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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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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강’ 싸움에 ‘동구타’ 터진다

중동 세력 재편 노리는 미·러·터키 등 강대국 대결로 시리아 내전 비화…

동구타 학살은 국제전 확산의 변곡점
등록 2018-03-08 02:22 수정 2020-05-02 19:28
시리아 반군이 장악한 동구타 두마 지역이 정부군의 공습으로 폐허로 변했다. REUTERS 연합뉴스

시리아 반군이 장악한 동구타 두마 지역이 정부군의 공습으로 폐허로 변했다. REUTERS 연합뉴스

시리아 내전이 3월15일이면 만 7년이 된다. 바샤르 아사드 정권을 반대하는 민주화 시위로 촉발된 시리아 내전은, 이제 주변 열강들이 발을 담그는 위험스러운 국제전의 문턱에 와 있다. 아사드 정권에 대한 반독재·민주화운동은 중동 지역의 시아파 대 수니파 분쟁으로 겉모습을 바꿔 진행돼왔지만, 이제 중동의 세력 재편을 꾀하는 관련된 모든 세력이 대결하는 “중동의 30년 전쟁”(요슈카 피셔 전 독일 외무장관)으로 번질 수도 있다.

새해 들어, 터키는 시리아 북부를 침공해 쿠르드족 장악 지역을 제압하는 작전을 진행 중이다. 남부에서는 정부군이 반군 세력을 거의 쫓아내자 ‘숙적’ 이스라엘 역시 이란의 개입을 명분 삼아 내전에 끼어들 태세를 갖추고 있다. 이 시점에서 터진 것이 시리아 정부군의 동(부)구타 학살이다.

시리아 내전으로 생긴 민간인 피해를 집계하는 시리아인권관측소에 따르면, 동구타에서 정부군 공세가 본격화한 2월18일 이후 28일 현재까지 어린이 147명을 포함해 민간인 602명이 숨졌다. 부상자는 3천여 명에 이를 것으로 추산된다. 아사드 정권이 국제사회의 비난을 무릅쓰며 동구타 함락을 감행하는 것은 이 지역이 수도 다마스쿠스와 가까워, 언제든 정권의 목을 노리는 칼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정부군은 2013년 이곳을 화학무기로 공격해 1천 명 안팎을 죽이기도 했다. 한때 100만 명이던 동구타의 인구는 현재 40만 명으로 줄었다.

민간인 사망 열흘 새 600명 넘어

시리아 내전은 정부군과 반군의 양자 대결이던 1단계, 정부군과 반군에 이슬람 극단주의 세력인 이슬람국가(IS)가 대결하는 3자 구도를 형성했던 2단계를 거쳐, 현재는 정부군과 반군의 대결에 이슬람국가와 쿠르드족까지 겹친 4자 각축 구도가 형성된 3단계에 와 있다.

2011년 아랍 지역의 민주화운동인 ‘아랍의 봄’이 시리아에 옮겨붙으며 아사드 정권에 대한 반정부 시위는 내전으로 비화됐다. 사우디아라비아와 걸프 지역 수니파 보수 왕정 국가들이 (시아파 국가인) 아사드 정권을 타도하려고, 반군 세력을 지원했다. 이에 맞서, 아사드 정부는 시아파 세력인 이란과 레바논의 무장조직 헤즈볼라뿐만 아니라 오랜 우방이던 러시아의 지원을 받았다. 그로 인해 내전은 장기화됐고, 시리아는 쑥대밭이 됐다.

이런 혼란 속에 이슬람국가가 급속히 세력을 불려 시리아 서·북부 지역을 장악했다. 그러자 내전은 정부군 대 반군이 대결하는 양자 구도에서 이슬람국가 격퇴 전쟁으로 성격이 변했다. 이슬람국가를 격퇴한 주역은 미국의 지원을 받은 인민수비대(YPG) 등 쿠르드족 민병대 세력이 주축인 시리아민주군(SDF)이었다. 이들이 이슬람국가를 격퇴하며 시리아 쿠르드족은 서·북부에서 세력을 키웠고 터키와 접경한 북동단 지역인 아프린도 장악했다.

