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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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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팔의 길은 어디인가

지진 피해 복구 시작하고 인도와의 국경 봉쇄 끝났지만 변함없이 가난한 일상… 중국과 인도 영향권 벗어나 에너지 자립 필요해
등록 2016-03-01 08:51 수정 2020-05-02 19:28
‘연료 없음’ 팻말이 붙은 네팔 파탄 지역의 주유소. 5개월간 이어지던 네팔-인도 국경 봉쇄가 지난 2월5일 성난 시민과 상인들에 의해 끝났다. 하지만 네팔의 주요 도시에선 여전히 연료 구하기가 쉽지 않다.

‘연료 없음’ 팻말이 붙은 네팔 파탄 지역의 주유소. 5개월간 이어지던 네팔-인도 국경 봉쇄가 지난 2월5일 성난 시민과 상인들에 의해 끝났다. 하지만 네팔의 주요 도시에선 여전히 연료 구하기가 쉽지 않다.

지진 피해와 국경 봉쇄로 고달팠던 네팔의 긴 겨울이 끝나고 따뜻한 계절이 돌아오고 있다. 이번주 들어 수도 카트만두의 한낮 기온은 영상 20℃를 넘어섰고, 겨우내 카트만두 분지에 내려앉았던 구름이 걷히면서 도심 주택 옥상에서도 가네시히말(7422m), 랑탕리룽(7247m), 시샤팡마(8027m), 도르제락파(6966m), 푸브리갸추(6637m) 등 히말라야 설산을 볼 수 있을 정도로 시야가 트였다.

저녁 먹을 때마다 불이 꺼지는

이곳에서 따뜻한 봄만큼 반가운 소식은 정부가 본격적으로 지진 피해 복구 작업을 시작한 것, 그리고 네팔-인도 국경 봉쇄가 끝났다는 사실이다. 지난해 4월25일 네팔 중부 지역을 강타한 진도 7.8 규모의 강진 이후 조직된 국가재건위원회(National Reconstruction Authority)는 위원장 자리 싸움 탓에 정식 출범만 9개월을 끌다가 1월16일부터 지진 피해 복구 작업에 착수했다. 지난해 9월23일 네팔연방민주공화국 신헌법 발효 뒤 시작된 남부 테라이-마데시 지역 정당 주도의 네팔-인도 국경 봉쇄도 지난 2월5일 성난 시민과 상인들이 국경을 가로막던 천막과 대나무 바리케이드를 철거하면서 5개월 만에 끝이 났다.

그래도 평범한 시민들의 일상에 눈에 띄는 변화는 없다. 카트만두의 주요 주유소 앞에는 500m 이상 길게 늘어선 오토바이와 1km 이상 이어지는 자동차 줄이 있고, 이를 통제하는 경찰의 호루라기 소리가 행인의 신경을 곤두서게 한다. 여전히 가스와 석유를 구하기는 쉽지 않다. 모든 살림살이가 전기를 필요로 하지만 일반 가정집에서 하루 중 전기를 쓸 수 있는 시간은 11~12시간뿐이다.

이런 불편한 생활은 10년 전 마오이스트 인민전쟁(People’s War·1996∼2006년)기간과 크게 다르지 않다. 도시, 산골 할 것 없이 새벽 5시부터 마을 공동 우물물로 밥을 짓고 목욕하고, 저녁 7~8시 식사 시간마다 전기가 끊기고, 400km 거리를 차로 12시간 동안 이동해야 하는 것이 모두 10년 전이나 지금이나 일상적인 일이다. 평범한 시민의 생활에 ‘발전’이 없는 이런 상황을 네팔 언론과 지식인들은 ‘끝이 없는 전환기’(Endless Transition)라고도 하고, ‘전환기에 길을 잃었다’(Lost in transition)고도 진단한다. 지난 100년 동안 절대왕정제에서 입헌군주제를 거쳐 끝내 연방민주공화제로 정치체제가 진보해왔지만 정말 시민들의 살림살이가 나아지는 살 만한 나라가 되기까지 전환기가 길어지고 있다는 뜻이다.

네팔의 길은 어디인가. 정부, 정치인, 언론인, 지식인 모두 입을 모아 ‘경제 외교’와 ‘에너지 자립’을 전환기 극복 과제로 강조하고 있다. 두 과제는 네팔과 국경을 맞댄 두 신흥개발국 중국, 인도에 달려 있다. 네팔 영자주간지 발행인 겸 편집장 쿤다 딕시트에 따르면, 중국과 인도는 네팔에서 ‘새로운 히말라야 대승부’(New Himalayan Great Game)를 벌이고 있다.

