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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팔 정계에 부는 이상한 코리아 열풍

한국의 통일교 교리 당 이념 삼는 ‘네팔가정당’은 평화재건부 장관 배출…김일성 주체사상을 기반으로 한 ‘네팔노동자농민당’은 박타푸르 지역에서 지지율 100%

제1111호
등록 : 2016-05-10 16:00 수정 : 2016-05-11 14: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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싱하더르바르 정부청사에서 만난 에크 나트 다칼 네팔 평화재건부 장관(왼쪽)은 네팔 통일교의 대표적 신자로 2008년 창당한 가정당 총재이자 재선 의원이다. 나라얀 만 비죽체 총재가 이끄는 네팔노동자농민당은 개발과 비교적 거리가 있는 농촌마을 박타푸르 지역의 지지를 기반으로 삼는다. 비크람 라이

“안녕하세요.” 지난 3월6일 저녁, 네팔 파탄 시내에 있는 병원 응급실에서 만난 디파크 삽코타는 옆 침대에 한국인이 있다는 말을 듣고 바로 한국어로 인사를 건네왔다. 한국 노동비자를 받기 위해 한국어시험을 준비하고 있으리라는 기자의 예상과 달리 그는 ‘문선명’을 통해 한국을 알게 됐다고 했다.

“문선명의 평화 철학은 네팔에서 강력한 메시지다. 네팔에는 종족과 종교가 많고 정치적 갈등과 전쟁이 있었기 때문이다.” 삽코타는 네팔 수도 카트만두에서 90km쯤 떨어진 다딩주(Dhading District) 통일교회 리더라고 했다. 그는 이날 통일교 행사에 참석하기 위해 동료와 버스를 타고 지방에 다녀오던 중 구토와 설사가 심해 탈수 증상으로 응급실에 실려왔다.

삽코타에게 한국은 문선명의 평화 이념이 탄생한 곳이자 전세계에서 가장 마음이 맑고 영적 비전이 뚜렷한 사람들이 사는 땅이다. 그는 한국을 기독교인의 이스라엘이나 무슬림의 메카처럼 신성하게 묘사했다. 언젠가 경기도 가평 청심수련원에서 열리는 리더십 프로그램에 참석하는 것이 그의 꿈이다. 한국어는 그날을 대비해 독학으로 배우고 있다.

“하나님 아래 우리 모두가 가족이고 형제자매라고 배웠다. 네팔은 곧 하나님의 땅 ‘천일국’의 중심이 될 것이고, 네팔은 물론 전세계 공용어는 한국어가 될 날이 올 것이다.” 삽코타의 이 말은 옆에 있던 네팔인 의사의 표정을 의아하게 만들었지만 그는 확신에 차 있었다.

통일교 가정당이 배출한 전세계 첫 국회의원

삽코타는 통일교 조직인 세계평화연맹(Universal Peace Federation) 네팔지부 회원이다. 세계평화연맹 네팔지부는 회원 1만2500명과 평화대사 8천 명을 두고 있다. 네팔지부 사무총장을 맡고 있는 비노드 당이는 ‘합리적’으로 자신의 신심을 설명하려 했다.

“한국에서는 통일교(Unification Church)라고 부르지만 그건 한국에서 불리는 이름일 뿐이다. 이것은 모든 종교 위에 있는 철학이고, 각자의 종교가 더 완벽해지도록 돕는 평화운동이고 영적 운동이지 교회가 아니다.” 통일교 상징이 새겨진 금빛 반지를 끼고 있는 당이 사무총장은 자신이 여전히 힌두교 신자이고 세계평화연맹 활동은 “더 나은 힌두교인이 되는 하나의 길”이라고 덧붙였다.


당이 사무총장에 따르면, 통일교가 네팔에 소개된 것은 1975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한국과 일본의 대학생들이 네팔 주요 대학가에서 세미나를 통해 평화운동과 비전을 전하면서 ‘포교’가 시작됐다. 2005년 문선명 총재가 세계평화투어 일정으로 네팔을 방문한 것을 계기로 네팔 통일교가 본격 성장했다.

네팔 통일교가 새삼 주목받게 된 계기는 새 정부의 에크 나트 다칼 평화재건부 장관의 입각이다. 지난해 9월 말, 샤르마 올리 총리가 취임했다. 뒤이어 새 내각 조직이 마무리됐다. 그런데 그로부터 3개월 뒤인 12월24일, 평화재건부 장관이 새로 임명됐다. 그 주인공이 다칼 장관이다.

