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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민정부 들어서도 달라지지 않는다

무슬림 상인 구타, ‘로힝야’ 용어 쓴 미국대사관 앞 시위 등 버마의 반이슬람인종주의 부추기는 불교극단주의 세력들
등록 2016-05-26 05:57 수정 2020-05-02 19:28
지난 4월28일 버마 랑군 주재 미국대사관 앞에서 대사관의 ‘로힝야’ 용어 사용에 항의하는 시위가 열렸다. REUTERS

지난 4월28일 버마 랑군 주재 미국대사관 앞에서 대사관의 ‘로힝야’ 용어 사용에 항의하는 시위가 열렸다. REUTERS

지난 4월17일, 버마(미얀마) 옛 수도 랑군에 사는 노점상 예코코는 랑군 최대 불교사원인 슈웨다곤 파고다 근처에서 장사를 하고 있었다. 벨트, 작은 용기, 휴대전화 장식품 등을 팔아 70대 노모와 생계를 유지해온 그는 평범한 빈민이다. 그런데 그날 한 승려가 예코코의 물건을 압수하고 그를 사원으로 데려가 구타했다. 예코코가 이런 수모를 당한 건 그가 무슬림이기 때문이었다. 예코코 사건은 버마 사회에 만연한 ‘이슬람포비아’ 현상이 폭력적으로 재점화될 우려를 낳았다. 무고한 빈민의 생계를 박탈한데다 4월1일 출범한 아웅산 수치 정부하에서 불거진 사건이라 크게 주목받았다.

“(예코코는) 지금 머리를 삭발했고 수염도 남김없이 면도했다. 사람들이 알아보거나 폭도들이 집으로 들이닥칠까봐 몹시 두려워하고 있다.” 예코코 사건을 추적해온 평화운동가 텟슈웨윈은 기자와의 전화 통화에서 이렇게 말했다. 불교도인 텟슈웨윈은 ‘종교 간 평화운동’(Interfaith Peace Movement)에 주력해온 인물이다.

예코코에게 폭력을 행사한 이는 애국승려연합(Patriotic Monks Association) 랑군본부 대표인 우투세익타 승려다. 애국승려연합은 불교극단주의운동의 터줏대감 격인 ‘마바타’(Ma Ba Tha), 즉 ‘인종과 종교 수호위원회’의 또 다른 얼굴이다. 상황에 따라 이름만 달리 걸 뿐이다.

불교극단주의 단체 ‘마바타’ ‘애국승려연합’

텟슈웨윈은 우투세익타 승려가 지난해에도 무슬림 상인을 쫓아낸 적이 있다고 말했다. 다만 구타는 없었다. 이 승려는 현지 언론 과의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무슬림 노점상들이 파고다 주변을 점령해 들어오고 있다. 언젠가 이들이 사원에 폭탄을 터트리지 않는다고 누가 보장하겠는가?”

불교도가 다수인 버마에선 ‘불교’가 국가 정체성인 양 간주돼왔고, 불교민족주의적 정서는 이슬람포비아를 내포한 채 보편화돼 있다. 그런 정서를 이용해 소수자에게 폭력을 행사하는 극단주의 세력이 최근 몇 년간 기승을 부리면서 불교민족주의는 이미 극우파시즘의 경향을 보여왔다. 대표적 피해자는 단연 무슬림이고, 특히 서부 아라칸주에 많이 사는 로힝야 무슬림들이다.

버마 시민 다수는 ‘로힝야’라는 호칭을 거부한다. 대신 방글라데시에서 온 불법이주자라는 의미를 담아 ‘벵갈리’라 부른다. 예컨대, 저명한 버마 언론 (Irrawaddy)는 버마어 버전에선 현지인들의 입맛 따라 ‘벵갈리’를, 영어 버전에선 ‘리버럴’ 독자층과 투자를 의식해 ‘로힝야’를 사용해왔다. 로힝야들이 1982년 시민권법에 따라 시민권을 박탈당하고 수십 년간 박해받고 있음에도 버마 사회가 그다지 꿈쩍하지 않는 건 바로 이런 이슬람포비아 정서가 불교민족주의로 흡수되면서 정당화되기 때문이다. 그 최전선에 승려들이 있다.

버마에서 승려를 고발하는 건 조금도 쉽지 않다. 예코코 사건이 가볍지 않다고 여긴 텟슈웨윈은 무슬림 활동가 동료와 함께 경찰서를 찾았다. 거기서 또 다른 무슬림 노점상 2명을 만났다. 그들도 같은 경험을 하고 신고 중이었다. 그들은 심지어 사원에서 멀찌감치 떨어져 장사하고 있었다.