그사이 아사드 정부군은 러시아의 강화된 지원을 등에 업고, 남부에서 반군과 이슬람국가 세력을 구축했다. 또 북부에선 2016년 12월 내전 초기부터 반군과 치열한 공방전을 벌이던 최대 도시 알레포를 장악해 반군에 큰 타격을 입혔다. 알레포 공방전으로 1만3500명이 숨지고, 2만3천 명이 다친 것으로 집계된다. 알레포 공방전의 결론은 시리아 내전 구도가 크게 출렁이는 변곡점이 되었다.

지난해 하반기 들어 시리아 내전은 이슬람국가가 본격적으로 패퇴하고, 남부에서는 정부군, 북부에서는 쿠르드족이 약진하는 양상으로 바뀌었다. 그러자 (자국 내 분리독립 세력인) 쿠르드족의 세력 확장을 견제하던 터키는 새해 들어 군사개입을 단행했다. 시리아 쿠르드족이 힘을 키워 터키 내 쿠르드족의 분리독립 운동에 영향 주는 것을 차단하기 위해서였다.

중동 강국들의 국제전

그와 동시에 시라아의 ‘숙적’ 이스라엘의 움직임도 분주해졌다. 국경지대인 남부에서 아사드 정부의 장악력이 다시 커지자, 이스라엘은 2월10일 시리아 정부군 시설을 공습했다.

이런 흐름에서 발생한 동구타 사태는 시리아 내전이 본격적인 국제전으로 비화하는 중요 변곡점이 될 전망이다. 터키는 이미 시리아 내전에 발을 담갔고, 이스라엘은 동구타 함락으로 남부에서 아사드 정부군의 장악력이 굳어지는 것을 좌시하지 않겠다는 태세다. 터키에 이어 이스라엘까지 개입한다면, 시리아 내전은 중동 강국들이 모두 참여하는 본격적인 국제전이 된다.

지난해 말부터 승기를 잡아가는 아사드 진영은 지중해 연안에서 다마스쿠스를 연결하는 ‘유스풀 시리아’(Useful Syria) 지대를 완성하려 한다. 시리아를 수니파 지역, 쿠르드 지역, 아사드 정권 지역으로 나누려는 전략이다. 지중해 연안부터 동남쪽 다마스쿠스까지가 ‘유스풀 시리아’다. 이 지역은 아사드 정권의 중추를 구성하는 (시아파의 분파인) 알라위파 등 소수 종파와 민족으로 구성된 아사드 지지 세력의 영향이 강한 곳이다.

‘유스풀 시리아’의 구축은 중동에서 최대 숙적 관계인 이란과 이스라엘의 전략적 입지를 바꾸게 된다. 이란은 시리아에서 세력을 구축할 수 있을 뿐 아니라 지중해로 나아가는 통로를 확보하게 된다. 반면 이스라엘은 접경한 시리아에서 이란과 헤즈볼라 세력에 직면해야 하는 안보 위협을 받게 된다.

이란은 이스라엘뿐 아니라 사우디아라비아에도 최대 적이다. 사우디아라비아는 자신이 지원하던 반군 세력이 약화된 상황에 있다. 이것은 시리아에서 이란과 이스라엘이 대결할 환경을 만들고 있다. 그 때문인지 사우디아라비아는 최근 부쩍 이스라엘과 관계를 개선하고 있다. 사우디아라비아는 아사드 정권을 압박하는 이스라엘과 터키의 개입에 협조할 것이다.

중동의 ‘30년 전쟁’으로 치닫나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는 전임 버락 오바마 행정부가 취했던 이란과 화해 정책을 폐기하고, 이란을 적대하는 사우디아라비아 등 수니파 아랍국가들과의 동맹을 강화했다. 이런 중동 정세는 아사드 정권에 대한 이스라엘의 ‘위협’이 ‘행동’으로 바뀔 수 있는 조건이다. 이스라엘이 시리아 내전에 개입해 이란에 대한 직간접 군사행동을 벌여도, 미국과 수니파 아랍국가들은 방조할 것이다. 시리아 내전은 터키·이스라엘·이란·사우디아라비아 등 중동의 강자들이 직접 개입하고, 러시아와 미국이 그 뒤를 받치는 중동의 ‘30년 전쟁’으로 달려가고 있다.

정의길 국제부 선임기자·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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