립을 요구하는 무장게릴라 자유파푸아운동(OPM)이 벌어지는 분쟁 지역이다. 1970~80년대 주민 수천 명이 인도네시아 특수부대에 살해됐다. 90년대를 기점으로 국내외 천연자원 개발 투자자들이 모여들었다. 2000년대 들어 국내외 투자자의 팜유 농장이 우후죽순으로 들어서고 있다. 국내외 시민사회에 원주민과 개발회사들 사이 토지소유권 분쟁과 열대우림 벌목 등 환경 파괴와 평화적 시위에 대한 무력 대응 등 인권침해를 우려하는 목소리가 높다. 인도네시아 정부는 이 지역에 인권단체와 언론의 출입을 금지하고 있다.

메라우케(인도네시아)=글·사진 이슬기 자유기고가 skidolma@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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