경찰 신고로 끝날 문제가 아니라 여긴 텟슈웨윈은 온라인 서명 게시판을 열고 그 승려가 “모든 국민은 법에 따라 자유롭게 생계를 꾸릴 권리를 지닌다”는 헌법 370(a)조를 위반한 것이라 지적했다. 또 랑군 주정부 장관에게 법치 회복을 요구하는 편지를 띄웠다. 이 문제가 소수종교자 차별은 물론 법치 문제이기도 하다는 게 그의 생각이다. 그러나 아무 응답이 없다. 경찰도 승려를 조사할 의향이 없어 보인다. 승려를 조사하려면 타운십 대표승려의 승인부터 받아야 할 만큼 승려들은 특권을 누리고 있다.

이후 대가를 치르는 건 텟슈웨윈이다. 전자우편은 해킹당했고 그의 친구들은 텟슈웨윈을 헐뜯는 익명의 전화를 여러 통 받았다. 무슬림 혐오발언으로 악명 높은 극우정치인 네이묘윈은 텟슈웨윈 아내가 운영 중인 사우나 시설이 무슬림 지원으로 운영되고 있다며 이들을 배신자라 불렀다.

네이묘윈은 마바타 대표승려인 우위라투를 추종하며 스스로를 ‘위라투 세대’라 부르는 인물이다. 그는 심지어 ‘평화와 다양성을 위한 당’(Peace and Diversity Party) 대표다. 주로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와 촌구석을 다니며 ‘벵갈리 한 명 죽이면 200달러를 지급하겠다’는 식의 혐오발언을 하는 게 그의 일이다.

지난해 5월 버마 무슬림들이 ‘전국무슬림연방회의’를 개최하려 했을 때도 그는 “회의장에 돼지고기 커리를 큰 통으로 담아가서 강제로 먹이겠다”고 말했다. 마바타 승려들도 “감히 ‘연방’이라는 단어를 써서 ‘미얀마 연방’ 안에 무슬림이 포함되는 것처럼 말하는 건 용납할 수 없다”며 추임새를 넣어줬다. 결국 회의는 무산됐다.

정당·시민단체 등 조직 다양화
2013년 버마 아라칸주에 있는 슈웨자디 사원 승려들이 현장 조사를 나온 유엔버마인권보고관을 만나는 모습. 슈웨자디는 영국 식민지배에 저항했던 우오타마 승려가 기거하던 사원인데, 오늘날에는 불교극단주의의 상징적 구역이다(위쪽). 아래쪽은 불교극단주의 대표 단체 ‘마바타’ 리더인 우위라투 승려. 이유경 기자

2013년 버마 아라칸주에 있는 슈웨자디 사원 승려들이 현장 조사를 나온 유엔버마인권보고관을 만나는 모습. 슈웨자디는 영국 식민지배에 저항했던 우오타마 승려가 기거하던 사원인데, 오늘날에는 불교극단주의의 상징적 구역이다(위쪽). 아래쪽은 불교극단주의 대표 단체 ‘마바타’ 리더인 우위라투 승려. 이유경 기자

네이묘윈의 등장은 의미심장하다. 그동안 무슬림 혐오발언을 일삼던 불교극단주의운동에 평신도는 나서기보다는 ‘동원되고 추종하는’ 세력이었다. 그런데 이제 그 평신도들 중에 ‘조직’을 내걸고 적극적으로 이중대 노릇을 하는 이가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지난해 11월 총선 직전부터 출연한 ‘미얀마민족주의자네트워크’(Myanmar Nationalist Network)도 그런 경우다. 이 네트워크의 대표인 윈코코랏은 랑군대학 출신의 30대 남성으로 비교적 교육받은 극우세력이다. 그는 자신의 네트워크를 시민단체라 부른다. 이로써 불교극단주의운동은 성직자, 정당, 시민단체 등 조직의 형식을 다양화하고 있다.

지난 4월28일 랑군 주재 미국대사관 앞에서 시위를 주도한 것도 바로 미얀마민족주의자네트워크다. 시위의 배경은 이렇다. 4월19일 아라칸주에서 무슬림들이 탄 배가 뒤집혀 21명이 사망했다. 사망자 중 7명은 8살 미만 어린이였다. 이에 미국대사관이 “로힝야 커뮤니티 출신 사망자들을 애도한다”고 성명을 발표했다. 그러자 불교극단주의 진영은 ‘로힝야’라는 호칭에 발끈했다. 이들은 “이 나라에 로힝야란 인종은 없다. 그들은 벵갈리이다”라는 구호를 쉼없이 외쳐왔다. 그리고 배 사고에 대해서는 애도 한마디 표명하지 않던 아웅산 수치는 4월27일 스콧 마르시엘 미국대사에게 전화를 걸어 ‘로힝야’ 호칭을 자제해달라고 요청했다.

