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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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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적 비핵화’는 언제 올까?

핵무기금지조약 체결 1년 커지는 핵폐기 여론…

냉전 해체 뒤에도 미 핵무기가 유럽에 있는 이유는?
등록 2018-07-17 08:15 수정 2020-05-02 19:28
‘동상이몽.’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앞줄 왼쪽)을 비롯한 나토 정상회담 참가자들이 기념촬영에 앞서 환한 표정으로 얘기 나누고 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만 무표정한 얼굴로 다른 곳을 보고 있다. 연합뉴스

‘동상이몽.’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앞줄 왼쪽)을 비롯한 나토 정상회담 참가자들이 기념촬영에 앞서 환한 표정으로 얘기 나누고 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만 무표정한 얼굴로 다른 곳을 보고 있다. 연합뉴스

핵무기는 1945년 8월6일과 9일 일본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서 단 두 차례 사용됐다. 파괴력의 범위와 규모는 공포 그 자체였다. 군인과 민간인을 가리지 않는다는 점에서도, 살상력이 핵폭발 이후 장기간 지속된다는 점에서도 ‘최악의 비인도적 무기’다. 핵무기를 없애려는 국제사회의 오랜 노력이 마침내 꽃으로 피어난 핵무기금지조약(TPNW) 채택 1주년을 기념하는 이유다.

핵무기금지조약은 2017년 7월7일 유엔 총회에서 122개국의 찬성(반대 1, 기권 1)으로 통과됐다. 앞서 같은 해 3월과 6월 두 차례 열린 ‘법적 구속력을 갖춘 핵무기 금지 제도 협상을 위한 유엔 회의’가 맺은 결실이었다. 국제사회는 조약 체결을 위해 장기간 노력해온 다국적 평화단체 ‘핵무기금지국제운동’(ICAN·아이칸)에 노벨평화상을 주는 것으로 이를 자축했다. 지금까지 59개국이 조약에 서명했고, 11개국이 비준 동의 절차를 거쳤다.

체결 1년 뒤에도 발효되지 못한 조약

조약은, 아직 발효되지 못했다. 50개국 이상이 비준 동의 절차를 거쳐야 국제법적으로 효력이 발생할 수 있기 때문이다. 조약이 발효되면 핵무기 개발, 시험, 생산, 보유, 배치, 이전, 핵무기를 사용하거나 사용하겠다고 위협하는 일체의 행위가 금지된다. 세계 평화를 어깨에 짊어진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상임이사국이자 5대 핵보유국인 미국·러시아·중국·영국·프랑스와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 회원국을 비롯한 그 동맹국은 조약 체결을 위한 협상에도 참여하지 않았다. 핵 위기가 25년째 이어지는 한반도의 남과 북도 마찬가지다. 조약 채택 1주년을 새삼 기억하는 이유다.

냉전 시절 이념의 동과 서를 양분했던 바르샤바조약기구와 나토의 운명은 이후 극명히 엇갈렸다. 전자는 냉전 붕괴 직후 사멸했지만, 후자는 동진을 거듭하며 세력을 더욱 키웠다. 1949년 8월 12개국으로 시작한 나토는 냉전 시절 단 4개국에 문호를 개방했다. 하지만 냉전이 끝난 뒤 옛 바르샤바조약기구 회원국을 포함해 13개국을 받아들이면서 모두 29개 회원국으로 몸집을 불렸다.

유럽에 미군 핵무기가 배치된 것은 냉전 시절 나토를 중심으로 이른바 ‘핵 공유’ 정책에 따른 조치였다. 냉전이 끝난 뒤 그리스(2001년)와 영국(2008)이 차례로 미군 핵무기 철수를 결정했다. 하지만 벨기에·네덜란드·독일·이탈리아·터키 5개국은 미군 핵무기 배치를 이어오고 있다. 평화단체 미국과학자연맹(FAS)과 미국군축협회(ACA) 등은 이들 5개국에 배치된 미군 전술핵무기(B61)를 모두 150기로 추정한다.

이 가운데 3분의 1에 해당하는 50기가 터키 남부 인지를리크 공군기지에 배치됐다. 이곳은 7년3개월여째 내전이 불을 뿜는 시리아 국경에서 불과 112㎞가량 떨어져 있다. 이 때문에 이슬람국가(IS)가 세력을 키우던 2016년 3월께 현지 주둔군 장교 가족들의 대피령이 내려지기도 했다. 핵무기가 배치된 기지가 테러단체의 공격 목표물이 되거나, 아예 테러단체가 핵무기를 탈취할 수 있다는 경고가 끊이지 않는 것도 이런 맥락에서다.

미국 핵무기의 철수를 위한 각국의 노력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벨기에 의회는 2015년 4월 자국에 배치된 핵무기 철수를 포함해 다자간 협상을 통해 핵군축으로 나아가기 위한 단호한 조처를 하라고 촉구하는 대정부 결의안을 통과시켰다. 독일과 네덜란드 의회도 미군 핵무기를 철수시키는 문제를 나토 내부에서 논의하라고 촉구하는 결의안을 여러 차례 통과시킨 바 있다.