다칼 장관은 통일교 이념을 바탕으로 한 정당인 ‘네팔가정당’(Nepal Family Party)의 총재이자 재선 의원이다. 전세계를 통틀어 통일교를 배경으로 한 정당이 배출한 첫 번째 국회의원이기도 하다.

그는 트리부반대학 시절 통일교 교리를 접한 네팔의 ‘간판’ 통일교 신자다. 다칼 장관은 기자와의 인터뷰에서 “네팔의 사회문제와 세계에 대해 막 관심을 갖고 알아가던 시기에 접한 신선한 충격이자 흥미로운 발견이었다”고 회상했다. 그의 싱하더르바르 정부청사 사무실 한쪽에는 문선명과 한학자 총재 부부가 손을 잡고 서 있는 대형 전신사진이 걸려 있었다.

네팔가정당은 통일교 교리를 당 이념으로 2008년 1월 창당했다. 왕정제 폐지 뒤 치러진 같은 해 3월 첫 제헌의회 선거 두 달 전에 조직됐다. 첫 선거에서 네팔가정당은 2만3512표를 얻어 비례대표 1석을 확보했다. 당 총재인 다칼이 비례대표 의원으로 의회에 처음 진출했다. 2013년 11월 선거에서는 5만1823표를 얻어 다칼 장관을 포함해 2명의 비례대표 의원을 배출했다.

네팔 정치인들의 한국행 배경은?

통일교가 의회 진출에 성공한 것은 지금까지 전세계에서 네팔이 유일하다. 통일교 ‘본토’인 한국의 가정당은 2003년과 2007년 두 번 창당했다가 국회 진출에 실패하고 정당 등록이 취소됐다. “네팔가정당은 네팔 정치에 없던 새로운 비전의 보수당이다. 가정, 평화 등의 가치를 중심에 두고 있기 때문에 다양한 종족, 다양한 이념의 정당을 두루 끌어안는다. 우리는 모든 당과 친하다. 그로부터 작지만 강한 영향력이 나온다.” 다칼 장관의 설명이다.

그러나 다칼의 장관 임명은 네팔 기자들로부터 의혹과 호기심을 자아냈다. ‘비례대표 의석 두 자리밖에 차지 못한 신생 군소당이 어떻게 장관 자리까지 꿰찼는가’ 하는 것이었다. 샤르마 올리가 당선된 총리선거에서 재정적 지원에 따른 보은 인사라는 의혹도 따라다닌다.

“그동안 다칼이 한국에 데려간 (네팔) 국회의원과 정치인, 공무원 명단만 작성해봐도 매우 흥미로울 거다. 여야 가릴 것 없이 고위급 인사들이 다 한 번쯤 다칼과 통일교 행사(junket)로 서울과 방콕 등 해외 곳곳을 여행했다.” 네팔에서 가장 널리 읽히는 네팔어 시사주간지 <히말 카바르파트리카>(Himal Khabarpatrika) 편집장 키란 네팔의 말이다.

네팔 최대 미디어그룹 칸티푸르(Kantipur)의 네팔어 시사주간지 <네팔>도 2016년 2월 셋째 주 발행호에서 다칼 장관의 잦은 한국행을 꼬집었다. 당시 다칼 장관은 네팔 국회의원 10여 명을 이끌고 일주일간 세계평화통일가정연합 주관 서울 행사에 참석했다. 문선명·한학자 총재 탄생을 기념하는 대규모 행사였다. <네팔> 기사는 로비 논란 속에 평화재건부 장관을 차지한 다칼 장관이 자신의 직무보다 종교 전도에 더 열을 올리고 있다고 비판했다.

다칼 장관은 이런 비판을 반박했다. “보도된 내용은 네팔 전체 언론 보도의 극히 일부이고, 추측성 매도다. 서울에서 네팔 의원들이 한국 의원들과 만나 교류하고 전세계 각국에서 모인 의원들과 한반도 안보·평화·통일 현안에 대해 논의한 것이 의원 직무 범위를 벗어난 건가? 아니잖나.” 지난 2월23일, 서울 방문 직후 기자가 직접 만나 들어본 다칼 장관의 변이다.