극단주의자들은 수치의 대응에 환영했다. 그리고 다음날 미국대사관 앞까지 행진한 것이다. ‘로힝야’ 호칭을 물고 늘어지는 시위는 계속되고 있다. 5월5일에는 만달레이에서, 5월18일에는 남부 곡창지대인 이라와디주 중심도시인 파테인에서도 이어졌다. 모두 윈코코랏의 이름으로 허가받은 집회이고 승려들이 대거 참여했다.

버마 이슬람포비아는 식민시대 유산?

배 사고는 예코코 사건과 더불어 버마 무슬림들이 직면한 혹독한 차별을 재조명하는 계기가 되었다. 이유는 배가 뒤집혀 사망한 이들이 로힝야 무슬림이 아니라 ‘캄만(Kamman) 무슬림’이라는 사실이 뒤늦게 밝혀졌기 때문이다. 캄만은 로힝야와 달리 135개 공식인종에 포함되는 시민권자다. 그럼에도 2012년 아라칸주를 휩쓴 로힝야·무슬림 학살 당시 무슬림이라는 이유로 희생됐고 일부는 국내피란민으로 전락했다. 배가 출발한 토 타운십 신텟모 피란민 캠프에 사는 캄만 무슬림들은 로힝야와 마찬가지로 이동과 생계 활동의 자유가 없다. 시장을 근거리에 두고도 불교도와 거래할 수 없어 머나먼 로힝야 피란민 게토에 있는 장터로 향하다 사고를 당한 거였다.

버마에 이슬람포비아를 흡수한 불교민족주의가 만연한 걸 두고 식민시대 유산이라는 시각이 적잖다. 텟슈웨윈 역시 “역사적 트라우마가 있다”고 말한다.

미국 정치학자 구엔터 르위는 1967년 기고문에서 “식민정부의 왕정제 폐지는 종교(불교) 없는 국가를 남겨놓았고 버마인들은 이것을 자신의 민족정체성이 파괴된 것으로 간주했다”고 기록한 바 있다. 특히 “승려들은 그들의 특혜와 위계질서가 깨지고 식민정부가 종교적 소수자(이슬람, 기독교 등)를 친애하는 것에 대한 불만을 쌓으면서 불교가 식민지에 대항하는 저항의 상징으로 발전했다”는 것이다.

그런 인물로 추앙받는 이들 중 우오타마(1879∼1939)라는 승려가 있다. 그는 아라칸주 출신 라카잉 불교도로서 1921년 반식민지 연설로 구속된 최초의 승려다. 2013년 그의 130번째 탄생일은 버마는 물론 방글라데시 동남부 콕스바자르에서도 기념됐다. 버마 아라칸주와 국경이 인접한 치타공, 콕스바자르 일대는 라카잉족 등 방글라데시 불교도가 많이 거주하고 있다.

우오타마에 대한 추앙은 근대국가의 국경을 넘어 인종과 종교의 테두리에서 이뤄지고 있다. 그들에게 국가의 경계가 있다면 아라칸주와 방글라데시 동남부를 묶는 과거의 아라칸 왕국이다. 버마 내에서도 아라칸주 라카잉족들 사이에 유독 ‘불교민족주의’ 정서가 강한 건 이런 변경지대의 특성과 우오타마 승려에 대한 자부심이 복합됐다고 할 수 있다.

청년 25명, 민족·인종주의 반대 행진

이들의 불교민족주의는 식민시대 ‘잃어버린 정체성 찾기 저항’의 유산을 훨씬 뛰어넘었다. 소수에 대한 다수의 폭력으로 발화되는 극우파시즘적 경향은 되레 종교와 인종을 분열정책의 도구로 삼아온 후식민시대 정치 유산을 적극 품고 있다. 특히 군부독재의 유산임은 두말할 것도 없다.

지난 4월25일 랑군 거리에 ‘반파시스트 행동’을 내걸고 행진한 젊은이 25명은 그런 극우파시즘의 광기를 제대로 읽었다. 이들은 “민족주의 엿먹어라” “인종주의는 이제 그만” “그 어떤 인간도 불법으로 존재하지 않는다” 등 버마 전역의 보편적 정서에 비춰볼 때 대범한 구호의 피켓을 내걸었다. 이 중 “차별을 용납할 수 없다”고 외친 한 연설자는 휠체어를 타고 있었다. 이들은 극우파시즘이 더 이상 민족주의의 이름으로 정당화될 여지가 없음을 꼬집었다.

이유경 국제분쟁 전문기자 Lee@Penseur21.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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