히말라야를 사이에 둔 신냉전

두 나라는 1962년 중국-인도 히말라야 국경분쟁(10월20일~11월21일) 이후 네팔과 부탄을 사이에 두고 불안한 관계를 유지해왔다. 중국과 인도는 네팔 서쪽 악사이친(현재 중국령)과 부탄 동쪽 아루나찰프라데시(현재 인도령) 지역에서 국경 전쟁을 벌였다. 전쟁 뒤 인도가 중국의 티베트 침략을 묵인하는 대신 중국은 네팔과 부탄을 인도의 관리하에 두는 데 딴지를 걸지 않았다. 현재까지 유효한 이 불문율은 국경분쟁을 해결하고 중국-인도 화해 무드 조성을 위한 1988년 12월 덩샤오핑 중국 주석과 라지브 간디 인도 총리 사이의 협상 조건이었다.

최근 들어 다시 국제사회에서 강국으로 떠오른 두 나라가 ‘새로운 히말라야 대승부’ 혹은 ‘히말라야산맥의 신냉전’을 벌이고 있다. 히말라야의 물 등 천연자원에서 두 나라의 이해관계가 부딪치는 까닭이다. 중국과 인도 모두 경제성장과 함께 인구가 증가하고 소비력이 진작되면서 대규모 물 부족 사태를 예견하고 있다. 산업용수와 식음용수 모두에 해당하는 말이다. 중국과 인도가 원하는 것은 티베트 고원과 히말라야 만년설, 그리고 빙하에서 흘러나오는 물이다.

이미 인도는 네팔의 주요 강 수력발전 사업권을 챙겨 인도 내수용 전기 생산에 매달리고 있고, 중국 역시 네팔의 주요 강과 계곡에 댐과 관개시설을 건설하고 있다. 이 과정에서 중국과 인도 모두 네팔의 물이 상대 경쟁국 영토로 흘러가지 못하도록 물길을 확보하는 경쟁을 벌이고 있다. 외부인들이 한 번쯤 방문하거나 상상을 키워온 ‘신비한 히말라야 이상향’의 땅 샹그릴라(Shangrlia)가 실제로는 중국과 인도의 각축장이었고 지금도 그렇다. 1768년 네팔을 통일한 프리티비 나라얀 샤는 이런 네팔의 상황을 ‘두 돌 사이에 낀 참마(yam)’로 비유했다. 250년쯤 전에도 네팔의 피할 수 없는 지정학적 파괴력을 인식했던 것이다.

여기서 네팔이 세운 외교 전략은 두 나라의 힘겨루기를 이용해 양쪽 모두로부터 이익을 챙기는 것이다. 1960년 의회를 해산하고 절대왕정을 복권하려 했던 마헨드라 왕(1955∼72년 통치)의 외교 비전이기도 하다. 2015년 네팔 신헌법 4장 외교관계에는 ‘판차실(Panchasheel)의 원칙’이라는 말이 있다. 산스크리트어로 ‘다섯 가지 덕목’을 뜻하는 이 표현은 1954년 중국과 인도가 맺은 다섯 가지 외교 조약(상호 영토주권 존중, 상호 불가침, 상호 내정 불간섭, 상호 이익을 위한 평등과 협력, 평화적 공존)을 가리킨다. 중국과 인도 사이의 외교 조약을 헌법에 외교 원칙으로 명시한 것은 네팔이 양쪽의 외교 관계 모두에서 이익을 얻겠다는 의지를 못박은 것으로 볼 수 있다.

네팔은 준비가 되어 있다

지난 국경 봉쇄가 끝난 뒤 네팔 시민들은 정부가 양국 관계를 어떻게 회복하고 새롭게 정립할지를 지켜보고 있다. 지난해 10월 취임한 KP 샤르마 올리 총리는 100명 가까운 특사단을 이끌고 2월19일 금요일부터 6일간 인도를 방문했다. 올리 총리의 첫 공식 해외 순방 일정이다.

다시 네팔의 길은 어디일까. 지금 네팔은 250년 샤 왕조의 나라를 끝내고 네팔 민중이 그렇게 바라던 ‘모두의 나라’를 향해 가고 있다. 네팔에는 현재 21개 정당이 있고 의회에는 575개의 의석이 있다. 불가촉천민, 여성도 국회의원으로 당선돼 활동하고 있다. 시민들은 권력다툼식 정치에 피로감을 느끼지만 헌법의 ‘포괄적 민주주의’가 실현되길 고대하고 있다. 딕시트 편집장은 “성실하고 열심히 일하는 사람들, 물과 나무 등 풍부한 천연자원을 갖춘 네팔은 이륙할 준비가 되어 있다”고 말한다.

중국 공산당의 ‘일대일로’(一帶一路)와 인도 나렌드라 모디 정부의 힌두국가건설(Hindutva) 같은 패권 다툼의 틈바구니에서 네팔은 어떤 선택을 해나갈까. 중국과 인도에 히말라야의 물을 뺏기지 않으면서 그들의 기술과 자금을 이용해 에너지 자립을 이루는 것이 네팔 정부의 외교·경제 정책의 우선과제가 돼야 할 것이다.

글·사진 카트만두(네팔)=이슬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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