“우리더러 네팔의 남·북한 첩보원이란다”

지진으로 무너져내린 박타푸르 젠라2구역. 네팔노동자농민당의 충성도 높은 지지자들이 거주하는 곳이다. 이슬기

과연 네팔 의원들의 한국행은 네팔 외교 현안과 평화 구축에 도움이 되는 출장이었을까? <세계일보> 보도에 따르면, 네팔 의원들이 참석한 세계평화의원연합은 2월15일 서울 여의도 국회의원회관에서 창립준비 회의를 열고, 제5유엔사무국 서울 설치를 위한 서명에 참여했다. 유엔사무국 한국 설치는 문선명과 한학자 총재의 세계평화통일가정연합이 수년간 전세계 국회의원들을 조직해가며 공들여 주도해온 ‘통일교의 글로벌 프로젝트’ 중 하나다.

네팔 정계에는 다칼을 둘러싼 농담이 있다. ‘다칼은 남한의 첩보원이고, 비죽체는 북한 첩보원’이라는 것이다. 대한항공 카트만두 사무소 설치 등 남한과 관련된 공적·사적 프로젝트의 대부분이 다칼 장관을 거쳐 이루어졌다는 데서 비롯됐다.

그렇다면 바칼과 비교돼 ‘북한 첩보원’ 소리를 듣는 비죽체는 누구일까. 5선 의원인 나라얀 만 비죽체는 네팔노동자농민당(Nepal Workers Peasants’ Party) 총재다. 네팔노동자농민당은 박타푸르를 기반으로 김일성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DPRK) 초대주석의 주체사상을 당의 기본 지도 이념으로 삼고 있는 네팔의 공산주의당이다. 1975년 창당했다.

카트만두에서 동쪽으로 약 15km 떨어진 박타푸르는 카트만두, 파탄과 함께 카트만두 분지 3대 고도 중 하나다. 경제적·지리적으로 카트만두와 파탄보다 개발의 손길에서 벗어나 있는 인구 약 7만2천 명의 전통적인 농촌문화 중심 마을이다. 지난해 4월25일 네팔을 강타한 대지진으로 카트만두 분지에서 가장 큰 피해를 입은 곳이기도 하다. 박타푸르에서 첫 강진으로 1만8900채의 집과 4월 여진으로 9054채의 집이 무너져내렸다.

말라 왕조(1201∼1769)에 지어진 박타푸르의 명소 3층 사원 다타트레야(Dattatreya) 뒤에 위치한 젠라2구역(Jenla-2)은 1년이 지나서도 2015년 대지진의 피해를 고스란히 보여준다. 물을 길어 나르는 소녀, 빨랫감을 든 주부, 집에서 기르는 닭과 병아리들이 무너져내린 전통 흙집의 잔해와 흙먼지 사이를 오가고 있었다.

“이 지역은 선거 때마다 네팔노동자농민당 지지율이 100%를 기록한다. 박타푸르에서도 로힛 동지와 우리 당의 가장 충실한 지지층이 살고 있는 곳이다.” 젠라2구역에 동행한 네팔노동자농민당 산하 청년조직 네팔혁명학생연합 의장 니라즈 라워주의 설명이다.

‘로힛 동지’는 비죽체 총재가 왕정제 시절 게릴라 지하조직으로 공산주의운동을 했을 때 붙여진 가명이다. 올해 31살인 라워주는 “박타푸르에선 가족, 친지, 이웃 어른들이 모두 당원이거나 로힛 동지 지지자이니 청소년기에 당에 가입하는 것은 자연스런 수순”이라고 말했다.

다타트레야 광장 한쪽에서 25년간 찻집을 운영해온 고팔 라츠마슈는 ‘로힛 동지’의 선견지명을 칭송했다. “다른 정치인들보다 정치적 판단이 성숙하고 멀리 내다보는 안목이 있는 리더다. 2005년 마오이스트 반군이 정부와 유혈 갈등을 멈추기로 합의한 12개항 합의서에 서명할 때 이미 인도의 네팔 국경 봉쇄를 전망했다.”

박타푸르 시민, 한반도 안보에 관심 각별

네팔노동자농민당이 지난 30여 년간 박타푸르 시민들의 지지를 확보한 비결은 노동자와 농민의 이익을 우선으로 삼고, 선거 공약을 실천한 데 있다. 비죽체는 1997년 지방직 선거 중 박타푸르 유권자에게 기술대학과 공동체병원 설립을 약속했다. 쿼파공학대학, 바기수워리 학교, 박타푸르 공동체병원 등은 모두 그 약속의 결과다.

수잔 마카 쿼파공학대학 총장은 박타푸르가 비죽체 총재에게 품고 있는 존경심의 바탕을 이렇게 설명했다. “로힛 동지와 네팔노동자농민당은 교육의 중요성을 믿고 실천한다. 그중에서도 박타푸르의 문화적·건축적 고유성, 네팔 개발 전반에서 중요한 공학대학 투자를 강조하고 그 약속을 지켰다.”