유럽에 배치된 미군 핵무기의 군사적 효용성은 사실상 전무하다는 게 군사안보 전문가들의 일치된 지적이다. 유럽에서 사실상 유일한 핵 위협국은 러시아다. 러시아의 핵 위협을 억지하는 건 유럽에 배치된 전술핵무기가 아니라, 미 본토에 배치된 전략핵무기다. 유럽에 배치된 미군 전술핵무기가 실전에 동원될 가능성도 전무하다. 미국이 핵무기 사용을 결정하더라도, 나토 회원국과 논의해 핵 배치국 정부의 동의까지 얻어야 한다.

군사 효용성 상실한 유럽의 미 핵무기

미국 쪽도 유럽에 배치된 핵무기 사용을 결정할 가능성이 사실상 없다. 미 군축단체 핵위협방지구상(NTI)은 지난 2월 펴낸 ‘안전하고, 안정적이며, 믿을 만한 나토 핵 태세 구축’이란 제목의 보고서에서 “미군 소속도 아닌 동맹국의 조종사가, 미군 전투기가 아닌 나토군 전투기를 이용해, 미군의 전술핵무기를, 그것도 무려 70여 년 만에 처음으로 실전에 사용하도록, 미국 대통령이 결정을 내리는 상황을 가정하는 건 쉽지 않다”고 지적했다.

냉전이 끝난 뒤 30년 가까운 세월이 흘렀다. 그럼에도 미군 핵무기가 유럽에 계속 배치된 이유는 대체 뭘까? 미국이 유럽을 방어하겠다는 정치적 ‘상징성’이 가장 크다. 향후 러시아가 보유한 약 2천 기에 이르는 전술핵무기 군축을 위한 일종의 ‘협상 칩’ 구실도 있다. 핵위협방지구상은 보고서에서 “유럽에 전진 배치된 미군 전술핵무기는 사고나 사소한 실수, 재난적인 테러 사건과 선제공격의 위협을 무릅쓰고 있다. 전술핵무기 유럽 전진 배치가 필수적이란 관념을 재검토할 때가 됐다”고 강조했다.

애초 버락 오바마 행정부는 전세계적 핵군축의 하나로 유럽에서 전술핵무기를 철수하는 방안을 유력하게 검토한 바 있다. 하지만 크림반도 강제 합병(2014년 3월) 등으로 러시아와의 관계가 악화일로를 치달으면서 상황이 바뀌었다. 이에 따라 오바마 행정부는 유럽에 배치된 낡은 전술핵무기를 전면 개선하는 쪽으로 방향을 틀었다. 이 계획은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가 고스란히 물려받아 추진하고 있다.

계획에 따라 2020년부터 기존 5개 모델이던 미군 전술핵무기는 ‘B61 모드 12’ 1개 모델로 통합 생산하게 된다. 애초 미 국방부는 2016년 10월께만 해도 ‘B61’ 개선 비용이 83억달러에 이를 것이라고 내다봤다. 개선 비용 추정치는 지난해 6월 100억달러를 훌쩍 뛰어넘는 것으로 상향 조정됐다. 트럼프 대통령의 행태에 비춰, 미국 혼자서 막대한 비용을 부담하지는 않을 가능성이 높다.

미군 핵무기를 배치한 유럽 국가들은 ‘핵무기 공유’ 작전 수행이 가능한 이른바 ‘이중 능력’ 전투기를 운용해야 한다. 핵무기를 탑재할 수 있는 전투기가 필요하다는 뜻이다. 미 국방부는 지난 2월5일 공개한 ‘2018 핵태세 검토’ 보고서에서 현재 F-15E 전투기가 수행하는 전술핵무기 작전 주 기종을 F-35A 스텔스 전투기로 바꿀 것이란 점을 분명히 했다. 미군 핵무기를 배치한 유럽 5개국은 미국산 F-35A 전투기를 구매할 수밖에 없는 상황으로 내몰릴 가능성이 높다는 뜻이다. 트럼프 대통령이 나토 정상회의 첫날인 지난 7월11일 동맹국에 국방예산 지출을 국내총생산 대비 4%까지 늘리라고 압박한 이유를 짐작할 만하다.

독일 국민 70% “미 핵무기 철수”

여론은 어떨까? 핵무기금지조약 채택 1주년을 맞아 핵무기금지국제운동이 독일·벨기에·네덜란드·이탈리아 등 미군 핵무기 배치 4개국 국민에게 실시해 7월7일 내놓은 조사 결과를 보자. ‘미군 핵무기 철수냐, 계속 배치냐’를 묻는 질문에 독일 국민 10명 가운데 7명이 ‘철수’를 선택했다. 이탈리아(65%), 벨기에(57%), 네덜란드(56%)에서도 절대다수가 미군 핵무기 철수 쪽을 택했다. ‘핵무기금지조약 가입’ 찬반을 묻는 질문엔 이탈리아(72%), 독일(71%), 벨기에·네덜란드(66%) 순으로 찬성 의견이 많았다.

정인환 기자 inhwa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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