현재 네팔 의회에서 4석(비례대표 2석, 직선 2석)을 보유한 네팔노동자농민당이 처음 북한의 주체사상을 접한 것은 1990년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비죽체 총재가 지하 공산주의운동으로 체포됐다가 석방된 직후 주카트만두 북한대사관에서 먼저 연락해왔다. 북한대사관을 통해 한반도의 현대사와 통일에 대한 열망을 접했다.

“한국이 미국과 일본 지배층의 영향 아래 있는 것이 네팔이 인도 지배 세력의 영향력을 벗어나지 못하는 것과 같았다. 한국과 네팔이 처한 현실에 대한 공감대가 있었고, 김일성 동지의 주체사상은 인도로부터의 경제적·정치적 독립을 열망하는 네팔에도 유효한 비전이다.” 지난 4월9일 박타푸르 공동체병원에서 기자와 만난 비죽체 총재의 말이다.

네팔노동자농민당의 영향을 받은 박타푸르 시민들은 북한의 주체사상이나 한반도 안보·평화 문제에 대한 관심이 각별하다. 네팔노동자농민당의 프렘 수왈 전 박타푸르 시장이 주도하는 ‘한반도 세미나’도 당의 주요 프로그램 중 하나다. 당원들이 받는 필수 교육 커리큘럼에는 카트만두 북한대사관을 통해 받은 김일성·김정일의 생애와 업적, 주체사상과 남아시아 공산주의당 정치인들의 평양 기행문의 네팔어 번역서가 교재로 포함돼 있다.

당원 라메시 수왈(31)은 “김일성은 호찌민, 피델 카스트로, 로자 룩셈부르크 등과 함께 네팔에서 공산주의 교훈을 가르쳐주는 훌륭한 선생”이라고 말했다. 박타푸르에선 이 공산주의 지도자들의 탄생일에 세미나나 작은 기념행사가 열린다.

“‘한국’이라는 이름에 따르는 동경심이 네팔에서 문선명의 통일교나 김일성의 주체사상을 긍정적으로 보게 한 첫 번째 배경일 것이다.” 쿤다 딕시트 네팔 영자주간지 <네팔리타임스> 편집장의 분석이다. “무엇보다 현재 네팔 정치에서 결핍된 종교적 이상과 공산주의적 이상이 시민들에게 다르게 다가갔을 것이다.”

두 당의 인기는 네팔의 제도권 종교가 채워주지 못한 현실적인 가정문제나 네팔 공산주의당이 공산주의 이념과 거리가 멀다는 지난 수십 년의 경험에 근거하고 있다. 두 정당의 성취에 대해 네팔 언론인들은 ‘네팔에서나 가능한 이례적인 현상’이라고 공통적으로 분석하고 있다.

두 정당 모두 시대착오적 이념이 한계

총 597석의 네팔 의회에서 각각 2석과 4석을 차지한 네팔가정당과 네팔노동자농민당의 존재감은 미미하다. 네팔 의회의 주요 3당은 네팔의회(Nepali Congress), 네팔공산당-통일마르크스레닌주의자(CPN-UML), 네팔통일공산당-마오이스트(UCPN-Maoist)다. 이 세 정당이 597석 가운데 451석을 차지하고 있다.

‘남한과 북한의 첩보원’ 별명을 얻고 있는 네팔가정당과 네팔노동자농민당이 이들 주요 정당의 아성을 넘보는 전국적 대항마가 되기는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결혼·가정 중심의 통일교 교리, 전체주의 체제를 정당화하는 주체사상 모두 시대착오적인 이념이고 꽉 막힌 맹신이라는 것 역시 네팔 언론인들이 지적하는 한계다.

이념주의 정당에 대한 네팔 시민들의 무관심에 대해 사가르마타(에베레스트의 네팔 이름)가 보이는 마을 출신인 베테랑 트레킹 가이드 찬드라 라이(31)가 말했다. “정치는 이념이 아니라 길을 보여주는 거라고 생각한다. 산골에서 논밭에만 의지해 사는, 교육받지 못한 네팔인들이 어떻게 하면 말레이시아, 중동, 한국에 가지 않고도 고향에서 아이들을 교육하고 일하면서 살 수 있을지 보여주는 게 정치다.”

카트만두(네팔)=이슬기 <네팔리타임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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